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110
내장 사냥꾼 (4)
날붙이를 부딪치는 시간이 5분을 넘어가자 바닥에 떨어지는 핏방울과 살점이 점점 늘어갔지만, 수백 번을 넘게 합을 주고받았음에도 두 사냥꾼의 싸움은 쉽사리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재환에게 아무리 육감이 있다고는 해도 눈에 보이지도 않고 발소리도 내지 않는 상대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것은 힘든 일이었고, 디에고 역시 이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무리해서 앞으로 파고들기보단 방어가 허술한 부분을 노려서 출혈과 부상을 입히는 것에 집중했다.
여기에 더해 싸움의 양상이 체력 싸움으로 갈수록 언제든지 안갯속에 몸을 숨겨서 도망칠 수 있는 쪽에게 여유가 생긴다는 점 역시 디에고에게 웃어주는 부분이었지만, 재환은 디에고가 여유를 부린다는 점을 오히려 반가워했다.
‘앞으로 다섯 걸음.’
재환은 탈바꿈을 크게 휘둘러 디에고가 뒷걸음치도록 유도하면서 마룻바닥에 꽂힌 단검을 바라봤다. 저 단검은 화약 공방에서 구한 폭발 단검이었고, 약간의 충격만으로도 작동할 수 있도록 준비해둔 함정 중 하나였다.
비록 실내에서 사용된다는 점을 고려해 위력은 폭죽보다 나은 수준으로 낮춰놨고, 불발의 위험마저 있기는 했지만, 재환은 저 폭발 단검이 이 지리멸렬한 싸움을 끝낼 열쇠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불발이 나도 상관없어. 몸의 균형을 무너뜨리거나, 시선을 끄는 정도만 해도 충분하니까.’
재환은 디에고가 있을 방향을 예측해 탈바꿈을 휘둘렀고, 그러자 안개가 일렁거리는 감각과 함께 디에고가 뒤로 물러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죽고 사는 건 원래 한 끗 차이지.’
예측과 예감에 의존한 공격이 연달아 이어졌고, 그때마다 디에고는 재환이 꽂아둔 폭발 단검에 한 걸음씩 가까워졌다.
아무리 디에고가 안갯속에 몸을 숨길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곳은 그의 사냥터였고, 안개가 낀 이후의 미래를 볼 수는 없어도 상대가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지 예상하는 것은 숙련된 예언자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원래 사람 목숨이라는 건, 폭죽 하나에도 흔들릴 정도로 덧없기 마련이니까.’
셋. 둘. 하나.
재환의 공격에 맞춰서 연달아 스텝을 밟던 디에고는 뒷걸음질을 치던 도중 폭발 단검을 건드렸고, 이와 동시에 폭발 단검이 폭발하면서 피어오른 불씨가 디에고의 발목을 휘감았다.
‘보인다.’
발목에 붙은 불씨 덕분에 그는 디에고의 위치와 실루엣을 좀 더 정확하게 특정 지을 수 있었고, 그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마자 재환은 곧바로 디에고에게 달려들어 탈바꿈을 내리쳤다.
그리고 탈바꿈이 디에고의 어깨를 썰어내는 감각과 함께, 안갯속에 녹아들었던 디에고의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위장이 풀렸군.’
한쪽 팔이 잘린 디에고는 고통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뒷걸음질 쳤고, 재환은 디에고의 숨통을 확실하게 끊기 위해 앞으로 달려들었다.
‘방금은 요령껏 피했지만, 이번 건 못 피하지.’
디에고의 머리가 아닌 팔이 잘려나간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아무리 함정을 밟았다곤 해도 디에고는 사냥꾼을 사냥하는 사냥꾼이었고, 최악의 순간을 차악으로 만들 정도의 기량이라면 얼마든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번에야말로 사냥감의 숨통을 끊을 기회가 찾아오자 재환은 온몸의 신경을 한 점으로 집중했고, 그는 극도로 날카로워진 집중력 덕분에 시간이 느려진 것만 같은 감각을 누릴 수 있었다.
느려진 시간 속에서 탈바꿈은 디에고의 목을 향해 날아갔고, 잘려나간 어깨를 부여잡던 디에고는 정장 위에 두른 코트의 앞섬을 향해 손을 올렸다.
‘이대로 목을 치면…’
그리고 뒷걸음치던 디에고가 남은 손으로 코트 자락을 펼쳤을 때, 디에고의 목을 향해 탈바꿈을 휘두르던 재환의 손이 멈칫거렸다.
한없이 날카로워진 시각이 코트 안쪽에 그려진 기이한 형상의 문양을 포착하자 눈에 물감이 뿌려진 것처럼 기이한 환각이 일렁거렸기 때문이었다.
나비의 날개. 이지러진 거미줄. 혹은 형형색색의 잡동사니가 뒤엉킨 콜라주처럼.
착시를 유도하는 불가해한 문양의 모습에 홀린 재환은 0.1초 정도의 찰나를 낭비했고, 디에고는 그 찰나의 틈을 놓치지 않고 몸을 비틀어 탈바꿈을 피했다.
“왼쪽 눈알. 신장 반쪽을 별에 바친다. 나를 원더랜드로 데려다줘.”
곧바로 정신을 붙잡은 재환은 흐릿해진 시야 너머에서 들려오는 디에고의 목소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가 탈바꿈을 다시 휘둘렀을 때에는 이미 디에고의 몸이 연기처럼 사라지기 시작한 뒤였다.
“선조시여, 저에게 힘을. 마지막 남은 숨결마저 헛되지 않기를…”
탈바꿈이 빗나가자 재환은 창틀을 넘어 도망치는 디에고의 실루엣을 향해 핸드캐넌을 겨눴다. 지금 살려 보내면 다음에는 더 골치 아플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핸드캐넌의 방아쇠가 완전히 당겨지기 직전, 예지력으로 미래를 계산하던 재환은 방아쇠를 당기는 것을 그만뒀다.
예지력으로 본 미래에서 디에고의 몸은 신기루처럼 사라졌고, 명중했어야 할 핸드캐넌의 탄환은 그대로 허공을 향해 허무하게 사라져버렸기 때문이었다.
‘놓쳤군. 기척이 아예 느껴지지 않는 걸 보면… 아예 사라져버린 건가?’
디에고가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시야가 정상으로 돌아왔고, 핸드캐넌을 다시 품 안에 넣어둔 재환은 귀신에 홀린 것만 같은 기분으로 주변을 살폈다.
보이지 않는 적을 상대하는 동안 느꼈던 몽롱한 기분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지만, 땅바닥에 떨어진 디에고의 팔과 낭자한 핏자국은 그가 겪은 것이 꿈이 아니라 현실이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탈바꿈을 쥔 채 주변을 살피던 재환은 주변에서 디에고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한 뒤 곧바로 생각을 정리했다.
‘선택지는 두 가지. 정비하고 쫓아가거나. 아니면 바로 가거나. 어느 쪽이든 빨리 판단해야지. 이대로 꾸물거리다간 꿈자리가 뒤숭숭한 정도가 아닐 테니까.’
판단을 내리기에 단서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디에고가 무슨 수를 써서 사라진 것인지는 여전히 미스테리였고, 어떻게 재환의 감지력을 벗어난 것인지 역시 수수께끼였다.
하지만 재환은 깊게 고민하는 대신 곧바로 결정을 내렸다.
은신과 환각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상대가 게릴라전을 하기 시작하면 체력과 신경이 갉아 먹히다가 말라죽는 것은 시간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의 몸은 온몸에 낭자한 칼자국에 아랑곳하지 않고 사냥감을 쫓아가길 열망했고, 결국 재환은 본능이 이끄는 대로 움직이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가 사냥 도구가 담긴 배낭을 들쳐 멘 뒤 문밖을 뛰쳐나갔을 때, 때마침 그의 귓가에 샬롬인들이 공개 처형을 하는 소리가 또렷하게 꽂혀오기 시작했다. 밤이 무르익음과 동시에 샬롬식 마녀 사냥이 만개하였음을 알리는 소리였다.
“죽여! 사교도다! 죽여라, 죽여!”
“이놈이 악마다! 악마랑 계약했어!”
“다 잡은 사냥감을 놓치지 마! 눈에는 눈. 피에는 피! 눈알을 뽑아내고 피를 뽑아내라!”
“비명! 그래, 그래! 더 크게 비명을 질러!”
고문당하는 죄수들이 내지르는 비명 소리. 살갗이 불에 지져져 피어오르는 고기 굽는 냄새. 그리고 사냥에 몰두하는 사냥꾼과 시민들의 함성이 도시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
‘그래, 애초에 고민할 문제가 아니었어. 이럴 땐 샬롬 사람들한테도 본받을 점이 있단 말이지.’
그는 안개 낀 거리를 달려나가며 생각했다. 목적지는 한사랑이 알려준 디에고의 거점, 리베라 가문의 공방 저택이었다.
‘언제 배가 갈려서 장기자랑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인데, 주저하는 게 더 미친 짓이지. 온몸이 욱신거리긴 하지만, 지금은 상처를 치료할 시간마저 아껴야 돼.’
그는 검지에 끼워진 흑묘 반지의 감촉을 느끼며 소란을 등진 채 건물 사이를 질주했다. 삐걱거리는 몸의 곳곳에서 핏방울이 떨어졌지만, 그는 사냥꾼 이 정도 출혈로는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망설임 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샬롬에는 치명상을 입은 사람도 살려내는 신비가 있었으니까. 만에 하나라도 디에고가 흑묘 반지에 준하는 회복 수단이 있으면, 조금이라도 시간을 낭비했다간 땅을 치고 후회하겠지.’
거리를 달려가던 재환은 골목길에 들어서자 곧바로 탈바꿈을 휘둘렀다. 그러자 골목에 숨어있다가 재환을 덮치려던 괴물이 탈바꿈에 맞아 반 토막 났다. 재환은 괴물의 시체를 뛰어넘은 뒤 탈바꿈에 묻은 괴물의 피를 손가락에 묻혀서 입가에 가져갔다. 이는 와일드 헌트가 끝났다고 해서 샬롬의 악몽이 끝난 것은 아니라는 증거였다.
‘아무리 회귀를 할 수 있다고 해도, 여기서 오래 있으면 무슨 기억을 잃어도 이상한 게 아니니까. 이 빌어먹을 세상에서 제일 끔찍한 건… 목숨을 잃는 게 아니라 기억을 잃는 거고.’
한사랑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지만, 그는 죽을 때마다 기억이 희미해진다는 점이야말로 샬롬에서 가장 경계해야 하는 일이라고 여겼다.
기억 상실의 가장 끔찍한 점은 어떤 기억을 잃었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었고, 최악의 경우에는 어째서 괴물을 사냥하려 했는지까지 잊어버릴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도시는 음울하고 음험한 파리지옥이나 다름없었다.
‘그걸 알면서도 굳이 죽을 곳을 찾아 달려드는 건, 어지간히 미친 사람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거지. 그리고 더 웃긴 건…’
입가에 괴물의 피를 묻힌 채 달려 나가던 재환은 골목길 너머의 광장에서 횃불을 든 군중들이 모여서 화형식을 하고 있는 것을 바라보며 멈춰 섰다.
단체로 모여서 괴물을 화형시키고 있는 그들의 눈에 피투성이가 된 사냥꾼의 모습이 어떤 식으로 보일지는 예지력을 사용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미친 사람일수록 더 깊은 곳까지 뛰어들 수 있다는 건, 서울이나 여기나 마찬가지란 거지. 이 빌어먹을 동네에는, 사람을 사지로 몰아넣는 마력이 있으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는 세상이 멸망하기 이전부터 변하지 않았던 법칙이었고, 샬롬은 이 법칙을 혹독한 방식으로 강요하고 있었다.
괴물에게서 살아남고. 다른 사냥꾼과 경쟁하고. 티켓을 구해 더 머나먼 무대를 향해 나아가는 것.
이것이야말로 샬롬이라는 도시가 현대에서 온 사냥꾼에게 요구하는 미덕이었고, 그렇기에 샬롬에 온 사냥꾼들은 필연적으로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이 될 수밖에 없었다.
‘기왕 뛰어들어야 한다면, 가장 뜨거운 곳으로 뛰어들어야지.’
타오르는 괴물을 바라보던 재환은 배낭에서 방독면을 꺼내서 얼굴에 뒤집어썼다.
디에고의 본거지인 리베라 가문의 저택은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고, 이번에는 디에고가 사냥감의 내장을 손상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생화학 무기를 쓸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야 만에 하나 죽는 일이 있어도, 더 화려하게 타버릴 수 있으니까.’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날벌레와 태양을 향해 날아가는 영웅의 본질은 동일하다. 설령 그 끝에 파멸만이 기다리고 있다고 하더라도 날갯짓을 멈출 수 없는 것이 이들의 숙명이었고, 그렇기에 이들의 최후는 덧없으면서도 빛나는 법이었다.
‘이번에야 말로 둘 중 하나는 죽겠지.’
방독면 착용을 끝낸 재환은 골목과 골목을 넘나들며 디에고의 본거지를 향해 달려갔다.
‘이번에는 그놈의 저택을 불바다로… 아니지. 샬롬 전체를 불태우는 한이 있더라도 놓치지 않을 테니까.’
사람과 괴물의 살점이 타는 냄새. 밤을 지새우는 군중들의 함성. 그리고 곳곳에서 사냥을 나서는 사냥꾼과 괴물들의 기척을 지나.
저택의 모습이 마침내 그의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