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107
내장 사냥꾼 (1)
열차에서 내리자 눈에 들어온 것은 와일드 헌트에서 살아남은 샬롬의 모습이었다.
거리의 바닥에는 괴물의 피와 살점이 곳곳에 널브러져 있었고, 멀쩡한 건물보다 무너진 건물이 많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2주차의 샬롬은 호러들에 의해 완전히 멸망하기 직전이었던 1주차 때에 비하면 도시 다운 구색을 갖추고 있었다.
‘그렇다고 아예 멀쩡한 건 아니지.’
한사랑과 함께 거리를 걷던 재환은 곳곳에서 드문드문 느껴지는 괴물의 기운과 성자와 같은 초월자에게서나 느낄 수 있었던 아득한 기운을 경계하면서 신경을 곤두세웠다.
‘아직 종양은 그대로 남아있는 모양이니까. 호러든. 성자든. 저 빌어먹을 것들이 남아있으면 괴물병은 계속 돌겠지.’
괴물병의 기원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성자나 호러와 같은 존재들이 사람을 괴물로 만든다는 것만큼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재환은 와일드 헌트라는 폭풍이 지나간 이 도시가 여전히 병들어있다고 여겼고, 거점으로 쓸 건물을 향해 나아가던 한사랑은 재환의 표정을 흘끗 살핀 뒤 말을 꺼냈다.
“호러의 모습이 각양각색이었던 것처럼, 샬롬이 멸망한 형태도 다양했어요. 정신질환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서 멸망한 경우도 있었고, 전염병이 창궐해서 멸망한 경우도 있었죠. 아니면 아예 둘 다 해당되는 경우도 있었고요.”
거리를 걸어가던 한사랑은 구석에 널브러진 괴물의 살점을 손가락으로 가리켰고, 시선을 옮겨 그 모습을 자세히 살펴본 재환은 괴물의 살점이 1주차 때 보았던 것과는 형태와 질감이 다르다는 것을 확신했다.
“평행세계… 뭐, 그런 거라고 보면 됩니까?”
“그렇게 부르는 게 제일 정확할 거예요. 다른 분들도 보통 그렇게 부르거든요.”
앞장서서 거리를 걷던 한사랑은 허름한 폐가 하나를 찾아낸 뒤 발걸음을 늦췄다.
“2주차의 샬롬은, 그럭저럭 버틸 만했던 호러를 사냥꾼들이 막아낸 세상인 거죠. 우리처럼 현대에서 온 사냥꾼들은 외지 출신인 사냥꾼들이랑 같이 샬롬인 사냥꾼들을 도와서 와일드 헌트를 막아낸 걸로 되어있고, 이 집은 외지인들이 쓰던 숙소 중 하나였다고 보시면 돼요.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다들 그렇게 알고 있죠.”
한사랑은 그렇게 말한 뒤 1주차 때 챙겨온 자물쇠 따개로 문을 열었고, 문이 열리자 외지인 사냥꾼으로 보이는 남녀 두 명이 주검이 되어 쓰러져 있는 모습이 재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두 사냥꾼의 시신은 모두 복부가 절개되어있었고, 복부에 마땅히 자리 잡고 있어야 할 피와 내장들은 깔끔하게 사라져있었다.
죽은 사냥꾼들을 흘끗 살펴본 한사랑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씁쓸하게 미소 지으며 집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보시다시피 지금은, 집주인 분들이 주님 곁으로 먼저 가버렸지만요.”
한사랑은 그렇게 말하며 익숙한 손놀림으로 죽은 사냥꾼의 시신을 건물의 다락방으로 옮기기 시작했고, 재환은 그녀를 따라 사냥꾼의 시신을 옮기며 말했다.
“괴물 짓은 아닌 것 같고, 현대인들 짓도 아닌 걸 보면, 이 동네에 뭐가 있긴 있나 보네요.”
다락방으로 시신을 옮긴 한사랑은 냄새를 제거하는 약품을 뿌려서 실내에 퍼진 시신의 악취를 제거했고, 재환은 이런 상황에 익숙해 보이는 한사랑의 태도를 떨떠름해 하면서 말을 이었다.
“괴물과 싸웠다기에는 실내가 너무 멀쩡하고, 이제 막 2주차에 온 현대인들이 이 사냥꾼들을 죽이기는 건 불가능할 테니까요. 남은 건… 샬롬에 뭔가가 있다는 것밖에 없죠.”
한사랑을 도와 시신을 대강 수습하는 것이 끝나자 재환은 1층으로 내려와 식탁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사냥꾼들을 손쉽게 죽이고 다니는… 호러 같은 거 말이에요. 이 경우는 장기매매범이랑 다를 게 없어 보이지만 말이죠,”
그가 외지 출신 사냥꾼을 살해한 것이 괴물의 짓이 아닐 거라고 판단한 이유는 간단했다.
시신의 복부를 절개한 흔적은 외과 의사가 메스를 댄 것처럼 정교했고,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괴물을 사냥해온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이 정도로 정교한 솜씨를 지닌 괴물은 지극히 드물었다.
여기에 더해 시신에서 피를 뽑고 장기를 적출해낸 흔적이 능숙한 도축업자가 손질했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말끔했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외지인 사냥꾼을 살해하고 시신을 해체한 자들이 평범한 살인귀나 괴물이 아니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해낼 수 있는 사실이었다.
“이제 다른 사냥꾼들 미행도 안 붙은 것 같고, 거치적거리는 것도 없는 것 같으니, 슬슬 본론을 얘기해 봐요.”
그는 맞은편 의자에 앉으러 오는 한사랑을 보며 말을 이었다.
“이 사냥꾼들을 죽인 게 누구인지, 다음 주차로 넘어가는 티켓을 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 그리고 굳이 사람이 죽은 집을 거점으로 고른 이유는 뭔지… 뭐 그런 것들 말이에요.”
2주차의 샬롬은 첫 주차에 비하면 기이한 점이 많았다.
닳고 닳은 회귀자들도 버티는 게 고작이었던 와일드 헌트를 어떻게 막아냈는지는 여전히 불가해 했고, 이것이 사냥꾼의 죽음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역시 아직은 알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렇기에 재환은 한사랑이 멀쩡한 숙소를 구하는 대신 굳이 사람이 죽은 집을 거점으로 삼은 점을 언급했고, 한사랑은 느긋한 태도로 시신을 만진 손을 손수건으로 닦으며 재환의 맞은편에 앉았다.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와일드 헌트를 사냥꾼들만으로 막아내는 건 애초에 불가능해요. 회귀자들이 수백 명 모여도 실패한 걸, 샬롬인들 만으로 막아내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죠.”
손을 닦는 것을 끝낸 한사랑은 손수건을 주머니에 넣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회귀자 특유의 공허함이 담긴 미소였다.
“아예 괴물이 되어버리는 게 아닌 이상, 아무리 강한 사냥꾼이어도 본질은 결국 인간이니까요. 외부의 개입 없이 사냥꾼들끼리 와일드 헌트를 막는다는 건 맨손으로 홍수를 막는 거랑 다를 게 없어요. 무모하고, 무의미한 일인 거죠.”
“외부의 개입이라….”
한사랑이 하려는 말을 눈치챈 재환은 그렇게 운을 뗀 뒤 입을 열었다.
“호러. 아니면 그보다 더한 것들한테 빚을 졌겠네요. 지금은 대가를 치르는 중일 테고요.”
그에게 인간의 지력으로 이해할 수 없는 존재가 불가사의한 일을 벌이는 것은 이제 놀라워해야 할 일이 아니었다.
그는 서울에서 성자들이 일으킨 이적을 수백 번을 넘게 죽어가며 온몸으로 체험했고, 그들의 피와 신비를 흡수한 결과 그 역시 보통 사람들의 기준으로는 불가해한 존재가 되어있었다.
그렇기에 재환은 한사랑이 말하는 ‘외부의 개입’이 성자에 준하는 초현실적인 존재일 거라 확신했고, 한사랑은 고개를 끄덕임으로써 재환의 추측을 긍정했다.
“정확해요. 아무리 정도의 차이가 있다곤 해도, 와일드 헌트가 계속되면 도시가 멸망하는 건 시간문제였을 테니까요. 상황이 절망적일수록 암담해지는 게 사람의 마음이고, 아무리 희미한 불빛이어도 어두운 밤에는 눈에 띄기 마련이니까요.”
그렇게 운을 뗀 한사랑은 십자가를 꺼내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었다.
“지금 샬롬에 뿌리를 내린 악마들은, 그런 심리를 노리고 신비에 조예가 깊은 사냥꾼들이랑 계약을 맺었어요.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는, 사채업자나 할법한 계약이었죠.”
“계약의 내용은 뭐였죠?”
재환의 말에 한사랑은 검지로 다락방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내장. 악마가 깃든 우상에 내장을 바치는 거예요. 사람의 내장. 가능하면 사냥꾼의 내장을 제물로 바치는 거죠.”
다락방을 가리킨 한사랑은 십자가를 주머니에 넣으며 말을 이었다.
“와일드 헌트에서 죽었어야 하는 사람의 숫자만큼 바쳐야 하니, 아무리 적어도 수십만 명은 넘게 죽어야 해요. 시민들 입장에서 보면, 괴물에게서 살아남고 나니까 이제는 사냥꾼들 손에 죽게 된 꼴이죠. 그나마 그 악마들이 사냥꾼들의 내장을 비싸게 쳐준다는 점이 민간인들 입장에서는 다행인 일이지만요.”
한사랑의 말을 듣던 재환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 역시 와일드 헌트를 겪어본 입장이었기에 ‘악마’와 계약한 사냥꾼들의 선택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부 다 죽을지. 아니면 몇 명이라도 살릴지. 선택지가 두 가지밖에 없으면, 계약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겠지. 계약을 한 사냥꾼들도, 계약을 맺은 악마들도,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일 테고 말이야.’
비록 말로 전해 들었을 뿐이었지만, 재환은 한사랑이 말한 ‘악마’들에게서 흘러나오는 악의에 불쾌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저들은 사냥꾼들이 이 제안을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이 점을 이용하여 동족상잔을 유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결하게 자살하거나, 추악하게 살아남거나. 어느 쪽이든 잔인한 선택이네요.”
입을 연 재환은 품속에 넣어둔 담배를 꺼내며 말을 이었다.
“이런 말을 하는 우리도, 사실은 그 사냥꾼들이랑 다를 바 없는 처지고요. 우리도 결국은 사냥꾼들을 샬롬으로 불러 모은 존재 때문에 서로 피를 봐야 하는 건 마찬가지니까요.”
이제 막 2주차에 들어섰을 뿐이었지만, 재환은 샬롬의 시스템이 사냥꾼들 간의 동족상잔을 은근히 유도하고 있다고 느꼈다.
아무리 정신력이 강한 사냥꾼일지라도 끝없이 괴물을 상대하다 보면 스트레스가 쌓이기 마련이었고, 여기에 더해 사냥꾼 특유의 동족 혐오와 회귀라는 요소가 더해지면 사소한 문제만으로도 서로 죽고 죽이는 일이 일어나기 마련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저희는 좀 나은 편이에요. 다음 주차로 넘어가는 티켓을 얻는 방법이 두 가지나 되거든요. 티켓을 포기하는 것까지 포함하면, 선택지가 총 세 가지가 되는 거죠.”
한사랑은 라이터를 꺼내 불을 켜면서 말했고, 재환은 그녀가 켠 라이터로 담배에 불을 붙인 뒤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첫 번째는 샬롬의 사냥꾼들처럼 다른 시민이나 사냥꾼의 내장을 모아서 악마에게 바치는 거예요. 지금 도시를 주도하는 세력이 샬롬의 사냥꾼들인 만큼, 제일 쉬운 방법이죠. 주류에 편승하는 건 언제나 편한 길이니까요.”
“두 번째는요?”
“이쪽은 더 위험하지만, 피는 덜 보는 일이에요. 신비를 배워서 악마와 계약한 사냥꾼들, 내장 사냥꾼을 죽여서 사냥꾼 의회라는 샬롬의 수뇌부에게 넘기는 거죠. 그쪽 사람들도 신비에 조예가 깊은 편이거든요.”
그녀는 라이터를 주머니에 넣으며 말을 이었다.
“물론 괜히 어렵다고 말한 건 아니에요. 제일 솜씨가 좋은 사냥꾼들도 내장 사냥꾼들을 상대하다가 내장을 잃고 탈락하기 일쑤였으니까요. 아무리 신비에 조예가 깊고, 샬롬에 익숙해진 사냥꾼들도 상대하길 꺼리는 게 내장 사냥꾼이에요.”
피 비린내 나는 말을 꺼낸 한사랑은 나직한 목소리로 내장 사냥꾼에 대해 속삭였다.
“우리가 괴물의 피를 마셔서 힘을 기르는 것처럼, 내장 사냥꾼들은 사냥꾼들의 피를 마셔서 힘을 얻거든요. 괴물을 잡아먹는 게 사냥꾼이라면, 사냥꾼을 잡아먹는 건 내장 사냥꾼인 거죠.”
마치 누군가 엿들을까 봐 조심하는 사람처럼, 그녀는 은은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오죽하면 내장 사냥꾼을 헌터 킬러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니까요. 사냥꾼을 잡아먹는 사냥꾼이란 건, 어떤 의미에서는 호러보다도 더 끔찍한 괴물인 거예요. 이 세상에서 사람보다 사람을 잘 죽일 수 있는 짐승은 없는 법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