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104
와일드 헌트(7)
사냥이 끝나자 재환은 자신의 뺨을 매만졌다. 거머리의 껍질처럼 미끈했던 피부는 거무칙칙한 액체로 변해있었고, 액체를 닦아내고 나자 사람의 피부가 만져지는 것이 느껴졌다.
거머리들의 본체인 거머리 드래곤이 죽자 거머리들이 모두 녹아내려 흐물흐물한 액체가 된 덕분이었다.
‘쉴 시간은… 그렇게 길진 않겠군.’
몸 상태를 확인한 재환은 자신의 피부가 사람의 것으로 돌아왔음에도 안도하지 않았다. 시계탑에서 열차가 도착했음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지 않았고, 아무리 괴물을 죽여도 사람의 숫자가 줄어들지 않으면 열차가 오지 않아 다음 주차로 넘어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직 첫 주차가 끝나지 않았으니, 조금 지나면 다른 호러가 나타날 테지. 사냥꾼들이 호러 사냥을 그만둔 건 호러 하나를 사냥해 봐야 다른 호러가 나타나서 그런 것도 있으니까. 호러 하나를 사냥하는 것도 이렇게 피곤한데, 연속으로 여러 번 사냥하는 건 끔찍한 짓이지.’
아무리 조건과 기술이 갖춰졌다고는 해도 호러를 사냥하는 일은 정신을 혹사시키는 일이었다. 호러는 그 이름에 걸맞게 흉측하고 끔찍한 형상과 능력으로 사냥꾼의 정신을 뒤흔들었고, 이는 지혜를 한계까지 높여서 성자를 사냥해온 재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한번은 시도할 만하지만… 두 번은 솔직히 꺼림칙하지.’
그는 진흙처럼 녹아내리는 거머리 드레곤의 사체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만약 사냥이 조금만 지연되었으면 자신 역기 거머리 괴물이 되었을 거라 생각하자 온몸에 거머리가 스멀스멀 기어 다니는 것만 같은 혐오감이 물씬 피어올랐다.
‘하수구에 들어가는 것도 이것보다는 덜 역겨울 테니까. 기록을 보면 다른 호러들도 끔찍한 건 마찬가지라고 하니, 상대하다 보면 멘탈이 깨지는 건 시간문제일 거야.’
그는 한사랑에게 받은 두루마리에 적힌 기록을 읽고, 호러를 직접 상대했기에 사냥꾼들이 호러를 기피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설령 힘과 기술을 모두 갖춰서 호러를 사냥하는 것에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호러 사냥이 끝나고 나면 정신에 끔찍한 기억이 남기 마련이었고, 끔찍한 기억이 누적된다는 것은 정신에 상처를 입는다는 것을 의미했으며, 정신에 상처가 누적되어 실성하게 되는 것은 회귀자에게 있어서 죽는 것보다 끔찍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사냥하기도 힘들고, 사냥해도 손해인 괴물이라니. 회귀자들 괴롭히기에는 이만한 괴물도 없겠지.’
거머리들이 녹아내린 흔적을 닦아낸 재환은 가죽 주머니를 꺼내 거머리 드래곤의 몸에서 흘러나온 수은 빛깔의 위대한 피를 담았다.
오물과 불순물이 섞여 있는 탓에 색깔이 혼탁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이 위대한 피에서는 희미하게 별의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다.
‘예상하긴 했지만, 역시 성자보다는 미약해.’
그는 가죽 주머니의 주변에서 흘러나온 위대한 피를 손가락으로 찍어 맛을 보았다. 호러에게서 나온 위대한 피는 심장부에만 집중되어있었기에 양이 적었고, 느껴지는 맛 역시 성자들의 심장을 취했을 때보다 묽고 싱겁게 느껴졌다.
‘아무리 강하다곤 해도, 성자만큼은 아니란 거겠지. 기습을 당했다는 걸 고려해도 성자라고 부르기에는 힘이 모자란 감이 있었으니까. 능력의 효과나 범위 자체는 성자 수준이어도, 성자만큼 압도적이라는 느낌은 아니었지.’
지금까지 성자들을 상대해온 경험에 따르면, 성자들이 끔찍한 이유는 그 힘과 능력 때문이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인간의 인지력과 지혜로는 가늠하기 힘든 지식과 지성이 있었으며, 그렇기에 재환은 성자를 사냥하면서도 그들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고 있다는 느낌을 은연중에 느낄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예지력이 없었으면 이렇게 찝찝하지는 않았을 텐데.’
카르페 디엠과 나눌 위대한 피를 채집한 재환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살폈다. 거머리들의 주인이 쓰러지자 거머리 괴물 역시 녹아내리고 있었고, 머리에 거머리를 뒤집어쓴 괴인들은 머리를 잃은 시체가 되어 길바닥에 널브러지고 있었다.
그는 줄이 끊어진 꼭뚜각시 인형처럼 쓰러지는 괴인과 괴물들을 보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랬으면 몸은 힘들었어도 속은 후련했겠지. 어차피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는데, 머리 아플 필요도 없고 말이야.’
괴물과 괴인이 사라진 거리에는 적막이 흘렀다. 살아남은 시민들은 혹시라도 괴물이 남아있을까 봐 숨을 죽이고 있을 것이고, 와일드 헌트에 익숙해진 사냥꾼들은 다음 호러가 나타나기 전까지 휴식을 취했기 때문이었다.
‘마음 같아선 잠이라도 한숨 자고 싶지만, 아직은 늘어질 때가 아니야. 아직 첫 주차고, 이제 막 한걸음 땐 셈이니까. 그리고…’
호러 사냥에 성공했음에도 그의 발걸음은 그다지 가볍지 않았다. 다음 와일드 헌트의 호러가 등장하기 전, 폭풍전야처럼 고요해진 거리의 곳곳에서 흐느낌을 주체하지 못한 시민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마냥 좋아하기에는 너무 많은 걸 태웠으니까. 여기서 웃을 수 있는 건, 괴물만도 못한 쓰레기들밖에 없겠지. 그 약탈자 놈들처럼 말이야.’
그는 호러의 피를 뽑아내기 위해 저들의 눈물을 발판으로 사용했음을 곱씹으며 카르페 디엠의 본거지를 향해 걸어갔다. 이 또한 지금까지 지나왔던 지옥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점이 그에게는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서울이든, 샬롬이든, 세상 어디를 가도 다 똑같겠지. 그러니까 끝장을 봐야 하는 거고.’
그는 자신의 손등에 새겨진 초대장을 흘끗 바라보며 발걸음을 옮겼다.
‘이 도시의 밑바닥에 있는 게 적어도 천사는 아니겠지… 그랬으면 이렇게 잔인할 리는 없으니까.’
그는 사냥꾼들을 불러 모아 지옥을 보여주는 존재가 선한 존재일 리가 없다는 것을 확신하며 그들의 악의를 곱씹었다.
‘그래도 천사보다는 악마인 쪽이 더 쓸모 있긴 할 거야. 세상이 이렇게 미쳐있으면, 착해빠진 놈보단 독한 놈이 더 믿음직스러운 게 사실이니까.’
거머리가 녹아내리며 풍겨오는 악취, 시체에서 흘러나오는 피비린내, 무너지고 불타오른 공방에서 피어오른 매연을 뒤로한 채, 재환은 카르페 디엠의 본거지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그를 맞이한 것은 자신을 괴물 보듯이 바라보는 약탈자들의 시선이었다.
* * *
하늘에서 거머리 드래곤이 떨어지고, 주변에 있던 거머리들이 녹아내렸을 때, 괴물을 사냥해 거리를 약탈하던 카르페 디엠의 수뇌부는 감시자들이 전해온 소식을 들은 뒤 자신들의 귀를 의심했다.
구름 속을 날아다니던 호러를 가늠쇠 정도밖에 없는 대공포 한 발로 떨어뜨렸다는 것도 믿기 힘든 이야기였지만, 그 이후에 사냥꾼 한명이 혼자서 호러를 사냥했다는 얘기는 들으면 들을수록 기괴했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단장님. 뒤통수를 치려면 그놈이 지쳐있을 때를 노리는 게 최선이니까요.”
보물 더미 위에서 은화를 만지작거리던 레오나르도는 자신을 찾아온 간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카르페 디엠 소속의 감시자들이 거짓말을 할 리가 없다는 것은 두 사람 모두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감시자들의 보고에는 꺼림칙한 구석이 있었다.
“굳이 뒤통수를 쳐야 하는 이유는?”
“당연한 이유 아니겠습니까. 그 예언자라는 놈은 정상이 아니니까요. 만약 예전에는 정상이었다고 해도, 이제는 정상이 아니겠죠. 호러랑 엮여서 미치지 않은 예언자는 없었으니까요. 가뜩이나 미치기 쉬운 게 예언자란 족속들인데, 샬롬에 오자마자 호러를 사냥하는 건 정상이 아닙니다. 그것도 혼자서… 혼자서 사냥에 성공했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입니다.”
말을 이어나가던 간부는 자신의 목소리가 떨리는 것을 느낀 뒤 숨을 골랐고, 심호흡을 끝낸 그는 레오나르도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단장님도 예언자들이 어떤 식으로 말로를 맞는지 직접 보시지 않았습니까. 이성을 잃은 괴인이 되거나, 선을 넘은 괴물이 되거나. 어느 쪽이든 엮여서 좋을 게 없다는 건 단장님도 잘 알고 계실 겁니다. 괴물이 된 사냥꾼을 제때 못 잡으면… 그때보다도 더 끔찍한 재앙을 보게 되는 건 시간문제니까요.”
재환에게 받은 은화를 만지작거리던 레오나르도는 시선을 옮겨서 간부의 눈동자를 응시했다. 그리고 간부의 눈에 담긴 불안함과 두려움을 읽어낸 레오나르도는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괴물이라고 해서 나쁠 건 없지. 아니, 괴물이니까 더 좋은 거지.”
레오나르도는 그렇게 말한 뒤 손가락으로 은화를 튕겼고, 떨어진 은화를 한 손으로 낚아챈 뒤 말을 이었다.
“호러 사냥도 정체되고, 전쟁도 시들해졌는데, 저런 괴물이 하나 정도는 있어야 다들 긴장을 좀 할 테지. 고일 대로 고여서 썩어가기만 하는 이 동네를 뒤흔들려면 바깥에서 괴물 한 마리 정도는 들어와야 하는 법이니까.”
손에 은화를 쥐고 있던 레오나르도는 은화의 어떤 면이 위로 올라왔는지 확인하지 않고 주머니에 넣었다. 동전의 어떤 면이 앞으로 나왔든, 그가 내린 결정이 변하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단원들한테 감시자들이 본 내용을 퍼트려. 겸사겸사 다른 조직들 첩자들한테도 알려주고. 누가 그 끔찍한 호러를 혼자서 사냥했는지, 우리 사냥꾼 친구들한테도 널리 알려줘야지.”
은화를 주머니에 넣은 레오나르도는 보물 더미에서 내려온 뒤 계획이 성공했을 경우 재환과 만나기로 한 장소를 향해 걸어갔다.
“그래야 다른 사냥꾼 놈들도 자극을 좀 받을 테고, 자네 걱정대로 최악의 경우가 나와도 대처하기 쉬울 테니까. 그리고…”
레오나르도는 예언자와 맺었던 계약을 떠올리며 씨익 웃었다.
“…모처럼 쓸만한 사냥개가 제 발로 찾아 왔는데, 벌써부터 뒤통수를 치는 건 아깝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건, 알을 못 낳게 됐을 때 해도 늦지 않으니까.”
카르페 디엠의 간부는 약탈과 살인으로 망가진 거리를 태연스럽게 걸어가는 레오나르도의 등을 바라보며 숨을 죽였다. 자신의 보스 역시 괴물과 사냥꾼들이 득실거리는 샬롬에서 수십 년째 포식자로 군림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래, 알아서 잘하겠지. 실력도 있고, 머리가 아예 안 돌아가는 사람은 아니니까. 하지만 만약 문제가 생기면…’
그는 레오나르도에게서 등을 돌리며 다른 간부와 단원들에게 호러가 쓰러진 경위를 전달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는 무조건 도망치거나 자살해야지. 사람일 때도 단신으로 호러를 잡아먹는 놈이, 아예 괴물이 된다니. 그것보다 끔찍한 일은 별로 없을 거야.’
수십 년에 걸친 샬롬 생활을 하다 보면 사냥꾼이 어째서 가장 끔찍한 괴물이 되는지 알 수밖에 없었다. 사냥꾼 괴물은 다른 사람과 괴물을 잡아먹어 힘을 기르고, 끊임없이 우화하여 더 끔찍한 괴물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사냥꾼들이 괴물이 되려 하면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냥꾼들이 이를 처리하는 것이 샬롬에서는 불문율로 자리 잡았고, 이런 불문율이 없었던 초창기에는 사냥꾼 괴물을 막지 못해 도시가 멸망하는 일도 적지 않게 일어났다.
‘이렇게 된 이상 차라리 그 예언자가 마지막 사냥꾼이길 바라야지.’
그는 나중에 샬롬에 들어온 사냥꾼일수록 강한 힘과 지혜를 지닌 채 들어왔음을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저 인간보다 늦게 들어오는 인간이 있으면, 그게 호러보다도 더 호러 같은 일이니까. 호러를 먹는 사냥꾼이라니. 그거야말로 진짜 호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