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111
천사(天絲)의 집 (1)
안개 낀 저택의 모습은 허연 실타래에 뒤얽힌 곤충의 형상과 닮아있었다. 고치를 튼 누에처럼. 거미집을 엮은 거미처럼. 뿌옇게 내려앉아 저택을 휘감은 안개의 모습에는 서울을 집어삼킨 안개의 장벽과 같은 서늘함이 풍겨오고 있었다.
‘이제는 입장이 바뀌었군.’
재환은 저택에 내려앉은 안개를 손바닥으로 매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그의 얼굴에는 생화학 공격을 대비해 준비해둔 방독면이 씌워져 있었다.
‘저번에는 내가 덫을 놓고 기다리는 입장이었지만, 이번에는 저쪽이 덫을 놓고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아무리 상대가 부상을 입었다곤 해도, 상대가 준비해둔 사냥터에 혼자서 들어가는 건 괴물의 아가리에 얼굴을 집어넣는 거랑 다를 게 없지.’
생사를 건 상황에서는 사소한 변수 하나로도 목숨이 좌우되는 법이었고, 사냥꾼은 덫을 놓고 기다리고 있을 때 가장 위협적인 법이었다.
이는 사냥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진리이자 철칙이었고, 그렇기에 재환은 저택에 들어가는 대신 저택에 불을 질러 디에고를 바깥으로 유인할 계획이었다.
‘이 안개만 아니었어도, 훨씬 쉽게 끝낼 수 있었을 텐데… 아쉽게 됐어.’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안개의 질감을 확인한 그는 배낭에서 최소한의 화기만을 꺼내 챙긴 뒤 배낭을 버렸다. 이 기이한 안개가 남아있는 한 저 저택에 불을 지르기는 쉽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화재도 막고. 예지력도 방해하는 저택이라… 이 정도면 천사라는 괴물이랑 계약했다는 말도 헛소리는 아니었나보군.’
그는 안갯속에서 똬리를 튼 저택의 모습을 바라보며 앞으로 걸어갔다. 계획에 차질이 생긴 것은 석연치 않았지만, 이대로 시간을 지체하는 것은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들 뿐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도망갈 수도 없지. 샬롬의 바깥으로 나가려고 해봐야 첫 주차로 돌아올 뿐이니까. 사냥꾼들이 단체로 거짓말한 게 아닌 이상, 도망칠 수 없으면 달려드는 수밖에 없지.’
쇠창살로 된 정문을 열어젖히는 그의 손길에 망설임은 없었다. 삶과 죽음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 세상에서 죽음이 삶의 발판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고, 그는 이러한 진리에 그 누구보다도 익숙해진 사람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가 한 손으로 대문을 열자 디에고 저택의 대문이 나른하게 움직이며 길을 내었고, 그는 저택의 대문에 아무런 잠금장치나 함정이 없었다는 점을 경계하며 조심스럽게 정원을 지나 저택의 본관을 향해 걸어갔다.
‘저택은 제법 큰 것 같은데… 사람이 살기엔 그리 좋은 느낌은 아니야.’
그는 안개에 휩싸인 저택의 모습이 거미의 고치에 휘감긴 피식자와 닮아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의 직감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본관의 내부는 곪다 못해 썩어가고 있었다.
나무로 된 복도는 수년 동안 습기에 절여져 조금만 세게 밟아도 부러질 기세였고, 한때는 제법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을 벽지는 곰팡이가 슬지 않은 곳을 찾기가 힘들 정도로 지저분했다.
다만 거미줄에 휘감긴 촛대와 화려한 디자인의 공예품들만이 이곳이 명문가의 저택이었다고 은연중에 속삭일 뿐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하나씩 부숴버리면서 디에고를 찾고 싶지만, 그건 멍청한 짓이지.’
그는 저택에 내려앉은 거미줄과 안개에 녹아든 조형물들을 둘러보며 디에고가 있을 법한 곳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어디에 무슨 장치가 숨겨져 있을지도 모를 노릇이고, 그런 식으로 시간을 허비했다가 디에고가 회복을 끝내면 상황이 역전되는 거니까.’
디에고와 같은 실력자의 홈그라운드에서 싸우는 것은 그에게도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예지력을 방해하면서 안갯속에 녹아드는 디에고의 능력은 거점을 정해서 수비하는 것에 특화되어있었고, 그가 사냥꾼이기 이전에 신비술사였다는 점까지 생각하면 아직 무슨 수를 이 저택에 더 남겨뒀을지도 모를 노릇이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복도를 따라 1층을 수색하던 그는 1층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 2층으로 향하는 계단으로 걸어갔다.
‘앞으로 뭐가 나와도 해야 할 일이 바뀌는 것도 아니니까.’
계단은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삐걱거렸고, 그는 그나마 튼튼해 보이는 부분을 찾아내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며 주변을 경계했다. 발밑에 덫을 설치해 사냥감을 낚아채는 것은 조금 전에 그가 디에고에게 사용한 수법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벌레가 나오면 밟고, 사람이 나오면 쏘고, 괴물이 나오면 토막 내야지.’
계단을 따라 2층을 향해 거의 다 올라가자 사각거리는 기척이 사방에서 희미하게 들려왔다. 기척은 2층뿐만이 아니라 1층에서도 흐릿하게 느껴졌고, 그는 곧 무언가가 일어날 거란 예감과 함께 탈바꿈을 움켜쥔 손에 힘을 주었다.
‘이제 시작이군.’
그리고 그가 마침내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의 끝자락에 닿았을 때, 계단의 밑바닥에서 창백한 빛깔의 손들이 판자를 부수고 뻗어 나와 재환의 다리를 움켜쥐려 했다.
이와 동시에 재환은 바닥에서 솟아오른 손 중 하나를 밟아 앞으로 도약했지만, 그 찰나의 빈틈 사이에 그는 자신이 어깨에 석궁의 볼트가 꽂힌 것을 확인하곤 이를 악물었다.
나무판자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몸이 먼저 반응한 덕분에 발목을 잡히는 것은 간신히 피했지만, 이와 동시에 작동한 석궁 함정까지 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재환은 곧바로 어깨에 박힌 볼트를 빼낸 뒤 저택으로 오는 길에 사냥해둔 괴물의 피를 마셨다.
시간이 조금 지난 탓에 갓 사냥한 괴물의 피에 비하면 신선도가 떨어졌지만, 그럼에도 괴물의 피에 담긴 생기는 그의 몸에 흡수되어 상처의 지혈을 돕기 시작했다.
평소보다 빠른 속도로 상처가 아무는 감각과 함께 그는 곧바로 주위를 살폈다.
‘다행히 독은 없는 것 같군. 내장이 상하면 안 된다 이건가?’
그는 의학과 약학에 대해서는 무지한 편이었지만, 독에 당했을 때의 감각이라면 웬만한 의사들보다도 더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괴물 중에는 인체에 해로운 성분을 뿜어내는 개체가 적지 않게 있었고, 전갈이나 말벌처럼 뾰족한 부위에서 독을 분비하는 개체도 드물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독이 발려있어도 어쩔 수 없지.’
그는 탈바꿈으로 계단에서 솟아오른 손들을 썰어냈다. 잘려나간 손의 피부는 밀랍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피 대신 수은을 흘리며 계단에 널브러졌다.
계단에서 솟아오른 밀랍 손을 정리한 재환은 2층에서 느껴지는 적들의 기척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가만히 있다가 정체 모를 적들에게 사방에서 포위될 바에는 한쪽을 먼저 돌파하는 것이 나았고, 1층을 먼저 정리한 뒤 2층으로 올라가는 것은 보다 높은 곳에서 내려오는 적을 상대해야 할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냥꾼의 본거지에 제 발로 쳐들어왔으면, 이 정도 리스크는 감내해야 하는 거니까.’
석궁의 볼트에 독이 발려있을 가능성은 낮았다.
내장 사냥꾼에게 사람의 내장은 천상의 존재에게 바치는 제물이었고, 제물로 바쳐야 할 내장이 독으로 오염되는 것은 제물을 받는 입장에서는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재환은 독에 신경을 쓰는 대신 안개 너머에서 무리 짓고 있는 세 명의 적들에게 의식을 집중했고,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그들에게 접근해 그들의 정체를 두 눈으로 확인했다.
거미 인간. 혹은 인형(人形) 거미. 그들은 인간의 형상을 한 농발거미의 모습을 취하고 있었고, 두 개의 길쭉한 다리로 곧추선 채 여섯 개의 팔을 쭉 펴고 있었으며, 머리는 거미의 것이었지만 체형은 사람의 것이었기에 샬롬의 고용인들이 입는 정장을 그대로 갖춰 입고 있었다.
저들 역시 계단에서 솟아오른 팔처럼 밀랍 피부를 지니고 있었다는 점에서 이 저택의 하수인이라는 점은 분명했고, 이와 동시에 재환은 그들이 가만히 있는 것이 먹잇감을 사냥을 시작하기 직전의 농발거미들이 조용히 때를 기다리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직감한 뒤 달려드는 것을 멈췄다.
저 거미 인간들은 비록 인간은 아닐지언정 사냥에 일가견이 있는 자들이었고, 그 역시 사람이기 이전에 사냥꾼으로서 이대로 무작정 달려드는 것은 저 저 인외의 사냥꾼들에게 가장 손쉽게 사냥감을 요리할 방법을 몸소 제공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는 점을 본능적으로 깨우쳤기 때문이다.
‘신중하게. 한 박자 안에 끝내야 돼. 길게 끌면 결국 포위당한다.’
재환은 한손에는 샬롬식 리볼버를 쥔 뒤 거미 인간들에게 달려들 타이밍을 계산했다. 찰나의 순간에 털끝만큼 미세한 움직임들이 오갔고, 세 거미 인간이 가로막은 포위망에 약간의 틈이 생기는 것과 동시에 재환은 리볼버를 속사했다.
탕! 탕! 탕! 탕! 탕! 탕!
여섯 발의 총성이 저택에 울려 퍼지는 것과 동시에 총에 맞은 거미 인간들이 비틀거렸다.
저들의 몸은 샬롬식 권총에 맞은 정도로는 죽지 않을 정도로 튼튼했지만, 재환은 저들의 머리가 흔들려 잠시 비틀거린 정도로 만족했다.
괴물의 피를 충분히 마셔둔 사냥꾼에게 찰나의 빈틈이란 목숨이 오가기에 충분할 정도로 긴 시간이었고, 그는 이 찰나의 틈을 누비며 거미 인간들의 팔다리를 토막 내기 시작했다.
팔다리가 하나씩 잘려나갈 때마다 농발거미를 닮은 시종들은 재빠르게 몸을 움직여 저항하려 했지만, 그들이 제대로 된 저항을 하려 했을 때는 이미 대부분의 팔다리가 잘려나간 뒤였고, 팔다리를 잃은 거미 인간들은 금세 머리까지 내어주는 수밖에 없었다.
‘재장전할 시간은 벌었군. 나쁘지 않아’
거미 인간들이 수은을 흘리며 쓰러지는 것을 보자마자 그는 권총의 재장전을 끝냈고, 이와 동시에 1층에서 농발거미를 닮은 시종들이 올라와 달려들기 시작했다.
‘역시 시간은 아껴두고 볼 일이야.’
재장전이 끝나자마자 여섯 발의 총성이 울려 퍼졌고, 1층에서 올라온 거미 시종들은 비틀거렸으며, 비틀거리고 난 다음에는 팔다리와 머리가 잘려나가는 흐름이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제아무리 인외의 존재일지라도 포위망을 보다 촘촘히 구성하지 못한 시점에서 이들의 사냥은 처음부터 실패할 수밖에 없었고, 그렇기에 재환은 수은 빛깔의 체액을 흘리며 널브러진 시종들을 보면서 별다른 감흥 없이 권총을 재장전한 뒤 탈바꿈에 묻은 수은을 닦아냈다.
‘빨리 끝낸 덕분에 숨 돌릴 시간까지 벌었으니. 이 정도면 남는 장사지.’
석궁 함정과 밀랍 인형의 기습, 그리고 거미 시종들의 포위까지 돌파해낸 뒤 그는 이 저택의 보안체계가 무엇을 위해 설계됐는지 알아낼 수 있었다.
이 저택의 보안체계들은 대부분 사냥감을 포획하거나 방해하여 시간을 버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었고, 그렇기에 대부분의 함정과 공격은 살상력보다는 저지력에 비중을 두고 있었다.
그 증거로 저택의 곳곳에서는 아직도 사각거리는 기척이 적지 않게 남아있었지만, 이들은 지금 당장은 습격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결국은 시간 벌이었다 이거지. 진짜는 지금부터인 거고.’
정비를 끝낸 그는 2층의 방문을 하나씩 열어젖히며 디에고의 흔적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손님맞이를 제대로 할 수 있는 건 역시 집주인밖에 없는 거니까. 서울이든 샬롬이든. 이건 별로 다르지 않은 거지.’
이제 평범한 괴물은 그를 죽일 수 없었고, 평범한 사람 역시 그를 죽일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수많은 사선을 넘어서 신비를 손에 쥔 괴물을 죽이는 것은 오직 신비를 깨우친 자들만이 가능한 위업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는 디에고를 찾아 저택을 돌아다니면서도 한편으로는 그에게 일말의 기대를 품고 있었다.
이번에는 어떠한 신비를 자신에게 보여줄 것인가. 얼마나 신비한 방식으로 예언자를 죽이려 들 것인가.
죽음이 삶의 밑거름이 되는 세상에서는 값진 죽음이란 값진 미래로 이어지는 발판이었고, 그렇기에 재환은 마침내 디에고를 찾아냈을 때 한편으로는 실망하는 수밖에 없었다.
디에고의 부상은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버거울 정도로 치명적이었고, 그의 눈동자에는 마지막 순간을 각오한 자들에게서 볼 수 있는 결연함이 담겨있었다. 패색이 짙을 때 나타나는 징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