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116
만화경의 소우주 (3)
기나긴 찰나가 끝난 뒤. 밤하늘 속에서 방황하던 사냥꾼은 눈꺼풀을 들어 올려 주변을 살폈다.
사방에는 여전히 별빛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고, 별과 별 사이의 여백을 가득 메운 암흑은 그를 집어삼키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스멀스멀 피부로 기어오르고 있었다.
이 초현실적인 풍경은 눈을 감기 전과 다를 게 없었지만, 눈을 뜬 사냥꾼은 피부를 타고 연체동물처럼 기어오르는 암흑물질을 쓸어내렸다. 그는 우주의 중심에서 빛나는 광원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제는 확실하게 보여.”
광원의 광휘는 여전히 눈이 녹아내릴 정도로 눈부셨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쏟아지는 광명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꿈이란 결국 해몽하기 나름이니, 악몽이 된 세상 역시 받아들이기 나름이었다.
이 세상의 만물은 보는 관점에 따라 형태를 달리하였고, 저 찬란한 빛살도 우주의 일부인 이상 이러한 섭리에서 벗어나진 않았다.
이러한 이치에 따라 빛의 본질은 파동과 동일했고, 파동이란 결국 물결과 다를 바 없으며, 물결이란 만물을 옮기는 바람이 될 수 있고, 바람은 만물을 연결하는 거미줄이며, 거미줄은 엮어 직물로 만들면 실크가 된다. 그렇기에 사람의 눈을 멀게 하는 저 광원은, 세상을 보는 기준을 바꾸면 눈을 즐겁게 하는 비단결과 다를 바 없었다.
태초에 빛이 있으니. 빛이란 만물의 원형이며, 원형에서 태어난 만물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잘게 마모된다. 그리고 마침내 원형의 형태로 되돌아온 물체는 밑거름이 되어 태초의 품에 안기리라.
이는 현자와 연금술사들이 황금과 수은을 통해 통찰했던 이치였으며, 이러한 묘리를 깨우친 그는 손을 뻗어 일렁이는 비단결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지자 그의 눈은 더 이상 저 빛에 겁을 먹지 않았으며, 스스로 녹아내릴 이유 또한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두려움 없이 빛의 결을 향해 손을 뻗었고, 한 땀 한 땀 빛의 실타래를 걷어내어 광원 너머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괴물을 마주했다.
[말 해보봐.]괴물은 그에게 물었다.
[너는 지금 내가 무엇으로 보이니?]괴물의 형태는 끊임없이 변화했다.
출구가 없는 미로처럼 형태를 바꾸는 괴물을 바라보며, 그는 두 눈을 감은 뒤 입을 열었다.
“거미. 거미로군.”
그는 눈을 뜨며 말했다. 그러자 부정형으로 일렁거리던 괴물은 비단옷을 걸친 거미의 형태로 그의 눈에 모습을 드러냈다. 빛과 별로 엮어낸 비단옷은 하늘의 사자를 연상시키는 아름다움을 은은하게 자아냈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보는 것만으로도 넋을 놓고 감탄하게 될 정도의 매력을 숨결처럼 자연스럽게 흘려내었다.
[이유는?]재환은 그 모습을 무심하게 바라보았다. 괴물을 사랑하지 않을 정도의 지혜라면 이제 충분히 갖췄으니, 이 정도의 유혹에는 감흥이 일지 않았다.
“잇고, 엮는 걸 좋아하니. 거미의 모습인 편이 어울릴 테니까. 그게 당신의 본질과 가장 가까운 거지.”
삼라만상의 이치에 통달하여 자유자재로 스스로 형상을 바꿀 수 있는 존재에게, 육신이란 언제든 벗어던질 수 있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다만 껍데기란 본질을 담는 그릇이고, 그릇의 형태에 따라 본질의 형태도 바뀌기 마련이니. 끊임없이 형태를 바꾸는 괴물일지라도 가장 어울리는 그릇이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었다.
이는 별을 만들고 엮어내는 저 괴물에게도 적용되는 이치였고, 그렇기에 그는 거미야말로 저 괴물의 본질에 가장 걸맞은 그릇일 거라 여겼다.
[훌륭하구나. 참으로 훌륭해. 이제야 겨우 문턱을 넘어섰구나.]거미의 모습으로 나타난 괴물은 재환의 눈동자를 응시하며 말했다.
그가 눈을 뜬 직후 눈알 형태의 만화경은 그가 눈을 감았던 사이에 녹아내려 몸속에 흡수되었고, 만화경이 녹아내린 자리에는 사람의 눈알이 돋아나 잃어버린 눈을 대신하였다.
[별이 되려던 아이들은 많았어. 별이 되지 못한 아이들은 더 많았고.]거미는 춤추는 별들 중 하나를 골라 속을 파헤쳤고, 파헤쳐진 별에서 흘러나온 내장은 거미의 손짓을 거쳐서 필름의 형태로 변했다.
[의미를 위해 발광하는 아이들과, 의미를 찾지 못해 돌아버린 아이들이 넘쳐나는 이 세계에서, 별이 되기 직전에 멈춰 서려면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인내심이 필요하거든.]내장으로 만든 필름은 은하수를 따라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허공에서 자전하는 저 영상에서는 저마다 다른 평행 세계의 재환의 모습이 상영되었다.
어떤 평행 세계에서 그는 괴물을 잡아먹는 괴물로 변모하여 이성을 잃은 짐승과 다를 게 없어졌고, 어떤 평행 세계에서는 자해와 자살을 거듭한 끝에 폐인이 되어있었으며, 어떤 평행세계에서는 달과 신비에 매료되어 달을 추종하는 별이 되어 있었다.
무수히 많은 평행 세계에서 그가 걷게 되는 길은 저마다 달랐지만, 맞이하게 되는 결말은 한결같이 처참했다.
그리고 회귀와 사냥 끝에 미쳐가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던 그는, 생각을 가다듬으며 자신이 인간으로서 별을 마주 볼 수 있게 된 이유를 정리했다.
“결국 운이 좋았던 거지.”
그는 자신이 죽어왔던 나날들을 곱씹으며 말을 이었다.
“그 점은 나보다도 당신이 더 잘 알고 있을 테고. 당신은 별과 인간 사이를 관리하는 관리자였으니까. 지금의 거미가 하던 역할을, 샬롬에선 당신이 했을 테지. 비록 지금은… 찌꺼기만 남아 샬롬에 기생하는 신세여도 말이야.”
우주와 우주. 찰나와 영겁을 넘나들며. 그는 샬롬의 정체와 저 괴물의 정체가 무엇인지 윤곽을 그려낼 수 있었다. 수많은 평행세계 중에는 인류의 문명이 꽃피운 세계도 무수히 많았고, 그중에는 지금의 서울처럼 별이 뿌리내린 세계도 있었다.
그러한 세계에서 별과 인간 사이를 중재하는 존재가 없다면 모든 인류는 별들의 탐욕으로 인해 순식간에 파멸해버렸을 것이고, 누군가가 쏟아지는 별빛을 걸러내지 않는다면 인류는 별빛에 녹아내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별들이 관심을 기울인 세계에는 필연적으로 이를 관리하는 관리자가 있어야만 했고, 이 중에서도 거미는 세계의 경계를 조율하여 무대와 소품이 망가지지 않도록 조율하는 관리자에 해당했다.
[운만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는 건 아니야. 아무리 자질이 뛰어나도, 끝을 보려는 의지가 없다면 무용지물이지.]거미는 별의 배를 갈라 이전에 이곳을 방문한 사냥꾼들의 내장을 뽑아냈고, 이를 필름으로 만들어 그의 눈앞에 상영하기 시작했다. 어두컴컴한 흑색의 우주를 스크린 삼아, 세계 각지에서 모인 사냥꾼들의 무용담은 피와 살점의 실타래가 되어 펼쳐졌다.
[우연에 우연을 거듭해 득도의 직전에 멈춰서도, 별이 되고자 하는 욕망과 안식을 취하려는 욕망은 사라지지 않아. 무아에 닿은 게 아니니, 욕망이 남아있는 건 어쩔 수 없는 거지.]한 사냥꾼은 무아지경의 직전에 멈춰 서는 것에는 성공했으나, 우주의 아득함에 도전하길 주저했다. 설령 우주와 우주를 엮어낸 저 달을 사냥하더라도, 인지 너머의 심연에서 이보다 더한 괴물이 나타나 더 끔찍한 세계를 만들어낼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는 달이 사라진 세계를 두려워했다.
한 사냥꾼은 우주의 아득함을 두려워하진 않았으나, 달을 잡아먹으려는 유혹을 버리진 못했다. 그는 우주와 우주를 넘나드는 달의 전능함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그 전능감에 이끌려 별을 잡아먹는 괴물로 전락했다. 하지만 별을 잡아먹어 별에 가까워질수록 그는 달에 욕정하게 됐고, 그는 결국 달을 배회하는 무수히 많은 별 중 하나가 되었다.
그는 달을 찬탈한 세계를 갈망했다.
사냥꾼 하나가 상영되고, 사냥꾼 하나가 사라지는 순례는 끝없이 이어졌다. 저들 중에는 최후의 사냥꾼이 되어 달을 살해하려 한 용자도 있었고, 달이 사라진 세계를 꿈꾸던 현자도 있었으며, 깊은 우울에 시달린 끝에 무아의 구렁텅이로 뛰어든 망자도 있었다.
이들은 모두 사냥꾼으로서의 기술을 한계까지 갈고닦은 달인이었고, 예지자로서 지혜를 한계까지 터득한 현자였다.
하지만 이들의 말로는 모두 파멸로 끝났다.
달에 대적하는 것을 두려워해 망가지거나, 달을 대신하려 욕심을 내 뒤틀리거나, 달에 매료되어 별이 되는 것이 이들의 운명이었다.
사냥꾼의 자질을 갖춘 이는 소수였고, 그중에서 회귀의 굴레를 자각한 이들은 극소수였으며, 눈을 떠서 세상을 직시한 이들은 손에 꼽힐 지경이었다.
그렇기에 수없이 많은 사냥꾼의 유해를 별로 만들어온 괴물은, 무수히 많은 사냥꾼들이 실패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말했다.
[이제 선택할 시간이 왔어.]그녀는 어딘가로 이어진 실 한 가닥을 그에게 건네며 말했다. 재환은 예지력을 사용하여 이 실의 끝이 어디로 이어져 있는지 직감했다.
[너를 충동질한 속삭임은, 이 실을 끝자락에 있으니까. 네게 사냥꾼이 되라고 충동질한 괴물이. 사냥꾼을 그릇으로 만드는 공방이. 동족상잔으로 썩은 피를 모으는 연금술사가. 달을 사냥하려는 미련을 버리지 못한 망자가. 이 도시의 밑바닥에서 하나로 뒤섞여 사냥꾼을 모으고 있단다.]두 눈을 감고 집중하자 샬롬의 밑바닥으로 가는 길이 머릿속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실마리를 따라 샬롬의 심장부로 향하는 입구는 도시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었고, 그곳으로 향하는 방법을 깨우친 그는 이 도시의 기만에 대해 역겨움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별이 되는 것도. 달을 대신하는 것도. 이대로 도망치는 것도. 전부 내가 바라는 건 아니야.”
그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 괴물을 믿지 않았다. 저 괴물은 성자였고, 성자란 달에 미쳐있는 광인이며, 저 괴물이 달에서 비롯된 존재인 이상 지금까지의 행적 역시 달의 의지 중 일부이기 때문이다.
달의 의중이 무엇인지 완전히 헤아릴 수 없는 이상, 이 모든 절차가 나락으로 이어지는 기만일 가능성은 아직 남아있었다.
별에서 비롯된 괴물이 인간을 사랑하는 이유는 극적인 순간에서 터져 나오는 카타르시스 때문이고, 그렇기에 이들은 인간을 불완전한 존재로 창조했다.
하지만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그는 별로 만든 카펫에 떨어진 무기를 주우며 말을 이었다.
“마지막에 부서지는 한이 있어도, 끝을 보기로 정했으니까. 이 악순환을 끝낼 방법을 알아내기 위해서라면 마지막에 무슨 꼴을 당해도 상관없어.”
별들은 극적인 연출을 사랑한다.
그들은 한 인간이 나락으로 떨어져 몰락하는 모습에 매료되고, 이를 위해서라면 인간을 보다 높은 경지로 이끄는 것마저 주저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깨달음을 얻은 마테오 신부가 처참하게 몰락했던 것처럼, 그 역시 마지막 순간에는 비명을 지르며 절규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비명을 이미 질러본 적이 있었고, 이보다 더한 몰락이 찾아오더라도 받아들일 각오가 되어있었다.
설령 마지막에 파멸이 찾아올지라도.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영원히 몸부림치게 될지라도. 이미 세상을 직시한 사냥꾼에게 이는 두려워할 대상이 되지 못했다.
그렇기에 그는 무기를 챙겨서 자신이 들어왔던 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 눈을 떴고, 실마리를 잡았으니, 어디로 가야 하는지 정도는 스스로 찾아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걸로 실마리는 건네줬고, 이번에도 사냥꾼들의 계약은 이행됐다.]샬롬의 거미는 떠나가는 사냥꾼을 향해 말을 건넸다. 옛 샬롬의 관리자였던 괴물은 실을 자아내는 일과를 재개하며 그를 축복했다.
[부디 유혹에 굴하지 않고, 악에서 구원받길. 이번에는 부디, 이 희곡의 종막에 닿을 수 있기를.]재환은 그 말의 의미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저 괴물은 이전에도 사냥꾼을 축복한 적이 있었고, 그 사냥꾼은 악몽을 끝내지 못했으며, 재환 역시 옛 사냥꾼들의 실패를 답습할지도 몰랐다.
그럼에도 저 괴물은 그를 축복했고, 그는 그 사실 자체에 가치가 있음을 느꼈다.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실패작이 이 땅에 묻혔고, 그 역시 그러한 실패작이 될 수 있음에도, 저 괴물은 그를 멈춰 세우지 않았다.
그리고 설령 멈춰 세우는 한이 있더라도, 그는 자신이 앞으로 나아가 끝을 보려 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 사실이야말로 진리로 이어지는 실마리보다 값진 보물이었으며, 마지막까지 가슴에 품고 있어야 할 비수였다.
그렇기에 사냥꾼은 저택을 빠져나와 샬롬의 지상을 향해 돌아갔고, 거미의 잔재는 내장으로 실을 자아내는 일로 돌아왔다.
오늘의 일 역시 그녀에겐 수없이 반복되어온 일상의 일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