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124
마지막 악상 (3)
데이드럼을 사냥하러 나서기 전. 그는 7일 밤낮 동안 데이드럼의 악기를 사냥하여 하나하나 곱씹었다. 데이드럼을 사냥하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격식을 갖추는 것이 먼저였기 때문이다.
‘우선은 배워야지. 취하지 않고. 휩쓸리지 않으려면. 놈의 장단에 익숙해져야하니까.’
창자를 말려 뼈마디로 연주하는 바이올린. 심장과 성대로 음을 쌓는 첼로. 묵힌 살점으로 풍미를 살린 비올라. 건물의 형상을 한 피아노. 길게 늘어난 목을 관 형태로 변형시킨 플루트. 팔에 구멍을 내 만든 클라리넷. 온몸에 구멍을 내어 완성한 바순. 살점을 없애고 뼈를 조각해낸 오보에. 갈비뼈에 구멍을 뚫어 울림을 낳는 호른. 건물보다 크기가 커진 콘트라베이스. 머리카락을 튕겨 천상의 음색을 흘리는 하프. 목청이 터지도록 울부짖는 트럼펫. 핏발을 한껏 세운 트롬본. 목을 줄줄 꼬아 만든 튜바. 서로의 가죽을 두들기는 큰북과 작은북. 박자의 맞춰 두 주먹으로 흉부를 쳐대는 팀파니.
괴물로 이루어진 오케스트라는 각자 자신이 맡은 구역을 배회하며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연주했다. 이는 재환이 처음 집을 탈출했을 때 보았던 아비규환과 닮아있었지만, 괴성과 고성으로 들끓는 이 혼돈의 도가니 앞에서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반복했다.
괴물을 죽이고, 피를 마시고, 약물과 식량을 보충하는 것. 이 익숙한 루틴을 반복하여 데이드럼을 마주할 자격을 얻는 것이 데이드럼을 사냥하기 위한 첫 번째 고비였고, 이러한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서라면 그는 서울을 전부 불태워서라도 모든 괴물을 사냥해낼 자신이 있었다.
‘죽이는 건 쉬워. 죽이는 건 쉽지.’
그렇게 악기를 사냥하기 시작한지 7일째. 어느 건물의 옥상에서 숨을 돌리던 재환은 뒤에서 느끼지는 기척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상대는 높은 곳을 찾아 방황하던 플루트 형태의 괴물이었다. 사냥꾼을 마주한 괴물은 기쁨에 겨워 사냥꾼을 연주하려했고, 사냥꾼은 칼을 뽑은 뒤 괴물의 목젖을 칼끝으로 찔렀다. 목청이 훼손된 플루트 괴물은 자신이 내지른 굉음을 견디지 못하고 산산이 부서졌다. 악기라는 것이 본래 섬세한 도구인 만큼, 악기의 모습을 취한 괴물을 망가트리는 것 역시 그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걸론 부족해. 녀석이 원하는 건 강하기만 한 사냥꾼이 아니니까.’
단지 괴물을 사냥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효율적인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 서울 전역에 독을 뿌리거나, 괴물의 피를 기름으로 만들어 불을 지르거나, 신체를 개조하여 괴물의 틈에 섞인 뒤 기회를 노려 암습을 시도하는 쪽이 좀 더 빠르고 간결한 사냥 방법임은 분명했다.
하지만 단지 효율적일 뿐인 방식으로는 데이드럼에게 닿을 수 없었다. 지금 그가 온전히 사냥꾼으로서 활동할 수 있는 이유는 데이드럼의 음악에 어느 정도 저항을 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데이드럼이 참신한 악상을 갈망하기 때문이었다. 그가 끝을 갈망하는 만큼 저 위대한 괴물 역시 창작에 굶주려있었고, 저 괴물이 그에게 흥미를 잃는 순간 잡아먹히는 것이 어느 쪽이 될지는 예지력 따위가 없어도 쉽게 알 수 있었다.
‘거장이 될 필요까진 없어. 녀석도 그걸 바라는 건 아니니까.’
사냥을 끝낸 재환은 쓰러진 괴물에게서 시선을 거둔 뒤 다시 거리를 내려다봤다. 거리에서는 여전히 괴물의 울음인지 악기의 울림인지 모를 선율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인간의 청력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음감이었고, 인지할 수는 있어도 이해할 수는 없는 악상이었다.
‘음악을 이해할 수 있는 교양. 연주에 참여할 수 있는 자질. 심장이 터질 정도의 격정.’
그는 데이드럼을 사냥하기 위한 자질을 곱씹으며 생각에 잠겼다. 어째서 데이드럼은 그의 감성에 계속 생기를 불어넣었는가. 인간의 인지를 뛰어넘은 존재가 단 한명을 위해 이토록 공을 들인 이유가 무엇인지. 그 해답을 직감한 재환은 칼을 칼집에 넣은 뒤 자신의 심장에 손을 올렸다. 주변의 선율에 맞춰 심장은 춤추듯 두근거리고 있었다.
‘두려워하지 말고. 거절하지도 말고.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그 동안 그는 사냥꾼의 방식으로 데이드럼의 악상을 이해하려했다. 악기의 모습을 한 괴물을 해체하여 구조를 분석하고, 그들이 어떤 식으로 소리를 내는지 귀를 기울이고, 쌓아올린 화음이 어떠한 방식으로 흘러가는지 관찰했다.
하지만 이성으로 괴물의 음악을 이해하는 것에는 결국 한계가 있는 법. 가슴을 열지 않는 이상 아무리 감동적인 음악이라도 단순한 소음에 불과했고, 그렇기에 괴물이 연주하는 음악은 그에게 괴성과 다를 바 없었다.
사람은 사람. 괴물은 괴물. 이 오랜 편견에서 벗어나지 않는 이상 괴성은 음악이 될 수 없었다. 이는 그가 데이드럼을 마주할 자격을 얻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했고, 그 끝에 기다리는 결말이 무엇일지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마음 가는 대로. 몸 가는 대로. 전부 받아들이고 남는 게 악기가 되는 일이어도. 남은 방법이 이것 뿐이라면, 해야할 일을 해야지.’
그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사방에는 괴물이 득실거리고, 세상은 그에게 이해하라 말하며, 동료라 부를만한 인물들은 자포자기했거나 미쳐있었다. 부모도 친구도 없는 이 도시에서 그는 늘 혼자였고, 마지막까지 혼자일 것이다. 그 사실이 너무나 익숙하게 느껴진 나머지, 그는 무의식적으로 쓴 웃음을 지을 뻔했다.
‘그래. 이제 와서 잃을 것도 없지. 늘 그랬던 것처럼 말이야.’
결심을 끝낸 그는 담배를 버린 뒤 발로 지져 꺼트렸다. 지난 일주일간 그는 괴물의 음악을 받아들이길 꺼려했지만, 이대로는 영영 괴물의 음악에 관해 문외한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이는 데이드럼 역시 바라지 않는 결말일 터였다.
‘선율은 물결. 물결은 흐름.’
그는 두 눈을 감은 뒤 사방에서 들려오는 선율의 흐름을 읽어내기 시작했다. 바람결의 흐름을 읽어내어 미래를 읽어냈던 것처럼, 선율의 물결에 귀를 기울여 운율의 흐름을 음미하기 위해서였다.
‘천천히. 하나하나. 한 사람 한 사람을 마주보듯. 꼼꼼하고 조심스럽게…’
선율의 흐름을 읽어내는 일은 곧이어 괴물로 이루어진 관현악단의 면면을 살펴보는 작업으로 넘어갔다. 괴물은 사람이고, 사람은 괴물이니. 악기의 모습을 한 괴물이란 악기를 쥔 사람과 다를 바 없었다. 그리고 사람의 면면을 살피는 일이라면 그 역시 편견을 한 꺼풀 벗겨내어 음색을 음미할 수 있었다. 지난 7일간 괴물의 음악을 들으며 귀가 뚫린 덕분이었다.
‘들린다.’
창자와 뼈마디로 연주하는 바이올린은 구슬픈 음색을 흘려내었다. 심장과 성대의 첼로는 묵직한 화음을 쌓아올렸다. 묵힌 살점으로 풍미를 살린 비올라는 어찌나 고풍스러운지.
피아노. 플루트. 클라리넷. 바순. 오보에. 호른. 콘트라베이스. 하프. 트럼펫. 트롬본. 튜바. 큰북과 작은북. 팀파니.
그가 괴물이라 여겼던 악기들은 모두 악기에 일생을 바친 거장들이었고, 궁극의 음악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한 몸을 기꺼이 바칠 수 있는 순교자였다. 무수히 많은 인간. 그리고 무수히 긴 시간 동안 공을 들여 만든 악기가 이토록 많다니. 그동안 ‘괴물’이란 단어 하나로 일축하였던 것이 민망해질 지경이었다.
‘데이드럼. 데이드럼. 당신은 진정 거장이지.’
그는 이토록 많은 악기를 지휘하는 데이드럼에게 부러움마저 느꼈다. 만물을 지휘하는 힘과 지혜란 무엇일지. 그리하여 자아내는 선율은 어떠할지. 한낱 인간의 몸으로는 불가해한 영역이었다.
세계의 광활함. 찰나의 소중함. 죽음을 향한 갈망과 만월을 향한 청원. 영겁에 가까운 시간을 향유하는 존재에게서 우러나오는 선율은 음미하려하면 할수록 그윽한 향기를 자아내었다. 다른 별마저 찬사를 마지하지 않았던 절정의 기예. 만약 그에게 끝맺음을 향한 결심이 조금이라도 더 부족했더라면 그 역시 갈채를 보내어 저 위대한 거장의 수족이 되었으리라
‘그리고 거장으로서 죽을 테고. 아니, 거장이니까 죽을 테지.’
선율을 받아들이는 시간이 길어지자 그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감각과 함께 가슴을 움켜쥐었다. 머릿속에서는 더 많은 선율을 받아들이고자 두뇌가 요동치고 있었고, 가슴에서는 넘쳐흐르는 선율의 생기로 인해 심장이 찢어지려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신들에겐 많은 걸 배웠지.’
그는 자신의 가슴을 움켜쥐며 피를 토했다. 이 넘실거리는 고통에서 벗어날 방법이라면 이미 알고 있었다. 거리에 널린 악기들처럼 그 역시 괴물이 되는 것. 지금까지의 기억과 집념을 포기하기만 한다면 그 역시 이 넘실거리는 선율의 일부가 되어 진정한 의미의 죽음과 영생을 동시에 누릴 수 있었다. 물 흐르듯 산다는 것은 어찌나 달콤한 축복일지. 예지력을 얻은 자로서 그는 내면에서 피어오르는 이 욕망이 자신이 바라는 진실 된 욕구임을 잘 알고 있었다.
두려워할 이유는 처음부터 없었다. 음악은 사람을 해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을 해칠 수 있는 것은 오직 같은 사람 뿐. 음악에 심취하여 자기 자신을 망가뜨리지 않는 한, 음악에게 살해당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덕분에 이제는 알 것 같아. 어떻게 해야 당신들처럼 춤추고, 노래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는 숨을 내쉬어 선율에 흠뻑 젖은 허파를 게워냈다. 감상은 충분히 하였고, 감동 역시 마음속 깊이 충만하였다. 이론과 이해. 이성과 감성. 7일의 사냥과 하룻밤의 감상 끝에 마침내 그의 몸과 마음은 데이드럼의 음악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
‘이제 남은 건. 내가 배운 만큼. 당신들에게 증명하는 일 뿐이겠지.’
한 걸음. 그리고 또 한 걸음. 그는 조심스럽게 스텝을 밟으며 무용수와 연주자의 거리를 향해 내려갔다. 그는 이제 계단을 밟는 발걸음 하나하나가 피아노의 건반을 누르는 것과 다를 바 없음을 받아들였고, 그의 불규칙한 발걸음마저 선율로 자아내었던 데이드럼의 솜씨가 얼마나 훌륭했는지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제 남은 것은 저들의 음악을 직접 연주하여 데이드럼에게 바치는 것 뿐. 오직 그것만이 이 처절한 배움에 보답하는 일이었고, 괴물의 심장에 가장 가까워질 길이었다.
‘실습. 최대한 많이 실습을 해보자. 머리로 알고 귀로 듣는 거랑, 직접 연주하는 건 다른 일이니까.’
문을 열고 출구를 빠져나오자 주변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악기이자 연주자인 이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재환을 응시한 탓이었다.
누가 먼저 사냥꾼의 악기가 될 것인가. 아니면 누가 먼저 사냥꾼을 악기로 사용할 것인가. 협주곡이 좋을까. 아니면 독주곡이 나을까. 악기로 사는 게 나을 지. 혹은 연주자로 죽는 게 나을 지.
찰나의 순간 만감이 교차한 끝에 일어난 정적은 사냥꾼이 칼을 뽑는 것과 동시에 끊어졌다. 끊임없는 실습만이 좋은 음악가를 낳는 법. 그 끝에 얼마나 많은 피가 흐르고 살점이 떨어진다 할지라도 그는 멈추지 않을 것이며, 그 누구도 멈추길 바라지 않을 것이다. 그들 역시 괴물이기 이전에 음악가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