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112
천사(天絲)의 집 (2)
3층에 도착한 남자는 한 손으로 잘려나간 팔을 부여잡은 채 복도를 걸어갔다. 한때는 복도의 바닥에 놓인 타일 하나하나에서도 부와 명예가 느껴지던 이 저택은 이제 먼지와 거미줄만이 가득했고, 중상을 입은 남자는 몰락한 저택의 모습이 자신과 다를 바 없음을 느끼며 힘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가문의… 부활은… 완전히 물 건너갔군…’
그는 복도에 걸린 역대 가주들의 초상화에서 시선을 느꼈다. 저들의 눈초리가 가문의 대를 끊은 자신을 책망하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선조님들… 아… 선조님들… 저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가주의 의무는 지키지 못하겠죠…’
가주의 집무실에 가까워질수록 그의 발걸음은 무거워졌다. 집무실에서 가장 가까운 쪽에 마지막으로 가주를 맡은 인물의 초상화를 배치하는 전통이 기억의 상처까지 들쑤셨다.
가장 마지막에 걸린 초상화는 그의 아버지의 것이었고, 그는 자신의 아버지를 직접 죽였으며, 자신의 손으로 직접 아버지의 초상화를 그려 넣었다.
재앙이 샬롬에 도래한 날, 그는 천사와 계약해 샬롬을 구하기 위해 가문에 있던 모든 사람을 죽여 제물로 바쳤다. 가장 늙은 노인부터 가장 어린아이까지. 혈육부터 고용인들까지 전부.
모든 이들을 전부 바치고 나서야 천사는 저택에 강림해 자신의 지혜를 그에게 나눠줬고, 덕분에 그는 자신처럼 천사의 힘을 빌린 사냥꾼과 학자들과 함께 샬롬에 도래한 재앙을 잠시 몰아낼 수 있었다.
‘아버지… 아버지…’
가주의 집무실 앞에 도착한 그는 문의 오른쪽에 붙어있는 아버지의 초상화를 보며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아버지에게서 가주의 지위를 물려받기 직전, 아버지와 나눈 약속이 그의 심장에서 새어나와 뇌리를 들쑤셨기 때문이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이 자리에 제 초상화는… 못 걸어두겠죠… 앞으로도 영원히… 영원히…’
단 한 사람만이 가문에서 살아남아야 했을 때, 그는 아직도 자신의 아버지와 나눈 약속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가문을 재건할 것.
그에게 있어서 이 한마디 약속은 천사와 나눈 계약보다도 소중한 것이었고, 그렇기에 그는 자살해서는 안 된다는 천사의 계약 조건 역시 거리낌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의자에 앉은 그는 팔이 사라진 부위에 천사의 거미줄을 칭칭 감았다. 천사와 거래해 얻은 이 거미줄은 하늘에서 내려온 실타래였고, 만물을 이어주는 바람이었으며, 현자들이 수은에서 찾고자 한 근원의 신비에 가장 맞닿은 물질이었다.
비록 지금 당장은 상처를 지혈하는 수준으로밖에 쓸 수 없었지만, 시간이 충분히 주어진다면 이 거미줄로 잃어버린 팔을 대신할 의수를 만들어 내거나 아예 새로운 팔을 만들어내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그럴 시간은… 아마 없겠지. 이제 조금 있으면 그 괴물 같은 놈이 올 테니까.’
상처를 치료하던 디에고는 저택의 바깥에 설치해둔 거미줄이 흔들거리는 것을 감지하며 숨을 내쉬었다. 자신을 죽이기 위해 사냥꾼이 도착했음을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앙헬. 앙헬. 대답해 줘, 앙헬.”
절단된 부위에 거미줄을 치렁치렁 감던 디에고는 허공을 향해 입을 열었다. 텅 빈 집무실에 목소리가 울리자 주변에 있던 사물들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네 말대로 그 예언자를 저택에 데려왔어. 이걸로 이제 너한테는 빚이 없는 거야. 그렇지?”
그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벽에 걸려있던 깃 펜이 천천히 떠올라 태양 문양의 표식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 기호는 신비학에서 긍정을 의미하는 상징으로 사용되었고, 이는 천사가 그와 맺은 계약이 성공적으로 완수되었음을 가리키는 증표였다.
“그래… 그렇게 됐군… 드디어… 드디어 해방이군…”
천사의 대답을 읽어낸 디에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마침내 끝이 가까워졌다는 생각이 들자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천사에게 진 빚을 갚았다는 해방감이 동시에 교차했다.
사람을 죽이는 기술이 뛰어난 것과 사람을 죽이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별개의 영역이었고,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해부하면서 쌓여온 죄악감에 그는 천천히 썩어가던 중이었다.
샬롬을 구하기 위해. 가문을 재건하기 위해.
기나긴 살인의 나날을 보내던 사냥꾼은 꺼져가는 의식을 부여잡은 뒤 천사를 향해 말했다.
“앙헬.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대답해줘.”
그는 잘려나간 팔에 거미줄을 감는 것을 멈춘 뒤 말을 이었다.
“이번이. 이번이 정말로 마지막이겠지?”
디에고의 말이 끝나자 집무실의 만물이 들썩였다. 낡아빠진 책. 먼지 쌓인 펜촉. 오래된 훈장의 목줄들. 사다리처럼 늘어진 거미줄. 바닥을 기는 바퀴벌레. 바퀴벌레를 향해 달려드는 농발거미. 플라스크에 든 시약. 창틀에 들러붙은 얼룩까지.
천사의 뜻에 따라 가장 큰 것부터 가장 작은 것들까지 모든 것이 미세하게 움직였고, 미세한 움직임은 흐름이 되어 물결을 만들어냈으며, 진동으로 이루어진 흐름은 일렁이는 바람이 되어 한 소절의 시편을 노래했다.
이는 오래된 사냥꾼에게 바치는 헌사였고, 수차례 배역을 소화해낸 명배우에게 바치는 찬사였으며, 살인귀를 자처한 희생양을 위로하는 송가였다.
집무실에 있는 모든 것들이 하나 되어 연주하는 합주곡에 귀를 기울이던 디에고는 조용히 미소를 지은 뒤 서랍에서 마약성 진통제를 꺼내 술잔에 따랐다.
“나는 죽겠지. 이제는 정말 끝일 테고. 이제는 두 번 다시… 기회도 없을 테고 말이야.”
진통제를 따라낸 그는 술잔을 흔들어 잔에 담긴 진통제가 찰랑거리는 모습을 바라봤다.
마지막 순간을 기념하기에는 포도주가 더 어울렸을 테지만, 천사와 맺은 계약이 끝났다고 해서 선대 가주와 맺은 약속까지 끝난 것은 아니었기에. 그는 포도주의 달콤함을 음미하는 대신 진통제의 씁쓸함을 목에 넘겼다.
설령 마지막 순간이 오더라도 살아남아 가문을 재건하겠다는 약속을 저버릴 수는 없었고, 가망이 없다고 해서 약속을 이행하려는 의지까지 접어둘 수는 없었다.
아직 총을 들어 올릴 수 있다면, 방아쇠를 당길 수 있다면, 마지막 순간까지 목숨을 보전해야 하는 것이 그의 의무였다.
“나는 의무를 다했어, 앙헬. 이번엔 네 차례야.”
집무실의 문 너머에서는 사냥꾼이 거미 시종들을 썰어버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이제 사냥꾼이 오기까지 머지않았다는 징조였다.
“순리에 따라 달을 죽여라. 오래된 굴레를 끊어 여명을 찾아라.”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문이 부서지는 소리가 집무실에 울려 퍼졌다. 실마리를 찾아내기 위해 제물을 바치려는 사냥꾼은 마침내 모든 방해물을 넘어 종점에 도착했고, 이와 동시에 두 사냥꾼은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눴다.
“무슨 수를 준비해 돈 줄 알았는데… 꼴이 말이 아니군.”
재환은 곧바로 방아쇠를 당기는 대신 디에고의 상태를 유심히 살폈다. 만신창이가 된 몸과 떨려오는 총구를 보자 오히려 함정을 준비해둔 게 아닐까 싶었기 때문이다.
“손님맞이가 허술해서 미안하게 됐어. 눈이랑 신장을 버리는 게 도마뱀 꼬리 자르는 것처럼 쉬운 건 아니거든.”
부상의 후유증으로 조준이 제대로 되지 않음에도 디에고는 천천히 손가락을 움직여 방아쇠를 당기기 시작했다.
그와 천사와 맺은 계약은 저 예언자를 저택에 데려오는 것이 전부였고, 계약이 끝난 이상 죽이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
설령 저 사냥꾼이 이 기나긴 굴레를 끊어낼 열쇠일지라도, 그는 일부러 목숨을 포기하는 일만큼은 차마 선택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디에고는 마지막 순간까지 의식을 끌어모아 방아쇠 너머로 시선을 집중했고, 방아쇠가 완전히 당겨지기 직전이 되자 총구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렇게 돼서 유감이야.”
디에고의 방아쇠가 당겨지는 것과 동시에 두 발의 총성이 동시에 울려 퍼졌다.
총성과 함께 디에고의 남은 한쪽 어깨가 총알에 꿰뚫렸고, 한 손에 무기를 쥔 채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재환을 바라보며 그는 헛웃음을 흘렸다.
‘역시 빗나갔군. 아니. 피한 거겠지.’
그는 마지막까지 경계를 늦추지 않는 상대의 모습을 보며 자신이 즉사하지 않은 이유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저 사냥꾼이 머리 대신에 어깨를 노린 이유는 죽는 것을 기점으로 발동하는 함정이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자신이 쓰러진 찰나의 사이에 주변을 살필 여유가 생기자 침입자는 방 안에 함정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 자신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무기를 들어 올렸다.
“푹 쉬고, 다신 보지 말자고.”
사냥꾼이 무기를 들어 올리는 것을 보자 그는 자신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것을 느꼈다. 무슨 수를 써도 죽일 수 없는 상대에게 죽는 것은 사신에게 목숨을 맡기는 것만큼이나 안도감을 주었다.
‘처음부터 목숨을 걸었으면, 좀 달랐을까.’
들어 올려진 무기가 피할 수 없는 죽음이 되어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것을 보며 그는 눈을 감았다.
‘아니… 그랬어도 별로 다르진 않았겠지.’
그저 죽이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남은 방법은 몇 가지 있었다.
숙소의 근처에 유독가스를 살포하는 방법도 있었고, 천사에게 자신의 내장을 제물로 바쳐서 상대의 내장을 빼앗는 방법도 있었다.
다만 그 어떤 방법을 사용하더라도 그는 상대의 예지력을 무력화하기 위해 상당한 양의 제물 또한 같이 바쳐야 했고, 설령 목숨을 빼앗더라도 온전한 상태의 내장을 얻지 못한다면 사냥을 나서는 의미가 없었다.
‘그래도 썩 나쁘지 않았어.’
목이 떨어지려는 찰나의 순간, 그는 한결 홀가분해진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어차피 오래 살 생각은 없었고, 곱게 죽을 생각도 없었으니까. 이런 괴물에게 죽는 거라면… 그나마 자연사에 가깝게 죽는 거겠지.’
만감이 교차하는 것과 동시에 디에고의 목이 바닥에 떨어졌다. 탈바꿈으로 디에고의 목을 내려친 재환은 다른 함정이 작동하진 않는지 경계한 뒤 죽은 디에고의 시신을 내려다봤다.
‘따지고 보면… 나도 이 인간이랑 다를 게 없지.’
그는 디에고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는 못했다. 그가 디에고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그가 샬롬을 구하기 위해 사냥꾼을 사냥했다는 정도였고, 이를 위해 사람의 목숨을 제물로 바치는 순례길을 걸었다는 것뿐이었다.
‘세상이 이 지경으로 망해버렸으면, 나였어도 천사와 계약해 사람을 죽이고 다녔을 테니까. 차이점이 있다면… 나는 사람 대신에 괴물을 주로 죽이고 다녔다는 것 정도지.’
사냥을 끝마친 재환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이제 그에게 남은 일은 죽은 디에고의 시신을 사냥꾼 의회에 넘기고, 또 다른 샬롬으로 향하는 기차표를 받아내는 일뿐이었다.
‘돌고. 돌고. 돌고. 또 돌고.’
담배에 불을 붙인 재환은 담배 연기를 내쉬며 거미줄 범벅이 된 집무실의 모습을 둘러봤다. 뿌연 안개로 가득한 집무실의 내부는 보는 이로 하여금 우중충한 기분을 자아내었고, 막막한 기분으로 담배를 피우던 재환은 디에고의 시선을 내려다보며 눈을 감았다.
‘이 짓거리를 계속하다보면… 언젠가 답이 나오는 건가?’
샬롬에서 해야 하는 일은 명확했다. 샬롬에서 일어나는 시련을 이겨내고, 더 먼 곳을 향해 나아가는 것. 이 과정에서 사람과 괴물을 수없이 죽이기만 하면 그만이었고, 그는 무언가를 죽이는 일이라면 이골이 날 정도로 익숙해진 상태였다.
하지만 해야 하는 일이 명확한 것과는 별개로 샬롬에서 살아갈수록 가슴 한 켠에서 막막한 감정이 곰팡이처럼 피어오르는 것은 그로서도 손 쓰기에 난감한 문제였다.
이 생활은 언제까지 이어지는가. 이 길의 끝에는 과연 정답이 있는가. 열차의 종착역에서 기다리는 것이 과연 해답인가.
그동안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살아남는 것에 집중해야 했기 때문에 깊게 생각하려 하지 않았던 의문이었지만, 샬롬에서 자신의 실력이 어느 정도 되는지 확인하면서 여유가 생기자 그는 길을 잃은 심정으로 담배 연기를 내쉬었다.
디에고가 죽은 이후 담배 연기의 명도가 또렷해지는 것과 동시에 주변에 있던 거미줄과 안개가 서서히 옅어지기 시작하고 있었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재환은 올 것이 왔다는 심정으로 저택에서 느껴지는 어두컴컴한 기운에 정신을 집중했다.
[그 아이를 내게 내려보내 줘.]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자 저택의 밑바닥에서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이처럼 뇌리를 가로질러 소통하는 방식은 속삭임, 혹은 성자들이 말하는 것과 닮아있었고, 재환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를 거부하는 대신 상대의 의도가 무엇인지 가늠하며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나는 지하실에 있단다. 가주가 죽었으니, 너라면 이제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을 거야.]담배를 입에 문 채 정신을 집중하던 재환은 담배를 버린 뒤 발로 지져서 불을 꺼트렸다.
목소리의 주인은 디에고가 계약한 천사일 가능성이 컸고, 그러한 존재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상황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상대를 얕잡아보는 행동이었다.
“듣고 있다면 대답해봐. 당신은 누구지?”
상대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던진 질문은 곧바로 대답이 되어 돌아왔다. 수십 명의 성가대에게서 미성을 뽑아내어 비단으로 엮어낸 것처럼, 인간으로 태어난 자들이라면 넋을 놓고 감탄했을 목소리에 재환은 불쾌감을 느꼈다.
반짝임. 사랑. 예술.
이러한 것들을 숭상하는 이들이 얼마나 끔찍한 일을 저지를 수 있는지 그는 더할 나위 없이 잘 알고 있었다.
[부르기에 적당한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나를 아리아드네라고 불러도 좋아.]자신을 아리아드네라고 소개한 목소리는 그에게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속삭였다.
[네가 그토록 찾던 실마리를, 너에게 나눠줄 수 있어. 이건 디에고와 맺었던 계약 중 하나였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