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121
샬롬의 말로 (5)
머리를 잃은 도시는 옛 수뇌부의 손길에 따라 톱니바퀴를 굴렸다. 시체와 폐허뿐이던 거리에는 공장과 공방이 새롭게 세워졌고, 되살아난 공장과 공방은 달을 사냥할 도구를 완성하기 위해 스스로 맞물리며 설비를 움직였다.
증기 기관이 맥동하는 소리. 기계장치가 삐걱거리는 소리. 통 속에 담긴 두뇌에 수액이 흐르는 소리. 컨베이어 벨트가 흘러가며 ‘그릇’을 만들 준비를 하는 소리까지.
톱니바퀴는 서로 맞물리며 하모니를 자아냈고, 도시가 자아내는 선율은 데이드럼의 공방에서 들리던 악상과 다를 바 없었다.
이 모든 부품과 설비들의 원재료가 인간이기 때문이고, 본격적으로 ‘맹독’과 ‘그릇’을 완성하는 작업이 시작되면 무수한 인간이 갈려 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맹독이든, 그릇이든, 무대든.
모두 허울 좋은 명분으로 포장했을 뿐 인간을 재료로 쓴다는 사실 만큼은 동일했다. 사람과 괴물의 본질이 동일하듯 달을 사냥하는 것과 달을 사랑하는 것의 본질 역시 동일한 것이다. 이 어찌나 구역질 나는 아이러니인지, 차라리 잿더미였던 샬롬의 모습이 더 살갑게 느껴질 정도였다.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어.”
재환은 고개를 돌려 상대를 노려봤다. 그에게 말을 건 것은 그의 여정을 설계하고, 죽은 사냥꾼들의 말로를 대신하여 샬롬의 수뇌부를 차지한 연금술사였다.
샬롬의 목소리를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속삭임’으로 변조한 것도, 사냥꾼이 스스로 발전할 수 있게 ‘신기루’를 보여준 것도, 사냥꾼들이 최소한의 무장을 갖출 수 있게 ‘문양’을 준비한 것마저도 모두 저 연금술사의 청사진에 포함된 내용이었다. 비록 어느 순간부터 도시의 의지가 썩어버린 탓에 속삭임과 신기루는 사라졌지만, 이 청사진 덕분에 그는 이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만약 아무런 이정표도 없이 끝없는 회귀를 감내해야 했다면 갈피를 잡지도 못한 채 무너졌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그는 감사하지 않았다. 순진하게 감사를 표하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너무 많은 피와 뇌수를 흘려버린 지 오래였다.
“왜 하필 그런 식으로 속삭인 거지?”
그는 해묵은 의문을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이제는 너무 오래된 나머지 빛이 바랜 의문이었다.
“회귀자는 나 말고도 여러 명 있었고, 나보다 먼저 여기까지 온 사람도 있었어. 왜 그 사람들은 나와 똑같은 걸 보고, 듣지 못한 건 지 알려줘. 어디까지가 기만이었는지, 이제는 나도 알 자격이 있으니까.”
과거부터 미래까지 거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몸이 되었지만, 이미 미쳐버린 회귀자의 속내까지는 볼 수 없었다. 설령 볼 수 있다고 해도 썩어버린 정신을 헤집는 것은 맨손으로 쓰레기장을 뒤적거리는 것만 못하니, 마모되어 부스러기만 남은 의문을 위해 그러한 수고를 할 이유는 없었다.
“그건 간단해. 내가 손 쓴 건 샬롬이란 라디오의 주파수를 바꾼 정도거든. 변수를 위해 목소리를 변조한 거지.”
그녀는 하늘에 걸린 도시의 심장을 가리켰다. 제 자리를 되찾은 심장은 연금술사의 손길을 거쳐 달의 형태로 모습을 바꿨고, 수은 빛깔로 빛을 내리쬐며 은은하게 두근거리고 있었다.
“샬롬은 훌륭한 사냥꾼을 원했어. 그렇기에 사냥감의 정보를 알려주려 했고, 사냥꾼이 강해지는 법을 알려줬지. 하지만 샬롬의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들었다면 사냥꾼은 망가져. 과한 의욕은 사람을 망가뜨리는 법이니까. 샬롬의 뜻대로 사냥감을 모으는 그릇이 되어, 샬롬에게 피를 바치는 일개미 신세가 되는 거지.”
샬롬의 사냥꾼의 군체였고, 달을 사냥하려는 집착으로 뭉친 성자였다. 그렇기에 샬롬의 아우성을 그대로 듣는 것은 인간에게 치명적이었고, 성자인 데이드럼은 서울의 중심부에 방음 시설을 설치하여 자신의 악기를 보호했다.
“결국 사람마다 자신이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게 최선이었던 거야. 그 목소리가 게임판의 해설자나, 신의 목소리처럼 들렸든. 그건 변조를 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변수였던 거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가던 연금술사는 자신의 주머니에서 카드 뭉치 하나를 꺼내 재환에게 건넸다. 한때 회귀자들 사이에서 유행하였던 보드 게임의 규칙이 적힌 카드들이었다. 카드에는 샬롬의 문자로 괴물과 성자의 이름, 특징, 주의사항 따위가 적혀있었다.
“필요하면 가져가. 아니면 태워버려도 좋고. 이제 나한테는 필요 없는 물건이니까.”
기다렸다는 듯이 들려오는 대답에 재환은 메마른 눈초리로 카드를 바라봤다. 친절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였지만, 저 목소리에는 영혼이 담겨 있지 않았다. 저 자는 그를 게임 캐릭터처럼 다룬 것도, 다른 사냥꾼들을 현혹해 재료로 쓴 것 따윈 아무렇지도 않은 것으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가 시간의 굴레에 갇혀서 부모에게 살해당하는 것도. 누군가가 신을 찾아 순례에 오르는 것도. 누군가가 자식을 잃은 고통에 망가지는 것도. 괴물과 다를 바 없어진 회귀자의 눈에는 많고 많은 실험재료 중 하나에 불과했고, 흔해빠진 비극 중 하나에 불과했다. 그 역시 닳아버린 회귀자이기에 알 수밖에 없는 사실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여기서 화를 냈겠지. 아무리 목적이 같아도, 도움을 받았어도, 이용당한 건 이용당한 거니까.’
그는 식어버린 표정으로 연금술사를 바라봤다. 지금까지 자신을 인도해왔던 속삭임의 실체를 알게 되었음에도 감흥이 느껴지지 않았다. 꼭두각시놀음에 놀아나는 것 정도는 이제 익숙해졌고, 이제 와서 화를 내기에는 마음이 무뎌진 탓이었다. 이미 닳아버린 마음에 불을 붙이기란 쉽지 않은 법이었다.
‘화를 내는 것도, 난동을 피우는 것도. 이제는 무의미한 일이지. 저 자도 그걸 알고 있으니까 저렇게 거리낌 없는 걸 테고.’
그 역시 이미 마모되었기에 알 수 있었다. 이 뒤틀린 세상에서 올곧게 살아가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고, 뒤틀리지 못한 이들은 이미 몸이나 마음이 부서진 지 오래였다.
그러니 저 광인이 다른 사람의 인생을 게임처럼 다뤘든, 신을 사칭해 신실한 이들을 현혹했든, 이제는 걸고넘어져 봐야 무의미한 일들이었다. 달을 사냥한다는 명분만 확실하다면 무엇이든 용납되는 것이 사냥꾼들의 숙원이었고, 이를 위해서라면 타인의 인생 따윈 밟고 올라가야 할 계단에 불과했다.
그 역시 달을 사냥하기 위해서라면 이 도시의 모든 것을 재료로 쓸 각오가 되어있었고, 그렇기에 그는 저 광인에게서 동질감과 혐오감을 동시에 느꼈다. 필요하다면 잔혹해지고, 잔혹함에 무뎌져야 하는 것이야말로 사냥꾼의 숙명이자 비극이었다.
“카드 뭉치는 필요 없어. 속삭임이든, 신기루든. 이제는 없어도 되는 것들이니까.”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과거의 일들은 마음속 깊은 곳에 묻혀있을 뿐. 메마른 마음에 불을 지피지 않는 이상 묻어둔 기억은 그저 잠들어있을 뿐이었다. 그의 마음은 이제 와서 먼 옛날의 감정에 연연하기에는 너무 마모되어있었다.
“중요한 건 앞으로의 일들이지. 당신의 그 계획이란 것도 자세히 파고들면 확실한 건 아니니까.”
옛일을 마무리 지은 그는 앞으로의 일에 관해 얘기를 꺼냈다. 아무리 뛰어난 예지자여도 인간의 두뇌로 우주를 넘나드는 괴물을 사냥할 계획을 세우는 것은 공상의 영역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시간마저 되돌리는 괴물이 자신의 죽음마저 되돌리지 말라는 법은 없었고, 괴물의 죽음이 또 다른 괴물의 탄생으로 이어지지 말란 법 역시 없었다.
이 대전제가 무너지지 않는 이상 그 어떤 계획을 세워도 결국에는 망상으로 치부될 수밖에 없었고, 이는 대부분의 예지자가 계획을 세우지도 못한 채 미쳐버리는 원인이기도 했다.
“그 말이 맞아. 우리가 원숭이라면, 하늘에 계신 저 높으신 분은 대문호 수준의 거장이니까.”
연금술사는 가면 너머로 웃음소리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문자를 이해하긴커녕 타자기 하나 제대로 두드리지 못하는 원숭이가 온갖 책을 읽어온 대문호를 감동시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지. 아무렇게나 타자기를 두들겨 봐야 무의미한 문자열만 나열될 뿐이잖아? 그러니까 다들 타자기를 두들기다가 포기하는 거지. 보통은 말이야.”
연금술사의 의중을 파악한 재환은 건조한 눈초리로 도시를 다시 살폈다. 지금도 도시의 곳곳에서는 한때 사람이었던 쇳덩어리들이 서로 부딪히고 맞물리고 있었다. 톱니와 파이프, 컨베이어 벨트와 증기 기관으로 자아내는 리듬에 귀를 기울이던 그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이 기계장치들이 타자기였고, 사람으로 글자를 쓰는 거였군. 이러면 언젠가는 그릇 하나 정도는 완성할 수 있을 테니까. 그릇이 완성되면 맹독을 조정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닐 테고.”
계획의 골자는 간단했다. 달은 인간을 사랑하고, 인간의 비명을 사랑하며, 이 과정에서 인간이 뒤틀리고 무르익으니. 이를 모방한다면 언젠가 달이 인간에게 바라는 것을 찾아낼 수 있으리라는 것이 연금술사가 내린 결론이었다.
한없이 달에 가까운 ‘위대한 피’를 인간에게 주입하고, 위대한 피를 담은 ‘그릇’이 비명을 지르며 뒤틀리고, 위대한 피를 버텨낸 그릇을 모아 달을 담아낼 그릇으로 완성한다.
인간이 괴물로 변할 수 있다면 괴물 역시 인간으로 변할 수 있었고, 인간이 된 괴물이라면 같은 인간이 죽이지 못할 이유도 없다.
이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논리만이 인간에게 주어진 유일한 실마리였고, 이 가느다란 실마리를 위해 얼마나 많은 인명을 희생시켜야 할지 생각하자 재환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이제 와서 그런 표정 짓지 마. 당신도 이미 짐작하고 있었잖아. 아무것도 몰랐던 척하려면 아무도 죽이지 말았어야지. 안 그래?”
그는 눈을 감은 채 연금술사의 말을 곱씹었다. 그녀의 말대로 그는 이와 같은 상황이 올 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 이에 대한 각오를 증명하기 위해 샬롬의 심장부로 올 때마다 입구를 지키는 샬롬 시민들을 잔인하게 살해했다.
모든 인명은 동등하게 소중하고, 사람과 괴물의 본질은 동일하다. 그러니 달을 사냥하기 위해 괴물을 죽일 수 있는 자라면 사람 역시 죽일 수 있어야 하고, 모든 괴물을 죽일 수 있다면 모든 사람을 죽일 수 있어야 한다.
이 미쳐버린 아이러니 앞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절망했을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시체를 밟고 지나가야 할지 생각하면 희미하게 남은 마음의 조각마저 닳아 없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는 미래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예지자일수록 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필요에 따라 모든 사람을 살해하는 자신의 미래가 선명하게 그려졌기 때문이다.
‘그래. 이제 와서 뜸을 들일 필요도 없지. 비슷한 짓이라면, 이미 충분히 해 봤으니까. 한 명이든, 백 명이든, 만 명이든. 사람을 죽인 이상 살인자는 살인자지.’
비 내리는 도시. 비탄에 잠긴 성자. 빗물에 홀린 시민들. 불어터진 익사체. 사람을 사냥해야 했던 나날들. 비참할수록 비정해야 했던 기억.
빗물의 비린내와 시체의 피비린내로 뒤섞인 기억을 떠올린 그는 감았던 눈을 뜨며 입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묻지.”
그는 가면 너머의 표정을 응시하며 말했다.
“당신은 왜 아직도 죽지 않았지?”
질문이 끝나자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의 말이 연금술사의 미련을 꿰뚫었기 때문이었다. 맹독의 원재료로 사용할 ‘샬롬의 말로’는 충분히 무르익었고, 마지막으로 도착한 사냥꾼에 의해 떨어져 연금술사에게 회수되었다.
남은 것은 원재료가 완성품으로 가공되길 기다리는 것뿐. 샬롬이 재가동된 시점에서 연금술사가 직접 손을 써야 할 일은 거의 없었고, 그마저도 샬롬에 묻힌 망자들을 깨워서 설득한다면 연금술사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었다. 그녀에게는 이 모든 공정을 샬롬이 스스로 이행하게끔 설계할 능력이 있었고, 이 길고 지루한 공정을 자신이 직접 지켜볼 필요는 없었다.
“당신이랑 비슷해.”
잠깐의 침묵이 끝나고, 연금술사는 메마른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디까지 진심을 섞을지 계산했을 뿐. 미리 준비해둔 대사 중 하나를 읊는 것 따윈 닳고 닳은 예지자에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당신이 끝을 보고 싶을 뿐이라면, 나는 내가 그린 그림이 정확했는지 확인하고 싶을 뿐이야. 아무리 심혈을 기울여서 청사진을 그려도 톱니바퀴가 어긋나는 건 한순간이거든. 여기도 언제까지고 안전하란 보장은 없으니까. 이 세상에서 반드시 안전한 것 따윈 없는 거, 이미 알고 있잖아?”
도시의 심장은 두근거리고, 통 속에 담긴 두뇌는 꿈틀거리며, 사람으로 만든 기계장치는 맥동한다. 그리고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도시의 리듬에 귀를 기울이던 재환은 연금술사의 말에 섞인 가식을 알아차렸다.
달이 이 도시를 어여삐 여기는 한, 달에 꽂힌 닻이 뽑히지 않는 한. 샬롬의 톱니바퀴가 틀어질 일은 없었다. 이곳은 이미 심연에 박제된 별이었고, 멈춰있기에 영원한 소우주였다. 성자 역시 구태여 도시의 밑바닥을 들쑤시지 않는 것은 하늘의 뜻을 존중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외부의 개입이 없는 이상 심장부에 시체를 쌓아 맹독을 정제하는 공정까지 끝난 이상 도시에 맞물린 톱니바퀴들이 틀어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 모든 것은 통 속에 담긴 현자들이 영원에 가까운 시간 동안 가다듬어낸 청사진 덕분이었고, 이는 이 청사진을 처음 고안한 장본인이 이를 모를 리는 없었다.
“그래… 그런 표정일 줄 알았어. 너도 영혼 없는 대답이나 들으려고 여기까지 온 건 아니겠지.”
재환의 표정을 확인한 연금술사는 쓴웃음을 흘렸다. 그녀 역시 이제는 끝이 머지않았음을 직감하고 있었고, 한 배를 탄 동업자에게 마지막까지 기만을 섞어서 대하는 것은 무의미했기 때문이다.
“마지막까지 설계대로 흘러가게 하는 것. 그게 내가 샬롬과 맺은 계약이야. 덕분에 아직 죽지 않은 거고, 죽지 못한 거기도 하지. 이 도시는 나 혼자서 만든 게 아니고, 나랑 계약한 회귀자들도 마냥 순진한 인간들은 아니었거든. 오히려 내가 자기들을 배신할까 봐 편집증에 걸릴 정도였지.”
맹세를 나눈 사냥꾼들은 망자가 된 지 오래였다. 연구를 함께하던 동료들은 두뇌만 남긴 채 통 속에 은거했다. 남은 것은 무미건조하게 돌아가는 기계장치와, 이 톱니바퀴 속에서 갈려 나가는 옛 사냥꾼의 복제품뿐. 긴 사냥과 살육 끝에 거대한 공장으로 완성된 샬롬 속에서 연금술사는 홀로 밤을 지새울 것이다. 그녀는 이 도시의 관리자이자 노예였다.
“질문은 이걸로 끝났어?”
재환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맹독과 그릇을 완성할 공정이 막바지에 이르렀으니, 남은 것은 달을 유혹할 무대를 완성하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이 무대를 만드는 일은 성자를 사냥해온 사냥꾼이 맡는 것이 적합했다. 사냥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사냥감은 샬롬의 바깥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럼 가기 전에 손등 좀 빌려줘. 당신을 위해 소소하게 선물을 하나 준비했거든. 모처럼 종착역까지 온 손님이니, 기념으로 스탬프 하나 정도는 찍어주려고.”
연금술사는 재환의 손등을 매만지며 손톱으로 문신을 새겼다. 새롭게 사냥을 나서야 하는 사냥꾼을 위해 새로운 문양을 선물하기 위해서였다.
“이 문양의 이름은 ‘탈태’라고 불러. 탈바꿈을 끝낸 나비에게 붙여주는 이름이지. 나비는 지상과 천상을 넘나드는 미물일 뿐만이 아니라,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전령이기도 해.”
금색으로 덧씌워진 문양을 바라보던 재환은 그녀에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그 역시 목적을 위해 이용당한다는 점은 이 도시의 기계장치와 다를 바 없었지만,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도움을 받은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안녕히. 그리고 다시는 볼 일이 없길.”
인사를 끝낸 재환은 핸드캐넌을 꺼내 샬롬의 저편을 향해 겨눴다. 자신의 시체가 담긴 유골함이 있는 방향이었다. 처음 샬롬에 도착했을 당시의 신체가 담긴 저 유골함을 부수는 순간, 그는 샬롬의 굴레에서 벗어나 서울로 돌아갈 수 있었다.
“잘 가. 선량한 사냥꾼.”
연금술사의 인사와 함께 재환은 방아쇠를 당겼다. 그리고 유골함이 부서지는 것과 동시에 그의 몸은 먼지가 되어 산산이 흩어졌다.
“부디 당신이 마지막 사냥꾼이 되길. 당신의 복제를 만들 일은 없길 응원할게.”
홀로 남은 도시에서 연금술사는 중얼거렸다. 그녀의 말은 ‘그릇’이 내지르는 비명에 묻혀서 거의 들리지 않았다. 공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실패작으로 끝난 `그릇`은 폐기되고, 달에 가까워진 `그릇`은 달을 사냥할 맹독을 마시며 죽어갔기 때문이었다.
달을 사냥할 준비가 끝나기 전까지. 혹은 달의 변덕으로 이 도시가 멸망하기 전까지. 오늘도 도시는 굴러가고, 사람은 갈려 나간다. 모두 달을 사냥하기 위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