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12
동서울 피난촌 (3)
경찰서장과의 얘기가 끝난 뒤, 재환은 김 순경의 안내를 받아 군경의 간부들이 이용한다는 숙소를 안내받았다. 경찰서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호텔이었다.
“여기가 앞으로 묵게 되실 곳입니다. 침구류와 생필품은 준비돼있으니, 따로 필요한 게 있으시면 1층에 있는 직원한테 얘기하세요. 구할 수 있는 것은 저희가 마련해보겠습니다.”
재환은 김 순경의 말을 들으며 방을 살펴봤다. 전기를 쓸 수 없는 탓에 불이 들어오지 않아 컴컴하긴 했지만, 제대로 관리된 흔적이 눈에 띌 정도로 깔끔하고 넓은 방이었다.
‘이 정도면 신경 써서 준비했네.’
그는 바깥에서 노숙하던 사람들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주거 공간이 부족한 상황에서 이런 호텔 방이 비어있는 이유가 어렵지 않게 짐작되었기 때문이다. 군경이 호텔을 보호하고, 호텔이 그 대가로 거주 공간을 제공하는 거래는 썩 괜찮은 상부상조였다. 언제 범죄자나 괴물이 쳐들어올지 알 수 없는 상황인 만큼 군경의 보호는 필수였으리라.
재환은 짐이 담긴 가방을 적당한 곳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다른 사냥꾼분들은 언제쯤 볼 수 있을까요? 그때 그분 말고 다른 분들이요.”
“보고받은 내용에 따르면, 다 같이 모이는 건 아마 3일 뒤 정도일 것 같습니다. 저희도 조만간 사냥꾼분들을 모아서 다 같이 얘기를 나눠볼 생각이거든요.”
김 순경의 얘기에 재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냥꾼들을 직접 찾아다닐 필요가 없다는 것만으로도 그에게는 좋은 소식이었다. 경찰력이 멀쩡한 덕분에 누릴 수 있는 혜택이었다.
“그러면, 이따 저녁에 경찰서에서 뵙겠습니다. 요청하셨던 장비도 그때 지급해드리겠습니다.”
“네. 수고하세요.”
인사와 함께 김 순경이 나가자 재환은 창문으로 다가가 커튼을 젖혔다. 흐릿한 하늘 너머에서 희미하게 햇볕이 들어오자 방이 한결 밝아졌다.
‘생각보다 일이 쉽게 풀려서 다행이야. 괴물 취급당하면 어쩌나 했는데.’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사냥꾼들은 기이한 존재였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괴물의 피를 마시고, 괴물 같은 힘을 휘두른다는 점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기 때문이다. 당사자인 그 역시 이해하기 힘든 현상이었으니, 다른 사람들이라고 다를 리 없었다. 그만큼 사냥꾼은 상식에서 동떨어져 있었다.
‘그나마 사람처럼 생겨서 다행이지. 생긴 것도 사람이 아니면, 아예 괴물 취급당했을 테니까.’
그는 자신의 얼굴을 매만지며 침대에 앉았다. 그리고 아직 사람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만큼, 그 역시 언제 괴물로 변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속삭임은 사냥꾼이 괴물의 피를 마셔도 인간의 모습을 유지한다고 말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피를 마시는 행위’에 한정된 말이었다. 속삭임마저 그가 괴물로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증한 것은 아닌 셈이었다.
침대에 앉아 생각을 정리하던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으로써는 생각해봐야 소용없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일단은 한숨 자고 생각하자. 낮에 자 둬야 밤에 일하지.’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옷을 갈아입은 뒤 침대에 누웠다. 경찰은 그에게 공짜로 숙식을 제공한 게 아니었다. 모든 게 부족한 와중에도 경찰이 그에게 숙식을 제공한 이유는 기대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었다. 경찰이 직접 말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자신이 스스로의 가치를 입증하지 못한다면 또다시 빈집털이 신세로 전락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먹고 살기 위해서는 성과를 내야 한다는 점은 세상이 망해도 달라지지 않은 셈이다.
‘괜히 부담 가지진 말자.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이었으니까.’
경찰의 도움을 받든, 받지 않든, 그가 해야 하는 일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다. 괴물을 사냥하고 아침을 맞이한 이상, 그는 괴물을 사냥하는 일에서 도망칠 수는 없었다. 그 사실이 그에게 작게나마 위안이 되었다.
* * *
일몰이 가까워질 무렵, 재환은 잠에서 깨어나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했다. 시계는 오후 6시경을 가리키고 있었다.
‘늦잠 자진 않은 건가.’
그는 화장실로 이동해 세수한 뒤 옷을 갖춰 입어 밖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월출 시각이 7시 15분경이었고, 경찰서에 출근하기로 예정된 시간은 오후 7시 경이었기 때문이다.
달이 뜨고, 안개가 짙어지면, 인적은 드물어지고 괴물의 활동이 활발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은 밤에 밖으로 나오는 걸 꺼렸고, 이는 군경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사냥꾼은 달랐다. 괴물의 피를 모으려면 밤에 나서는 걸 마다해선 안 됐다. 아무리 밤이 어둡고, 안개가 짙고, 괴물이 끔찍하더라고 밤거리로 나가는 것을 그만둬선 안 됐다. 달빛 하나에 의지해 괴물을 사냥하는 것만이 사냥꾼으로서 성장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렇게 나갈 준비를 하고 있을 무렵,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똑! 똑! 똑!
“윤재환님 계세요? 호텔 보안 담당 박해진 순경입니다. 아직 주무시고 계시는지 확인하러 왔습니다.”
문밖에 들려오는 목소리에 재환은 김 순경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전자기기가 먹통이고, 알람시계를 구하는 게 쉽지 않으니, 호텔 보안을 담당하는 불침번이 당직자를 깨우러 다닌다는 얘기였다.
“네, 곧 나갑니다.”
재환은 그렇게 대답하며 배터리가 다 떨어진 핸드폰을 바라봤다. 고작 알람 기능 하나도 쓰기 힘든 세상에서 산다는 게 허탈하게 느껴졌다.
‘알람시계도 하나 달라고 해야지. 손목시계도 하나 구해야 하고,’
그는 시계의 소중함을 되새기며 복도로 나왔다. 해가 저물기 시작한 탓인지 복도는 전보다 더 어두워져 있었다. 그는 복도의 어둠이 눈에 익을 때까지 기다린 뒤 천천히 걸어갔다. 랜턴을 쓰면 해결될 일이었지만, 어둠에 익숙해지는 게 앞으로 도움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지난밤 동안 밤새 사냥을 하면서 배워뒀던 교훈이었다.
어두컴컴한 복도를 지나 계단을 따라 내려가자 얼마 지나지 않아 호텔 프런트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는 당직을 서는 경찰에게 퇴실을 보고했다. 군경 측에서는 인원 관리를 위해 출입 기록에 신경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불편하기는 했어도 군기가 살아있는 모습 자체는 나쁘게 보이지 않았다.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일수록 긴장을 놓지 않아야 하는 법이었으니까.
‘나도 긴장해야지. 여기라고 마냥 안전하란 법은 없으니까.’
해 질 무렵의 거리를 따라 걷다 보니 인적이 줄어든 게 눈에 띄었다. 간간이 순찰을 도는 경찰이나 군인을 제외하면 사람이 아예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도시 전체가 미지의 위협에 숨을 죽이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사람이 활동하는 시간이 끝나고, 괴물이 활보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는 그가 출근해야 할 시간이기도 했다.
‘이제 슬슬 다 왔네.’
거리를 따라 걷던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서에 도착했다. 시계를 확인해보니 6시 40분이었다. 예정보다 20분 빠르게 도착한 셈이었다. 그는 접수처로 이동해 출근했다는 사실을 보고했다. 그러자 잠시 기다리라는 말과 함께 경찰 한 명이 그를 찾아왔다. 후덕한 인상의 경위였다. 근무복의 명찰에는 ‘김인철’이라는 이름이 적혀있었다.
“윤재환님 맞으시죠? 말씀하셨던 것들 준비했습니다. 따라오시면 안내해드릴게요.”
김인철 경위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곳은 경철서 지하의 실내사격장이었다.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K1 기관단총과 경찰용 S&W M60 리볼버였다.
“이거 받아오느라 저희도 애 많이 먹었어요. 군바리들이 엄청 까탈스럽더라고요. 소총은 군인만 써야 한다면서 말이에요.”
그는 그렇게 말하며 탄창이 분리된 K1 기관단총을 건넸다.
“군대 다녀오셨죠? K1 쏴 보신 적 있으세요?”
“네. 총기분해 한 번 해볼까요?”
김 경위가 고개를 끄덕이자 재환은 능숙한 솜씨로 K1 기관단총을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15초 정도가 지나자 K1 기관단총이 완전히 분해됐다. 전역한 지 제법 되긴 했어도 몇 번 총을 만지작거리면 사격법은 물론이고 총기분해 방법까지 기억나는 게 예비군의 애환이었다. 특히나 그 총이 포상휴가를 받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무기라면 더욱 그랬다.
“그 정도 되시면 길게 설명 안 해도 되겠네요.”
김 경위는 총기 사용법과 안전 수칙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했고, 재환은 총기를 조립하면서 설명을 들었다. 이 설명이 형식적인 절차라는 건 두 사람 모두 잘 알고 있었다.
“그러면 이제 사격 한 번 해보실래요? 사격장 세팅은 해놨으니 쏘시기만 하면 됩니다.”
재환은 김 경위가 건네는 귀마개를 받은 뒤 K1 기관단총에 실탄을 장전했다. 이후 50M, 100M, 150M 순으로 배치된 표적에 20발을 단발로 발사했다. 표적에 맞은 총알은 총 18발이었다.
“어휴, 잘 쏘시네. 권총도 쏴 보실래요?”
“그래도 되긴 하는데, 한 번 더 쏴 봐도 돼요? 연발로도 연습해보고 싶어서요.”
“실탄이 많진 않긴 한데… 한 탄창 정도는 괜찮을 것 같긴 하네요.”
탄창을 받아 든 재환은 재장전을 한 뒤 조정간을 연발로 설정했다. 그리고 한 손으로 K1을 집어 든 뒤 표적을 겨냥했다.
“잠깐…!”
재환이 K1을 한 손으로 쏘려 하자 김 경위가 그를 말리려 했다. 안전 수칙을 무시하는 행동이었고, 반동 조절이 잘못되면 누군가 크게 다치거나 죽을 수 있는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환은 김 경위가 말리려는 것보다 빠르게 K1을 연발로 발사했다. 그러자 K1이 불을 뿜으며 세찬 총성과 함께 탄창이 바닥났고, 50M 표적지에 대여섯 발 정도의 구멍이 생겨났다. 반동조절을 연습하기 위해 지향사격을 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사격을 끝낸 뒤 잔탄 검사까지 하는 재환의 모습을 보며 김 경위는 언짢은 기색을 드러냈다. 아무리 상대가 괴력의 소유자라는 것을 알고 있어도, 언급도 없이 한 손으로 소총을 쏘는 일은 그의 관점에서 보면 미친 짓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다.
“하… 아니, 진짜···.”
김 경위는 그렇게 한숨을 내쉰 뒤 인상을 쓰며 말했다.
“다음부턴 행동하기 전에 미리 얘기해 주십쇼. 자꾸 그렇게 돌발 행동하시면 저희도 곤란합니다.”
“네… 죄송합니다.”
딱딱해진 말투에 재환은 순순히 사과했다. 만약 반동 제어를 잘못해서 총구가 틀어졌다면 누군가 죽을 수도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단발 사격을 했을 때 반동이 너무 적게 느껴진 탓에 간과한 실책이었다.
‘내가 죽는 건 그렇다 쳐도, 괜한 사람까지 죽는 건 좀 그렇지.’
이후 한바탕 설교를 들은 재환은 S&W M60 리볼버를 받아들였다.
“이건 한 손으로 쏴도 되죠?”
그의 말에 김 경위는 떨떠름해 했다.
“네. 되긴 하는데, 조심해서 쏘십쇼.”
K1 기관단총 말고도 리볼버를 따로 요청한 이유는 보조무기로 쓰기 위해서였다. 밤의 거리에서는 언제 어떤 변수가 일어날지 알 수 없었으니 빠르게 꺼내 쓸 수 있는 보조무기는 유용하게 쓰일 게 분명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한 손으로 권총을 쓰는 감각을 익히기 위해 공을 들였다.
“이제 그만 하시고 회의실로 가시죠. 저희도 총알이 남아도는 건 아니라서요.”
권총탄을 30발째 발사했을 무렵, 김 경위는 그렇게 말하며 실탄 사격을 끝냈다. 말투가 쌀쌀맞은 것이 조금 전의 돌발행동의 영향이 아직 남아있는 듯했다. 재환은 내심 더 연습하고 싶은 욕심이 났지만, 여기서 총알을 다 낭비하면 실전에서 쓸 총알이 모자랄 거란 생각에는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네. 그러면 연습은 여기까지만 할게요.”
그는 그렇게 말하며 김 경위가 준비해둔 탄띠를 허리에 찼다. 그리고 그 속에 권총을 끼워 넣으며 말했다.
“나머진 실전에서 연습하면 되니까요.”
그는 사격 연습 때문에 경찰서에 온 게 아니었다. 이 총으로 괴물을 죽이기 위해 온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경찰은 권총을 제공했고, 군대는 소총을 제공했다. 이제 남은 것은 경찰이 원하는 지점으로 가서 괴물을 사냥하는 일뿐이었다.
재환은 K1 기관단총을 어깨에 걸친 뒤 20발들이 탄창 3개를 챙겼다. 괴물을 죽이고, 거리를 개척하러 나갈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