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132
사냥의 끝 (1)
용산역 지하. 재환은 별의 심장을 반납하기 위해 어두컴컴한 복도를 지나 계단을 내려갔다. 심연 너머에서는 사냥꾼의 제단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고, 별의 심장을 가지고 다가갈수록 제단에서는 시커멓게 썩어버린 손이 하나둘 솟아올랐다. 그리고 마침내 한 걸음만을 남겨놓았을 때는 무성히 자라난 손의 무리가 숲을 이룰 지경으로 만개하였다.
[어서 우리에게 심장을 다오. 이 긴 사냥을 끝낼 광명을 다오. 사냥의 끝을. 사냥의 끝에 있을 안식을 우리에게 건네어다오.]저 뻗어 나온 손에 얼마나 많은 염원이 담겨있는지. 그리고 저 염원의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고 있었기에. 재환은 두 손을 뻗어 사냥꾼들의 손에 별의 심장을 맡겼다.
[앞으로 단 하나.]심장을 받아 든 사냥꾼들은 말했다. 그들의 손에 넘겨진 심장은 아가리를 벌린 제단을 통하여 샬롬으로 사라졌다.
[단 하나만 더 모으면 우리 역시 끝을 볼 테니.]제대로 심장을 인계한 재환은 목소리를 뒤로한 채 지상으로 향했다. 그는 저들이 하려는 말을 이미 알고 있었다.
[너의 안식을 위해. 우리 모두의 안식을 위해. 마지막까지 네 사명을 기억하라.]배신하지 마라. 흔들리지 마라. 네가 사냥꾼임을 잊지 마라. 너는 우리 모두를 위해 달을 사냥해야 한다. 무엇을 위해 피를 흘리고 피를 흘리게 했는지 떠올려라.
세뇌와도 같은 염원을 하나하나 곱씹으며. 지하를 빠져나와 지상에 도착한 재환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달은 여전히 시체처럼 창백하였으나. 그는 저 달빛이 이제는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만큼 적응이 된 거겠지.’
그는 익숙한 달빛을 뒤로한 채 자신의 은신처로 향했다. 한강을 넘어 심장의 성자를 사냥하려면 적지 않은 준비가 필요했다. 강을 건너기 위해 준비해야 할 마약. 넘어간 다음에 사용할 무기. 하수도에 풀어놓을 독약……
필요한 것을 하나하나 구상하던 그는 앞으로 보게 될 지옥을 떠올리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모두가 그럴 테고… 그만큼 더 애절하겠지.’
잠시 정신을 가다듬던 그는 마음을 다잡은 뒤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해야 할 일은 많고, 시간은 무한하지 않으니. 오래전에 닳아버린 맹세는 삐걱거리는 발길을 재촉했다. 끝이 머지않았다는 예감만이 이제는 유일한 위안거리였다.
* * *
매일 한강을 방문한 지 31일째 되던 날. 오늘치의 작업을 끝낸 재환은 텅 빈 ‘사료 자루’를 버린 뒤 근처에 있는 벤치에 앉아 한강 변을 바라봤다. 한강에 처음 도착했을 때에 비하면 강물에 자리 잡은 촉수 군집의 움직임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하였고, 덕분에 그는 처음으로 한강 변에서 적막함을 느낄 수 있었다.
‘드디어… 드디어 한강을 건너는군.’
투여한 ‘사료’의 약효가 돌기 전. 그는 머지않아 다가올 끝을 떠올리며 생각에 잠겼다. 저 강을 건너는 순간 돌이킬 수 없다는 예감이 확신에 가깝게 떠오른 탓이었다.
‘저길 건너면 이제 끝이 보이겠지. 달은 그릇으로 떨어지고, 사냥꾼을 달을 사냥하고, 이 긴 악몽도 끝날 테니까.’
그는 언제나 끝을 갈망하였다. 사람이 괴물이 되는 이 세상은 그에게 악몽이었고, 괴물과 보내온 죽고 죽이는 나날은 두려움과 고통으로 물든 지옥 길이었다. 그에게 이 뒤틀려버린 세상은 언젠가 끝나야 할 악몽이었고, 이 악몽의 직접 끝내기 위해 그는 자신의 피와 살을 불태웠다.
이제 얼마 지나지 않으면 그토록 바라 마지않았던 ‘끝’을 손에 쥘 수 있었지만, 강을 건너 ‘끝’을 손에 쥐기 직전이 되자 그는 두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이 사냥의 끝에 무엇이 남게 될지 그는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고, 그 끝에 남는 것이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원망밖에 남지 않을 거야.’
그는 눈을 뜬 채 한강 너머를 바라봤다. 지난 31일간 그는 한강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미리 관측하였고, 이에 대한 대비 역시 끝내두었다. 그가 강을 건너고 나면 한강 너머의 주민들이 일궈놓은 모든 것이 무너질 것이고, 그들이 사랑하던 것들 역시 모두 조각날 것이다.
언제가 까마귀의 꿈속에서 보았던 것처럼, 사냥이 끝나고 난 뒤에 남는 것은 부서지고 멸망한 세상뿐. 웃음과 행복 따위는 모래밭에 숨어버린 바늘만큼이나 찾기 힘들 것이 분명했다. 이는 그에게 사냥을 종용한 사냥꾼들 역시 알고 있는 사실이었고, 그럼에도 그들은 그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괴물을 사냥하지 않으면 아침은 오지 않는다.] [괴물의 피를 마셔 힘을 취하라] [악몽의 근원인 달을 사냥하라]세뇌와도 같은 속삭임에 이끌려 그는 사냥꾼이 되었으나, 이제는 더 이상 저 속삭임에 매달리지 않아도 되었다. 그때의 그 속삭임이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이 아님을 이제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냥꾼들의 말을 맹신할 정도의 순진함은 이미 닳아 없어진 지 오래였다.
‘지금이라도 멈출 순 있어. 이제 이 땅에 괴물다운 괴물은 몇 없으니까. 내가 여기서 멈춘다고 해서 누가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이 멸망해버린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그는 많은 것을 보았고, 많은 것을 배웠으며, 무수히 많은 괴물을 사냥하였다. 그렇기에 그는 이 땅의 규칙을 지키는 이상 더 이상 자신에게 위협이 될 만한 존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이대로 회귀의 굴레에 순응한다면 영원에 가까운 시간을 누릴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힘과 지혜는 이미 충만하였고, 언젠가 저 창백한 달과 같은 초월적인 존재가 이 땅에 강림하지 않는 이상 그는 영원히 이 도시에서 살아남을 자신마저 있었다. 이미 많은 사람과 괴물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 역시 이 세상에 적응한 셈이었다.
‘달을 사랑하라. 달을 사냥하라.’
그는 고개를 들어 올려 시퍼렇게 물든 달을 노려봤다. 달빛은 여전히 시체처럼 창백한 빛깔로 지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사냥과 사랑이 다를 게 없다면 사냥하는 쪽은 사실 반대일지도 몰라. 방식이 뒤틀려있어도 달은 늘 우리를 사랑해왔으니까.’
오랜 세월 동안 서울에서 살아남으면서 그는 확신했다. 달은 인간을 증오하지 않았다. 다만 사랑하는 방식이 뒤틀려있을 뿐.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 자체는 지극정성이라고 보아도 좋았다.
서울 전역에 깨끗한 물을 공급하는 것. 시간을 되돌려 죽은 사람을 되살려내는 것. 그리고 영원에 가까워진 시간에 적응하는 사람과 괴물이 등장하는 것. 모두 인간을 향한 관심과 애정이 없다면 일어날 수 없는 기적이었고, 손짓 한 번에 사라지고 말 미물에게 베풀기엔 과분할 정도의 호의였다.
‘그때 그 속삭임은 정말 샬롬의 목소리였을까.’
그는 사냥꾼이 되었던 날의 속삭임을 떠올리며 한 손으로 두 눈을 가렸다. 가려진 시야 너머의 어둠을 응시하자 잠시나마 빛에서 온전히 자유로워진 기분이 들었다.
‘아니면 사냥꾼 성자의 목소릴 빌린 달의 목소리였을까.’
까마귀 성자의 심장까지 맛을 본 덕분일까. 한계까지 무르익은 지력은 지나온 날들에 의문을 표했다. 한낱 인간인 그가 인지할 수 있는 것은 달 역시 알고 있을 것이고, 그가 본 미래 역시 달 역시 모를 리가 없었다.
달은. 한없이 전지에 가까운 존재는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그런 존재가 설령 죽는다 하더라도 그 죽음이 영구적인 소멸일 거란 보장은 있는가. 달이 죽음으로써 달보다 더 끔찍한 무언가가 깨어날 가능성은 없는가. 달이 자신을 죽일 사냥꾼 성자를 ‘관리자’ 취급한 이유는 무엇인가. 달은 어찌하여 사냥꾼으로 하여금 자신을 사냥할 수 있게 하는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 속에서 그는 눈꺼풀 너머의 어둠을 응시하며 생각에 잠겼다.
‘전부 다 기만일 수도 있지. 깨어있다고 착각하는 것뿐이고, 지금도 꿈을 꾸고 있는 걸지도 몰라. 그 까마귀가 할 수 있는 걸 달이 하지 못할 리가 없으니까.’
무엇이 진실인지는 영원히 알 수 없었다. 상대는 시간과 공간마저 마음대로 주무르는 초월자. 불가해 그 자체인 괴물의 심리를 인간의 지혜와 두뇌로 꿰뚫어보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잡생각이 많아지는 걸 보면, 나도 늙기는 늙은 건가.’
그는 눈을 가린 손을 치운 뒤 한강 너머를 바라봤다. 31일간 뿌려온 ‘사료’가 마침내 결실을 맺은 덕분인지 한강 변에는 폐사한 촉수 덩어리들이 수면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한 가닥 한 가닥. 한 사람 한 사람. 사람이 괴물이고 괴물이 사람인 세상에서 저 촉수 덩어리가 본래 무엇이었을지는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한껏 몸부림치던 촉수 군락이 시들어버린 것을 보며 그는 마음을 굳혔다.
‘이제 와서 그만둔다는 선택지는 애초에 없는데 말이야. 그 까마귀 때문에 잡생각만 늘었어.’
서울의 성자들이 거의 다 사라졌음에도 세상은 여전하였다. 암브락사스가 죽고, 블레인이 죽고, 데이드럼이 죽었어도 거리에는 여전히 괴물과 식물인간이 득실거렸다. 그렇기에 달이 죽고 난 다음에도 세상이 변하지 않을 가능성은 여전하였으며, 그 끝에 남은 것은 눈물과 비명뿐인 세상일지도 몰랐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지금까지 게걸스럽게 마셔온 피에는 무슨 의미가 남을까.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그는 죽은 촉수의 시체를 응시하며 되뇌었다.
‘후회하겠지. 어쩌면 평생 할지도 모르고.’
머릿속에 든 연금술 지식은 지금이라도 마약을 제조하여 스스로 안식을 취하라고 재촉하였다. 구원은 사냥이 아닌 약물에 있으니. 마약을 통하여 신경을 조율하는 것은 이 무한한 시간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었다.
‘그래도 지금 가지 않으면 나는 후회조차 하지 못하게 될 테니까. 나는 그게 제일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는 거고…’
잠드는 것 자체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약간의 약물만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식물인간이 되어 영원히 안식을 누릴 수 있었다. 시간의 굴레에 벗어나 한 줌의 번뇌 없이 사는 삶이란 이 역겨운 세상에서 벗어나는 가장 우아한 방법이었다. 그렇기에 이 세상은 영원히 잠든 식물인간과 이성을 잃은 괴물로 가득한 것이었고, 잠들지 못한 이들만이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칠뿐이었다.
‘그래도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니까. 사람들이 전부 잠들고 나면… 달은 더 이상 우릴 사랑하지 않을 테니까…’
영원히 잠들어있는 삶이란 죽은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리고 죽은 사람은 더 이상 사랑을 나눌 수 없으니, 달을 사랑하는 것 역시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더 이상 사랑받지 못하게 된 달은 얼마나 인간을 증오하게 될까. 그렇게 된다면 이 세상은 지금보다 얼마나 더 끔찍한 지옥으로 변하게 될까.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미래를 떠올리던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강을 건널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가자. 아직 움직일 수 있을 때, 할 일을 해야지.’
몸과 마음은 이미 넝마와 다를 게 없었다. 데이드럼을 사냥하면서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고, 크로드를 상대한 뒤에는 정신마저 너덜너덜해졌다. 그럼에도 그는 한시라도 빨리 이 악몽이 끝나길 원했기에. 그리고 다음 회귀를 기다리는 것마저 지쳤기에. 사냥꾼은 늙은 정신을 다잡아 강을 건너는 보트에 몸을 실었다. 이제 끝이 머지않았다는 사실만이 지친 심신을 위로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