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128
끝자락의 풍경 (1)
눈을 뜬 재환은 멍한 시선으로 창밖을 응시했다. 정신을 차렸음에도 여전히 몽롱한 기분이었고, 아직도 꿈을 꾸는 것만 같아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아… 그랬지…’
그는 햇살이 비친 거리를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여름날 생기를 머금은 아파트 단지. 그곳에서 각자의 일상을 사느라 분주한 사람들. 놀이터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산책을 나서는 노인의 느릿한 걸음걸이. 하나하나가 소소하기에 아름다운 일상이었고, 바라볼수록 눈이 부신 절경이었다.
‘그래. 인정하자.’
재환은 커튼을 친 뒤 호흡을 가다듬었다. 의식을 잃고 깨어난 지 사흘이 지났지만, 그에게는 아직도 이 세상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사냥은 끝났어. 괴물도 없고, 사냥꾼도 필요 없지. 나만 적응할 수 있으면, 이젠 정말 끝난 거야.’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사냥이 끝나고 난 뒤 나는 의식을 잃었고, 깨어난 뒤에도 정신은 여전히 몽롱했다. 데이드럼의 심장은 어떻게 되었는지. 까마귀 성자는 어째서 나타난 것인지. 사냥은 제대로 완수되었는지, 숙원은 제대로 끝난 것인지.
알 수 있는 사실은 아무것도 없었고, 과거를 되짚어볼 단서 역시 아무것도 없었다. 그가 알 수 있는 거라곤 이제 세상이 평화를 되찾았고, 더 이상 사냥을 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 뿐이었다.
‘적응. 그래. 늘 적응이 문제였지.’
수백 년 동안 괴물을 사냥해온 탓일까. 그는 이 갑작스러운 평화에 적응하는 것을 괴물 사냥보다도 어려워했다. 어딘가에서 작은 기척이라도 들리면 괴물의 움직임일까 싶어 신경을 곤두세웠고, 등 뒤에서 누군가 걸어온다면 있지도 않은 권총을 찾기 위해 주머니에 손을 넣었으며, 길거리를 걸어갈 때면 무엇이든 손에 쥐고 괴물을 사냥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했다. 더 이상 그를 죽이려 드는 괴물이 없음에도 그는 여전히 악몽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그냥 적응이 덜 돼서 그런 거니까. 시간만. 시간만 충분히 있으면. 언젠간 적응할 수 있을 거야.’
흔한 일이었다.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온 군인이 폭죽 소리를 폭격소리로 착각해 움츠러드는 것처럼. 지진으로 인해 가족이 건물에 깔려 죽는 걸 보게 된 생존자가 자동차의 덜컹거림에 동공이 커지는 것처럼. 부모에게 학대당했던 아이가 어른이 된 뒤에도 옛날의 기억에 시달리는 것처럼. 오랜 사냥의 끝에 후유증을 앓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할 수 있어.’
그렇기에 그는 호흡을 가다듬은 뒤 방문 너머의 기척에 집중했다. 방문 너머의 주방에서는 그의 가족이 식사 준비를 하는 기척이 들려왔고, 아들을 깨우러 오는 어머니의 발소리가 나직하게 귓가에 스며들었다.
똑. 똑. 똑.
노크 소리와 함께 어머니의 목소리가 방문 너머에서 들려왔다. 다시는 들을 수 없으리라 여겼던 목소리가 들리자 그는 조용히 숨을 삼켰다.
“재환아. 아침 준비됐으니까 와서 밥 먹어. 요새 안색도 안 좋은데 밥이라도 잘 챙겨 먹어야지. 졸려도 상 치우기 전에 얼른 먹고 마저 자.”
다정하고, 애정 어린 목소리. 그 목소리가 들려는 찰나 사이에 재환은 자기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오늘도 하루가 시작된다는 생각에 머리가 지끈거리는 기분마저 들었다.
‘할 수 있어. 늘 그랬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하던 대로하면 그만이야.’
결심을 끝낸 재환은 호흡을 가다듬은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분명 이 세상은 적응하기에 곤혹스러웠으나, 언제까지고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원래 미쳐있던 세상이 한 번 더 미쳐서 정상이 되었다 해도 삶은 여전히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가자.’
마음의 준비를 끝낸 재환은 문고리를 비틀어 방문을 열었다.
깔끔하게 정돈된 집 안의 풍경.
은은하게 풍겨오는 찌개 냄새.
정성이 담긴 아침상.
토막 난 어머니의 시신과 허그베어가 냉장고에서 밑반찬을 꺼내는 모습.
그의 눈에 들어온 이 풍경이 앞으로 적응해야 할 일상의 모습이었고, 모두가 당연하다 여기는 일상의 이치였다. 세상이 미친 것인지. 자신이 미친 것인지. 평화로운 일상 앞에서는 무의미한 구분법이었다.
‘무시하면 돼. 익숙해지면 그만이고.’
재환은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어머니를 바라봤다. 입은 어디에 있을까. 저런 몸으로 어떻게 말을 할 수 있을까.
기이한 현실 앞에서 그는 말을 아꼈다. 어느 쪽이든 이상하게 여기는 순간 이상해지는 것은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토막 난 시체든. 뒤틀린 괴물이든. 이 세상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사지가 멀쩡하게 달린 사람이라 인식하며 살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 세상에 사는 것은 오직 사람뿐 이었고, 이상한 것은 오직 그의 눈에 들어오는 풍경뿐이었다.
‘그러니까. 적응만 하면. 그만이야…’
식탁 앞에서 우두커니 서 있던 그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식사 준비를 끝내고 자리에 앉자 결국 자리에 앉았다. 집을 아예 나오는 게 아닌 이상 언제까지고 가족과의 식사를 피할 수도 없는 일이었으니, 앞으로 이 세상에 적응하려면 더 이상 도망치기만 해서는 안 되었다.
“잘 먹겠습니다.”
곰인형 형태의 괴물과 토막 난 시신이 수저를 들어 올렸다. 입으로 들어간 밥이 어디로 흘러가 어떻게 소화될지는 그에게도 미지의 영역이었으나, 그는 구태여 이러한 의문을 파고들지 않았다. 세상에는 외면하는 편이 나은 사실도 있고, 들추지 않는 편이 나은 진실도 존재하는 법이었으니까.
* * *
‘흔한 증상. 그래. 흔한 증상이긴 하지.’
벤치에 앉아 바라본 거리의 풍경은 여전히 기이하였다. 키가 5m는 넘어 보이는 벌레 형태의 괴물이 소형차에 몸을 구겨 넣어 운전하는 가하면, 소형견 크기의 괴물이 스스로 카페의 문을 열고 주문을 하는 모습도 보였고, 목이 잘린 남성의 시신과 머리만 남은 여성의 시신이 자연스레 거리를 걷는 모습마저 보였다.
‘괴물이 나오기 전에도 정신병에 걸린 사람은 널리고 널렸으니까. 그러니까 의사도 그렇게 말한 걸 테고. 지금 당장은 약효가 소용없긴 해도, 차차 나아질 수도 있을 거야. 하루아침에 세상이 바뀌었는데, 하루아침에 내가 바뀌지 말란 법도 없으니까.’
변해버린 세상에서 눈을 뜬 지 일주일 째 되던 날. 그는 결국 홀로 정신과에 방문해 진단을 받았고, 의사에게 조현병을 진단받았다. 다른 말로는 정신분열증이라고도 불리던 이 질병은 대중에게 비교적 널리 알려진 질병이고, 간혹 뉴스에도 등장하여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곤 했던 골칫거리기도 했다.
그렇기에 비교적 ‘멀쩡한’ 언행이 가능하다는 점을 제외하면, 이 세상에서 그는 널리고 널린 조현병환자 중 한 명이었다.
‘만약에. 만약에 이대로 병이 나으면. 그다음엔 무슨 일을 해 볼까.’
그는 사람들이 거니는 소리를 들으며 두 눈을 감았다. 그리고 따사롭게 내리쬐는 햇살과 함께 이 세상에서 살아갈 방법에 대해 떠올렸다. 마땅히 떠오르는 것은 없었지만, 두 눈을 감고 있을 때면 현실에서 멀어지는 것만 같아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소방관은 글렀지. 방화범이나 되지 않으면 다행이니까. 혹시라도 이 병이 재발하면 소방도끼로 애먼 사람 머릴 찍는 것도 조심해야 할 테고.’
먼 옛날. 아직 어렸을 무렵의 꿈을 떠올리자 도시에 불을 지르던 자신의 모습이 연상되었다. 샬롬 전역에 불을 지르고, 필요하다면 서울 어디든 화약고로 사용하던 이미지가 떠오르자 한때 소방관이 되려 했다는 사실마저 농담처럼 느껴졌다.
‘손에 피 묻히는 일은 이제 지긋지긋하고… 그렇다고 사람 상대하는 일을 잘할 것 같지도 않고… 남은 건 공부를 열심히 하거나 기술을 배우는 것밖에 없는데…’
막연하게 미래를 구상하던 그는 두 눈을 뜬 뒤 숨을 내쉬었다. 사냥꾼 특유의 신체 능력과 예지력이 사라진 이상 그 역시 여느 시민과 다를 게 없었다. 세상이 평화로워도 삶이 치열한 것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였다.
‘솔직히. 별로 가망은 없겠지. 환각이나 환청이 없어도 기억은 남으니까. 모두가 이 기억을 망상이라 말해도, 나는 이 기억을 절대 잊지 못할 테니까. 그냥 망상으로 취급하기엔… 너무 선명하지.’
그는 더 이상 사냥꾼이 아니었지만, 사냥꾼의 지식만큼은 여전히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괴물 사냥용 날붙이 제작법. 사제 총기와 폭발물 제작법. 괴물을 살해하고 해체하는 방법. 사냥감을 추적해 습격하는 기술. 그리고 연금술을 응용하여 각종 마약과 독약을 만드는 기술까지.
모두 마음먹기에 따라선 충분히 응용할 수 있는 지식이었고, 이 중 몇 가지는 실제로 구현하여 시험한 적도 있었다. 이제 이 기술을 실전에서 사용하기만 한다면 이 세상과 자신 중 어느 쪽이 미쳐있는 건지 증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죽이고 나면 알 수는 있겠지. 내가 사람을 죽인 건지 괴물을 죽인 건지 피 맛을 보고 나면 금방 구분할 수 있을 테니까. 아주 옛날. 암브락사스의 신자들을 구분했을 때처럼… 피를 마시면 구분할 수 있을 거야.’
아주 먼 옛날. 그는 지금과 비슷한 상황을 겪은 적이 있었다. 그 당시에 그는 홀로 사람을 괴물이라 여겼고, 사람들은 괴물을 사람이라 여겼다. 비록 규모에 차이가 있을지언정 지금도 상황의 본질 자체는 달라지지 않았고, 해결책 역시 다를 건 없었다.
괴물을 죽이고, 피를 마셔라. 사냥꾼의 감각을 되찾아 무엇이 진실인지 들춰내라. 네가 무엇을 맹세했는지 떠올려 마지막까지 책무를 다하라.
들려올 리 없는 속삭임이 뇌리를 맴돌았고, 그는 괴물과 시체가 걸어 다니는 거리를 바라보며 다시 두 눈을 감았다. 두 눈을 감고. 두 귀를 닫고. 생각하는 것마저 그만둔다면 이 거리는 더할 나위 없이 평화로웠고, 그 사실이 그를 차마 사냥에 나서지 못하게 발목을 잡았다.
‘차라리 아무것도 몰랐다면 좋았을 텐데. 모른 척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는 지금까지 이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해온 노력들을 떠올렸다. 가능한 많은 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그들의 외형을 최대한 이해하려 했으며, 때로는 프리허그 이벤트까지 참여해 그들과 포옹을 나누기까지 했다. 비록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촉감은 사람이라기엔 이질적이었으나, 그 온기만큼은 사람답게 따스했다. 비록 그 끝에 받게 된 것이 조현병 진단서일지라도, 그는 지난 일주일간 보내온 시행착오가 무의미하다고 여기진 않았다.
‘그럴 수가 없다면… 어느 쪽이든 죽는 수밖에 없겠지. 말라죽든, 자살을 하든. 어느 쪽이든 내게 남겨진 미래는 이런 거밖에 없었으니까.’
아무리 부정하려 하여도 결론은 항상 같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옛날의 기억이 남아있는 이상 세상은 예전과 다를 게 없다.
그러니 아직 어딘가에 까마귀 성자가 남아있다면. 그 괴물이 어디선가 웅크려 숨을 쉬고 있다면. 그 괴물을 찾아 피를 마시는 것이 그에게 남겨진 유일한 길이었다.
설령 그것이 이 세상을 망치는 길일지라도. 세상을 다시 피와 비명으로 넘치는 지옥으로 추락시키는 일일지라도. 완벽하게 이 사냥을 끝맺지 못하는 이상 모든 것은 허울 좋은 백일몽에 불과했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에. 결정을 끝낸 그는 벤치에서 일어나 미리 계획한 대로 인적이 드문 골목길을 향해 걸어갔다. 성자를 찾아내려면 지력을 끌어올려야 하는 법이니, 나약해진 몸에 괴물의 피를 보충하기 위해서였다. 자신이 죽인 것이 정말 괴물일지, 아니면 사람일지. 그 결과는 피를 마시고 나면 알게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