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131
끝자락의 풍경 (4)
기록. 이제 와서. 의미는 없겠지만. 마지막 기록을 남깁니다.
처음 그 괴물을 죽이자고 결심했을 때, 사실 난 이미 알고 있었어요. 아, 저건 우리 손으론 죽일 수 없겠구나. 죽이기는커녕 죽지나 않으면 다행이겠구나.
사실 당연한 거잖아요. 상대는 인간을 초월한 괴물인데 사냥꾼이 아무리 날고 기어봐야 무슨 소용이겠어요.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들 알고 있었을 거고, 언젠가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건 다들 알고 있었을 거예요.
그래도 나는 포기하고 싶지 않았어요. 내가 투자한 시간이, 내가 흘린 피랑 땀이 무의미한 게 아니었단 걸 증명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나는 별을 연구하고, 사람을 연구하고, 신기술 개발했죠. 그 괴물을 죽이기엔 턱없이 부족했지만, 그래도 나름 성과를 냈다고 자부해요.
하지만 사실. 사실 연구가 순조로워질수록 나도 무언가 잘못되고 있단 걸 알고 있었어요. 아니, 알 수밖에 없었다는 게 더 맞는 말이겠죠. 별에 대해 알면 알수록 사람과 별 사이의 격차를 실감할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어째서 저토록 위대한 존재가 인간에게 관심을 보일까.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죽일 수 있는 사냥꾼을 내버려두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째서 한강에 자리 잡은 심장은 오수를 정화하여 도시 곳곳에 공급하는 걸까. 도대체 별이 인간을 사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피어오른 의문은 점차 내 정신을 좀먹었어요. 생각하면 할수록 나란 인간의 바닥이 드러나는 것만 같았거든요. 아이디어도, 연구 성과도, 시설과 자원도. 시간이 지날수록 모두 고갈되었고, 이대로 가면 미쳐버리는 건 시간문제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나는. 당신도 이미 알고 있겠지만. 거미줄에 묶인 까마귀를 찾아가 지식을 청했어요. 그리고 저 빌어먹을 음악 괴물을 어떻게 죽일 수 있는지 물어봤죠.
저 괴물이 죽는 모습을 볼 수만 있으면 그다음은 어떻게 돼도 상관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그 대가로 자아를 잃어가고, 꼭두각시가 될 테지만, 그래도 사실 상관없었어요. 너무 지쳐서 포기하고 싶었던 건, 사실 나도 마찬가지였으니까요.
그리고 끝이 다가오기 직전. 왜 내가 아니라 당신이 마지막인지 알게 됐어요. 어째서 마지막에 남는 게 내가 아니라 당신인지. 어째서 당신이 이토록 별들에게 총애를 받은 건지. 희미하게나마 알게 됐어요.
당신은… 당신은….
아. 아아… 이제는. 이제는 의식이 사라져가요. 당신이 과거를 뒤적거리고, 내 얘기를 읽어내는 건 아마 먼 훗날의 일이겠죠. 당신이 성공했을지, 실패했을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내가 읽어낼 수 있는 건 미래의 방향성 정도가 고작. 이니까.
당신. 당신은 후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나도 가끔은. 내가 나였다는 걸 잊어버릴 때면. 그날 까마귀를 찾아가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 생가.ㄱ. 하니까. 요.
아. 목소.리가… 이.제는. 끝난… 거군요… 그래요… 이렇게… 끝이… 나는…
* * *
눈을 뜬 재환은 자신에게 멍한 시선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정신을 차렸음에도 그는 여전히 몽롱한 기분이었고, 아직도 꿈을 꾸는 것만 같아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아… 그랬지…’
그는 지난날을 복기하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날 사냥은 분명 순조롭게 끝났다. 거미줄에 걸린 까마귀. 갈기갈기 찢어진 날개. 살결을 가르고 심장을 찌르던 감각. 하나하나 되짚기 시작하자 처참하게 죽은 까마귀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어렴풋이 그려졌다.
‘그리고. 그리고 그다음은?’
하지만 기억나는 것은 거기까지. 기억을 되짚어보아도 그날 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았다. 기억나는 것은 데이드럼이 죽고, 까마귀가 사라졌다는 것뿐.
까마귀는 데이드럼의 심장으로 무엇을 했는가. 무엇을 얻고 무엇을 보아 무엇을 낳았는가. 알 수 없다.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기에 그날 그는 자신의 눈을 뽑아내었고, 긴 꿈에서 깨어나 되돌아오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렇기에 모든 것이 원래대로 되돌아왔음에도, 그는 또다시 두 눈을 뽑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며 되뇌었다.
‘여기는… 나는… 돌아온 거야… 돌아온 게 맞아.’
서울의 모습은 여전했다. 사방에 널브러진 시체와 살덩어리. 괴물들이 뒤척거리는 소리.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비명. 피비린내와 시체 썩는 악취. 스산한 밤 공기와 창백한 달빛. 그리고 사냥이 끝난 자리에 남겨진 별의 심장과 이를 담은 ‘그릇’.
또렷하고 정갈한 이미지. 너무나 익숙한 풍경 앞에서 재환은 오히려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렇지만 나는… 난… 돌아온 게. 맞는 건가?’
지금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을 정녕 현실이라 부를 수 있을까.
이 또한 누군가의 꿈에 불과한 것이고, 나는 그저 손짓 한 번에 사라지고 말 신기루인 게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믿으며 무엇을 쫓아야 할까.
알 수 없다. 알 수 있을 리가 없다. 시간과 공간은 애초에 사람의 것이 아니었으니.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다른 이들을 잡아먹으며 연명하는 것 뿐. 그것이 사냥꾼이란 생물의 본질이자 한계였으며, 본질을 직시하는 것과 동시에 그는 현기증을 느꼈다.
그날 예지력으로 보게 되었던 환상. 그날의 기억을 되짚으면서 보게 된 풍경. 이미 알고 있던 지식. 그리고 추리를 하면서 피어오른 의심. 이 모든 것들이 ‘기억’이란 이름으로 뒤섞이기 시작하자 그는 토하기 직전인 취객처럼 입을 틀어막으며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끝. 그래… 끝인 건 맞지.’
그는 애써 호흡을 가다듬으며 주변을 살폈다.
현실감. 그에게는 악몽에 휘둘리지 않을 정도의 현실감이 필요했고, 이를 위해서는 감각을 집중해 현실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했다. 지금 당장 집중하지 않으면 이성을 잃고 무너질 것만 같았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지나치게 파고드는 것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것과 별다를 게 없었다.
‘내가 바란 끝은… 그런 게 맞아.’
그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의식을 한 곳으로 집중시켰다. 정신을 추스르려면 우선 잡념에서 벗어나야 했다.
‘회귀도 없고, 성자도 없이. 사람만이 남은 세상. 그걸 위해서라면… 다른 건 전부 망가져도 상관없어. 죽을 수 있을 때 죽고, 다시는 살아나지 않을 수 있다면… 난 그걸로 충분했으니까.’
죽지 못해 시작한 일이었다. 회귀라는 굴레가 없었다면 그는 애초에 사냥꾼이 될 수 없었고, 사냥꾼이 된 직후에도 이는 마찬가지였다. 지금 당장 죽더라도 언젠가 되살아날지 모른다는 공포가 그를 죽지 못하게 하였으니. 그는 사냥꾼이기 이전에 공포의 노예나 다름없었다.
‘그래. 그래… 당신들이 맞아. 나는 두려웠던 거야. 그러니까 발버둥친 거고.’
그는 핏물과 살점을 뒤집어쓴 자신의 몰골을 살펴보았다. 이 피는 데이드럼의 것인가. 크로드의 것인가. 아니면 다른 괴물의 것인가. 잠시 기억을 되짚던 그는 이를 무의미한 의문이라 여기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시체처럼 창백한 달빛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게 누구의 피인지. 크로드는 결국 어떻게 된 건지. 내가 잠든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런 생각은 이제 무의미하겠지. 세상이 어떻게 변해도.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거여도. 내가 나인 이상해야 할 일은 변하지 않으니까.’
시퍼런 달빛 아래 그는 자신의 왜소함을 인정하였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인간은 인간. 아무리 격이 높아져 성자에 가까워진다 하여도 성자에 이를 순 없었고, 설령 성자가 된다 하여도 이는 달에 예속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저 거대한 달빛 아래 성자와 인간은 평등하였으며, 인간이 성자를 사냥하는 기적 역시 달빛의 인도 아래 이뤄진 결과물이었다. 달이 사냥꾼의 심장에 박차를 가하는 이상, 그는 마지막까지 괴물 사냥꾼일 수밖에 없었다.
‘해야 할 일을 하자.’
그는 숨을 내쉬며 정신을 다잡았다. 사냥은 이제 막바지에 이르렀고, 앞으로 몇 걸음만 더 나아간다면 이 기나긴 회귀를 끝낼 수 있었다.
‘처음 그랬던 것처럼. 마지막까지 할 일을 하면 돼. 지금까지도 늘 그랬으니까.’
마음을 다잡자 어지러웠던 정신이 진정되었다. 속이 뒤틀리던 기분도, 들썩이던 호흡도. 정신이 안정을 되찾자 모두 정상으로 되돌아오기 시작했으며, 몸을 추스르는 것을 끝낸 재환은 마침내 심장을 담은 ‘그릇’을 향해 시선을 돌릴 수 있었다.
데이드럼. 크로드. 그리고 데이드럼을 따랐던 성자들. 찬란했던 별들의 심장은 하나로 모여 정갈하게 ‘그릇’에 담겨 있었다. 은빛으로 빛나는 유리공예품에 보석이 박힌 모양새였다.
‘정성이… 가득 담겨있군.’
재환은 조심스럽게 심장을 두 손으로 쥐어 그릇에서 꺼내었다. 성자의 군집과 다를 게 없는 이 심장을 이토록 안정된 형태로 보존한 것이 누구일지는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심장에 손을 댄 것은 지금은 사라져버린 까마귀 성자였으니, 이 심장과 ‘그릇’ 역시 까마귀 성자의 작품이라 봐도 무방하였다.
‘심장을 챙겼으니 샬롬에 반납하면 이번 일은 이제 끝이겠지.
꺼낸 심장을 조심스레 품에 안은 재환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릇’을 내려다보았다. 그릇은 얼굴이 사라진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었고, 복부는 절개되어 심장을 담기 좋은 형태로 굳어있었다. 절개된 부위 곳곳에 수은이 도금되어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이 ‘그릇’이 한때 살아 숨 쉬던 사람이었음은 문외한이 보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다만 그럼에도 그가 ‘그릇’을 눈여겨본 이유는, 이 그릇이 본래 그와 같은 사냥꾼이었다는 것 역시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여자는 데이드럼이 죽는 걸 보기 위해 모든 걸 바쳤다고 했지. 그 결과가… 이거였군.’
먼 옛날. 그는 까마귀 성자의 꾐에 넘어간 사냥꾼을 만난 적이 있었다. 신실한 신부였던 그 사냥꾼은 모종의 이유로 까마귀 성자의 지식을 내려받았으며, 온몸이 뒤틀린 끝에 괴물이 되어 그의 손에 살해당했다. 이 여자도 그때와 비슷한 경우라고 생각하자 재환은 그릇이 된 시신 향해 조용히 묵념했다.
“우리가 그리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당신 도움을 받았던 건 사실이니까. 당신의 사혈은 꽤 쓸만했어.”
그는 수은 칼날을 촉매로 활용하여 주변에 있던 괴물의 피에서 기름을 추출하였다. 그리고 한 아름 모은 기름을 시신 위에 부은 뒤 라이터로 불을 붙여 화장을 진행하였다.
“그러니까 데이드럼은… 나 혼자 죽인 게 아니야. 당신 덕도 있는 거라고.”
죽은 사냥꾼의 시신은 불꽃과 함께 타올랐고, 뼈와 살은 재가 되어 바람을 타고 흩날렸다. 그는 이러한 장례가 그저 자기만족에 불과하단 걸 알고 있었지만, 하늘로 흩어지는 잿가루는 그에게 한 줌의 위안을 주었다.
이제 앞으로 단 하나. 한강 이남에 있는 심장의 성자를 사냥한다면 이 기나긴 사냥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고, 그렇게 된다면 자신 역시 언젠가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질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나는 내 할 일을 해야지.’
죽은 사냥꾼의 시신이 거의 다 타오른 것을 본 그는 별의 심장을 챙겨 용산역으로 향했다. 이제 죽은 사냥꾼의 시신이 괴물에게 욕보일 일은 없으니, 별의 심장을 샬롬에 반납한 뒤 또다시 사냥에 나설 준비를 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