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103
와일드 헌트 (6)
3,000m가 넘는 높이에서 날아다니는 거머리 드래곤을 쏘아 맞히는 일은 예언자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다.
어느 시점에 어떤 곳으로 날아올지 미리 알고 있더라도 포탄을 명중시키려면 탄속과 기상 조건을 고려해 예측 사격을 해야 했고, 조준을 도울 전자기기나 사격 보조 장치 없이 이를 성공시키는 것은 신기에 가까운 영역이었다.
‘괜히 다른 사냥꾼들이 미친 짓 취급하는 게 아니지.’
눈을 감은 채 미래를 설계하던 재환은 머리가 핑 도는 감각과 함께 눈을 떴다. 그가 본 미래들은 대부분 오차로 인해 아슬아슬하게 빗나가는 것들이었고, 정확하게 명중시켜서 거머리 드래곤을 떨어뜨리는 미래는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그래도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야. 성공하는 미래도 꽤 많이 보였으니까. 처음 한 번만 잘 찾아내면, 그다음부터는 일사천리지.’
예지력으로 본 미래를 실현하려면 까다로운 조건을 갖춰야 했다. 미래에서 행했던 움직임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재현하고, 이를 재현하는 타이밍 역시 조금이라도 늦거나 빠르지 않게 재현하지 않으면 아무리 미래를 알고 있더라도 이를 실현해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기회를 잡으려면 노력이 필요한 거지. 완벽한 타이밍, 군더더기 없는 움직임. 근육이랑 신경 하나하나까지 조절하는 집중력. 어느 것 하나라도 모자라면 그대로 무용지물이 되는 거니까.’
예지력을 사용해 거머리 드래곤을 격추하는 미래를 찾아낸 재환은 시계를 살펴본 뒤 대공포를 조작했다.
‘이제 건기가 20분밖에 안 남았군.’
그는 조준선 너머로 거머리 드래곤의 윤곽을 찾아내어 대공포를 조준했다.
‘그 안에는 사냥을 끝내야지. 시간을 끌수록 내 쪽이 불리해질 테고, 다른 괴물들이 몰려오기 시작하면 그대로 끝장이니까.’
거리를 활보하는 괴물들을 상대하는 것 자체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별의 심장을 먹고 깨우친 신비 덕분에 이제는 다수의 괴물을 상대하더라도 체력이 떨어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고, 웬만한 괴물들은 사냥꾼 특유의 기동성을 활용하여 치고 빠지는 것을 반복한다면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궁지에 몰리지는 않았다.
‘샬롬에 있는 괴물들이 전부 거머리 드래곤을 지키러 온다고 가정하면, 그건 괴물이 아니라 해일이라고 부르는 게 맞겠지. 아무리 내가 괴물을 잘 죽이고, 체력이 떨어지진 않아도, 두 팔로 해일을 상대할 순 없는 거니까.’
거머리 드래곤을 떨어뜨린 이후의 일을 생각하던 재환은 구름 너머를 날아다니는 거머리 드래곤의 윤관이 좀 더 선명해지는 것을 확인한 뒤 시선을 집중했다.
그는 속으로 숫자를 세면서 미래에서 보았던 거머리 드래곤의 윤곽과 현재의 모습이 겹치는 타이밍에 집중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침착하게.’
타이밍을 확인한 재환은 레버를 내려서 대공포를 작동시켰고, 약탈단이 개조한 샬롬식 대포는 톱니바퀴가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화약 공방의 기술이 결합된 포탄의 안전장치를 해제했다.
‘권총이든, 대포든, 정확하게 쏘기만 하면 그만인 일이니까.’
안전장치가 풀리는 소리가 끝나는 것과 동시에 재환은 발사 스위치를 눌렀고, 스위치가 눌러지는 것과 동시에 안전장치가 풀린 포탄이 굉음을 내며 허공을 가로질렀다.
‘하나. 둘. 셋.’
포탄이 날아가는 경로를 바라보던 재환은 대공포에서 내려온 뒤 탈바꿈을 집어 들었다.
‘떨어진다.’
포탄은 거머리 드래곤의 날갯죽지에 적중했고, 포탄에 맞은 거머리 드래곤은 화염에 휩싸인 채 지상으로 추락했다.
‘지금부터는 시간 싸움이야.’
거머리 드래곤이 떨어지는 모습을 확인한 재환은 거머리 드래곤이 떨어질 장소를 향해 달려갔다. 사전에 괴물의 숫자를 줄여뒀음에도 거리의 곳곳에서는 여전히 괴물과 괴인이 즐비했고, 재환은 그들을 자르고 토막 내면서 목적지를 향해 질주했다.
‘조금만 늦으면 금방 재생해버릴 테니까. 저 정도의 괴물한테 재생 능력이 없을 리 없고, 일단 재생하고 나면 지는 건 내 쪽이겠지.’
거리를 메운 괴물을 해치우며 앞으로 나아가던 그는 거리가 어느 정도 가까워지자 발걸음을 멈췄다. 온몸에 불을 붙인 채 추락하던 거머리 드래곤이 땅에 처박히기 직전이었고, 거머리 드래곤이 떨어질 장소가 화약 공방이 소유한 화약 연구소였기 때문이다.
‘적어도 약속 하나는 지켰군.’
거머리 드래곤이 땅에 떨어지는 것과 함께 폭발이 일어났고, 폭발의 여파로 일어난 불꽃에 의해 공방의 거리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불꽃놀이 하나는 확실하게 하는 중이니까. 이 정도면 약탈단 놈들도 불구경 하나는 확실하게 하겠지.’
연구소가 불타오르고 있음에도 폭발 자체는 그다지 크게 일어나지 않았다.
이 부근의 화약들은 약탈단에 의해 약탈당한 뒤였고, 남아있는 화약은 그 양이 적을 뿐만이 아니라 위력도 미약한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해. 너무 폭발이 쌔면 도시 자체가 날아가 버릴 수도 있으니까.’
거리가 불타오르기 시작하자 주변에서는 매연이 피어오르기 시작했고, 사방에서는 불에 탄 괴물과 괴인의 괴성이 생존자들의 비명소리와 함께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집중하자. 모르고 한 일도 아니었으니까.’
집이 불에 타 거리로 뛰쳐나온 시민이 괴물에게 살해당하고, 괴물이 무서워 나가지 못한 시민은 화재로 인해 불에 타 죽거나 숨이 막혀서 죽는다.
재환은 예언자로서 이런 상황을 미리 알고 있었고, 와일드 헌트 기간에 고의로 방화를 저지르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역시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재환은 살아남은 시민들이 내지르는 비명을 발판삼아 불타오르는 거리를 질주했다.
‘괴물을 죽여야지. 그래야 이 악몽이 끝날 테니까. 이 악몽의 원흉을 없애지 않으면, 악몽이 반복될 뿐이야.’
이제는 세뇌에 가까워진 신념을 곱씹으며, 괴물과 사람의 시체를 넘어, 한참을 내달리던 그는 마침내 거머리 드래곤이 쓰러진 곳에 도착했다.
“——————————–”
온몸이 불에 탄 채 울부짖는 거머리 드래곤의 모습은 흉측하기 짝이 없었다.
거머리 드래곤의 피부를 덮은 비늘은 거머리로 이루어져 있었고, 무수히 많은 거머리 비늘들은 주변의 불길을 꺼트리기 위해 흐느적거리며 꿈틀거리고 있었다.
적어도 수백만 마리는 넘어 보이는 거머리들이 한곳에 뭉쳐서 꿈틀거리는 꼴은 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을 갉아먹기에 충분했고, 거머리 드래곤이 고통에 겨워서 내지르는 비명을 듣고 있으면 뇌의 주름 하나하나에 거머리가 스며드는 것만 착각이 들 정도로 끔찍한 기분이 느껴졌다.
‘아직 숨이 붙어있군.’
거머리 드래곤을 향해 시선을 집중한 재환은 전투 자극제를 추가로 투여하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죽이려면 지금이 기회야. 하늘에서 떨어지고, 몸이 불타고 있는 만큼 데미지가 쌓였을 테니까. 지금 전력을 다 쏟아 붓는 게 최선이지.’
판단을 끝낸 재환은 품에서 남은 폭탄을 꺼내기 시작했고, 거머리 드래곤은 온몸을 뒤틀며 고통에 겨운 비명을 질렀다.
“———————————”
굉음에 가까운 비명이 들리자 재환은 눈살을 찌푸렸다. 지력이 충분히 높아진 덕분에 거머리 드래곤의 비명에 담긴 의미를 직감하여 읽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라! 하늘에서 태어난 자들은 하나로 돌아와라! 만물은 하늘에서 출발했으며 그 끝에는 하나만이 있을지니. 이는 하늘의 율법이며 어미의 부름이다!
뇌리를 관통하는 비명에 숨을 죽이던 재환은 품속에 있던 점착 폭탄들을 꺼내 거머리 드래곤을 향해 겨눴다.
‘그렇게는 안 되지.’
품속에 들어있던 점착 폭탄들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고, 모든 폭탄을 던진 재환은 근처에 있던 폐가로 달려가 몸을 숨겼다.
‘겨우 여기까지 몰아붙였는데, 회복하게 두면 그게 더 미친 짓이지.’
와일드 헌트의 주인이 호러라고 불리는 이유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지혜를 한계까지 올려서 성자를 사냥해온 재환에게도 호러의 존재감은 심상의 깊은 곳에 묻혀있는 혐오감과 공포를 자극했고, 호러가 비명을 지르면 숨이 턱 막혀오는 것만 같은 감각까지 느껴질 정도였기 때문이다.
성자를 사냥한 경험이 있는 그에게도 이 정도의 충격을 주는 괴물이라면 레오나르도가 말했던 것처럼 평범한 사냥꾼들은 가까이 가는 것만으로도 미쳐버릴 수 있었고, 설령 지혜로운 사냥꾼이라 할지라도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그래, 비명을 질러 봐. 괴물을 더 불러 봐.’
폭탄이 터지는 것과 함께 거머리 드래곤의 몸체가 폭발했고, 거머리 드래곤은 온몸이 불에 타는 와중에서 재생을 반복하면서 난동을 부렸다.
건물 하나 크기의 거대한 괴물이 온몸을 비틀자 주변에 있던 건물들이 무너졌고, 재환은 잔해에 깔리지 않게 이동하면서 거머리 드래곤을 향해 거리를 좁혔다.
‘네 자식들은 못 와. 절대로 제때 못 오지.’
사방에서는 거머리 괴물들이 자신을 낳은 어미를 찾아 요동치고 있었지만, 재환은 그들이 몰려오는 것을 무시한 채 거머리 드래곤을 향해 뛰어올랐다.
‘그 전에 네 숨통이 끊길 테니까. 정신 차릴 틈도 없이 끝내주마.’
무너진 건물의 잔해를 넘어, 불타오르는 외벽을 지나, 불에 익은 거머리들의 시체를 밟고.
그는 몸이 파괴되고 재생되는 것을 반복한 끝에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거머리 드래곤의 목을 내리쳤고, 목이 잘린 단면에서는 자그마한 거머리들이 수은 빛깔로 빛나는 액체와 함께 쏟아져나왔다.
‘피다. 위대한 피다.’
쏟아져 나온 작은 거머리들은 몸을 비틀거리는 거머리 드래곤을 대신하여 튀어 올랐다. 저들에게 물리면 거머리 괴인이 될지도 몰랐지만, 재환은 튀어 오른 거머리들을 무시한 채 거머리 드래곤을 탈바꿈으로 해체했다.
‘거의 다 왔어. 이제 조금밖에 안 남았지.’
거머리들이 몸에 들러붙어 피를 빠는 감각은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조금씩 피가 빨릴 때마다 그는 거머리 드래곤에게 굴복하고 싶은 욕망을 느껴야 했고, 뇌에 뇌수 대신에 거머리가 흐르는 것만 같은 기분은 ‘공포’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호러. 호러! 이름 하나는 잘 지었어.’
살가죽을 자르고, 살점을 헤집고, 힘줄과 내장을 썰어버리며, 발버둥 치는 거머리 드래곤의 몸체를 해체하던 재환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거머리 드래곤의 본체를 내려다봤다.
‘한 수만 모자랐거나, 조금만 늦었으면 나도 거머리가 됐겠지. 다들 그런 식으로 사냥에 실패했을 테고.’
그는 자신의 피부가 거머리에 가깝게 변해버렸음을 느끼며 이를 손톱으로 긁어냈다. 매끈하면서도 부드러운 이 감각이 싫게 느껴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남겨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래도 이제는 끝이야.’
재환은 탈바꿈을 들어 올려 심장의 위치에서 꿈틀거리는 거머리 드래곤의 본체를 겨눴다. 거머리 드래곤의 본체는 크고 작은 크기의 거머리들이 심장의 형태로 뭉쳐있는 괴물이었다.
‘이걸로 호러 하나는 잡은 거지.’
폐허가 된 건물, 불타오르는 거리, 사방에서 진동하는 피비린내와 시체 썩은 내, 그리고 괴물과 괴인의 괴성과 사람들의 비명을 발판 삼아.
재환은 거머리 드래곤의 본체를 탈바꿈으로 내리쳤고, 그렇게 사냥꾼들이 두려워하는 호러 하나가 움직임을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