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117
샬롬의 말로 (1)
별이 빛나는 우주를 빠져나오자 안개에 사로잡힌 샬롬의 거리가 눈에 들어왔다.
증기기관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연과 시체를 태우면서 피어나는 악취는 여전히 매캐했지만, 주변을 살펴보던 재환은 눈살을 찌푸리는 대신 힘없이 미소를 지었다.
먼지와 악취로 가득한 이 거리가 자아내는 현실감은 별과 암흑이 흐느적거리는 우주 공간에 비하면 정겨울 정도로 현실감이 있었고,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에 서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알고 있는 덕분이었다.
설령 이 모든 것이 잘 만들어진 무대장치에 불과할지라도, 그는 땅에 발을 딛는 무게감과 사람이 자아내는 공기를 사랑스럽게 여겼다.
`시간은 얼마 안 지난 모양이군.`
그는 저택에 들어서기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샬롬의 모습을 살펴본 뒤 발걸음을 옮겼다. 만에 하나 이곳이 그가 알던 샬롬이 아닐지라도, 그가 해야 할 일과 향해야 할 목적지가 달라지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제 와서 괴물에게 발목을 잡히는 것도 번거로운 일이니까. 불쌍한 처지인 건, 사람이든 괴물이든 마찬가지지.`
그는 지금까지 속삭임이 충동질한 대로 괴물을 사냥해왔다. 하지만 아무리 눈을 돌린다고 해도 사람과 괴물의 본질이 동일한 세계에서 괴물 사냥이 동족상잔이라는 사실이 변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작은 것이 큰 것이 되고 큰 것이 작은 것이 되는 이치를 깨우친 지금, 길가에 널린 괴물을 사냥하는 일은 농사를 짓기 위해 잡초를 뽑는 수준의 노역과 다를 바 없었다.
잡초 제거가 아무리 중요한 일이어도 몰두하기에는 지루한 일인 것처럼, 괴물 사냥은 이제 성자를 사냥하려면 밟고 지나가야 할 계단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이제 괴물 사냥에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빨리 끝내러 가야지.`
샬롬의 공기를 들이쉬던 사냥꾼은 샬롬의 중심부인 광장 거리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거미가 건네준 실마리에 따르면 그곳에는 샬롬의 심장부로 통하는 길이 있었고, 그곳을 통과한다면 이 도시의 밑바닥을 파헤칠 수 있었다.
`괴물 사냥도, 사랑 타령도. 이제는 전부 다 지긋지긋하니까.`
땅거미가 내려앉자 시민들은 하나둘 안갯속으로 녹아들어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고, 시민들이 사라진 자리에는 무기를 쥔 자들이 하나둘 거리로 나와 무리를 짓기 시작했다.
그들 중 누군가는 사냥꾼이었고, 누군가는 자경단이었으며, 누군가는 내장 사냥꾼이리라.
괴물과 신비가 뒤섞인 공방의 도시와 이별할 시간이 머지않았음을 느끼며, 그는 괴물을 사냥하려는 사람과 괴물이 될 사람들을 지나 걸어갔다.
그리고 광장의 중심부에 거의 가까워질 무렵, 그는 익숙한 얼굴의 여인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음을 눈치챘다. 서울에서 만나 샬롬까지 인연이 이어진 사냥꾼, 한사랑이었다.
“무사해서 다행이네요. 티켓은 구했어요?”
반가워하는 그녀의 말에 재환은 고개를 저었다. 그가 지금부터 가려는 길에 티켓 따위는 무의미했기 때문이었다.
“티켓은 이제 필요 없어요. 기차를 타지 않고도 이 도시의 심장부로 내려갈 방법을 찾았거든요.”
“음…그렇군요. 그렇게 됐군요.”
대답을 끝내는 것과 함께 한사랑은 자신이 구한 티켓을 찢었다. 한 줌의 미련도 없이 티켓을 찢어버린 그녀는 후련하다는 듯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러면 나도 같이 갈게요. 레일을 따라 빙빙 도는 건, 나도 슬슬 질려가던 참이었거든요.”
재환은 말없이 그녀의 미소를 응시했다. 그는 그녀가 샬롬에서 오랜 세월을 보냈다는 것은 알고 있었고, 이것이 많은 죽음을 겪었다는 말과 동일하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그리고 샬롬에서 많이 죽는다는 것은, 그로 인해 많은 것들을 망각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후회할 겁니다.”
그는 그렇게 경고했고, 한사랑은 의아해했다.
“왜요?”
“당신은 이미 가본 길이고, 당신이 걸 판돈은 다 떨어졌으니까요.”
그의 말이 끝나자 한사랑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었다. 아무리 그가 뛰어난 사냥꾼이라 하더라도, 이곳에서 더 오래 있었던 것은 그녀였다.
그런 그녀에게 `판돈이 떨어졌다`고 선고하는 것은 지금까지 샬롬에서 목숨을 걸어왔던 나날을 헛수고로 만드는 발언이었고, 선배로서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던 그녀에게는 모욕이나 다름없는 말이었다.
“…그래도 따라가겠다고 한다면요?”
그 말에 재환은 곧바로 대답했다. 그녀가 이 레일의 끝에 있는 것을 찾아내려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더더욱 해야 하는 말이었다.
“후회하겠죠. 잊고 싶었던 기억을 되찾게 될 테니까요. 기억을 되찾고 나면, 결국 다시 잊고 싶어 할 거고요.”
그는 그렇게 말한 뒤 담배를 꺼내 불을 붙었다.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 예지자로서, 수차례 죽음을 반복해왔을 망자의 말로를 보게 되는 것은 씁쓸한 일이었다.
“도박판에서 도박을 오래 할수록 이기는 건 도박사가 아니라 도박장의 주인이에요. 당신은, 이곳에 온 사냥꾼들은, 너무 많이 도박을 했어요.”
불을 붙인 담배를 한 모금 마신 뒤, 그는 연기를 내뿜으며 숨을 내쉬었다. 담배의 연기는 샬롬의 안개에 녹아 사라졌다.
“그래도 따라오겠다면 말리진 않아요. 나라고 해서 모든 걸 아는 것도 아니고, 예지자라고해서 모든 미래를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만약 기적이 일어난다면 기억을 되찾고도 무사할지 모르죠. 가장 끔찍한 경험을 다시 떠올리게 되더라도 다시 일어날 자신이 있으면… 그래도 괜찮다면 따라와도 괜찮아요.”
그의 말에 한사랑은 침묵했다.
재환이 예언자이고, 이런 일로 농담을 하는 성격이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저 말이 진심인 이상 그녀는 분명 후회할 것이고, 어쩌면 망가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래도 갈게요.”
그녀는 힘없이 웃으며 말했다.
“어떤 길을 가도 죽어서 기억을 잃는 거면, 왜 후회하는지 정도는 기억하고 싶어요. 그래야 다음에는 처음부터 포기할 수 있을 테니까요.”
“…후회할 겁니다.”
그는 못다 피운 담배를 밟아 꺼트린 뒤 앞으로 나아갔고, 그녀는 그의 뒤를 따라 걸으며 말했다.
“그것도 주님의 뜻이겠죠.”
그렇게 두 사람은 땅거미가 내려앉은 거리를 걸어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가 멈춰선 곳은 샬롬의 중앙은행이었고, 이곳은 샬롬 최대의 금고를 보유한 건물이기도 했다.
“여긴…”
한사랑은 은행을 바라보자 꺼림칙해 하는 표정을 지었다.
“여긴… 이런 건물은… 기억에…”
은행의 실루엣은 주변에 있는 건물에 비해 특이할 것이 없었으나, 자세히 바라보기 시작하면 착시를 일으키는 기이한 형상을 하고 있었다.
이 건물은 박물관이기도 했고, 관공서이기도 했으며, 혈맹이 모이는 회의장이기도 했고, 태엽 공방의 공장이기도 했으며, 화약 공방의 화약고이기도 했고, 신비 공방의 도서관이기도 했다.
하나이자 여럿. 여럿이자 하나.
무수히 많은 샬롬에서 무수히 많은 형태로 모습을 바꿔온 건물의 입구를 인식하자 한사랑은 무의식에서 피어오르는 꺼림칙함에 멀미를 했고, 재환은 그런 그녀를 향해 마지막 경고를 건넸다.
“지금이라도 돌아가요.”
그는 그녀를 두고 앞으로 나아가며 말했다.
“사람한테는 모르는 게 나은 것도 있는 법이니까요. 육류를 먹을 때 도축과정까지 알 필요는 없는 것처럼. 굳이 알 필요 없는 것도 있는 거죠.”
한사랑이 현기증을 느끼는 것은 저 건물의 배려이자 경고였다. 샬롬이 거대한 공장이라면 사냥꾼들은 노동자이자 부품이었고, 샬롬이 만들고자 하는 것의 재료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소중한 자원인 사냥꾼이 완전히 망가지는 것은 샬롬 역시 바라지 않았고, 재환 역시 짧은 인연이었지만 도움을 받아온 동료가 망가지는 것은 보고 싶지 않았다.
어느 괴물이 아둔한 인간을 낙원으로 인도해 보호하려 한 것처럼, 그는 위대한 것의 허무함과 소박한 것의 소중함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한사랑이 망가지는 것은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바라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죽여서 그녀를 멈추는 것은 괴물의 방식이었고, 설령 그 끝에 파멸이 있을지라도 그는 그녀의 선택을 존중했다. 득도의 길에 닿는 것도, 처참하게 몰락하는 것도, 전부 스스로 결정하지 않으면 그 의미가 퇴색되었다.
“갈게요.”
잠시 현기증에 시달리던 그녀는 정신을 차린 뒤 재환을 따라 걸어갔다.
“도망치면 안 돼요. 칼을 쥐는걸… 칼을 쥐는걸… 무서워하면 안 돼요. 주님은. 우리 주께선…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이 땅에 내려오셨고. 사냥꾼은. 사냥꾼은 칼로서 평화를 쟁취해야 하는. 피를 마시는 사도니까요.”
주문에 가까운 그 말에 재환은 차마 입을 열 수 없었다. 이 우주의 창조주가 누구인지. 그 창조주가 벌인 만행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이상, 이 기독교인에게 진실을 얘기하는 것은 마지막 남은 버팀목을 부러뜨리는 일과 다를 게 없었다.
설령 저 말이 그저 자기 암시에 가까운 주문일지라도, 무고한 사람의 버팀목을 꺾는 것은 그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이 세상에선 육신을 죽이는 것보다 잔인한 일이 바로 정신을 으깨는 일이었다.
`어쩌면 버려지는 게 나고, 살아남는 게 이 여자일 수도 있지.`
예언자라고해서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라플라스의 악마가 아닌 이상 모든 미래를 정확하게 관찰할 수는 없는 법이고, 라플라스의 악마는 현대의 석학들에 의해 논파 된 지 오래였다.
그렇기에 그는 예언자가 아닌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그녀의 발걸음을 묵인했고, 그는 은행의 문을 열어젖힌 뒤 접수처에서 자신을 막아선 직원을 향해 샬롬식 피스톨을 겨눴다.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영업시간이 끝났…!”
직원이 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방아쇠는 당겨졌고, 총성이 울려 퍼지는 것과 동시에 경비들이 무기를 꺼내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괴물 사냥꾼 출신이 세 명. 샬롬 근위대 출신이 다섯 명.
숫자를 파악하는 것과 동시에 그는 데스크로 뛰어들어 날아들어 오는 총알을 피했다. 그리고 탈바꿈으로 죽은 직원의 시신을 톱날로 찢은 뒤 휘둘러 주변에 피를 흩뿌렸고, 안개처럼 흩뿌려진 핏물에 사냥꾼과 군인들의 주의가 흐트러진 틈을 타 피스톨을 속사하여 세 명의 사냥꾼의 미간에 총알을 꽂았다.
남은 것은 평범한 인간인 근위대 다섯 명뿐.
평범한 인간의 동체시력으로 괴물의 움직임을 뛰어넘는 사냥꾼을 총으로 맞히는 것은 불가능했고, 괴물을 상대로도 선전해왔을 정예병들은 찰나 사이에 피를 흩뿌리며 쓰러졌다.
그렇게 데스크 주변의 풍경이 그로테스크하게 바뀌기까진 3초도 채 걸리지 않았고, 순식간에 학살극이 벌어진 모습을 바라보던 한사랑은 구역질난다는 태도로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거, 꼭 해야 할 일이었어요?”
한사랑은 등에 매어뒀던 총검을 장전하며 언짢은 기색을 드러냈다. 이 맥락 없는 학살극은 수없이 회귀를 반복해온 그녀의 눈에도 광인의 난동처럼 보였다.
게다가 사라졌던 사냥꾼이 미쳐서 돌아오는 것은 샬롬에서 드문 일이 아니었으니, 동료가 더 추악한 괴물로 전락하기 전에 멈출 수 있다면 이를 돕는 것 역시 사냥꾼의 미덕에 해당했다.
하지만 재환은 자신을 향한 총검의 방아쇠가 당겨지기 직전임에도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저 총검이 발사되지 않으리란 것을 알고 있었다.
“상관없어요. 전부 다 기만이니까.”
“기만…이라고요?”
한사랑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은행의 첨탑에서 종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총성으로 습격을 눈치챈 상층의 직원이 종을 울린 것이다. 이는 은행이 습격당했음을 알리는 경보였고, 샬롬 전체를 적으로 돌렸음을 선고하는 선전포고였다.
“왜 기만인지는 이제 알게 될 거예요. 형식적인 경비를 붙여놓은 건, 사람으로서 선을 넘을 수 있는지 시험하는 포장지니까요.”
모호한 표현에 한사랑은 의아해했지만, 재환은 설명을 덧붙이지 않았다. 눈을 뜬 사람에게 코끼리에 대해 묘사하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눈을 뜨지 못한 사람에게 코끼리에 대해 설명해 봐야 피상적인 어휘로 설명하는 게 고작인 법이었다.
그렇기에 재환은 경비대가 몰려오기 전에 죽은 사냥꾼의 시체에서 열쇠를 꺼냈다. 예지력으로 열쇠를 찾는 시간을 단축한 덕분이었다.
그는 열쇠를 사용해 데스크 너머의 비밀 문에 숨겨진 금고를 열어젖혔고, 사람 크기만 한 금고 너머의 어둠을 향해 망설임 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하룻밤 사이에 광인에 가까워진 동료를 바라보던 한사랑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으며 그를 뒤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녀가 지나간 자리에는 불길함을 잊기 위한 기도문 소리가 남을 뿐이었고, 기도문은 종소리에 묻혀서 금세 사라졌다.
이 순간 그녀는 기도문으로도 감출 수 없는 공허함에 서글퍼졌다. 어둠을 향해 나아갈수록 그녀 역시 어렴풋이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약속된 파멸이란 어찌나 잔혹한지 확인하기 위하여. 그녀는 판돈을 잃은 도박꾼이란 말에 동감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그녀가 오늘의 일 역시 회귀의 일부분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