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13
달에서 온 색채 (1)
사격 훈련을 끝낸 재환은 보급받은 장비를 챙겨서 회의실로 이동했다. 경위의 안내를 받아 문을 열고 들어가니 순경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나 두 사람을 맞이했다. 인상이 날카로워 보이는 여경이었다.
“일찍 오셨네요, 팀장님. 준비는 다 끝나신 거예요?”
“어. 이제 설명만 드리면 돼. 뭐 도와줄 건 없지?”
“네. PPT 준비는 다 해 놨어요.”
“그래, 수고하고.”
경위는 그렇게 대답한 뒤 재환에게 말했다.
“나머지는 저 친구가 얘기해 줄 겁니다. 똘똘한 친구니까 궁금한 게 있으시면 저 친구에게 물어보세요.”
재환은 고개를 끄덕이는 거로 대답을 대신했고, 경위는 그에게 악수를 청했다.
“아깐 예민하게 굴어서 미안했어요. 시국이 이렇다 보니 좀 까칠했나 봅니다.”
뜻밖의 사과에 재환은 당황했다. 사격 훈련 때의 일은 멋대로 행동한 그에게 잘못이 있었기 때문이다. 재환은 어색한 기분으로 악수를 받아들였다.
“아뇨, 괜찮습니다. 제가 잘못한 거였는데요 뭘.”
재환의 말에 김 경위는 인자하게 미소를 지으며 격려했다.
“수고하세요. 건투를 빕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를 떠났고, 재환은 꾸벅 묵례를 해 대답했다. 김 경위가 회의실을 떠나자 회의실에 있던 순경이 말을 걸었다.
“준비되셨으면 브리핑 시작할까요?”
재환은 고개를 끄덕였고, 그녀는 자리에 앉을 것을 권한 뒤 지도가 부착된 화이트보드 앞으로 걸어갔다. 중랑구 일대가 그려진 지도 앞에 선 그녀는 꾸벅 인사를 한 뒤 발표를 시작했다.
“안내를 맡은 순경 이해리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각이 잡힌 태도에 재환은 박수를 보냈다. 듣는 사람이 한 명뿐인 발표임에도 흐트러짐 없이 발표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프로 정신이 엿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녀는 삼단봉을 펼쳐 지도의 한 지점을 가리켰다. 근처에는 ‘대형 백화점’이라는 글씨가 크게 적힌 포스트잇이 붙어있었다.
“오늘 부탁드릴 내용은 정찰 업무입니다. 중계역 인근의 백화점으로 가는 길이 안전한지 확인해주시고, 가능하다면 지하에 있는 식자재 창고의 상태가 어떤지 알아봐 주셨으면 합니다. 거리는 현 위치에서 약 6km가량이고, 도보로는 약 1시간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순경은 그렇게 말한 뒤 책자 하나를 건넸다. 백화점까지 가는 길이 그려진 약도와 백화점 내부의 구조가 그려진 도면이었다.
“한 번 훑어보시고, 이해 안 가는 부분 있으면 말해주세요.”
재환은 약도와 도면을 살펴본 뒤 반으로 접어서 주머니에 넣었다.
“생각보단 간단하네요. 그렇게 멀리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간단하진 않아요. 군부대가 관측한 결과에 따르면, 그쪽 경로의 안개가 옅어지면서 달빛이 강해졌다고 해요. 월조량이 증가한 거죠.”
그녀의 말에 재환은 의아해했다. 월조량이라는 말이 일조량을 달로 치환한 말이라는 것은 이해했지만, 그것이 왜 문제가 되는지는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게 무슨 뜻이에요? 달빛에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
그녀는 재환의 반응을 예상하기라도 한 듯이 포스트잇 두 개를 화이트보드에 붙였다. ‘월조량’과 ‘이상 현상’이라는 글자가 적힌 종이였다.
“저희도 최근에야 안 사실이지만, 안개가 옅은 곳에서 달빛을 직접 쬐는 게 정신건강에 좋지 않다는 연구 결과가 있어요. 정신분열증이나 불안장애를 유발한다고 하더라고요. 신경이 예민한 사람일수록 위험할 수 있으니, 직접 달빛을 쬐는 건 피하라는 지침도 내려졌고요. 사냥꾼분들에게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혹시 모르니 모자랑 마스크 착용하는 거 잊지 마세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경찰용 근무모와 면 마스크를 건넸다. 경찰용 근무모를 머리에 써서 사이즈가 맞는지 확인해 본 그는 모자를 벗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완전 경찰 취급하는 걸 보면, 사람이 없긴 한가 보군.’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경찰 공무원의 경쟁률은 30:1이었다. 순경이 되려는 사람이 서른 명 있으면 스물아홉 명은 떨어져야 했던 셈이다. 그러므로 모자뿐일지라도 경찰이나 다름없는 대우를 받는다는 사실 자체가 그에게는 생경한 일이었다.
그가 모자를 벗는 것을 확인한 그녀는 설명을 이어나갔다.
“주의해야 할 점이 두 가지 더 있습니다. 하나는 해당 지역에서 출몰하는 괴물이 다른 괴물을 사냥한다는 점이고, 남은 하나는 사냥꾼 한 분이 해당 지역 인근에서 실종됐다는 점입니다. 아직 연락이 끊긴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별일 없을 가능성이 크지만, 그래도 유의해 두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재환은 그녀가 말한 두 가지 주의사항에 대해 생각했다. 괴물이 다른 괴물을 죽인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으니 크게 개의치 않았지만, 사냥꾼 한 명이 실종됐다는 사실은 신경 쓰였다. 단순히 연락 두절로 끝난 일이라면 다행이었지만, 그 역시 지난밤 사냥을 나섰을 때 3번 실패한 전적이 있는 이상 가볍게 생각할 문제는 아니었다. 특히나 지금처럼 다른 사냥꾼들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랬다.
‘여차하면 죽으면서 배우는 수밖에 없겠지…’
그는 자신이 죽어도 되살아난다는 점을 다행으로 여기며, 이 순경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이상으로 브리핑을 마치겠습니다. 질문 사항 있으신가요?”
질의응답 시간이 주어지자 재환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현장에 대한 정보는 직접 가서 알아보면 되는 일이었으니, 현장에서 알 수 없는 점을 묻는 편이 나아 보였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요, 다른 사냥꾼분들 프로필 같은 것 좀 받아볼 수 있어요? 어떤 사람들인지 좀 궁금해서요.”
그의 말에 이 순경은 난색을 표했다.
“일단 건의는 해 보겠지만, 아마 잘 안 될 거예요. 서장님이 비공개로 처리하라고 하셨거든요. 서로 사이가 안 좋으니, 악용될 수 있다고 하셔서요.”
그녀의 말에 그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첫날부터 전부 다 알아낼 생각까지는 없었다.
아무리 일손이 부족해 고용되었다고는 해도 그는 오늘 막 일을 시작한 신참이었다. 그러니 경찰의 입장에서는 일을 하는데 필요하지 않은 정보까지 제공할 의리는 없는 셈이었다. 섭섭할 순 있어도 서운해할 필요까지는 없는 게 당연했다.
‘일단 신뢰를 좀 쌓아야지. 막무가내로 이것저것 알려달라고 할 수도 없는 거니까.’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K1을 어깨에 멘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본 이 순경의 얼굴에 씁쓸한 표정이 떠올랐다.
“위험한 일을 부탁드려서 죄송합니다. 인력 부족만 아니었으면, 원래는 저희가 해야 하는 일이니까요.”
재환은 그녀의 표정이 한결 느슨해진 것을 눈치챘다. 그녀 역시 위험한 일을 남에게 떠넘기고 있다는 자각이 있는 모양이었다.
“신경 쓰지 마세요. 애초에 공짜로 하는 일도 아니고, 어차피 누구 한 명은 총대 메야 하는 거니까요.”
은유면서 은유가 아닌 말과 함께 그는 경찰서를 떠났다. 이제 해는 완전히 떨어졌고, 그 자리에는 시퍼런 달이 안개 너머로 거리를 물들였다. 오늘도 누군가는 괴물이 되고, 누군가는 괴물에게 살해당할 것이다. 그 ‘누군가’에 자신이 포함되지 않길 바라며, 그는 괴물이 활보하는 거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 *
K1의 탄창 하나를 비운 재환은 재장전을 하며 주변을 살폈다.
‘너무 적어. 기분 나쁠 정도로.’
사냥 자체는 수월했다. 지난밤 괴물을 사냥하면서 괴물을 상대하는 요령도 늘었고, 강해진 몸을 다루는 방식도 익숙해진 덕분이었다. 덕분에 그는 고작 2시간 만에 괴물을 20마리 사냥할 수 있었고, 그중 대부분은 총조차 쓰지 않았다.
하지만 백화점을 향해 절반 정도 왔을 무렵,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눈에 보이는 괴물의 숫자가 너무 적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동대문구에서 중랑구로 넘어올 때 봤던 괴물의 숫자에 비하면 괴물을 만나는 빈도가 10분의 1도 채 안 되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굳이 사냥꾼이 나서지 않아도 충분할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총까지 쐈는데, 이렇게 안 나오는 건 이상하지.’
총성이야말로 경찰이 그에게 정찰을 부탁한 결정적인 이유였다. 함부로 총을 쐈다가 괴물이 몰려오면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고, 이는 목숨을 앗아가는 파국으로 이어진다. 그러니 가뜩이나 인력이 부족한 상황인 만큼 경찰이 예민하게 판단한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경찰이 과민 반응을 일으킨 거라고 가정해도 이 거리는 너무 조용했다. 마치 누군가가 괴물을 청소하기라도 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괴물이 괴물을 사냥한다더니. 그래서 그런 건가?’
그는 옅어진 안개 너머로 내리쬐고 있는 달빛을 바라봤다. 푸른 달의 창백함에는 현실의 잊게 할 정도의 아름다움이 있었다. 저 달이 사람을 괴물로 만드는 원흉이 아니었다면, 그는 분명 저 달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하고 말았을 것이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지. 어쩌면 나도 모르게 미쳐버릴 수도 있으니까.’
그는 달에서 시선을 거둔 뒤 차도를 따라 조심스럽게 걸어갔다. 이 거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만큼, 긴장을 늦추지 않을 필요가 있었다. 괴물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기 때문이다.
길을 걷다가 지나친 자동차 밑바닥에서 연체동물을 닮은 괴물이 튀어나오기도 했고, 빌딩의 창문 너머에서 원숭이를 닮은 괴물이 뛰쳐나오기도 했으며, 맨홀 뚜껑을 열고 튀어나온 괴물이 괴성을 질렀을 때는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특히나 그중에서는 기척을 내지 않고 다가오는 괴물도 있었으니 긴장을 놓을 바에는 그냥 자살하는 쪽이 속 편할 지경이었다. 이 거리는 매 순간 그의 담력을 시험했고, 그는 앞으로 익숙해지길 바라며 거리를 나아갔다.
‘이대로만 가면 참 좋을 것 같은데.’
주변을 살피며 나아가던 그는 근처의 건물 옥상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눈치챘다. 소리가 들린 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기분 탓이겠거니 넘기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속삭임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에게 경고했다.
[사냥 대상: 불가해(不可解)] [분류: 권속]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해서도 안 되는 괴물 중 하나.] [사냥하기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하다.]그는 ‘불가해’가 나타나는 것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가 ‘불가해’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라곤 위험한 괴물이란 사실 뿐이었다. 지금까지 분류된 ‘관리자’, ‘추종자’, ‘권속’ 중 어떤 게 더 위험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이상, 새로운 분류가 나타난 것 역시 환영할 일이 아니었다.
‘그나마 위험한 느낌은 안 들어서 다행인가.’
건물의 옥상 너머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것으로 보아 상대는 거대 괴수가 아니었다. 또한, 지금까지 불가해를 만났을 때처럼 온몸이 떨리지도 않았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사실이었다.
‘능력치를 아껴놓길 잘했어. 몸은 이제 어느 정도 강해진 편이었으니까.’
그는 상태창이 나타났을 때의 감각을 떠올렸다. 그러자 그의 시야에 신기루로 이루어진 상태창이 나타났다. 사냥하면서 여유가 생긴 틈에 혹시나 싶어서 연습해본 것이 도움되었다.
[현재 레벨: 53] [강화 가능 능력치(+12)] [근력: 30] [민첩: 20] [체력: 10] [내구: 20] [재생: 10] [지혜: 10]내구를 20까지 올린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 덕분에 격하게 움직여도 몸에 무리가 가지는 않았다. 싸울 때 힘 조절을 하지 않아도 되자 목줄이 풀린 기분이 들 정도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남은 능력치를 아껴둘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의 몸은 아직도 불균형했다. 체력과 재생에 투자하지 않았으니 싸움이 길어지거나 부상을 입으면 그대로 죽을 수도 있었다. 여유만 있었다면 체력과 재생 역시 투자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불가해가 그의 근처에 나타난 이상, 그는 남은 능력치 12 전부를 지혜에 투자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지혜는 언젠가 올려야 하는 능력치였고, 지혜가 부족하면 불가해가 나타날 때마다 도망치는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여차하면 바로 도망치자.’
남은 능력치를 전부 지혜에 투자했음에도 그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안개 바깥으로 넘어갈 때 만났던 불가해 ‘미스크네’를 사냥하려면 지혜가 99까지 필요했다. 그러니 지혜가 22로 올라간다고 해서 이번에 만난 불가해에 대해 무언가를 알아낼 거라는 보장은 없었다.
‘분배는 다 했는데… 뭐 바뀌는 건 없나?’
지혜에 능력치를 투자했음에도 극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두통이 잠깐 일어났을 뿐이었다. 근력과 민첩, 내구를 투자했을 때 몸이 강해지는 느낌이 들었던 것에 비하면 미약한 반응이었다. 지혜가 전투에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는 예상이 적중한 것이다.
‘아깝지만 오늘은 돌아가야지. 또 처음부터 시작하는 건 아까우니까.’
그렇게 결정을 끝내고 돌아가려고 발걸음을 돌리려던 순간, 그의 머릿속에 속삭임이 울려 퍼졌다. 불가해에 대한 정보가 갱신되었음을 알려주는 목소리였다.
그리고 속삭임이 말하는 내용에 귀를 기울이려던 순간, 그는 조금 전 불가해가 있던 건물 입구에서 누군가가 인기척을 내며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초췌한 인상의 중년 남자였다. 중년 남자는 양손을 들어 저항할 의사가 없으며 다가왔다.
재환은 그에게 총을 겨누며 경계했고, 남자는 다급해 하며 말했다.
“쏘지 마세요! 전 사람입니다! 사람이라고요!”
하지만 그의 말이 무색하게도, 재환은 쉽게 총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속삭임이 또 다시 경고했기 때문이다.
[사냥 대상: 불가해(不可解) → 날개 달린 주시자 , 크로드의 권속 [분류: 권속] [성자(星子)로 우화하기 직전인 괴물. 사냥꾼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괴물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