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133
사냥의 끝 (2)
숨이 꺼져가고, 주마등이 켜질 무렵. 나는 죽어가는 이 도시의 기원에 대해 떠올렸다.
신앙촌. 그래. 한강 이남에는 신앙촌이 있었다. 심장의 성자에게 이끌린 회귀자들이 뜻을 모아 세운 이 마을은 자그마한 집회로 시작하여 한강이남 전역에 널리 퍼져 나갔고, 혼란스러웠던 시민들에게 평화와 안녕의 뜻을 전파하였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시간은 무한하고 생명은 영원하니. 오늘 죽은 가족과 이웃은 또 다른 오늘이 오면 부활할 것입니다. 처음 푸른 달이 떴던 날과 마찬가지로. 기다림을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우린 다시 먼저 돌아가신 분들에게로 돌아와 인사를 나눌 겁니다.”
“원형을 잃고 뒤틀린 분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다르다 하여 흉측하다 여기지 마시고 다르다 하여 두렵다 여기지 마십시오. 모습과 기질이 달라졌다 할지라도 그분들 역시 우리와 같은 사람입니다. 그분들이 한때 사람이었던 이상 공존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고, 다시 가족과 이웃으로 맞이할 방법 역시 얼마든지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무한한 만큼, 우리는 반드시 답을 찾아낼 겁니다.”
초기에는 다들 회귀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사이비와 감언이설이 넘쳐나던 시기였고, 폭력과 기만에 찌들어가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시민들 중 그들의 말을 주의 깊게 들었던 것은 슬픔을 이기지 못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던 이들뿐. 하루하루 살아남기에 급급하던 대부분의 시민들은 회귀자들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밤을 지새웠다.
적어도 자신들 역시 회귀자가 되기 전까진. 그리고 ‘■■’이라 불리던 자신의 이웃들 역시 회귀자가 되기 전까진 그랬다.
‘■■’. 아. ‘■■’. 이제는 발음하는 법도 가물가물한 그 이름. 회귀자들은 ‘■■’을 두려워하던 시민들을 향해 경건하게 말하였다.
“이 물. 물의 근원이신 성모님의 위대한 피와 살을 녹여 만든 이 성수를 마신다면. 우리는 모두 영원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수상쩍은 피와 젖이 섞인 음료. 달빛에 닿을 때면 별빛으로 빛나던 그릇. 신비와 미지가 뒤섞인 ‘성수’를 들어 올리며 성직자는 말했다.
“무한한 시간. 그리고 무한한 식수와 식량. 그리고 영원을 함께할 이웃까지. 성수를 마셔 눈을 뜰 수만 있다면 여러분 역시 자욱한 안개와도 같은 두려움에서 벗어나 온전히 이 세상과 세월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차분하게 미쳐있는 그 목소리에 홀린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미쳐있던 사람이라면 그 말을 믿어도 손해 볼 것이 없다 여기기 마련. 이미 소중한 사람을 잃어 지옥과 다를 게 없는 세상이라면.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이유 따윈 없는 게 현실이라면.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독약을 마시듯 저 성수를 들이키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
“보입니다. 보여요!”
“그래, 그렇게 된 거였네요. 이제 전부 기억나요. 우린 계속 잊고 있던 거네요.”
“아! 이제야! 이제는! 다시 시작할 수 있어요!”
회귀자의 숫자는 하루하루 늘어났다. 성수를 마셔 회귀자로 각성한 이들이 가족과 이웃에게 성수의 기적을 몸소 간증하였기 때문이다. 약간의 시행착오와 불화. 그리고 의심과 불안의 시간 끝에 사람들은 하나둘 성수를 받아 마시었고, 그들은 모두 성수의 근원인 성모를 향해 절을 올리며 땅바닥에 입을 맞추었다.
“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시간은 무한하니까요. 우리 모두가 힘을 모은다면. 그리고 끝까지 믿음을 잃지 않는다면. 영원한 평화 역시 꿈은 아닙니다!”
시간은 무한하다. 자원 역시 무한하다. 영원을 함께할 동반자 역시 준비됐다. 남은 것은 이 끝없는 시간을 활용하여 이 땅을 낙원으로 개간하는 것뿐. 원래의 몸과 지혜를 잃고 ‘■■’이라 불리게 된 이들을 되찾아 함께 어우러질 수만 있다면 두려움 따윈 영원히 사라지리라.
그렇게 하나 된 믿음으로 뭉친 회귀자들은 서로의 힘과 지혜를 모아 도시를 개간하였다. 그들은 한때 ‘괴물’이라 불리우던 사람들과 하나씩 교감하려 하였고, 끊임없이 죽거나 다쳤음에도 불구하고 마주하길 멈추지 않았다.
“우리 아들은 패스트푸드를 좋아했어요. 다음 회귀 땐 좋아하던 음식을 좀 준비해둘까 봐요.”
“김 부장님은 트로트 매니아셨어요. 좋아하시던 음악을 틀어 드리면 기분이 좀 풀리지 않을까요?”
“903호 할머니는 기독교 신자셨어요. 천주교인지 기독교인진 모르겠지만, 문 앞에 십자가가 걸려있던 건 기억나요.”
그들은 ‘■■’이라 두려워하던 사람들의 이름을 되뇌었다. 그들이 설령 본래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먼 옛날에 좋아하던 것과 싫어하던 것을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그들은 뒤틀려버린 사람들을 한사코 ‘■■’이라 부르지 않았으며 이들을 멸시하지도 않았다.
그들이 우리의 왼손을 물어뜯으려 한다면 오른손을 내어주자. 양팔이 전부 다 뜯어졌다면 그다음에는 두 다리를 모두 내어줘 보자. 그래도 안 된다면 머리를. 가슴을 배를. 모든 걸 내어주어도 안 된다면 노래를 부르자. 가장 좋아하던 노래를. 혹은 가장 싫어하던 노래를. 그들이 우리와 함께 어우러지던 시절의 기억을 되찾을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무엇이든 준비하여 앞길에 살포시 내려놓아 밟고 가게 하자.
무지한 자들은 이를 미친 짓거리라 부르며 질색했다. 아무리 시간이 되돌아간다 하더라고 지금 당장 느껴지는 고통마저 사라지는 아니었으니까.
그럼에도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다. 아무리 많은 이들이 지쳐 쓰러질지라도. 망가진 이들을 한강에 수장시켜야 했을 때도. 그들이 크고 작은 팔다리를 흐느적거릴 뿐인 몸으로 뒤틀렸을지라도.
‘■■’이 되어버린 우리의 가족과 이웃을 되찾기 위해. 그리하여 더 이상 이 땅의 모든 이들이 ‘■■’이란 이름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우리는 ‘■■’이란 이름을 없애기 위한 성전을 계속했다.
“효과가 있어요! 이제 우리 엄마가 저를 보고 달려들지 않아요!”
“903호 할머니가 저를 봐줬어요. 이제 땅바닥에 있는 잡동사니를 주워 먹지도 않고요!”
“임 실장님이라고 하셨죠? 그분 증세가 많이 호전됐어요. 음악 치료가 효과가 있는 모양이에요.”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다행스럽게도 피와 눈물을 흘려온 나날은 결국 보답 받았다. 이성을 잃고 사람을 해치던 이들의 숫자는 나날이 줄어들어 갔고, 사람과 어울려 지내는 이들의 숫자는 하나둘 늘어났다. 비록 뒤틀려버린 몸까지 원래대로 돌아오진 못했지만, 생김새가 달라진 것이 이제 와서 무슨 대수랴.
우리는 이제 사람을 사람으로 볼 수 있다. 사랑하는 이들을 마음껏 껴안을 수 있다. 두려움 없이. 혐오 없이. 서로가 서로를 받아들이며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은 서로를 이름으로 부르며 이웃으로 여기게 되었다.
기나긴 밤을 지나. 피와 안개로 뒤덮인 이 도시에서. 우리는 마침내 미지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서울을 사람의 도시로 개간하였다.
‘■■’이 없는 도시. 이 아름다운 울림을 자축하며 우리는 회귀의 끝이자 시작인 순간이 올 때마다 축배를 올렸다.
‘■■’은 없다. ‘■■’은 없다. 이제 이 도시에 ‘■■’은 없다. ‘■■’이란 말을 쓸 이유마저 없다. 우리는 마침내 ‘■■’이 없는 세상을 쟁취해냈다. 경배하고 찬송하라. 이 모든 은혜가 모두 지하에 계신 성모님 덕이니. 그분의 은총을 받은 신앙촌의 주민은 모두 땅에 입을 맞춰 감사를 표하라. 그리하면 우리는 이 영원한 낙원에서 천수를 누릴지니. 이 어찌나 찬란한 미래란 말인가.
마침내 쟁취해낸 평화에 우리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얼싸안았다. 이제 이 땅에는 오직 사람만이 남았으며, 남은 사람은 모두 서로의 이웃이자 가족이었다.
그렇게 회귀가 반복되고. 기나긴 평화가 반복되었을 때. 어느새 ‘■■’라는 단어마저 발음하기 힘들어지게 되었을 무렵. 언제까지고 계속될 것만 같던 평화는 한 신자가 죽어가며 외친 한 마디에 끝을 맞이했다.
“■■. ■■이 나타났다!”
죽어가던 신자의 외침에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 ■■이라니. 어찌나 오랜만에 들은 말인지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불경하다는 생각보다는 생경하다는 생각이 앞섰다. 생김새가 조금 다르고 기행을 일삼던 이웃을 ‘■■’이라 부르던 때가 있었으나 이는 먼 옛날의 이야기였을 뿐. 이들을 편견 없이 받아들여 서로 어울려 지내던 신앙촌의 주민들에게 ‘■■’이란 단어는 발음하는 법조차 가물가물할 정도로 사어에 가까운 말이었다.
그렇기에 ‘사람을 그렇게 부르면 안 됩니다.’라고 말을 할 법도 했지만, 차마 그런 말을 하진 못했다. 말을 꺼낸 신자의 몰골 때문이었다. 아무리 죽음과 윤회에 익숙해진 신자들일지라도 하반신이 잘린 채 한강 변에서 신앙촌까지 기어온 신자의 절실함에 무심할 순 없는 법이었으니까.
결국 비명에 가까운 외침이 끝나자 한계를 맞이한 신자는 곧바로 목숨을 잃었고, 남겨진 사람들은 ‘■■’라는 단어를 곱씹으며 ‘■■’의 정체가 무엇일지 의견을 나눴다.
무엇이 저 신자를 그토록 겁에 질리게 했을까. 무엇을 두려워했기에 저 신자는 죽지도 못한 채 수백 미터를 기어왔을까. 한강 이남의 모든 사람은 가족이자 이웃일진데 어찌하여 ‘■■’라는 말을 입에 담은 것일까.
우리는 모두 머리를 모아 지혜를 쥐어짜 내었다. 기도를 올리고 기록을 남기며 기회를 엿보았다.
매일 밤 가족과 이웃이 사라지고, 상수도에서는 썩은 물이 흘러나오며, 회귀가 끝날 때마다 이성을 잃고 미쳐 날뛰는 사람이 나날이 늘어갔음에도. 우리는 희망을 잃지 않고 ‘■■’의 정체가 무엇인지 밝혀내려 안간힘을 다했다.
회귀자. 우리는 모두 회귀자이니. 오랜 세월 쌓아온 지혜와 경험이라면 ‘■■’마저 능히 상대할 수 있으리라.
그렇게 믿고 거리에 불을 밝히며, 우리는 우리가 지닌 가장 끔찍하고 위험천만한 무기를 들고 ‘■■’을 찾아 나섰다. 우리는 이 경건한 도시를 무너뜨릴 ‘■■’이 있다면 마땅히 양지로 끌어낼 수 있으리라 믿었으며, 양지로 끌어낼 수만 있다면 ‘■■’을 우리의 이웃으로 만드는 것 역시 가능하리라 믿었다.
하지만. 하지만 매일 아침이 밝아 올 때면. 신자의 수는 줄어들고 백치의 수는 늘어났으며, 찬란했던 신앙촌의 불빛은 사그라들어만 갔다. 곳곳에서 들려오던 복음과 찬송의 울림은 ‘■■’가 지휘하는 음악을 거쳐 비명과 괴성으로 변질되었고, 서로 손을 잡고 화기애애하던 사람들의 물결은 이제 서로를 물고 뜯는 아귀 지옥으로 변해버렸다.
그렇게 하나, 둘. 사람의 숫자가 나날이 줄어들고. 이제 성모님의 침소를 지키던 신자마저 자취를 감추게 되었을 무렵.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던 나는 반 토막이 난 신자가 부르짖던 ‘■■’의 참뜻을 마침내 통감하였다.
‘■■’이 ‘■■’이라 불리우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불가해하기 때문이며, 불가촉의 성질을 지니기 있기 때문이다. 닿을 수 없고, 닿아서는 안 되며, 닿게 되면 끝을 맞이하게 되는 존재. 그렇기에 ‘■■’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끝내 수포로 돌아가기 마련인 것을. 오만했던 우리는. 그리고 미련했던 나는. 너무 늦게 깨달은 대가를 회귀의 끝자락에 이르러서야 깨달았다.
사박. 사박. 사박.
바람결에 흩어지는 낙엽소리. 희미하게 느껴지는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저 소리 너머에서 나는 ‘■■’의 기척을 느꼈다. 이는 환청이나 환각일지도 몰랐다. 아니. 착각일 가능성이 높았다. 이 땅을 쓰레기장으로 만든 ‘■■’은 기척을 내지 않기로 악명이 높았으니까.
하지만 오감 너머에 있는 육감으로. 죽음 직전에 벼려진 감각으로. 나는 ‘■■’이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했다.
아. ‘■■’이 온다. ‘■■’이 다가와 내 숨통을 끊으러 온다. 회귀로도 도망칠 수 없는 ‘■■’이. 가족과 이웃을 모조리 산송장으로 만든 ‘■■’이 나를 노리러 온다.
숨통이 조여 오는 감각과 함께 나는 권총을 머리에 겨눴다. 성모시여 부디 자비를. 찰나의 유예에 불과할지라도 단 한 번의 기회를 내려주시길. 비나이다 비나이다. 부디 다음 생에는 저 ‘■■’이 없는 곳에서 눈을 뜨길 비나이다.
총성과 함께 내 의식은 끊겼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이 남긴 세계에서 눈을 떴다. 멸망해버린 서울. ‘■■’이 넘쳐나던 그때의 서울이 나를 반겼다.
전부 ‘■■’의 탓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