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11
동서울 피난촌 (2)
20분가량의 시간이 지난 뒤, 재환은 김 순경의 안내를 따라 서장실에 도착했다.
똑! 똑! 똑!
노크 소리와 함께 서장실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장이 들어오라고 말하는 목소리였다.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수고하세요.”
“네, 수고하셨어요.”
김 순경은 그렇게 말한 뒤 한 마디를 더 붙였다.
“오늘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그럼 이만.”
김 순경이 꾸벅 인사를 건넨 뒤 사라지는 것을 본 재환은 막상 제대로 감사를 받자 낯뜨거운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은혜를 갚겠다는 것을 만류할 생각도 없었으니 김 순경을 따로 붙잡지는 않았다.
‘내 할 일이나 잘하자.’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문을 열고 들어갔다. 초췌한 모습의 서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반겼다.
“김태수 총경입니다. 조금 전에 김 순경에게 얘기 들었습니다. 큰 신세를 졌더군요. 경찰 전체를 대표해서 고맙습니다.”
김태수 총경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숙였고, 재환은 자신의 아버지뻘 되는 사람이 고개를 숙이는 것에 부담을 느꼈다.
“아뇨, 괜찮습니다. 그냥 운이 좋아서 그런 거니까요.”
그는 자신이 대단한 일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상대했던 괴물은 까다롭기는 했어도 감당할 수 있는 상대였기 때문이다. 만약 목숨을 포기해야 할 정도의 상황이었다면 그는 경찰이 죽는 것을 무시할 생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올 때 이웃을 구조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생각이었다. 남의 목숨보다 소중한 게 바로 자신의 목숨이라는 말은 소방관이었던 그의 아버지가 입이 닳도록 가르쳤던 말이었다. 그는 이 가르침을 소중히 여겼다.
“고마운 건 고마운 거죠. 지금 같은 상황에 그러긴 쉽지 않으니까요. 남을 도울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힘든 시기에요. 혹독한 시기죠.”
김태수 총경은 그렇게 말하며 커피를 마실 것인지 권했다. 하지만 재환은 김태수 총경의 물컵에는 생수가 담겨있는 것이 눈에 밟혔다.
‘연탄도 무한한 건 아닐 테니까.’
재환은 김태수 총경의 눈두덩이가 퀭한 것을 눈치챘다.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기색이 역력했다. 멀리서 봤을 때는 알 수 없던 사실이었다.
‘이 사람, 아예 밤을 새운 건가?’
그의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김태수 총경은 몇 시간 전에 밤을 새워가며 서울 밖으로 나가려는 사람들을 통제했다. 그러니 따로 쪽잠이라도 잔 게 아니라면, 말 그대로 한숨도 자지 않으면서 근무하고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완전 가시방석이네.’
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일단 커피를 받기로 했다. 경찰서장쯤 되는 사람이 손님에게 권하는 차를 마다하는 것도 실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뜨거운 커피를 홀짝였다. 커피가 유난히 씁쓸했다.
“알고는 있겠지만, 지금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아주 좋지 않지요.”
김태수 총경은 그렇게 운을 떼며 본론을 꺼냈다.
“통신기기가 전부 고장 나서 연락망이 끊겼어요. 군대에서 보고받은 내용에 따르면 서울 중심부는 괴물 때문에 아예 괴멸한 모양입니다. 중심부로 갈수록 괴물의 숫자가 말도 안 되게 늘어난 게 그 증거죠. 무사한 건 아마 서울 외곽 지역이 전부일 겁니다. 차라리 서울 중심부에 폭격을 쏟아붓자는 얘기가 오늘 회의에서 공공연하게 나왔을 정도니까요.”
현황을 얘기하는 김태수 총경의 태도는 담담했다. 마치 아나운서가 속보를 읊어주는 듯한 느낌을 줄 정도였다. 하지만 재환은 그 말을 하는 당사자가 경찰서장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괜히 이런 얘기를 해 주는 게 아니겠지. 민간인한테 해줄 얘기는 아니니까.’
그는 군필자였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김태수 총경이 지금 하는 얘기는 적어도 대외비에 해당하는 군사 기밀이었다. 군부대의 전력 현황과 향후 계획에 관한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이 내용이 민간에 유출된다면 불안과 혼란을 불러올 게 분명했다. 그는 이런 내용을 이렇게 쉽게 얘기해준다는 사실에 집중했다.
‘일단 무슨 꿍꿍이인지 들어보자. 나한테 뭔가 원하는 게 있으니까 이런 얘길 하는 거겠지.’
세상에 공짜는 없다. 설령 공짜처럼 보이는 것이 있더라도 그것은 미래를 위한 투자일 뿐이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재환은 경찰서장이 무엇을 위해 밑밥을 깔고 있는지 의심하며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지금 당장 진군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계속 말씀드렸다시피, 상황이 좋지 않으니까요. 지휘체계는 엉망이 됐고, 첨단 장비 역시 무용지물이죠. 재래식 무기만으로 서울 중심부를 제압하는 건 불가능해요. 좋든 싫든, 우리는 장기전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게 가장 큰 문제죠.”
김태수 총경의 말에 재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가 많겠네요.”
“네, 아주 많습니다. 식량 수급, 의약품 수급, 탄약 관리, 주거지 확보… 피난민분들과 중랑구 주민분들의 분쟁 정도는 애교처럼 보일 정도죠. 그리고 제일 걱정되는 건···. 물이 끊기는 겁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물컵을 들어 올렸다.
“사실 지금 물이 제대로 나온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고 봅니다. 수질까지 깨끗한 물이, 어디서나 잘 나오다니…… 하느님이 수자원공사를 보우하는 것도 아닐 텐데 말이죠. 기이한 일입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재환은 그를 따라 컵을 들어 올려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김태수 총경이 가장 심각한 문제인 괴물병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았다는 점을 눈치챘다.
김태수 총경은 지난밤 괴물로 변하던 사람에게 지체 없이 총을 발사했다. 미리 결심한 게 아닌 이상 나올 수 없는 판단 속도였다.
‘어쩔 수 없겠지. 국내 최고의 천재들도 속수무책이었던 게 하루아침에 해결될 리도 없으니까.’
아무리 괴물이 된 시민을 총으로 쏘는 게 어쩔 수 없다곤 해도, 경찰이 시민을 쏜다는 사실 자체가 민감한 주제였다. 그렇기 때문에 재환은 괴물로 변하는 도중에 총에 맞은 사람의 숫자와, 아예 괴물이 된 사람을 총으로 쏜 숫자에 대해 질문하지는 않았다. 어느 쪽이든 지금 중요한 것은 탄약을 포함한 모든 게 부족하다는 사실 뿐이었으니까.
커피를 마신 재환은 컵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상황은 들을 만큼 들었으니, 이제 본론을 들어야 할 차례였다.
“그러면… 물에 대한 것 때문에 부르셨습니까?”
“그건 아닙니다. 그쪽은 군부대에서 조사하기로 했거든요. 제일 중요한 문제니까요.”
“그러면 어쩐 일로…”
“전문가들 말로는 1주일이면 지금 저장된 보존식이 고갈될 거라고 합니다. 군경이 모두 사활을 걸고 정찰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재환은 김태수 총경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생존과 직결된 문제인 만큼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김태수 총경 역시 무게를 담아 말을 이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순직자가 속출하고 있어요. 지난밤 이후로 괴물이 급증한 게 크게 작용했습니다. 괴물을 만나지 않는 루트를 찾아보긴 하겠지만, 아마 불가능하다고 봐야겠죠.”
그는 고개를 끄덕여 김태수 총경의 말에 동의했다. 그는 서울에서 비교적 외곽 지역인 동대문구가 어떻게 망했는지 똑똑히 알고 있었다. 그런 현상이 서울 중심부로 갈수록 심해진다면, 서울 중심부는 멸망했다고 보는 게 옳았다.
“다행히 변수는 있습니다. 선생님 같은 ‘사냥꾼’ 분들 말이에요.”
마침내 예상했던 내용이 나오자 재환은 고개를 저었다.
“뭘 기대하시는진 알겠지만, 너무 기대하시진 마세요. 괴물 죽이는 것만 생각하면, 탱크나 장갑차를 쓰는 게 훨씬 나을 거예요. 화력 차이부터가 심해요.”
그는 자신의 현 상황을 낙관적으로 보지 않았다. 그는 빠르게 강해지고 있었지만, 아직은 현대 병기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랐다. 아무리 빠르게 움직이고, 강하게 공격해도 총이나 대포보다 빠르고 강하게 공격할 수는 없는 게 현실이었다.
“아직은 그렇겠지요. 하지만 앞으로는 어떨까요.”
김태수 총경은 그렇게 운을 떼며 말했다.
“사냥꾼분들은 하루가 다르게 강해지더군요. 사냥꾼이 된 지 며칠 만에 장갑차만큼 강해진 분도 있습니다. 다른 분들도 매일같이 강해졌다고 하더군요. 어디까지가 한계일지는 모르지만, 저는 지켜볼 가치가 있다고 판단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변수가 될 만한 요소니까요.
다른 사냥꾼들에 관한 얘기가 나오자 재환은 경찰서로 오는 길에 봤던 기독교인 여자가 신경 쓰였다. 김태수 총경의 말에 의하면, 그 여자가 자신보다 강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걸 물어보는 것도 유치한 것 같고… 진짜 약하다는 소리 들으면 쪽팔리겠지?’
그는 입이 근질거리는 것을 참으며 김태수 총경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최소한의 자제력을 발휘했다는 점이 대견스러운 순간이었다.
“그리고 만약 성장이 오늘 당장 끝난다고 해도, 사냥꾼분들에게는 탱크나 장갑차보다 나은 점이 이미 있습니다. 바로 기동성이죠.”
“기동성이라.”
“네. 헬기나 비행기를 못 쓰는 상황인 만큼, 사냥꾼분들의 기동성은 귀중한 전력이에요. 탱크나 장갑차는 평면적으로밖에 움직일 수 없으니까요. 그에 반해 사냥꾼분들은 입체적으로 움직일 수 있죠. 탱크로는 못 가는 곳도 갈 수 있고요. 도와만 주신다면, 저희로서는 천군만마나 다름없을 겁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그는 그렇게 말한 뒤 자신이 쥔 컵을 향해 시선을 내렸다. 자신이 하는 말이 내키지 않아 보이는 모습이었다.
“사람들이 희망을 원한다는 겁니다. 이럴 때일수록 히어로가 필요한 거니까요.”
재환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서장의 말에 대해 고민했다. 그는 ‘히어로’가 필요하다는 말이 경찰의 입에서 나왔다는 사실에 위화감을 느꼈다. 소수의 영웅이 질서를 주도하게 된다면 경찰의 입지는 그만큼 좁아지기 때문이다. 이런 시국에 자신의 입지를 스스로 깎아내겠다는 말은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총대 메는 게 부담스럽기도 하고.’
영웅이 되고 싶은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었다. 그는 애초에 총대를 메고 나서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 앞에 나서서 주목받는 것은 누구에게나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그래도… 숨어다닌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란 게 문제지.’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서장의 말에 일리가 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힘의 울타리 속에서 보호받고자 하는 생각은 원시시대부터 이어진 본능이었다. 그러니 사냥꾼의 존재가 널리 알려지는 이상, 시민들이 사냥꾼들에게 의지하게 되는 것은 필연적인 흐름이 될 터였다. 좋든 싫든, 살아남은 시민들의 시선이 사냥꾼에게 쏠리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그는 남은 커피를 전부 마신 뒤 컵을 내려놨다.
“무슨 뜻인지는 알겠습니다. 대신 저도 조건이 있어요.”
경찰에 협력하든지, 혼자 행동하든지. 어느 쪽을 골라도 대세가 바뀌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차라리 이득이 될 것 같은 쪽을 고르고 보는 게 옳아 보였다. 군경은 힘과 명분을 모두 쥐고 있었고, 이들과 협력한다면 그 역시 힘과 명분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총을 주세요. 그리고 군경이 괴물을 사냥할 때 나오는 괴물의 피를 분배해주세요. 그러면 생각해보겠습니다.”
재환의 대답을 듣자 김태수 총경은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는 흔쾌히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며 악수를 청했다.
“기꺼이 그렇게 해 드려야죠. 군부대 측에도 잘 전달해드리겠습니다.”
그가 흔쾌히 총기를 허락한 이유는 간단했다. 그의 눈에는 총을 쥔 사냥꾼과 총을 쥐지 않은 사냥꾼이 별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어느 쪽이든 마음만 먹으면 시민들을 학살하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였다. 그렇다면 차라리 그런 마음이 들지 않도록 곁에 두고 관리하는 쪽이 훨씬 안심되는 일이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재환은 그렇게 말하며 김태수 총경의 악수를 받아들였다. 계약이 성사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