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118
샬롬의 말로 (2)
샬롬의 회귀가 막바지에 이르자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회귀자들은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한 덩어리로 뭉쳐서 달을 숭배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아연해 했다.
가장 용감했던 사냥꾼이 괴물의 무리에 뛰어들어 달을 찬양하는 노래를 불렀다. 괴물과 한 덩어리가 된 사냥꾼의 노래가 듣기에 썩 나쁘지 않아 그를 존경하던 이들은 눈물을 흘렸다.
가장 현명했던 현자는 괴물과 뒤섞여 달을 찬미하는 군무를 추었다. 온몸에서 팔다리가 돋아나 발광하는 춤사위가 보기에 썩 나쁘지 않아 그의 제자들은 소리 없이 비명을 삼켰다.
회귀가 반복될수록 달을 숭배하는 개체는 늘어만 갔고, 회귀 현상은 더 이상 회귀자들의 영생을 보장해주지 않았다.
지상에 내려왔던 별들은 하나둘 닻을 들어 올려 천상으로 돌아갔고, 달의 총애를 받은 괴물은 별이 되어 승천하였으며, 달의 관심을 끌지 못한 괴물은 빛으로 산화하여 달의 양분이 되었다.
먼 옛날 광인들이 중얼거리던 헛소리들이 현실로 이루어지고, 닳고 닳은 회귀자들마저 하나둘 이성을 잃어갈 무렵, 한 연금술사가 살아남은 동료를 모아 청사진을 하나를 제시했다.
그녀는 사냥꾼 중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유능한 연금술사였지만, 가장 뛰어났기에 가장 미쳐있었던 인물 중 하나였다.
“결국 하나로 합쳐져서 괴이 되어야 하는 거라면, 우리 모두의 몸과 마음을 모아 이 도시를 별로 만드는 건 어떨까요. 우리는 별이 된 도시에서, 영원히 살 수 있는 거죠.”
도시를 별로 만든다.
살아남은 회귀자들은 그 말에 본능적으로 꺼림칙함을 느꼈다. 그들은 회귀라는 현상이 굴레이자 감옥이 될 수 있음을 알고 있었고, 영원히 감옥에서 썩어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역시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몸과 마음을 하나로 합친다는 말 역시 그들에게는 미심쩍게 들렸다. 연금술사는 이를 ‘심신합일의 비술’이라고 포장했지만, 이는 달빛에 의해 모든 생물체가 한 덩어리로 뭉치는 현상을 응용한 기술이었다.
그렇기에 이를 거절한 이들은 다른 방법을 찾기 위해 흩어졌으나, 결국 대부분의 생존자들은 그녀의 말을 따르기로 결정했다.
이대로 빛이 되어 사라진다면 복수할 기회는 영영 사라질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지금까지 흘린 피눈물이 모두 없었던 일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었다.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의식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언젠가 복수할 기회가 오리라.
실낱같은 희망에 의지하여, 그들은 연금술사의 청사진을 따라 도시를 별로 만드는 계획을 시행했다.
괴물과 별들이 남긴 피와 살로 실을 짜내어 서로의 신경을 연결하고, 살아남은 괴물의 뇌를 절개한 뒤 서로의 몸을 연결하고, 달빛으로 녹이고 굳혀 알의 형태로 만들었다.
증오해야 마땅한 달의 힘을 빌려야 한다는 사실에 그들은 비통해하였지만, 청사진을 제시한 연금술사는 이 우주를 지배하는 달에게 대항하려면 저들과 동격의 존재가 되는 수밖에 없다고 속삭였다.
집요하고, 오랜 설득 끝에.
결국 달을 증오하는 사냥꾼들은 학자의 청사진을 따라 하나로 연결되어 달빛을 내려받았고, 마침내 그들은 자신들이 바라던 대로 기억을 보존한 채 별이 되었다.
하지만 도시가 별이 되어 하늘로 떠오르고, 별이 된 도시에서 되살아난 사냥꾼들은 저 멀리에 빛나는 달을 바라보며 연금술사가 몇 가지 주의사항을 말하지 않았음을 직감했다.
인간의 고통을 관음하는 달이 친절할 리 없다는 점과, 자신들을 별로 만든 것 역시 유희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점이 그러했다.
하나의 별로서 완성된 사냥꾼들은 그 사실을 깨닫자 의심과 불안에 시달렸고, 별이 된 도시에서 달을 사냥하려는 방법을 연구할수록 광증은 점점 더 심해졌다.
한없이 마모된 끝에 망자가 된 사냥꾼도 있었고, 망자가 된 사냥꾼의 뇌를 연구 자료로 쓰는 학자도 있었으며, 학자의 기행에 분노해 사냥꾼을 사냥하는 사냥꾼이 된 이들도 있었다.
결국 천상에서의 삶은 별이 되기 전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지옥으로 전락했고, 회귀자들은 각자의 공방에 틀어박혀 무의미한 연구와 실험을 반복했다.
그렇게 무미건조한 회귀가 수차례 반복될 무렵, 청사진을 제시한 연금술사는 아직 의식이 남아있는 회귀자를 하나씩 찾아가 그들이 처음 품었던 증오를 일깨워 불을 지폈다.
우리는 달을 사냥할 사냥꾼이다.
설령 이 또한 저 미쳐버린 초월자의 유희일지라도, 우리는 괴물이 되어버린 달을 사냥하리라.
설령 마지막 순간에 부서져도 좋다.
철저하게 농락당한 끝에 우리의 어머니인 달을 사랑한다 외쳐도 좋다.
저 달을 끌어내릴 닻을 만들자. 달을 담아낼 그릇을 빚어 덫을 만들자.
그리하여 가장 달콤한 죽음을 달이 탐하게 되는 날, 우리는 마지막 사냥꾼의 몸을 빌려 월식을 행하리라.
그렇게 세뇌에 가까운 사명이 주입된 이후, 죽은 사냥꾼들의 도시는 마침내 괴물로 다시 태어나기 시작했다.
사냥꾼을 모으는 괴물. 사냥꾼을 사육하는 괴물. 사냥꾼을 도축하는 괴물. 사냥꾼을 사냥하는 괴물. 사냥꾼이었다는 사실만이 남은 괴물.
달을 따라 세계를 넘나들며, 달을 마주 볼 자질이 있는 자를 사냥꾼으로 양식하는 관리자.
사냥꾼을 낳는 공장. 사냥꾼을 다듬는 공방.
연금술사가 말한 ‘심신합일의 비술’은 마지막 속삭임과 함께 완성되었다. 청사진에 방점이 찍힌 순간이었다.
* * *
금고 너머의 비밀통로에는 암흑과 악취만이 가득했다. 별빛 하나 없이 어두컴컴한 통로는 이방인을 잡아먹으려는 듯이 흐느적거렸고, 시체의 썩은 내를 닮은 악취는 코를 타고 흘러들어와 끊임없이 후각을 들쑤셨다.
망자의 내장 속으로 들어오는 것만 감각은 통로를 걸어갈수록 지독해졌고, 결국 이를 견디지 못한 한사랑은 헛구역질을 하며 들고 있던 랜턴을 떨어뜨렸다.
“하아… 하아…”
고통스러워하는 한사랑의 모습을 바라보던 재환은 그녀를 부축하는 대신 잠시 멈춰서 그녀를 기다렸다. 금방이라도 다시 쓰러질 것처럼 비척거리는 한사랑에 비하면 그의 모습은 이런 종류의 고통에 내성이 있는 사람처럼 멀쩡해 보였다.
“고마워요… 동정 안 해줘서.”
그녀는 옷소매로 입가를 닦아낸 뒤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경고를 무시하고 따라온 것은 자신이었으니, 자신의 몸을 스스로 챙기는 것은 자존심과 연결된 문제였다.
“그리고 미안해요. 고집부려서. 이럴 줄 알았으면 오지 말걸 그랬나 봐요.”
랜턴의 불빛 너머로 보이는 한사랑의 안색은 한눈에 봐도 심각해 보였다. 공간감을 일그러뜨리는 암흑으로 인해 현기증은 멈추지 않았고, 통로의 끝자락에서 피어오르는 악취는 무의식에 숨겨둔 트라우마를 간지럽히며 공황 발작을 유도했다.
평범한 사람은 물론이고 닳고 닳은 사냥꾼조차 이러한 환경에서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것이 당연했고,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수준의 의지력이 없다면 시도조차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제 거의 다 왔어요. 저 문만 열면, 이 통로도 끝나죠.”
그는 희미한 불빛에 비친 통로의 끝자락을 가리켰다. 어둠 너머를 자세히 바라보자 문짝의 윤곽이 흐릿하게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녀가 문을 향해 다시 발걸음을 옮기려던 순간, 재환은 핸드캐넌을 꺼내 가리 그녀의 머리를 겨누며 말했다.
“사람으로 죽고 싶다면 여기서 멈춰요. 그러는 편이 당신답게 사는 데에 도움이 될 테니까. 여기서 멈춘다고 비난할 사람은 아무도 없고요.”
그 말에 한사랑은 잠시 멈춰 섰다. 그가 하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는 이제 본능적으로 직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맨몸으로 우주를 유영하는 것은 미련한 짓이고, 맨몸으로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것은 아둔한 짓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저 말이 마지막 경고라는 사실을 직감했지만, 그녀는 차마 발걸음을 돌리지 못했다.
“사실… 이제 조금씩 기억나기 시작했어요. 여기에 온 지 10분밖에 안 됐는데, 벌써부터 이렇더라고요.”
그녀는 자신을 향해 겨눠진 핸드캐넌의 총구를 치우며 말을 이었다. 그녀의 안색은 단 10분 만에 시체처럼 창백해져 있었다.
“그래도 난… 가고 싶어요. 이 길의 끝에 주님이 있어도. 주님이 이 모든 악행의 원흉이라 하더라도, 내 눈으로 직접 봐야겠어요.”
할 말을 끝낸 그녀는 재환을 뒤로한 채 앞으로 나아갔다. 랜턴을 들고 나아가는 그녀의 뒷모습은 등불 앞에서 비틀거리는 날벌레를 닮아있었다.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구분할 수 없으면…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될… 테니까요…”
재환은 그 뒷모습에서 동질감을 느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는 그녀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죽어갈 것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 사실을 예감하면서도 그녀를 차마 말릴 수가 없었다.
`그 여자도… 이런 심정이었겠지…`
만화경 너머의 우주를 보게 된 이후, 그는 별들의 감각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찬란한 천상에서 영생을 누리는 것은 시체만 남아 박제 당하는 것과 다름없었지만, 추잡한 지상에서 찰나를 누리는 것은 온몸을 태워 반짝거리는 것과 동일했다.
그렇기에 먼 곳에서 미물을 내려다보던 별들은 이 땅에 닻을 내려 스스로 빛나고자 발버둥 쳤고, 심지어 미물에 불과한 인간에게까지 손을 뻗기까지 했다.
‘여기서 억지로 막아봐야 소용없겠지. 필요 없는 원한만 쌓일 테고.
결국 그는 괴물의 사고를 이해하게 된 자신의 모습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혐오해야 하는 것은 괴물에 가까워진 자신이 아니라 이 모든 악몽의 원흉인 괴물이었다. 비록 이제는 아무것도 몰랐던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사람과 괴물의 시체로 쌓은 탑을 밟고 올라가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제 얼마 안 남았군.`
그는 한사랑이 통로의 문 앞에 다다른 것을 바라보며 발걸음을 옮겼다. 출구의 문고리에선 유골함의 한기가 서늘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아…하아…”
문 앞에서 숨을 헐떡거리던 한사랑은 천천히 통로의 출구를 열어젖혔다. 이와 동시에 주변의 암흑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아…”
문턱을 넘어서자 눈에 들어온 풍경에 한사랑은 얼어붙었다. 그녀의 눈앞에는 사냥꾼들의 시체가 사방에 널브러진 샬롬의 모습이 펼쳐져 있었다.
“아… 그랬죠…”
수백만. 어쩌면 수천만.
세는 것이 무의미한 수준의 망자들이 새까맣게 짓무른 모습을 보며 그녀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훼손된 시체는 길바닥에도, 지붕에도, 건물의 내부와 담벼락에도 버려져 있었다. 어떤 시체는 가슴에 창이 꽂혀 담벼락에 박혀있었고, 어떤 시체는 무너진 건물에 묻혀 머리나 손만이 튀어나와있었으며, 어떤 시체는 지붕에 스스로 목을 매달아 대롱대롱 거리고 있었다.
데엥. 데엥. 데엥.
종소리가 들리자 한사랑은 기억이 뒤흔들리는 감각과 함께 손으로 입들 틀어막았다. 트라우마로 인해 몸과 정신이 무너지려는 것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발악이었다.
“우욱…!”
약 3초 정도의 발악이 끝나자 그녀는 결국 뇌가 썩어버리는 것만 같은 감각과 함께 구역질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위장마저 쏟아내어 버릴 기세로 속에 있는 것을 게워냈고, 그러고 난 뒤에는 양손으로 두피를 부여잡으며 자신의 어리석음을 한탄했다.
“그래… 그랬죠…”
그녀는 창백한 얼굴로 간신히 입을 열었다. 기억이 일깨운 무력함에 그녀는 다시 일어날 기운마저 잃어버렸다. 그녀의 몸은 스트레스의 과부하로 인해 괴사하고 있었다.
자신이 이곳에 온 적이 있다는 사실이. 또한 저 시체들 사이에는 그녀의 것도 섞여 있다는 사실이 그녀의 숨통을 옥죄었다.
이제 곧 나타날 괴물이. 사냥꾼을 잡아먹는 괴물이. 자신을 끝없는 죽음으로 인도할 괴물이 나타난다는 사실에 그녀는 숨죽여 비명을 질렀다.
철컥.
핸드캐넌이 장전되는 소리와 함께 한사랑은 흐릿한 눈동자로 자신에게 겨눠진 총구를 바라봤다. 이제 곧 나타날 괴물에게 저항할지, 아니면 이대로 다시 망각을 받아들여 망자가 될지 선택할 시간이었다.
“이제… 이제 됐어요…”
그녀는 쏟아지는 고통을 이겨내며 힘없이 미소를 지었다. 스트레스로 인해 온몸의 장기가 괴사하는 와중에도 웃을 수 있는 건, 그녀 역시 종착역에 도달할 자격이 있는 사냥꾼이라는 증거였다.
“나는 이미… 끝을 봤으니까요.”
재환은 시체의 언덕 저편에서 사람 형상의 ‘무언가’가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하나이자 여럿. 여럿이자 하나.
한 사람 크기의 생물체가 자아내는 수십만 명 분량의 인기척을 느끼며, 재환은 조용히 눈을 감은 뒤 방아쇠를 당겼다.
“푹 쉬어요. 한숨 자고 일어나면, 전부 꿈처럼 느껴질 겁니다.”
늘 그래 왔던 것처럼. 머리에 구멍이 뚫린 한사랑의 육신은 다른 망자들의 것처럼 새까맣게 썩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재환은 잠시 묵념을 한 뒤, 그녀의 총검을 주워 등에 멘 뒤 다가오는 사냥감을 맞이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마지막 사냥꾼. 마지막 사냥꾼이 온 건가.]시체의 산 위에서 사람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괴물이 입을 열었다.
남자면서 여자이고, 아이면서 노인이고, 한 명이면서 여러 명인 인간. 썩어버린 피와 살로 이루어진 도플갱어. 사냥꾼으로 우려낸 고독(蠱毒).
끊임없이 다른 사람의 형태로 모습을 바꾸는 이 괴물은 샬롬이란 공방이 빚어낸 걸작이었고, 사냥꾼이란 괴물이 맞이하게 되는 말로였다.
[너는. 너는 마지막 사냥꾼이더냐.]결국 괴물로 전락한 궁극의 사냥꾼을 바라보며, 재환은 핸드캐넌을 재장전하며 대답했다.
“아니.”
재장전을 끝낸 그는 사람의 형상을 취한 군중을 향해 핸드캐넌을 겨눴다.
“아직은 아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