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123
마지막 악상 (2)
데이드럼의 하수인들은 그를 어느 아파트 단지 앞으로 안내하였고, 그는 하수인들을 따라 거리를 걸으며 데이드럼의 지휘 아래 뒤틀린 서울의 풍경을 마주하였다.
넘실거리는 밤하늘. 사각거리는 별들의 속삭임. 일렁이는 악상과 이를 기록하는 악보들. 밤하늘이 노래하고 별이 춤추는 축제의 한복판에서 데이드럼은 지휘를 계속하고 있었고, 각각의 별들은 자신이 품은 생명을 혹사하여 지휘자를 위한 악상을 제공하였다.
[아, 당신이군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아파트 단지 앞에 도착하자 빌딩 숲 저편에서 데이드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데이드럼. 자신의 모든 것을 태워 악곡을 쏟아내는 괴물. 달에게 악곡을 바치기 위해 그는 쉴 틈 없이 촉수를 흐느적거리고 있었고, 그 촉수들의 움직임은 이전에 비하면 무뎌져 있었다. 제아무리 위대한 존재일지라도 오랜 세월에 걸친 혹사 앞에선 피로가 쌓일 수밖에 없었고, 데이드럼처럼 창작에 매진한 존재라면 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저 피로는 그가 몸과 마음을 바쳐 창작에 매진하였음을 증명하는 증거였다.
[당신이 없는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많은 손님이 떠났고, 많은 손님이 함께했죠.]재환은 흐느적거리는 촉수 너머에 아로새겨진 별들을 바라봤다. 저 별들은 별의 심장에 갇힌 성자들이었고, 그들은 데이드럼의 악상에 동참하여 달을 위한 합작품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가 바친 ‘모든 것’에는 서울의 사람과 사물뿐만이 아니라 동족 역시 포함되어있었다.
“별이 유독 많은 건 그런 이유였군. 서울에 자리 잡았던 성자들이… 이런 꼴이 될 줄이야.”
그 많던 성자들을 자신의 일부로 만든 솜씨 앞에 재환은 상대의 격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저 괴물은 명실상부한 서울의 주인이었고, 서울에 있던 모든 성자를 대신하여 홀로 연주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힘과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재환이 성자 사냥꾼이라면 그는 성자 포식자였고, 마음만 먹는다면 성자 사냥꾼이라 할지라도 지금 당장 악기로 만들 수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 대화가 성립될 수 있는 이유는 더 나은 영감을 얻기 위한 절차일 뿐. 원하는 영감을 얻어낸 데이드럼은 그 또한 다른 인간들처럼 서울에 널린 악기 중 하나가 되지 말란 법은 없었다.
[옛 친우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저 역시 당신에게 기대하고 있습니다.]데이드럼은 끊임없이 악상을 적어내며 속삭였다. 재환의 주변에는 성자의 필적으로 쓰여진 악보가 비처첨 쏟아졌다.
[달빛께서. 그리고 모든 운율이. 당신이 제 악상을 완성시켜줄 거라 노래하고 있거든요. 강렬한 예감이. 어떤 형태로든 당신이 마침표를 찍을 거라 속삭이고 있어요. 그 순간이 얼마나 황홀할지, 벌써부터 기대되는군요.]데이드럼은 분명 지쳐있었다. 그는 인간의 기준으로는 가늠하기 힘든 세월 동안 자신을 한계까지 몰아붙이고 있었고, 그 긴 세월 동안 휴식다운 휴식마저 취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서는 지친 기색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활기마저 느껴질 정도로 데이드럼의 열정은 찬란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별다운 자태였다.
“그래. 나는 마침표를 찍으러 왔지.”
재환은 데이드럼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는 가라앉은 시선으로 데이드럼의 황홀경을 응시했다.
“당신의 긴 슬럼프도. 이 지긋지긋한 돌림노래도. 어떻게 하면 끝낼 수 있을지 전부 알고 있으니까. 결국 당신도, 내게 심장을 바치게 될 거야. 사냥꾼은 그러려고 만들어진 배역이니까.”
사냥꾼의 말이 끝나자 서울의 모든 것이 정적을 맞이했다. 쏟아지던 악상도. 흘러내리던 악보도. 미쳐 날뛰던 악기와 이를 조율하던 조율사. 가장 낮은 미물부터 가장 찬란하게 빛나던 별까지.
지휘자인 데이드럼이 손짓을 멈추는 것과 동시에 서울의 모든 악기가 침묵을 유지했고, 흐드러지게 피어났던 악상의 물결은 허공으로 산산이 흩어져 정적만을 남겼다.
[배역이라. 좋은 울림이군요. 질투가 날 정도로 말이죠.]거장은 낮은 음색으로 뇌리에 속삭였다. 그 목소리에는 흡족해하는 기색과 가당치 않다는 진노가 공존하고 있었다.
[저도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저 밑바닥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그리고 당신들의 계획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죠. 저 또한 당신들의 기법 정도는 진작에 활용하던 차였으니까요. 최대한 많은 습작을 만들어내는 것 정도는 기본적인 일이었죠.]무한. 무한은 많은 것을 가능케 한다. 문자의 의미도 모르는 원숭이가 대문호 수준의 걸작을 완성하는 것도. 그리고 미물에 불과한 인간이 별에게 칼날을 겨누는 것도 모두 무한과 영겁이라는 은총이 주어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걸론 부족해요. 턱없이 부족하죠. 아무리 좋은 노래를 만든다 한들, 그걸 연주하는 자가 삼류라면 보잘것없기 마련이죠.]말을 이어나가던 데이드럼은 촉수 한 가닥을 움직여 다시 지휘를 시작했다. 그러자 피부를 기어오르는 듯한 울음소리가 어느 아파트의 저편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저를 포함해 많은 이들이 지금까지 삼류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적어도 연주자로서는 그랬죠. 전부 제가 부족한 탓이었고. 모자란 탓이었죠……]아파트 너머에서 확대되어 들려오는 음색에 재환은 가슴이 저려오는 것을 느꼈다. 그는 저 음색의 정체를 알고 있었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당신은 증명해야 합니다. 답을 내야만 하죠. 어디까지 장단에 맞출 수 있을지. 얼마나 훌륭하게 연주할 수 있을지. 당신의 기량을 온전히 드러내어 내게도 들려주세요. 그렇지 않다면, 나 역시 당신이 삼류가 아닐 거라 확신할 수 없을 테니까요]아파트의 내부에서 들려오는 괴성 앞에서 그는 몸이 굳어버리는 기분을 느꼈다. 저 목소리는 깊숙이 묻혀있던 트라우마를 생생하게 되살려냈고, 되살아난 트라우마는 이제 막 사냥꾼이 되었을 무렵의 감정을 되살려내었다. 이는 음악으로 일구어낸 부활의 신비였다.
[사담은 이만 마치겠습니다. 부디 제가 준비한 선물이 도움되길. 그리고 마침내 제게 닿기를, 마지막까지 기다리고 있겠습니다.]그 말을 끝으로 데이드럼은 다시 작업에 몰두하였고, 홀로 남겨진 재환은 숨을 죽인 채 아파트 입구를 노려보았다. 울음소리를 마주한 그는 차마 발걸음을 떼기 힘들 정도로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가슴을 찢는 슬픔. 숨통을 조여 오는 두려움. 그리고 비굴하고 비참했던 자신을 향한 분노가 심장을 타고 벅차올라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아, 데이드럼.’
그는 한 손으로 가슴을 쥐어짜며 되뇌었다.
‘단 한 번의 손짓으로, 나를 사람으로 만들었군.’
데이드럼. 심장을 두들기는 드러머. 오랜 세월에 걸쳐서 마모된 마음마저 되살려내는 거장. 그 생생한 생명의 리듬 앞에서 그는 피를 토하고 싶은 심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래. 어려울 것 없지.’
발걸음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바닥의 재질은 분명 대리석처럼 반질거렸지만, 발걸음을 뗄 때마다 늪지대처럼 질척거리는 느낌이 생생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는 감각이 아닌 감정의 문제인 것이 분명했고, 이러한 환각이 자신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만 같아 이를 악물었다.
‘정신 차리자. 이미 질릴 정도로 해온 일이야.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반복해도. 이제는 상관없어.’
한 걸음. 그리고 또 한 걸음. 아파트에 들어와 계단을 오르던 재환은 칼집에서 칼을 꺼낸 뒤 소리의 진원지 앞에 멈춰 섰다. 우두둑거리며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 살이 터지며 핏물이 치덕 거리는 소리. 그리고 어찌할 바를 몰라 울부짖는 괴물의 울음소리. 모든 소리가 서로 공명하여 하모니를 이룰 때, 재환은 문고리를 비틀어 눈앞에서 벌어질 마주했다.
“아. 아아아… 아아아아…”
울음소리의 주인공은 곰 인형 형상의 괴물이었다. 다만 보통의 곰 인형과 다른 점은 녀석의 신장이 190cm를 넘는다는 점과, 허리뼈가 통째로 절단될 정도의 괴력을 지녔다는 점이었다.
‘가짜야. 모조품이지.’
재환은 괴물의 웅얼거림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말없이 칼을 뽑아들어 괴물을 향해 겨눴다.
“아… 아아,,,!”
괴물은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계속해서 웅얼거렸다. 변명처럼 들리기도 했고, 비탄처럼 들리기도 하는 울음소리였다. 재환을 마주한 괴물은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른다는 듯이 머뭇거렸으나, 재환은 저 목소리에 담긴 절규를 곱씹으며 자세를 잡았다.
와라. 늘 그랬던 것처럼 달려들어라. 너는 껴안기를 좋아하는 괴물이니, 이번에도 으스러질 정도로 내 허리뼈를 부숴봐라. 네가 괴물이든 악기든. 늘 그래 왔던 것처럼 몇 번이고 부숴주마.
그리고 괴물은 대답 없는 사냥꾼을 향해 흐느낌을 흘리며 다가왔다.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지경인 시신을 뒤로한 채로. 괴물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천천히 거리를 좁혔다.
약 3미터. 한 합이면 생사가 결정되는 거리. 충분히 거리가 좁혀져 괴물이 두 팔을 벌릴 때, 재환은 겨눴던 칼을 찔러 넣어 괴물의 심장을 꿰뚫었다.
피아니시모.
부드럽게 살결을 가르는 감각과 함께 괴물은 움직임을 멈췄고, 심장의 박동은 서서히 느려지며 새롭게 얻은 칼날에게 사냥의 성공을 알렸다.
이제 칼날을 뽑기만 하면 사냥은 끝나고, 재환은 다음 악장으로 넘어가 데이드럼을 사냥하기 위한 여정에 나설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완전히 칼날을 뽑으려던 순간. 괴물은 마지막 힘을 다하여 재환을 껴안았다. 부드럽고 다정한 포옹. 그 포옹이 자신을 감싸자 재환은 자신도 모르게 괴물을 마주 껴안았다. 허리는 부러지지 않고, 온기만이 전달되는 포옹. 이러한 포옹을 받은 것이 얼마 만인지 생각하던 재환은 허그베어의 심장 박동이 완전히 정지한 것을 느끼며 포옹에서 빠져나왔다.
‘같지만 다르고. 다르지만 같다니. 예술 그 자체인 솜씨였어. 잔혹하지만, 심금을 울리지.’
그는 눈가를 닦으며 데이드럼의 변주곡이 끝난 자리를 바라봤다. 허그베어. 보는 것만으로도 슬프고,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괴로웠던 괴물. 저 괴물은 분명 그의 아버지가 아니었다. 허그베어는 단지 사람을 껴안을 뿐인 괴물이었고, 자아 따위는 없이 본능에만 의존하는 개체 중 하나에 불과했다.
분명, 그랬을 터였다.
‘차라리 피를 흘리는 게 나아. 눈물보다는 피를 흘리는 게 낫지. 그러는 쪽이 덜 비참하니까.’
그는 흘러나온 눈물을 닦으며 다음 노랫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전주곡이 끝나자 공방 바깥의 길거리에서는 각양각색의 괴물들이 자신의 템포에 맞춰 춤추며 노래하고 있었고, 사냥꾼이 자신들의 리듬에 맞춰 춤춰주길 바라고 있었다.
먼저 지쳐 나가떨어지면 죽는 카니발. 이곳에서 모든 괴물을 죽이고 살아남는 것이 그에게 주어진 첫 번째 악곡이었다.
‘그래. 어울려줘야지. 서울에 왔으면 서울 법을 따라야 하는 거니까. 이럴 줄도 모르고 다시 돌아온 게 아니니까 말이야.’
그는 춤추고 노래하는 괴물들을 향해 나아갔다. 소방도끼 대신 칼날이 쥐어져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예전에 거리를 나설 때와 다를 게 없으니. 늘 그래왔던 것처럼 괴물을 사냥하기만 하면 그만인 일이었다.
‘노래도. 괴물도. 성자도.’
그는 자신을 향해 다가온 괴물 하나를 칼로 베어내며 네온사인으로 물든 거리로 뛰어들었다.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네온사인 너머에는 그에게 춤춰주길 원하는 괴물들이 눈을 반짝이며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영원한 건 없고, 언젠가 끝은 오는 거야.’
괴물을 죽이기 직전. 그는 고개를 들어 시퍼렇게 질린 달을 바라봤다. 달은 여전히 아득하였고, 죽여야 할 괴물은 끝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해야 할 일은 바뀌지 않으니. 그는 자신을 향해 노래하며 달려드는 괴물을 베어내어 칼춤을 추었다. 이 많은 괴물을 죽여 탑을 쌓는다면 언젠가 달까지 닿으리라는 사실이 낡아빠진 육신에 열기를 불어넣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아직 사냥꾼 노릇을 하는 거지.’
이 모든 것이 인간을 뛰어넘은 자들의 인형극이라 하더라도. 자신이 그 인형극 위에서 놀아나는 꼭두각시일지라도. 이 지옥 같은 무대에 불을 질러 연극을 끝낼 수 있다면 그는 얼마든지 춤을 출 각오가 되어있었다. 설령 이 살업의 끝에 남는 것이 지금보다 나을 게 없는 멸망뿐일지라도, 저 시체 같은 달의 심장을 찢어버릴 수만 있다면 그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이 생생한 마음만이 그가 살아있음을 일깨워주는 유일한 박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