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126
마지막 악상 (5)
음악을 좋아해서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음악의 울림. 그 설렘을 잊지 못해 여기까지 오게 되었죠. 울음. 운율. 선율. 흐름. 리듬이 춤추는 세상이란 어찌나 찬란한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세상은 천국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더군요. 사방이 노래로 가득하고. 무한한 가능성으로 우주가 빛나고. 그 속에서 수없이 악상을 꿈꾸던 세월. 분에 겨운 나날이었고, 황홀했던 시간이었습니다.
단 하나.
도저히 감동시킬 수 없는 청중이 있다는 것을 깨닫기 전까진 그랬습니다.
당신은 잔혹합니다. 세상이 고통에 겨워하는 것을 지켜볼 뿐이죠. 그 어떤 악행일지라도 당신에게는 찰나의 악몽일 뿐. 이 기나긴 세월도. 저 무수한 비명도. 당신에게는 나직한 속삭임으로 끝나고 맙니다. 이 어찌나 불가해하고 아득한 일인지. 오늘도 창백한 당신을 볼 때면 눈물이 날 것만 같더군요.
이제는 눈물을 흘릴 수 없는 몸이 되었지만. 이 마음만큼은 거짓도 기만도 아닙니다. 애초에 저에게 남은 것은 죄악뿐이니까요. 당신에게 바칠 비명을 모은다는 이유로. 그리고 비명을 모아 음악을 만든다는 이유로. 얼마나 많은 생명을 쥐어짜 냈는지 전부 기억하고 있습니다.
105,047,232,572명.
한 문명의 숫자만큼을 재료로 사용하였고, 모조리 실패했죠. 실패작의 손으로는 실패작밖에 만들 수 없나 봅니다. 이것 역시 당신의 유희일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온몸에 소름이 돋습니다. 당신 앞에서 우리는 모두 미물에 불과합니다.
위대하신 분. 찬란하신 분. 우리 모두의 부모이신 당신 앞에서 나는 길을 잃고 헤매었습니다. 한없이 악상을 떠올리고, 악보를 쓰고, 악기를 만들고. 할 수 있는 것은 음악밖에 없는 몸이었기에 그저 끝나지 않을 돌림노래만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예. 알고 있습니다. 모를 수가 없지요. 아무리 좋은 노래일지라도 끝맺음이 없다면 지루할 뿐.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주체를 할 수 없었습니다. 단 한 곡이라도 제대로 완성하여 당신에게 닿기를 바랐으니까요. 마치 당신처럼. 저 역시 뒤틀려있는 건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오늘도 땅바닥에선 생명이 빛을 발합니다. 덧없기에 찬란한 생명의 소리는 어찌나 애절한지. 때로는 저들을 동경하고, 때로는 저들을 질투하였으며, 때로는 저들을 부숴보려 하였습니다. 저들은 제가 낼 수 없는 소리를 낼 수 있고, 제가 전할 수 없는 울림을 자아낼 수 있으니까요. 덧없기에 찬란하고, 끝나기에 애틋한. 듣고 있으면 그리워지는 이 울림은, 분명 사랑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을 겁니다.
* * *
하늘에서는 별이 떨어진다. 산산이 부서진 별의 조각은 궤적을 그리며 타오르고, 지상에 남은 괴물은 궤적을 오선지 삼아 음표를 새겨 넣는다. 음표 하나에 사람의 인생을. 음표 하나에 악기의 일생을. 그리고 음표 하나에 애타는 마음을 담아. 서울이라는 도시 전체를 연주하기 시작한 데이드럼의 격정은 분명 찬란하기 그지없었다. 다만 이 위대한 음악의 유일한 오점은 청중을 죽음으로 내몬다는 것이었고, 이로 인해 서울에 남은 청중의 숫자는 계속해서 줄어들어만 갔다.
‘거의… 거의 다 왔어.’
재환은 무너지는 건물을 방패 삼아 몸을 숨겼다. 예상을 뛰어넘은 연주 앞에 그의 온몸은 비명을 질렀다. 저 연주에 뛰어들자. 아니면 저 연주를 계승하자. 들어봐! 어찌나 아름다운 선율이니. 저런 음악을 이대로 사라지게 둬선 안 돼. 늦지 않았어. 늦지 않았으니. 하늘에 새겨진 저 악보를 곳곳에 받아 적자. 종이가 없으면 가죽에! 잉크가 없으면 핏물로! 이 땅에 음악의 이로움을 널리 알리자. 음악 아래 하나 되어 이 세상을 찬미하자!
그는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낸 뒤 심호흡을 하여 심장의 두근거림을 진정시켰다. 비명인지 환호성인지 모를 마음의 울림은 온몸으로 퍼져 나가 세포 하나하나를 흥분시켰고, 재환은 이 두근거림을 진정시키는 것만으로도 피를 토할 지경이 되었다. 분명 데이드럼의 목숨은 점점 꺼져가고 있었으나, 곡을 연주하는 격정만큼은 도저히 사그라질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제대로 할 수 있을지는… 이제 잘 모르겠군. 전부 다 엉망진창. 뒤죽박죽이라… 뇌가 녹아내릴 지경이야.’
데이드럼은 분명 죽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간이 그의 편인 것은 아니었다. 지금도 서울의 곳곳에선 무르고 연약한 것부터 하나둘 선율에 녹아들어 형태를 잃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콘크리트 건물이었던 악기가 흐물흐물 녹아내렸고, 도로와 벽에 뿌리내렸던 악기도 조각조각 흩어졌으며, 고상한 척을 하던 조율사들마저 하나둘 팔다리를 잃고 곱게 가루가 되었다. 음악을 이해할 수 있는 괴물이든, 음악을 이해할 수 없는 미물이든. 이 도시는 데이드럼이라는 물결에 휩쓸려 형체를 잃어가고 있었다.
육체와 정신을 단련한 덕에 비록 지금 당장은 데이드럼의 연주를 견뎌내고 있었지만, 이 역시 시간문제일 뿐. 그 역시 저 선율의 물결에 휩쓸린다면 회귀에 의해 되살아난다고 해도 영원히 음악에 시달리는 괴물이 되어버릴 것이 분명했다.
‘자살. 자살을 하면 늘 손해 보진 않았지.’
그는 품속에서 핸드캐넌을 꺼내 매만졌다. 생존본능은 그에게 자살을 권고하고 있었고, 그 역시 이러한 선택이 자신의 안위에 도움이 되리란 것을 알고 있었다. 데이드럼의 연주가 어떻게 끝나든 달은 결국 시간을 되돌릴 것이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수만 있다면 그는 몸과 마음을 이 재앙으로부터 온전히 보전할 수 있었다. 휘몰아치는 저 선율의 해일 속에서 온전히 살아남는 방법은 오직 자살뿐인 셈이었다.
‘아니. 아니야. 아니지. 안 되고말고…’
그는 머릿속에서 울려 퍼지는 생존본능을 억누르며 가슴의 고동 소리에 집중했다.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는 그가 진정 바라는 것을 충동질하였고, 그는 심장의 리듬에 귀를 기울인 채 자신이 무엇을 위해 데이드럼을 사냥하려 했는지 떠올렸다.
‘그건 안 되지.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보내주라고? 그것만큼은… 그것만큼은 절대 안 되지.’
데이드럼을 사냥할 기회는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성자가 별을 포기한다는 것은 박제된 자신의 몸을 불사르는 것과 다름없었고, 이는 영생과 영원을 누릴 권리를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닻을 잃었을 뿐인 별이라면 천상에서 얼마든지 이러한 특권을 누릴 수 있지만, 돌아갈 곳을 잃은 별은 잘게 조각나 허공을 떠도는 먼지가 될 것이 분명했다.
설령 아무리 많은 청중의 마음에 감동을 남긴다 하여도 정작 선율의 주인인 데이드럼은 영원히 사라져 잔향(殘響)만을 남길 뿐.
다시 회귀가 시작된다면 데이드럼이란 존재는 이 땅에서 사라져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재환은 지금이 데이드럼을 사냥해 심장을 취할 마지막 기회라는 사실을 곱씹으며 오른손의 손톱으로 왼손의 손등을 쥐어뜯었다.
‘가자. 일어나 할 일을 해야지.’
손등을 쥐어뜯자 통증과 함께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신경이 타들어가는 감각은 음악 감상 이전에 생존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우고, 생존을 향한 의지는 위협의 근원인 괴물을 사냥하기 위해 온몸을 곤두세웠다.
‘이대로 죽으면 데이드럼은 사라지고… 녀석은 영원히 이긴 채로 남을 테니까. 녀석의 심장도 영원히 사라질 테지.’
별의 심장. 달을 담아낼 그릇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가장 달에 가까운 물질인 성자의 심장이 필요했다. 심장의 품질이 높을수록 보다 더 튼튼한 그릇이 만들어질 것이고, 혹시라도 실패작이 나올 경우까지 생각한다면 별의 심장은 하나라도 놓칠 수 없는 보물이었다. 더군다나 그 심장이 다른 성자마저 흡수한 괴물의 것이라면, 그 괴물이 자신의 소망을 위해 스스로 죽음을 자처하고 있다면, 지금 이 순간은 두 번 다시 놓쳐서는 안 될 기회였다.
‘괴물을 죽이자. 늘 그랬던 것처럼. 죽으러 가면 그만이야.
정신을 다잡은 그는 주머니에서 수류탄 하나를 꺼내 핀을 뽑았다. 3, 2, 1. 숫자를 센 그는 근처에 있던 건물 형태의 악기를 향해 수류탄을 던졌고, 두 귀를 연 뒤 수류탄에 피격당한 악기를 내지르는 비명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고막이 터지고. 귀가 찢기는 공명음. 그 굉음을 단 하나의 방음 장비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자 그의 고막은 그대로 찢어져 버렸다.
‘늘 그랬던 것처럼. 똑같은 템포로.’
그는 무너지는 거리를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제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느껴지는 것은 음악의 울림뿐. 파동과 진동으로 이루어진 세계 속에서 청력을 잃은 사냥꾼은 괴물을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귀를 잃고 나니 괴물에게서 흘러나오는 선율의 물결이 더욱 선명하게 느껴졌다.
때로는 여리게. 때로는 거칠게. 반향과 잔향이 일렁이고, 땅바닥과 벽에 부딪혀 울림을 일으키는. 공진과 공명의 세계에 발을 내디딘 그는 휘몰아치는 선율의 물결에 휘말리지 않게 조심하며 발걸음에 박차를 가했다.
‘조금 더. 조금만 더.’
데이드럼을 향해 가까워질수록 주변의 풍경은 녹아내렸다. 가로등이 녹아내리고, 건물이 가루가 되고, 아스팔트 바닥은 짓물러져 흐물흐물거렸다. 음악이란 이름 아래 만물이 녹아내리는 이 마경 속에서 그는 심장의 박동에 신경을 집중했다. 리듬. 자신의 리듬마저 잃게 된다면 제아무리 귀를 잃은 몸일지라도 저 아스팔트처럼 녹아내리지 말란 법은 없었다.
‘거의 다 왔어.’
약 500미터. 데이드럼을 향한 거리가 얼마 남지 않자 그의 주변에 데이드럼의 음악에 심취한 괴물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대로 두면 저 황홀한 악극이 망가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그들을 사냥꾼을 향해 내몰았다.
막아! 막아야 해! 망치게 두면 안 돼! 저 괴물을 여기서 막아야 돼!
그들은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다만 몸짓으로 처절하게 사냥꾼을 막아설 뿐이었다. 허약해진 팔다리를 휘두르며. 녹아내린 신체를 내던지며. 침묵을 유지한 채로 사냥꾼이 연주를 방해하지 못하게 발목을 붙잡으려 할 뿐이었다.
그만… 제발. 제발! 제발 우리를 내버려 둬! 그냥 우리가 음악을 듣게 내버려 둬! 더 이상 저 아름다운 노래를 망치지 마! 저분이 마음껏 노래를 끝내게 해 줘! 제발!
한 사람의 음악가로서. 재환은 저들의 몸짓에 담긴 절규를 읽어낼 수 있었다. 저들이 얼마나 처절하게 그를 막아서려는 건지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저들의 몸짓을 하나씩 짓밟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흐느적거리는 팔다리를 자르고, 땅바닥에서 솟아오르는 촉수를 짓밟고, 건물 옥상에서 떨어지는 몸통을 총으로 맞혀 방향을 비틀었다. 죽어가는 와중에도 괴물들은 비명 하나 지르지 않았으며, 거장의 음악을 망치지 않게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15미터. 조금만 더 가면 데이드럼의 심장을 취할 수 있는 거리. 충분히 거리가 좁혀지자 재환은 잠시 발걸음을 멈춘 뒤 데이드럼을 올려다보았다. 빌딩보다 거대했던 성자는 마모되어 흩날린 끝에 트럭보다 조금 큰 정도로 줄어들어 있었고, 이대로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보다도 작게 줄어들어 산산이 흩어질 것처럼 보였다.
[아, 드디어.]무너진 건물의 잔해를 밟고. 몸부림치는 괴물을 발판 삼아. 일렁이는 선율의 물결을 넘어 재환은 데이드럼을 향해 칼을 겨눴다.
장시간 음악에 노출된 탓에 오장육부는 비틀어졌고, 손등과 고막에선 상처로 인해 피가 뚝뚝 떨어졌으며, 온몸은 괴물과 자신의 피로 얼룩져있었다. 이대로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죽음에 이르는 것은 사냥꾼 역시 마찬가지였다.
[드디어 제 노래가 끝이 나는군요.]마침내 자신의 앞에 도착한 사냥꾼을 향해 데이드럼은 지휘봉을 들어 올렸다. 최후의 악상. 자신이 죽음에 내몰린다면 어떤 선율이 나올지. 이 오랜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괴물은 연주를 시작했다. 악장이 끝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에 그는 설렘마저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