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105
묵시록의 기수들 (1)
“확실히 맛이 다르긴 달라. 한 모금만 마셨는데도 눈이 확 뜨이는 기분인 걸 보면, 신비 공방 출신 놈들이 호러를 가장 신비로운 자라고 부르는 것도 이해가 간단 말이지.”
재환이 가져온 호러의 피를 잔에 따라 마신 레오나르도는 만족스러운 기분을 숨기지 않았고, 그는 고양된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며 술잔에 포도주를 따라 재환에게 건넸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우리 쪽에서 일해 보는 건 어때? 자네 정도 실력이라면 업계 최고가 되는 건 시간문제라고. 자네가 지닌 그 힘과 우리 쪽의 기술이 합쳐지면, 이 빌어먹을 서바이벌의 끝장을 보는 것도 불가능한 건 아니야.”
재환은 레오나르도의 잔을 받아 든 채 생각에 잠겼다. 샬롬에 잔뼈가 굵은 약탈단과 협력을 한다면 여러 가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 자체는 사실이었다.
‘다른 조직들보다 물자가 풍부한 건 장점이지. 필요한 게 있으면 피를 봐서라도 달려드는 놈들이니까. 이놈들이랑 손을 잡으면 다음 주차도 쉽게 넘어갈 수 있겠지. 게다가 내 예상이 맞다면… 다음 주차부터는 언제 사냥꾼끼리 칼을 겨누게 돼도 이상한 일은 아니니까.’
잔을 집어 든 재환은 잔을 살짝 흔든 뒤 포도주의 향기를 맡았다. 질 좋은 포도주에서 풍겨오는 달짝지근한 냄새가 감미롭게 느껴졌다.
‘그럴 때를 대비하려면 이놈들이랑 협력하는 게 편하긴 할 거야. 개개인의 실력은 못 미더워도, 사냥꾼이 이 정도로 모여 있으면 총알받이로 써먹을 수도 있으니까. 여러모로 이놈들이랑 손잡는 게 유리한 일이긴 하지.’
그는 샬롬에서 첫 주차를 보내면서 한 가지 사실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사냥꾼들이 다음 주차를 대비해서 힘을 비축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샬롬에 뿌리를 내린 크고 작은 사냥꾼 조직들은 카르페 디엠과 같은 무법자들을 제외하면 서로의 영역에 간섭하지 않았고, 와일드 헌트로부터 자신의 영역을 지키는 것에만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카르페 디엠… 쓸만한 놈들이긴 하지. 호러를 사냥한 건 이놈들 덕분이기도 하니까.’
약탈자들과 협력했을 때의 이점에 대해 생각하던 재환은 레오나르도가 건넨 포도주를 마셨다. 그리고 술잔을 전부 비운 재환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유감스럽지만, 당신들이랑은 여기까지야. 이 이상 손잡을 이유는 없거든.”
“이유는?”
자리에 앉아 반문하는 레오나르도에게 재환은 대답을 하며 등을 돌렸다.
“당신들은 웃고 있었으니까. 다른 사람이 어떤 꼴이 되더라도, 먹고 마실 수만 있다면 당신들은 계속 웃겠지. 그게 마음에 안 들었거든.”
약탈자들의 도움은 분명 유용했지만, 그들에게 혐오감을 느끼는 것 역시 사실이었다. 다른 사람의 재산은 물론이고 목숨과 존엄까지 빼앗는 그들의 방식은 괴물보다도 혐오스러운 것이었고, 그렇기에 재환은 서울에서도 이런 약탈자들의 방식을 혐오했었다.
“도와줄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찾아오라고.”
레오나르도는 문을 열고 나서려는 재환의 등을 향해 말했다.
“문은 언제든 열어둘 테니까. 어차피 돌고 돌다 보면 다시 만나는 게 샬롬 인생이니, 돌아올 일이 있으면 망설이지 말라고!”
그 말에 재환은 뒤를 돌아 레오나르도의 표정을 살폈다. 레오나르도는 귀하게 여겨지는 호러의 피를 마신 걸로 기분이 좋아졌는지 시원스럽게 웃고 있었고, 재환은 그 표정 속에서 레오나르도가 한 가지 사실을 확신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진심이군. 어차피 샬롬에서 계속 회귀를 하다 보면, 다시 손잡는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이렇게 쿨하게 보내주는 거겠지.’
레오나르도의 속내를 읽어낸 재환은 문을 나서기 전에 그에게 말했다.
“가기 전에 예언 하나만 더 하지.”
그는 예언자로서 확신을 담아 말을 이었다.
“당신들이랑 손을 잡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야. 무슨 일이 있어도, 두 번은 없을 테니까.”
예언자가 드러내는 적의에 레오나르도는 잠시 표정이 굳어졌지만, 그는 악의를 받는 것이 일상이나 다름없는 약탈단의 수장으로서 태연스럽게 웃었다.
“잘 가라고. 그 예언, 틀리길 바랄 테니까.”
손을 흔들며 자신을 배웅하는 레오나르도를 뒤로 한 채, 재환은 새로운 형태의 괴물이 나타나기 시작한 거리의 모습을 보며 숨을 내쉬었다.
‘이번에는 네발짐승들이 나오나 보군. 전보다는 덜 징그러워서 다행인가.’
시체의 피와 살점에서 괴물들이 태어나는 모습을 본 재환은 탈바꿈으로 그들을 사냥하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일단은 다시 한사랑한테 가 보자. 다른 사냥꾼은 몰라도, 그 여자는 나름 샬롬에서 잔뼈가 굵은 편일 테니까 죽지는 않았겠지.’
그가 약탈자들과 손을 잡기를 거부한 이유는 성향에 차이가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굳이 약탈자들이 아니더라도 샬롬에는 크고 작은 조직들이 있었고, 서로 죽고 죽여야 하는 괴물과 사냥꾼의 도시에서 강한 사냥꾼은 언제나 환영받기 마련이었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한사랑 쪽 혈맹이 무너졌어도, 그때는 다른 조직을 알아보면 그만이야. 어차피 괴물만 있으면 지치지도 않는 몸인데, 어디에 속할지 성급하게 결정할 필요는 없지.’
죽은 괴물의 시체에서 갓 태어난 괴물들은 재환의 손에 의해 몸이 잘려나갔고, 그들의 몸에서 흘러나온 신선한 피를 마신 재환은 다시 시체로 돌아간 괴물들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시체에서 생명이 태어나는 건… 샬롬이든 서울이든 다를 게 없군.’
쓰러진 괴물들의 시체를 넘어 앞으로 나아가던 재환은 탈바꿈에 묻은 피를 손가락으로 닦아내 마셨다.
‘태어나고 죽고, 태어나고 죽고, 태어나고 죽고… 이 빌어먹을 윤회를 끝내려면, 마지막까지 익숙해지는 수밖에 없겠지. 지쳐서 쓰러지면 나도 밑거름이 되고 말 테니까.’
피를 마셔서 피로를 회복한 재환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먹구름의 틈새로 새어 나온 달빛이 시체처럼 창백했다.
“달을 사냥하라… 달을 사랑하라…”
달빛을 올려다보던 재환은 다시 한사랑의 숙소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이 도시의 마지막에, 정답이 있길 바라야지.’
비릿하면서도 달짝지근한 피의 맛을 발걸음 삼아, 그는 게을러지려는 발걸음에 박차를 가했다. 유혹에 넘어가고, 게을러지게 되는 순간 수많은 피와 비명으로 쌓아올린 탑이 무너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는 한사랑의 숙소로 가는 동안 보이는 괴물들을 전부 사냥했고, 마침내 한사랑의 혈맹이 관리하는 거점에 도착했을 때는 괴물의 피를 뒤집어써서 피투성이가 되고 말았다.
* * *
한사랑의 거처로 돌아온 재환을 맞이한 것은 환대가 아니라 총구였다. 사냥에 몰두하고 돌아온 그의 몰골은 피투성이가 된 괴인이나 다를 바 없었고, 이는 그 자신이 보더라도 오해를 살 수밖에 없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오해해서 미안해요. 호러를 사냥하러 간 사람들은 열에 아홉은 미쳐서 돌아오거든요. 재환 님도 그렇게 된 줄 알았고요.”
약간의 대화와 절차를 걸친 뒤 오해가 풀리자 한사랑은 깨끗한 수건을 건네며 일행을 대표해서 사과했고, 재환 역시 이런 상황에서 깨끗한 수건을 구하기 힘들다는 것을 모르진 않았기에 순순히 수건을 받아들였다.
“기록을 보면 호러 사냥이라는 게 전례가 없는 일은 아니었는데… 이게 그렇게 이상한 일입니까?”
거점 내의 사냥꾼들이 의심스러워한 것은 재환의 모습만이 아니었다. 그가 혼자서 호러 사냥하고 돌아왔다는 말에 다른 혈맹원들은 재환의 정체를 의심스러워했고, 그 말에 한사랑은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당연히 이상한 일이죠. 사람이 맨손으로 곰을 때려잡았다는 말이랑 같은 맥락이니까요. 보통 사람들은 맨손인 상태에서 곰이 달려들면 도망치기 바쁠 텐데, 맨손으로 곰을 잡았다고 하면 그게 미친 사람인 거죠.”
“…맨손은 아니었어요. 기술 지원도 받았고, 장비도 다 갖추고 있었고요.”
“말이 그렇다는 거예요. 실제로 맨손으로 곰을 잡았다는 사람이 뉴스에 나온 적도 있으니까요. 근데 그렇다고 해서 그걸 실제로 시도하는 건 미친 짓인 거죠. 아무리 선례가 있어도 실제로는 열에 아홉은 변사체가 될 테니까요. 괜히 다른 사냥꾼들이 호러 사냥을 그만둔 게 아니에요.”
그녀는 핏자국이 곳곳에 보이는 거점의 내부를 보여주며 말을 이었다.
“보면 알겠지만, 보통은 자기 밥그릇 지키기에도 바쁜 게 와일드 헌트니까요. 약탈자들처럼 자기 목숨을 칩으로 쓰는 사이코들이 아니면, 아차 하는 순간 피를 보게 되거든요. 우리 쪽도 벌써 한 분이 당했고요.”
그 말에 재환은 떠날 때 보았던 사냥꾼 대신 처음 보는 얼굴의 사냥꾼들이 거점에 자리 잡은 이유를 알아차렸다.
와일드 헌트는 밤낮없이 계속되는 것에 반해 사냥꾼들의 체력과 정신력은 갈수록 소모되고, 집중력이 떨어진다면 거머리나 괴물들의 공역에 취약해지기 때문에 사상자가 나올 수밖에 없었으며, 이런 식으로 사상자가 계속 늘어나면 인근의 거점과 힘을 합쳐서 전력을 보강하는 쪽이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이었다.
“…이번 주차는 언제 끝날 것 같아요? 예지력으로 봐도 금방 끝날 것 같진 않아서요.”
“글쎄요… 어떤 호러가 새로 오느냐에 따라서 달라지지만… 아마 일주일 안에는 끝날 거예요.”
그녀는 그렇게 말한 뒤 창밖에서 흑마의 형상을 한 괴물이 건물의 외벽을 두들기는 모습을 가리켰다. 키가 2m는 되어 보이는 괴물 말은 몸에 피를 흘리면서도 벽돌로 된 건물을 부수려고 들었고, 괴물의 기세로 보아 건물의 외벽이 부서지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처럼 보였다.
“저런 식으로 건물을 적극적으로 부수고 다니는 괴물이 많으면 아무리 사냥꾼이어도 수비하기 힘들거든요. 그리고 말 형태의 괴물이 나왔다는 건, 말을 타고 다니는 호러들이 나온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교회 식으로 말하면… 묵시록의 기수들이죠.”
“호러가 말을 타고 나온다고요?”
“네. 말 그대로 묵시록에나 나올 법한 기수들이에요. 이런 호러들이 나오면 첫 주차가 빨리 끝난다고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보통은 운이 없으면 죽어야 한다면서 싫어하거든요.”
재환은 그녀가 호러‘들’이라고 말한 것을 눈치챈 뒤 두루마리에서 읽은 기록을 떠올렸다.
“확실히 그건 힘들겠네요.”
재환은 건물의 외벽을 부수기 직전인 괴물 말을 향해 핸드캐넌을 발사했고, 괴물 말이 머리가 터져서 쓰러진 것을 확인한 뒤 핸드캐넌을 재장전했다.
“하나면 몰라도 여러 마리를 동시에 죽일 순 없는 거니까요. 그런 호러가 먼저 나왔으면, 나도 죽일 엄두를 못 냈겠죠.”
여러 마리의 호러가 동시에 나오는 경우는 강한 호러 하나가 나오는 것보다 상대하기 까다로웠다.
각자의 힘 자체는 호러 하나가 나올 때보다 조금 약할지 몰라도 일정 시간 내에 모든 호러를 동시에 사냥하지 않으면 죽은 호러가 주변에 있는 시체를 흡수해 부활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심장부에 있어야 할 위대한 피 역시 마지막으로 죽은 호러에게서만 채취할 수 있다고 하니, 대규모로 원정대를 꾸리지 않는 이상 사냥은 커녕 상대하는 것조차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재환 님이 돌아와 주셔서 다행이에요.”
한사랑은 다 쓴 수건을 받아들며 미소를 지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예언자가 있으면 첫 주차는 무사히 넘길 수 있거든요. 게다가 그 예언자가 혼자서 호러를 사냥하고 돌아왔으면, 우리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가 없죠. 다들 호러를 혼자서 사냥했다는 말은 반신반의해도, 예언자가 왔다는 것 자체는 내심 반가워하고 있을 거예요.”
그녀는 경계심을 누그러뜨린 채 각자의 위치에서 무기를 손질하는 동료 사냥꾼들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허튼짓만 안 하면 예언자만큼 듬직한 동료도 없으니까요. 적어도 첫 주차에 한해서라면, 예언자는 2주차로 넘어가는 프리패스 티켓이니까요.”
한사랑은 웃으면서 말했지만, 재환은 그녀의 말에 뼈가 담겨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녀의 말에 담긴 ‘허튼짓’에는 다른 사냥꾼들의 허튼짓 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돌발행동 또한 포함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한동안은 조용히 있는 게 좋겠군.’
재환은 자신이 사냥한 괴물의 피를 채취하기 위해 1층으로 내려갔다.
‘지금은 저렇게 웃고 있어도 언제 뒤집힐지 모르는 게 사람 일이니까. 친절한 사람일수록 조심스럽게 대해야 하는 거지.’
문을 열고 바깥으로 그는 한사랑이 샬롬에 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보여준 모습을 떠올렸다. 위대한 피를 마신 한사랑은 자신의 머리에 총을 겨눠서 자살했고, 그 당시에 느꼈던 충격은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쉽게 잊혀지지 않을 정도로 끔찍했었다.
‘사람 목숨이 벌레만도 못한 세상이고, 사냥꾼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니까. 딱히 자기 의지가 아니어도 미쳐버리는 건 순식간일 테고, 그러니까 다들 나를 괴물 취급하는 거겠지.’
괴물 말의 피를 채취하던 재환은 사방에서 말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것에 귀를 기울였다. 이는 한사랑이 ‘묵시록의 기수’라 불렀던 호러들이 나타날 징조였다.
‘차라리 빨리 끝난다니 다행이야. 언제까지고 버티고만 있는 것보단, 빨리 다음 주차로 넘어가는 게 나한테도 속 편한 일이니까.’
괴물의 피를 채취한 재환은 말들의 울음소리를 뒤로한 채 건물로 돌아갔다. 이 이상 사냥에 심취했다가는 다음 주차에 대비하지 못할 거라는 한사랑의 충고 덕분이었다.
그리고 이후에 등장한 ‘묵시록의 기수’들을 보면서, 재환은 그녀의 말이 옳았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거머리 드래곤 때와는 다르게 혼자서 그들을 전부 사냥하는 미래가 그려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