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106
묵시록의 기수들(2)
새롭게 나타난 일곱 마리의 호러들은 한사랑이 비유했던 것처럼 묵시록의 기수들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들은 각자 거대한 말에 탄 채 깃발을 들고 행진했고, 괴물들은 기수들의 뒤를 따라 건물 곳곳에 숨어있는 생존자들을 찾아내 시체로 만들었으며, 시간이 지난 시체에서 태어난 괴물들은 앞서 지나간 기수들의 행렬에 합류하여 앞서나간 괴물들이 미처 찾아내지 못한 생존자들을 사냥했다.
뼈와 살점으로 만든 낫과 갈고리, 그리고 철퇴 따위로 무장한 기수들과 괴물들의 행렬은 샬롬의 곳곳을 헤집었고, 해일처럼 몰려오는 괴물의 물결에는 제아무리 뛰어난 사냥꾼 집단이라 할지라도 서서히 지쳐갈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사냥꾼도 얼마 안 남았네요.”
한 거점이 무너지면 다른 거점으로 옮기고, 옮겨온 거점이 무너지면 또 다른 거점으로 옮기는 것을 반복한 지 일주일째 되던 날, 재환은 괴물의 물결이 지나간 폐허를 보며 말했다. 회귀자들의 지식과 지혜를 끌어모아 만들어낸 거점들도 해일처럼 밀려오는 괴물의 행렬에는 버틸 수가 없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종이 칠 것 같은데… 정말 다른 사냥꾼들은 안 기다려도 됩니까?”
“어쩔 수 없어요. 다 같이 가는 게 좋기는 해도, 다음 주차로 넘어가기 전까지는 물자를 지켜야 하니까요.”
거점의 지하실을 밀봉한 한사랑은 폐허의 잔해들로 지하실의 입구를 은닉하며 말을 이었다.
“다음 주차부터는 사냥꾼끼리 경쟁해야 하거든요. 서로 죽이든지, 이용하든지. 어느 쪽이든 쓸 수 있는 카드는 많은 게 좋으니까요. 재환 님을 도운 약탈꾼들도 그래서 이것저것 긁어모은 거고요.”
샬롬의 땅에 묻힌 것은 회귀로 인해 모든 것이 초기화되지 않는 이상 다음 주차로 넘어가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현대에서 온 회귀자들은 열차로 가져갈 수 없는 짐들을 다른 조직의 손이 닿지 않을만한 장소에 은닉했고, 설령 약탈당하는 곳이 생기더라도 손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물품을 나눠서 보관해두는 편이었다.
“기왕이면 물자를 더 쌓아두고 싶긴 하지만… 그러기엔 사정이 별로 좋지 않네요. 이런 난장판에서는 괴물만 조심해야 되는 게 아니니까요.”
한사랑은 근처에서 피어오르는 폭연을 향해 고개를 돌렸고, 재환은 불타오르는 거리의 모습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와일드 헌트가 막바지에 이르자 사냥꾼들은 보관할 수 없는 잉여 물자들을 남김없이 사용하고 있었고, 그 물자들은 대부분 총알과 화약처럼 괴물 사냥에 필요한 물건들이었으며, 괴물 사냥에 쓰는 무기들을 마음에 들지 않는 사냥꾼들에게 쓰지 말라는 법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정도면 지금까지 얌전하게 지낸 편이에요. 다음 주차부터는 티켓을 구하려면 사냥꾼끼리 경쟁해야 하거든요. 언제까지고 공짜로 열차를 탈 수는 없는 거죠.”
“사냥꾼들끼리 경쟁이라…”
한사랑의 말을 듣던 재환은 고개를 돌려서 시계탑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가 시계탑을 향해 시선을 돌리는 것과 동시에 열차가 들어오고 있음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그러면 이제 슬슬 출발해야겠네요. 내 예상한 게 맞으면, 역까지 가는 것도 고생길일 것 같으니까요.”
재환의 말이 끝나자 한사랑은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서 땅 울림이 들려오는 것을 느꼈고, 이 땅 울림의 주인이 묵시록의 기수 중 하나가 이끄는 괴물의 행렬임을 알아차린 뒤 배낭을 메고 앞장섰다.
“이번에는 제가 앞장설게요. 괴물 사냥하느라 일주일 동안 밤낮없이 고생하셨는데, 마무리 정도는 제가 도와야죠. 괜찮죠?”
그 말에 재환은 고개를 끄덕인 뒤 짐을 챙겼다. 신선한 괴물의 피를 마시면 피로가 회복되기는 했지만, 사냥을 오래 할수록 피로가 쌓이는 양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기에 그 역시 조금씩 지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잠깐 정도는 신세를 지는 것도 나쁘진 않지.’
재환은 한사랑의 뒤를 따라 폐허의 잔해를 뛰어넘었다. 한사랑은 총검을 칼의 형태로 바꿔서 길을 막는 괴물들을 능숙하게 베어냈고, 재환은 그녀의 사각에서 달려드는 괴물 말들의 미간에 거리에서 노획한 총을 쏴서 그녀를 보조했다.
‘아무리 온건하다고는 해도, 저 여자도 샬롬에서 닳고 닳은 사냥꾼이니까. 다른 사냥꾼들이 그런 것처럼, 괴물 사냥에는 이미 이골이 났겠지.’
지금까지 샬롬에서 보아온 사냥꾼들의 솜씨는 괴물을 사냥하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그들은 지형지물을 넘나들면서 공간을 입체적으로 활용했고, 긴 세월에 걸쳐서 쌓아온 사냥 기술과 무기 사용법을 자유자재로 사용하여 괴물을 도륙냈다.
개개인의 재능과 컨디션에 따라 실력의 차이가 있기는 했지만, 이들이 수십 년 동안 괴물을 사냥 괴물을 사냥해온 베테랑이라는 것 자체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결국 기술이 정점에 오를수록, 피지컬이랑 장비가 더 중요해지는 거겠지. 그러니까 다들 물자에 신경 쓰는 걸 테고. 어느 시점부터 능력치가 한계까지 오르면 괴물의 피를 마셔도 신체 능력이 잘 늘어나지 않으니까. 능력치가 별로 안 올라도 사냥을 하는 건, 나 같은 사냥 중독자들밖에 없을 테고 말이야.’
노획한 총의 총알이 전부 떨어지자 재환은 재장전을 하는 대신 근처에 있던 유리조각을 주워서 괴물 말의 머리를 향해 날렸다.
그의 손을 떠난 유리 조각은 세차게 바람을 가르며 날아갔고, 괴물 말의 머리에 명중하여 두개골을 꿰뚫었다.
“서커스단에 들어가도 되겠는데요?”
한사랑의 너스레에 재환은 한 건물의 창문을 가리켰다.
“저쪽에서 저격수가 나올 거예요. 일단 일에 집중하죠.”
재환의 말이 끝나자마자 한사랑은 총검을 총의 형태로 변형시켰고, 장총의 형태가 된 총검을 재환이 가리킨 방향을 향해 겨눴다.
탕!
한순간에 사격을 끝낸 한사랑은 재장전을 하며 재환에게 말했다.
“멀어서 잘 안 보였는데, 자경단이었어요?”
재환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재장전을 끝낸 한사랑은 기차역을 향해 앞장서며 한숨을 내쉬었다.
“명예 샬롬인이라니. 참 미련한 사람들이에요. 어차피 회귀하고 나면 전부 잊혀질 텐데, 왜 그렇게까지 몰입하는지 모르겠어요.”
샬롬의 자경단은 현대에서 온 사냥꾼들로 구성된 치안 조직이었다. 이들은 대부분 샬롬의 시민들과 깊은 인연을 맺은 자들이었고, 그중에는 아예 결혼까지 한 이들도 있었다.
그렇기에 이들은 샬롬의 시민들을 소모품으로 생각하는 현대인 사냥꾼들을 혐오했고, 이들을 막기 위해 뜻이 맞는 자들끼리 힘을 모아 ‘자경단’을 만들어서 기약 없는 투쟁을 반복하고 있었다.
“샬롬을 위하여!”
“샬롬인도 사람이다! 사람을 사람답게!”
“인간성을 수호하라! 인간성을 잃지 마라!”
“우리의 스승! 제자! 친구! 가족을 위하여!”
곳곳에서 들려오는 자경단원들의 외침을 듣던 재환은 한사랑의 등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세월이 지나면… 사람도 바뀐다 이건가?’
그는 방금 전에 보여준 한사랑의 냉소를 곱씹으며 근처에 있던 자경단원 저격수를 향해 핸드캐넌을 발사했다.
‘이상한 일도 아니긴 하지. 아무리 예전에 자상한 사람이었어도, 이런 곳에서 수십 년 넘게 썩어가면 변하기 마련이니까. 어쩌면 변하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일지도 모르지.’
그가 기억하는 한사랑은 사냥꾼이라기보다는 자원봉사자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그녀는 서울에 있었을 당시에 사냥에 몰두하기보다는 전도를 하러 다니거나 같은 교회의 교인들을 보호하는 것에 시간을 투자했고, 도시를 지키기 위해 괴물을 사냥할 때를 제외하면 사냥을 하러 다니는 모습도 거의 본 적이 없었다.
‘마냥 착해빠진 것보단 낫지만, 그래도 경계해둬서 나쁠 건 없겠지.’
그는 기차역이 눈앞에 보이는 것을 확인한 뒤 주변을 살피며 앞으로 나아갔다. 아무리 예지력으로 경로를 미리 봐뒀어도 지금과 같은 난전 상황에서는 어떤 변수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실한 종교인이라고 해서 선량하란 법은 없으니까. 오히려 종교에 빠져있는 사람일수록… 뻔뻔하게 미친 짓을 할 수 있는 거기도 하고 말이야.’
그는 세상에 괴물이 없던 시절에도 종교인을 그리 좋게 보지 않았다. 종교인이 물의를 일으켜 뉴스에 나오는 일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었고, 이들이 보여주는 이중성에 환멸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어느 쪽이든 사실 상관없지.’
재환은 역사 앞에서 자신을 향해 손짓하는 한사랑의 모습을 보며 앞으로 나아갔다.
‘사람이 얼마나 바뀌었던, 어떤 속셈을 가지고 있든, 내 뒤통수만 치지 않으면 되는 거니까. 목적지가 같고, 이용할 여지가 있으면, 한 배를 탈 이유는 충분하지.’
그렇게 재환은 한사랑의 앞에 도착했고, 한사랑은 그에게 여분의 손수건을 건네며 미소를 지었다.
“이제야 겨우 한시름 놨네요. 역사 안에서는 사냥꾼들끼리 서로 공격할 수 없거든요. 우리한테는 다행스러운 일이죠.”
손수건을 받아 든 재환은 그녀의 말이 무슨 뜻인지 곧 알게 되었다. 바깥에서 날아온 도탄이 한사랑의 이마를 꿰뚫었지만, 한사랑의 모습이 신기루처럼 흐릿해지면서 아무런 상처도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보고 총알이 신기루인지, 아니면 그녀가 신기루인지 고민하던 재환은 또 다른 손수건으로 자신의 얼굴을 닦는 한사랑을 보며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
‘귀신에 홀린 기분이군.’
저편에서 열차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리자 재환은 고개를 돌리며 생각했다.
‘거짓말을 한 건 아니지만… 그리 기분 좋은 느낌은 아니지.’
한사랑의 말이 거짓이 아니란 것은 주변의 풍경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역사에 도착한 사냥꾼들은 서로를 공격하지 않았고, 역사 바깥을 향해 공격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바깥에서 사냥꾼들끼리 서로 죽고 죽이는 난장판이 벌어지고 있음을 생각하면 그녀의 말에는 일리가 있었고, 재환 역시 그녀의 말 자체가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신기루처럼 흐려지는 건 이상한 일이니까.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이 기차역에서는 상식이 일그러진다고 봐야겠지.’
재환이 그녀의 말을 미심쩍어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예지력을 사용한 미래에서 그는 시험 삼아 자신의 머리에 핸드캐넌을 겨눴고, 핸드캐넌의 총알은 그의 머리를 산산이 부숴버렸기 때문이었다.
‘아직 의심하긴 이르지. 다른 사람한테 쏜 미래에서는 한사랑 때랑 다를 게 없었으니까. 자살만 괜찮고 타살만 안 되는 거라고 생각해도 이상한 건 아니야. 대신 찝찝한 건…’
열차가 도착하자 사냥꾼들은 줄을 서서 열차에 탑승했고, 재환은 그 모습을 보며 기이하게 여겼다.
‘서로 원한이 있는 사람도 있을 텐데,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조용하지. 물건을 주고받는 게 가능하면, 서로 드잡이질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봐야 하는 거니까.’
사냥꾼들이 열차에 타는 모습을 바라보던 재환은 한사랑의 얼굴을 흘끗 바라본 뒤 열차를 타기 위해 걸어갔다.
‘진실이 뭔지는 언젠가 알게 되겠지.’
그는 자신의 뒤를 따라오는 한사랑의 기척을 의식하며 열차에 올라탔다.
‘이 여자의 정체가 뭐든, 도움이 되고 있는 건 확실하니까.’
열차의 빈자리에 앉은 재환은 창밖으로 역사 너머의 풍경을 바라봤다. 묵시록의 기수라 불린 호러들이 날뛰는 살롬의 모습은 지옥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었고, 지난 일주일 동안 저들을 상대하느라 밤낮없이 날뛰었음을 떠올리자 피로가 저절로 몰려왔다.
‘아직까지는. 아직까지는 말이야…’
의자에 등을 기댄 재환은 몰려오는 피로를 받아들인 뒤 눈을 감았다. 아직 석연치 않은 점은 남아있었지만, 지금 당장은 와일드 헌트가 끝났음을 만끽하는 것이 먼저였기 때문이다.
그가 잠에 빠져들자 열차는 출발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와일드 헌트가 지나간 샬롬에서 2주차를 시작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