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115
만화경의 소우주 (2)
만화경에서 피어오른 심연이 그의 두뇌로 파고들 때, 그는 만화경 너머의 심연에서 무수히 많은 숫자의 우주가 점멸하는 모습을 바라봤다.
심연에서는 수많은 숫자의 우주가 밤하늘의 별처럼 펼쳐져 있었고, 각각의 우주는 태어나고 소멸하는 것을 반복하면서 만화경 내부의 전경을 찬란하게 비췄다.
태초의 폭발과 한 우주가 태어나고, 영겁의 세월을 거쳐서 죽어가고, 또 다른 우주가 피어올라 사그라지는.
사람의 생애와 다를 바 없이 탄생과 죽음을 반복하는 우주의 군집을 바라보며, 그는 넋이 나갈 것만 같은 기분으로 우주와 별의 향연을 헤아렸다.
그리고 세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의 별이 태어나고, 한 우주의 만물이 서로 뭉쳐서 한 덩어리가 되는 광경을 한참 동안 살펴보던 그때, 그는 별이 단 하나밖에 없는 우주가 태어나는 것을 바라보며 의아해했다.
한 우주가 태어나면 무수히 많은 별들이 태어나는 것이 우주 탄생의 보편적인 법칙이었으나, 이 우주에서는 태초의 폭발 없이 별 하나만이 홀로 반짝이고 있을 뿐이었다.
설령 태초의 폭발이 너무 과해 우주 자체가 찢어지거나, 우주 자체가 정체되어 영원히 식어버리는 일이 있을지라도, 그러한 우주에서조차 태초의 폭발 자체는 존재했기에 단 하나의 별만이 존재하는 이 우주는 일개 인간인 그의 눈에도 기이해 보였다.
우연의 일치인가. 아니면 이 또한 모종의 법칙인가.
의문이 피어오르자 그는 다른 우주를 훑어보는 대신 단 하나의 별이 빛나는 우주를 향해 주의를 기울였다. 그리고 찬란하게 빛나는 다른 우주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한참 동안 정신을 집중하자 마침내 단 하나의 우주에 시선을 고정시킬 수 있었다.
단 하나의 별만이 존재하는 우주. 이 비좁은 우주에서 별은 하나뿐이었기에 가장 존귀했고, 하나뿐이었기에 가장 전능했다. 위를 보아도, 아래를 보아도, 단 하나뿐인 별보다 빛나는 것은 없었다.
별은 홀로 거룩했고, 홀로 고고했다.
하지만 그는 한 우주의 주인이 된 별을 바라보면서도 감동을 느끼지는 못했다. 어둠이 없는 찬란함은 명암이 없기에 무채색과 다를 바 없었고, 하나뿐인 존귀함은 비교군이 없기에 무가치했다.
결국 홀로 존귀했던 별에게 주어진 것은, 홀로 고독해야 하는 숙명뿐이었다.
그리고 찰나면서 영겁이었던 시간이 지났을 무렵, 어느 순간부터 별은 스스로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이는 별이 초신성으로 변하는 과정이었고, 수명이 다한 별에게 찾아오는 순리였다.
제아무리 밝게 타오르는 별일지라도, 그것이 별인 이상 언젠가 수명이 꺼지는 날이 오고 마는 것이 만물의 이치인 법.
그렇게 별과 우주의 끝이 다가올 무렵, 한없이 곪아왔던 별은 비명을 내질렀다.
끝나야만 하는 삶에 대한 증오와 세상의 이치를 향한 비탄이 한데 뒤섞여서 비좁았던 우주의 끝자락을 뒤흔들었고, 견고하였던 우주의 껍데기는 비명에 공명하여 금이 가고 말았다.
그리고 이 비명을 듣게 된 그는, 별이 우주를 부수는 광경을 바라보며 아득할 지경의 두려움을 느꼈다.
저 별에게 우주란 껍질이었고, 저 별이 알을 깨고 나오면 얼마나 끔찍한 일이 벌어질지 본능적으로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자신을 가둔 우주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과 동시에 초신성이 된 별은 폭발했고, 새어 나온 빛줄기는 우주의 바깥으로 새어 나와 다른 우주의 경계를 향해 흘러들어 갔다.
단 하나의 점이었던 별빛은 이제 여러 갈래의 선이 되어 우주와 우주를 이었고, 연결된 우주는 한 폭의 그림이 되어 일제히 명멸했으며, 최후에는 만화경 내부의 모든 우주를 연결하는 구심점이 되어 만물의 중심이 되었다.
그가 인지할 수 있는 범위 내의 우주는 이제 저 별이 자아낸 거미줄에 걸린 모양새가 되었고, 거미줄은 깨어난 별의 신경망이 되어 각각의 우주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인지했으며, 우주에서 흥미로운 일들이 생길 때면 빛줄기가 촉수처럼 흐느적거리며 각각의 우주를 보듬었다.
작은 별 하나가 그가 인지할 수 있는 모든 우주를 집어삼키는 이 신비로운 광경에 그는 정신이 아연해졌고, 결국 그는 무너질 것만 같은 기분으로 마침내 저 별의 정체가 무엇인지 확신했다.
이 모든 악몽의 근원.
알에서 깨어나 만물의 재료가 된 지모신. 태초의 빛이 되어 세상을 밝힌 천부신. 부르는 이름과 찬미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를지라도, 결국 뿌리는 하나인 초월자. 별로 보이기에는 너무 거대했기에 달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괴물.
자아를 얻은 저 별은 모든 생명의 창조주였고, 모든 별과 우주를 집어삼킨 포식자였으며, 시간과 공간마저 장난감처럼 다루는 지배자였다.
만물의 주인이 되는 빛의 행적을 목도한 그는 자신 또한 저처럼 빛나고자 하는 욕망과 우주와 우주를 넘나드는 괴물의 존재감이 자아내는 공포를 동시에 느꼈다. 그리고 삼라만상의 이치를 목도한 두뇌에서는 인간의 지력을 뛰어넘는 신비를 마주한 충격으로 인하여 온몸의 신경이 뒤틀릴 정도의 통증을 내질렀다.
아무리 많은 괴물과 별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사냥하여 지혜를 끌어올렸다고 하더라도, 그 정신을 담은 그릇의 본질은 결국 인간이었기에.
인지를 넘어선 존재를 마주한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인지의 붕괴를 초래하는 수준의 스트레스를 유발했다.
이 광활하기 짝이 없는 우주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한낱 미물에 불과한 인간이 저 끝없는 우주를 향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인류를 먹여 살리는 저 거대한 태양마저도 하나의 우주에 비하면 실낱같은 깜빡임에 불과했고, 설령 모든 인류와 괴물을 잡아먹을 수 있는 사냥꾼이 태어나 한없이 사냥을 반복한다 하더라도 우주와 우주를 넘나드는 저 광휘 앞에선 한 줌의 일렁임마저 일으킬 수 없었다.
빛으로 자아낸 실타래로 연결된 우주와 우주 사이의 거리감 앞에서, 극심한 고통에 소리 없이 절규하던 그는 한 줌의 재가 되어 흩날리는 것이 차라리 더 유익한 삶이라는 결론마저 내렸다.
우주가 명멸하는 삶과 죽음의 순례 앞에서 만물은 한 줌의 재가 되고 마는 것이 이 세상의 순리였고, 인간의 발버둥이란 저 위대한 빛줄기 앞에서는 찰나의 유희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이대로 생각하는 것을 포기한 뒤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진다면 빛과 별들의 유희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고, 그의 자아 역시 언젠가 다가올 이 우주의 종말과 함께 영원히 사라질 수 있었다.
애초에 그가 처음으로 바란 것은 끝없이 반복되는 이 지옥에서 벗어나는 것이었고, 이 모든 것이 끝나기만 한다면 그 끝에 처참한 죽음이 기다리고 있기에, 그는 약속된 파멸이 다가와 끝으로 나아갈 것을 유혹하자 이를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나는… 그래, 나는 끝을 원했지.`
행복한 미래 따윈 바라지도 않았다. 평안한 죽음 따윈 분에 겨운 축복이었다. 무력하고, 무능했던, 한낱 인간이었던 그에게, 무아에 이르러 영원히 사라지는 것은 제법 근사한 일처럼 느껴졌다.
`각오를 하란 건, 이런 의미였고.`
긴 여정을 거치면서, 그는 제법 쓸만한 사냥꾼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인간으로서 갈고닦은 기술은 수십 년 넘게 사냥을 해온 다른 사냥꾼들의 기예와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았고, 별의 아이들과 대적해 심장을 취한 것은 다른 사냥꾼들도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의 위업이자 기적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발버둥 쳐왔던 모든 사냥의 날들이 저 위대한 존재 앞에서는 찰나의 유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진실은 그를 절망의 구렁텅이로 내몰았고, 그는 괴물을 사냥하면서 얻은 한 줌의 지혜로 간신히 이성을 붙잡으며 확실하게 자아를 버리기 위해 마지막 순간을 준비했다.
미련을 버리고, 자아를 버려, 영원한 무념인 무아를 향해 나아가자.
이제 상념을 정리하여 지금까지 자신을 죽지 못하도록 붙든 미련만 버릴 수 있다면, 그는 다른 이들이 먼저 도달할 수 있었다. 이 순간이 다가오자 그는 영면이란 썩 달콤한 결말이 될 수 있음을 깨우쳤고, 결정이 끝나자 그는 자신의 발목을 붙잡던 마음의 닻을 끌어올리기 위한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달을 사랑하라. 달을 사냥하라. 사냥. 사랑. 사랑. 사냥. 저 별들의 시선에선, 똑같이 보였을지도 모르지.`
끝없이 펼쳐진 별과 어둠을 하나씩 헤아리며, 그는 지난날의 기억을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사냥. 두려워하고. 도망치려 했던 나날들. 그는 도망칠 수 없기에 괴물에게 달려들었고, 죽고 죽이는 걸 반복한 끝에 그는 사냥꾼으로서 홀로 설 수 있었다. 괴물 때문에 무너졌던 그는 괴물을 씹어먹은 덕분에 연명할 수 있었고, 괴물을 죽여서 이 악몽을 끝내고자 하는 갈망 덕분에 그는 쓰러지지 않을 수 있었다.
사랑. 사랑했던 이들을 그리며 그는 별을 찾기 시작했다. 괴물이 된 아버지. 아버지에게 살해당한 어머니. 스러져간 인연과 덧없기에 사랑스러웠던 일상. 그리고 아름다웠던 괴물까지.
별 하나에 기억과. 별 하나에 회한과. 별 하나에 사랑. 사람. 사냥.
별을 헤아리며 고통과 절망을 곱씹던 그는, 생각의 속도를 늦추며 모든 우주의 중심에서 빛나는 별을 바라봤다. 이제 저 별에 몸을 던지면, 그의 자아는 별의 빛과 열기에 타올라 한 줌의 재가 되어버릴 것이 분명했다.
`별. 별. 별… 별…`
자아를 버리고 무아의 영역으로 나아가려던 그는, 해안가에 펼쳐진 모래사장처럼 펼쳐진 별들의 무더기를 바라보며 자신이 보지 않은 것이 남아있음을 깨달았다. 그것은 한순간의 변덕이었고, 찰나의 순간에 떠오른 의문이었으며, 별이 하나뿐인 우주가 태어나는 것과 비슷한 수준의 우연이었다.
`이 별들 중에는… 지구도. 내 고향도 있을까.`
모레 알의 숫자만큼이나 많은 우주 사이에서 지구를 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는 불가능에 가까울지라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사실을 금방 알아차렸다. 찰나가 영원이 되고, 영원이 찰나가 되는 이 우주의 바다라면 시간의 한계 따위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여기서 지구를 찾으면, 지구에 있는 샬롬의 입구를 찾으면… 나는. 나는 나를 볼 수 있는 건가? 그러면, 나는 지금 어떻게 보이게 되는 거지?`
의문이 피어오르는 것과 함께 그는 머릿속이 맑아지는 것을 느꼈다. 지금 보고 있는 것이 만화경 내부의 풍경일 뿐이고, 자신이 지금 만화경 너머의 풍경을 보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자 우주에 매혹되었던 이성이 자아를 향해 관심을 돌린 덕분이었다. 자아를 자각하는 것만으로도 꿈에서 유리되어 현실감을 되찾을 수 있다는 사실이 파멸로 나아가던 그의 의식을 붙잡았다.
`이곳이 정말 진실된 우주라면…`
파멸의 끝자락에서 이성을 되찾은 그는 우주와 별을 파헤치며 자신이 속한 우주와 별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이는 해안가의 모래사장에서 먼지 한 톨을 찾아내는 수준의 노역이었다.
하지만 삶이 끝나기 직전에 떠올린 의문은 자아의 본질로 이어지는 질문이었기에. 그는 심해에서 수면을 향해 나아가는 잠수부의 심정으로 기꺼이 고역을 감내했다. 제아무리 우주가 거대하고, 생명은 먼지에 불과할지라도, 필사의 심정이란 가장 작은 미물에게도 존재하는 기본적인 욕구였다.
`…그 속에는 분명, 내가 있어야 돼.`
아득할 지경의 광활함은 그를 인간의 존재가 무의미하다는 결론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수없이 많은 괴물을 죽이고, 별이 된 아이들을 상대해온 사냥꾼은 이러한 결론이 한순간의 착각이었음을 깨달았다.
정말 인간의 목숨에 의미가 없었더라면, 저 드높은 존재들이 인간을 재료 삼아 축제를 벌일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여자는 말했지. 삶도 죽음도 무의미한 이 세계에서, 인간의 목숨만이 찬란히 빛난다고.`
의식이 집중되는 것과 함께 세계를 바라보는 단위가 작아지기 시작했다.
거미줄에 걸린 다중우주에서 단 하나의 우주로. 단 하나의 우주에서 수많은 은하단으로. 수많은 은하단 중에서 은하군을 분리하여 단 하나의 은하를. 그리고 단 하나의 은하에서 찾아낸 단 하나의 별을 찾아 인류의 군집을 목격하게 될 때까지.
나유타만큼의 시행착오와 세월을 거쳐, 의식이 시간의 흐름을 내달리는 순례를 끝낸 그는 마침내 자신이 첫 살해를 하는 시점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사냥을 하고, 살해당하고, 망가지는 모습을 끝없이 바라보던 그는, 점차 시야를 확대하여 자신의 모습을 더욱 자세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한 사람의 크기. 한 사람의 피부. 한 사람의 얼굴. 한 사람의 눈동자. 그리고 한 사람의 동공까지.
눈동자 너머의 세계에서 자신의 눈동자를 응시하던 그는 자신의 동공 너머의 암흑을 향해 시선을 집중했다.
만화경이란 눈동자 너머에 한 세계가 존재할 수 있다면, 자신의 눈동자 속에도 한 세계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이 세계에서 인체란 소우주였고, 그렇기에 사람은 별이 될 수 있었다.
결론을 내린 그는 동공 너머의 세계를 확대하여 바라보기 시작했고, 확대에 확대를 거듭한 끝에 우주에서 온 괴물이 어째서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지 실마리를 잡을 수 있었다.
세포의 피질에서 분자로, 분자에서 원자와 전자로, 원자를 구성하는 양성자와 중성자를 목도하는 시점에 도달하자 그의 시야에는 원자와 전자가 별처럼 빛나는 우주가 그려졌고, 그는 저 찬란하게 빛나는 원자와 전자 역시 또 다른 소우주가 될 수 있음을 느꼈다.
대우주에서 소우주로. 소우주에서 미시우주로. 미시우주에서 보다 작은 우주로. 더, 더 작은 세계로.
제아무리 작은 물질일지라도 시점을 바꿔서 본다면 별처럼 빛날 수 있고, 제아무리 찬란한 빛일지라도 멀리서 본다면 찰나의 반짝임에 불과하다.
이 세계에서 작은 것은 곧 큰 것이 될 수 있고, 큰 것은 곧 작은 것이 될 수 있으며, 찰나와 영겁은 지각하기에 따라 동일했다.
그렇기에 먼저 깨우침을 얻은 선지자들은 물질 그 자체가 아니라 물질이 지니는 서사에 열광하였고, 이것이 별과 인간이 서로에게 매료되는 가장 기본적인 원리였다.
작은 것들을 위하여. 보다 더 작은 것들을 위하여.
한없이 거대한 존재들이 작은 것들을 탐미하는 이유를 통찰한 그는, 한 줌의 신비를 깨우친 뒤 자신의 눈꺼풀을 향해 두 손을 가져갔다.
깨우침은 얻었으니, 이제는 눈을 뜰 시간이었다.
그렇게 그는 눈을 떴고, 찬란하게 빛나는 괴물을 다시 마주했다.
이제 그의 눈은 녹아내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