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108
내장 사냥꾼 (2)
2주차에 관한 얘기가 끝난 이후, 한사랑은 내장 사냥꾼들의 거점과 정보가 담긴 지도를 건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부분은 여기까지예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내장 사냥꾼이랑 엮이는 건 맨손으로 바퀴벌레를 잡아먹는 것보다 끔찍한 일이거든요.”
자리에서 일어난 한사랑은 탁자를 손으로 내리쳐 바퀴벌레를 잡는 시늉을 하며 말을 이었다.
“회귀자들이 괜히 헌터 킬러라는 이름 대신에 내장 사냥꾼이라는 이름을 쓰는 게 아닌 거죠. 그렇게 부르는 쪽이 좀 더 직관적이고, 본질에 가까운 표현이거든요.”
한사랑이 내장 사냥꾼을 사냥하러 가는 것에 발을 뺀 이유는 간결했다.
첫 번째는 내장 사냥꾼을 상대하는 것이 정신력을 갉아먹는 일이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현대인 사냥꾼들이 티켓을 구하기 위해 다른 조직의 사냥꾼들을 사냥해 제물로 바치는 암투와 전쟁을 벌이기 때문이었다.
사냥꾼 조직들의 입장에서는 본격적으로 전쟁이 시작되면 한 사람의 손이라도 더 필요할 것이고, 그녀 역시 혈맹에 속해 수십 년을 보낸 사냥꾼인 만큼 자신의 혈맹원을 도우러 가겠다는 것을 막을 이유는 없었다.
“위험할 것 같으면 지금이라도 그만두시고 저랑 같이 혈맹원들을 도우러 가셔도 돼요.”
탁자에서 손을 뗀 한사랑은 문밖을 향해 걸어가면서 말을 이었다.
“사실 사람을 덜 죽여도 된다는 점을 제외하면 내장 사냥꾼을 사냥할 이유는 하나밖에 없으니까요. 똑같이 내장 사냥꾼이 돼서 다른 사냥꾼들을 죽이러 다니고 싶은 게 아니면, 내장 사냥꾼이랑은 상종도 안 하는 게 좋죠.”
문 앞에서 멈춰선 한사랑은 뒤를 돌아 재환의 표정을 살폈고, 그가 결정을 바꿀 생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면 정류장에서 볼 수 있길 바랄게요. 재환 님 실력이라면 분명, 혼자서도 잘하실 수 있을 거예요. 한 번도 안 죽고 호러를 사냥한 사냥꾼은 제가 아는 한 재환 님이 유일하니까요.”
격려를 끝낸 한사랑은 그대로 바깥으로 나갔고, 문 앞에서 그녀를 배웅한 재환은 다시 자리에 앉아 담배를 꺼냈다.
‘이제야 갔군.’
담배를 입에 문 뒤 라이터로 불을 붙인 재환은 담배를 피우며 생각에 잠겼다.
‘속내를 모르는 사람 얘기를 듣는 건 불편한 일이지. 아무런 대가 없이 이것저것 알려주려는 사람은, 사이비거나 장사꾼 정도니까.’
내장 사냥꾼에 대해 논했던 한사랑의 태도는 이중적이었다.
그녀는 내장 사냥꾼의 위험성을 강조하면서도 그들을 사냥하는 가능성을 열어뒀고, 내장 사냥꾼을 사냥하는 것을 만류하면서도 내장 사냥꾼을 죽이는 쪽이 살인을 덜 하는 사실을 은연중에 강조했다.
이러한 화법은 할 수 없다는 말을 들으면 더욱 하고 싶어지는 사람의 심리를 자극하는 말이었고, 재환은 은근히 도전 욕구를 자극하는 듯한 그녀의 화법에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다.
‘저 말이 사실이면 내장 사냥꾼을 노리는 게 덜 불쾌한 일이긴 하겠지. 살인은 언제 해도 찝찝한 일이고, 하고 나면 뒷맛이 더러운 법이니까. 사람은 덜 죽일수록 좋고, 괴물은 더 죽일수록 좋은 거지.’
사람이 괴물이 되는 세상인 만큼 엄밀히 따지면 사람과 괴물의 차이는 애벌레와 나비 정도의 차이밖에 없었지만, 그럼에도 그는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는 것을 언제나 경계해왔다.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선을 넘기 시작한다면 정신이 망가지는 것은 순식간이고, 일단 정신이 망가져 실성한다면 인간의 껍질을 뒤집어쓴 괴물이 될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사람을 덜 죽여도 되는 길을 알려주는 한사랑의 말을 마다할 이유는 없었지만, 재환은 결정을 내리기에는 아직 정보가 부족하다는 점을 신경 쓰면서 생각에 잠겼다.
‘문제는 저 여자 말이 어디까지 사실일지는 모른다는 거지. 지금 당장 저 여자가 말한 것들을 검증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그리고 제일 의심스러운 건…’
그는 지금까지 한사랑이 보여줬던 태도를 곱씹으며 담배 연기를 내쉬었다. 뿌옇게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는 샬롬에 깔린 안개처럼 막막했다.
‘…잠깐 알고 지낸 사람한테 이 정도로 헌신적인 게 말이 안 된다는 점이지. 이 여자랑은 서울에서 얼굴만 몇 번 본 게 전부였으니까. 회귀자가 되고 어디까지 기억이 남아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그걸 감안해도 이 정도로 가이드 역할을 하는 건 확실히 과잉 친절이지.’
지금까지 한사랑의 도움을 유용하게 사용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녀는 회귀자들의 소굴인 샬롬에서 그가 헤매지 않게 다양한 방면으로 도움을 주었고, 돈이나 보물보다 정보가 더 중요한 회귀자들의 세계에서 한사랑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샬롬에 적응하는 동안 수차례 시행착오를 겪었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한사랑의 정보가 유용했던 만큼, 재환은 한사랑에 대한 경계심을 높일 수밖에 없었다.
목숨이 무한한 회귀자들의 세상에서는 누구나 자신이 간절히 바라는 것을 위해 목숨을 불사를 수 있었고, 그렇게 목숨을 불사르고도 목적을 이루지 못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숙원을 위해 무엇이든 거리낌 없이 행동할 수 있었다.
이는 자신을 포함해 회귀자들을 수차례 만나면서 알 수 있게 된 사실이었으며, 이미래처럼 아예 자포자기하는 경우가 아닌 이상 한사랑 역시 이러한 사실에서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대가 없는 친절은 커피 한 잔 정도면 그만이야. 그 이상은 짐이 될 뿐이고, 질척거릴 뿐이니까. 오히려 이쯤에서 갈라서는 게 내 쪽에서도 더 편할지도 몰라. 어차피 사냥이라면 지금까지 혼자서도 잘 해왔으니까. 이제는 누구랑 같이 사냥하는 게… 더 이상할 정도로 말이야.’
그가 한사랑에게 내장 사냥꾼을 사냥하는 것을 도와달라고 하지 않은 이유는 오랜 세월에 걸쳐서 누적된 사냥 습성 때문이기도 했다.
그는 수십 년이 넘도록 사냥을 하는 동안 다른 사냥꾼의 도움을 거의 받지 않았고, 설령 도움을 받더라도 결정적인 사냥을 할 때는 항상 혼자서 마무리를 지었다.
이는 암브락사스를 사냥할 때 다른 사냥꾼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서 형성된 습성이었고, 덕분에 그는 능력치로는 올릴 수 없는 인내력과 강인함을 손에 넣을 수 있었으며, 이는 터무니없이 강한 상대를 만나도 버틸 수 있는 밑거름이 되어 그를 더 높은 경지로 인도했다.
‘쉬는 건 이만하면 된 것 같고, 이제 나도 슬슬 준비해야지. 이제 좀 있으면 밤이 될 테고…’
재환은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탁자에 비벼서 꺼트린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여자가 충고했던 것처럼, 범인은 항상 현장에 돌아오는 법이니까. 자기가 사람을 죽인 집에 누가 들어와서 살고 있으면, 살인귀 입장에서는 이것보다 신경 쓰이는 일도 없을 테지.’
한사랑이 굳이 시체가 있는 건물로 그를 안내한 것은 이러는 쪽이 내장 사냥꾼의 이목을 끌기에 좋았기 때문이었고, 이러는 쪽이 내장 사냥꾼의 본거지로 들어가는 것보다 사냥하는 것이 유리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재환은 창밖에서 내리깔리는 땅거미를 바라보며 내장 사냥꾼을 사냥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손님맞이에 게을렀다간 자신 역시 다락방에 안치된 시신들과 다를 바 없어질 것은 예지력을 사용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는 결론이었다.
* * *
창백한 달이 샬롬의 하늘에 떠오르자 거리에 내리깔린 안개는 더욱 짙어졌고, 거리의 곳곳에서는 횃불을 든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행진하기 시작했다.
와일드 헌트에서 살아남은 샬롬의 시민들은 도시의 곳곳에 남아있을 괴물들을 찾아내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었고, 이들은 ‘사냥꾼 의회’라는 사냥꾼 조직의 협조를 받아 음지에 숨어있는 괴물과 범죄자를 찾아내 불태우는 일을 하고 있었다.
“괴물이다! 이곳에 괴물이 있다!”
“찾았다! 마녀를 찾았어! 이 마녀가 악마를 불러냈다고!”
“약탈자의 흔적이다! 이 도둑놈들을 모조리 불태워버려!”
준비를 끝낸 뒤 창밖을 통해 안개 낀 거리가 시끄러워진 모습을 바라보던 재환은 눈살을 찌푸리며 한사랑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내장 사냥꾼들을 잡으면 사냥꾼 의회로 가져가라고 했지. 그러는 쪽이 사람을 제일 적게 죽여도 되는 길이라고 말이야.’
그녀의 말을 곱씹던 재환은 담배를 향해 가려던 손을 멈췄다.
밤에 담배를 피우는 것은 저격수에게 표적이 여기에 있다고 광고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고, 지금처럼 한 끗 차이로 생사가 결정될 수 있는 상황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지금까지 준비했던 것을 전부 물거품으로 만드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여기에 더해 아직은 예지력을 사용해도 내장 사냥꾼이 습격하는 모습이 여러 갈래로 흐릿하게 보였기에 그는 담배를 피우는 것을 뒤로 미룬 뒤 한사랑의 말을 다시 떠올렸다.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건 못 미더운 짓이지. 힘이 곧 권력인 건 세상 어딜 가도 마찬가지인 법이니까. 고일 대로 고인 현대인 사냥꾼들도 압도하는 게 내장 사냥꾼이면, 사냥꾼 의회라는 조직에 녹아드는 것도 불가능한 건 아닐 테니까.’
한사랑의 말에 의하면 내장 사냥꾼들이 신비에 정통했던 것은 그들이 대부분 샬롬의 유력가 출신의 귀족들이었기 때문이었고, 사냥꾼 의회는 와일드 헌트에서 살아남은 명문가 출신의 사냥꾼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조직이었다.
그렇기에 재환은 그녀가 이에 대해서는 깊게 얘기하지 않았음에도 이 둘 사이에 연관성이 있으리란 것을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고, 그녀가 이 둘 사이의 연관성에 대해 별것 아니라는 듯이 넘어간 것을 석연치 않게 여기고 있었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는 조금 있으면 알게 되겠지.’
창밖을 바라보던 재환은 바깥에서 들려오는 발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전투 자극제를 꺼내 정맥에 투여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손님이 올 테니까. 사냥꾼의 내장을 사냥하는… 괴물 같은 사냥꾼이 오겠지.’
내장 사냥꾼들의 사냥 방식은 저마다 다양했지만, 그들의 사냥 방식은 사냥꾼들의 기준으로 봐도 상식을 벗어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를테면 칼 한 자루만 들고 사냥꾼들이 모인 건물에 단신으로 쳐들어가는 광인이 있는가 하면, 수십 년을 함께 해온 동료들도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로 변장을 한 뒤 사냥꾼들 사이에 섞여 들어가 이간질과 화술로 서로를 살해하도록 유도하는 경우도 있었으며, 방해 공작을 통해 몇 날 며칠 동안 잠을 자지 못하도록 신경을 갉아놓은 뒤 빈틈을 노려서 하나씩 사냥꾼을 사냥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걸 보면 이번에 오는 내장 사냥꾼은 신사적인 편이라고 봐야겠지.’
예지력으로 앞으로 일어날 일을 읽어낸 재환은 조금 전에 피우지 못했던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조만간 찾아올 상대가 저격을 하는 대신 정문으로 당당히 들어오는 미래가 이제는 선명하게 그려졌기 때문이었다.
‘이제야 손님이 왔군.’
바깥에서 발걸음 소리가 멈추는 것과 함께 노크 소리가 들려왔고, 재환은 담배를 한 모금 내뱉은 뒤 문을 열기 위해 걸어갔다.
‘상대가 신사적으로 나오면, 이쪽도 그러지 말란 법은 없으니까.’
예지력으로 상대의 정체를 미리 확인한 재환은 담배를 입에 문 채 문을 열었다. 바깥에는 정장을 입은 남자가 중절모를 눌러쓴 채 서 있었고, 그는 이 내장 사냥꾼을 예전에 만난 적이 있었다.
문이 열리자 중절모를 쓴 남자는 능글맞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동족상잔이라니… 참 못할 짓이야. 안 그래?”
한밤중에 찾아온 불청객은 그렇게 말하며 명함을 꺼내 건넸지만, 재환은 명함을 받자마자 찢어버리며 그의 말에 대답했다.
“디에고. 신비 공방 출신 디에고.”
재환은 이 상황이 재미있다는 듯이 바라보는 내장 사냥꾼을 향해 말했다.
“당신 솜씨라면, 예전에 한번 당해봐서 잘 알고 있거든.”
디에고. 안개에 녹아드는 사냥꾼. 자신을 살해하고 몸을 빼앗은 사냥꾼을 다시 만났을 때, 그는 샬롬에 온 것에 처음으로 보람을 느꼈다.
복수는 언제나 보람있는 법이었고, 그것이 자신을 농락한 상대라면 더더욱 그랬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