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134
사냥의 끝 (3)
한 남자가 신앙촌의 지하수로를 빠져나와 지상으로 향했다. 온몸은 만신창이. 걸친 옷은 피범벅. 숨소리는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희미했으나 그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생기로 가득했다.
심장의 성자. 한강의 성모. 오물의 어머니.
서울 전역을 먹여 살린 심장 중의 심장을 그는 마침내 손에 넣었고, 이제 이를 사냥꾼들에게 반납하기만 한다면 모든 것이 끝날 것이다.
그토록 바라 마지않던 끝이 머지않았기에 눈물이라도 흘려야 할 것 같았으나 눈에서는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일이 이렇게 끝나리란 것은 이미 알고 있었고, 이미 너무 많이 울었던 탓에 눈물샘이 닳아버렸기 때문이다.
“■■… ■■…!”
품에 심장 조각을 품은 남자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그곳에는 목만 남은 신앙촌의 주민이 죽지도 살지도 못한 채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오랜 세월을 괴물과 보낸 탓에 저들의 언어는 옛 서울말과는 사뭇 달랐지만, 남자는 그 말에 담긴 의미를 이미 알고 있었다.
괴물.
당신은 괴물이다. 괴물이 아니고서야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그리할 수 있단 말인가. 당신이 저지른 짓을 보라. 당신이 짓밟은 생명을 보라. 이 모든 끔찍한 짓을 저지르고도 눈물 하나 흘리지 않는 당신을 보라. 괴물. 당신은 괴물이다.
목만 남은 신앙촌 주민이 남긴 말은 그리 길지 않았다. 반쯤 괴물과 융화된 덕에 명줄이 길어졌다 해도 본질은 인간. 오히려 목만 남은 채로 지금까지 버틴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그렇게 목만 남은 신자의 목소리가 뚝 끊겼을 때, 사냥꾼은 그에게서 시선을 거둔 뒤 가던 길을 마저 걷기 시작했다.
‘괴물… 괴물이라.’
한때 찬란하였던 거리는 피와 오물로 질척거렸다. 수원(水源)의 관리자였던 심장의 성자가 기능을 정지하자 서울 전역에 흐르던 폐수와 핏물이 역류한 탓이었다. 연이은 ‘실종 사건’으로 인해 경비 인력이 부족해진 신앙촌은 결국 ‘괴물’에게서 심장의 성자에게로 이어지는 길목을 지키지 못했고, 심장의 성자는 ‘괴물’에게 살해당하였다.
‘그 말이 맞아. 괴물에게 중요한 건 생김새가 아니지. 껍데기보다 중요한 건 그 살가죽 안에 뭐가 들었느냐니까.’
처음 신앙촌을 보았을 때. 그는 신앙촌을 여느 괴물 군집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괴물의 신체 구조를 모방하여 육신을 변형시킨 인간과 공격성을 거세당한 채 인간 사회에 녹아든 괴물의 도시 따위는 이제 그리 놀라운 구경거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도시에 잠입한 그는 인적이 드문 시간과 장소를 찾아낼 때면 방해가 될 만한 주민들을 살해하였고, 노련한 사냥꾼다운 솜씨를 발휘하여 정체를 들킬만한 흔적은 철저히 은닉하였으며, 때로는 약물과 음악을 활용하여 신앙촌 사회에 혼란과 분란을 일으켰다.
성자의 음악을 모방한 노랫소리가 울려 퍼질 때면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살인귀라 여기며 살육을 벌였고, 그나마 내성을 갖춘 회귀자들은 음악의 진원지를 찾으러 나섰으나 남자가 설계한 덫에 걸려 불구가 된 뒤 약물에 절여져 백치가 되었다.
그렇게 신앙촌이 일군 문명에 금이 가자 남은 것은 심장의 성자를 지키는 지하의 파수꾼들뿐이었으나, 지상이 무너진 시점에서 그들 역시 그리 오래 버틸 수는 없었다.
매일같이 지상에서 흘러내려 오는 독극물과 유독가스. 그리고 환각 가스를 마신 뒤 눈이 뒤집힌 채로 달려 들어오는 신앙촌의 주민들. 제아무리 심신을 한계까지 단련한 파수꾼들이라 할지라도 이런 악조건 속에서 영원히 버틸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결국 쇠약해진 파수꾼들은 결국 남자의 손에 하나둘 쓰러졌다.
비명을 따라 피가 흐르고, 피가 흐르는 만큼 눈물이 흐르며, 흘러넘친 눈물을 따라 지하로 가는 길목이 열리니. 그 길목의 끝에서 심장의 성자를 마주한 남자는 그저 두근거리고 있을 뿐인 심장의 성자를 바라보며 신앙촌이 여느 괴물 집단과는 달랐음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 그저 피와 물을 내어줬을 뿐. 도시를 만든 건… 결국 사람들의 몫이었으니까.’
그가 지금까지 보아왔던 괴물의 도시는 모두 성자가 설계한 기계장치에 불과했다. 성자를 위해 무언가를 만들어 내거나. 혹은 성자의 사상에 감화되어 성자의 뜻을 대행하려 하거나. 어느 쪽이든 도시의 주인은 성자였고, 사람들은 도시를 굴러가게 하는 부품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남자의 손에 멸망한 도시는 사람의 손으로 세워진 도시였다. 설령 그 방식이 기이해 보일지라도 그 밑바탕에 깔린 사상은 사람을 널리 이롭게 하려는 것이었고, 심장의 성자는 그저 두근거리고만 있을 뿐 그 어떤 것도 강요하거나 통제하지 않았다.
‘어머니. 어머니.’
그는 죽어가는 이들이 되뇌던 말을 떠올렸다. 그들에게 어머니가 있듯 그에게도 어머니가 있었다. 심장의 성자처럼 성모는 아니었을지라도. 그리고 이제는 얼굴마저 기억나지 않을지라도. 어머니란 존재는 생명으로 태어난 이상 가슴에 각인되어 마음을 울리게 하는 법. 그것은 괴물이 되어버린 남자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제야 뼈저리게 느껴요. 괴물이 된다는 건 이런 거군요.’
그는 자신의 얼굴 가죽을 매만지며 앞으로 나아갔다. 몸을 뒤덮은 살가죽이 예전과 다를 바 없기에 그는 더더욱 돌이킬 수 없음을 확신하였다.
끝이 머지않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성자의 심장 소리 때문이었을까. 그는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숨죽여 탄식했다.
‘이제는 눈물이 나지 않아요. 저들에게 해줄 말도 떠오르지 않고요.’
슬퍼하는 게 맞는지. 모른 척 웃어버리는 게 나을지. 아니면 늘 그래 왔듯 표정을 없애버릴지. 남자는 마지막까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사람과 괴물을 구분하는 것은 뼈대와 살가죽이 아닌 그 속에 들어있는 정신과 영혼이니. 헤아리기 힘든 세월에 걸려 죽이고 잡아먹는 것에 길들여진 짐승은 이미 괴물과 다를 바 없었다.
이를 원래대로 되돌리려면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보다 더 긴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사회적 동물이 아니었고, 그를 바로잡아줄 사람 또한 없었다. 더군다나 그를 이끌어줄 부모 역시 죽은 지 수백 년이 지났다.
그렇기에 모든 것이 끝나고 나면. 더 이상 회귀가 일어나지 않는 세상이 온다면. 이 세상에서 더 이상 괴물이 나타나지 않게 된다고 할지라도 그는 괴물로 살다가 괴물로 죽게 될 것이다.
지혜를 얻어 예지자가 된 괴물은 자신이 맞이하게 될 최후를 떠올리며 가슴에 품었던 심장을 바라보았다.
만약에. 그럴 일은 없지만. 정말로 만약을 가정한다면.
이 심장을 부수고 지하에서 마지막 사냥을 준비 중인 사냥꾼을 모두 죽이고 불태워버린다면. 그렇게 된다면 나는 사람으로 죽을 수 있을까. 그렇게 이미 죽어버린 사람들을 되살려 그들이 평화를 누리게 된다면 나 역시 사람으로서 되살아날 수 있을까. 시간이 무한하다면 가능성 역시 무한한 법이니. 더 나은 미래가 있음에도 최악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은 멈추지 않았지만, 발걸음 역시 멈추지 않았다. 두뇌가 굴러가는 이유는 그저 만약의 가능성마저 없애버리기 위함일 뿐. 결국 같은 결론에 도달하기 위한 절차임을 그는 본능적으로 깨우치고 있었다.
‘달을 사랑하라. 달을 사냥하라.’
지겨울 정도로 속삭여오던 말을 되뇌이며, 그는 강을 건너는 보트를 향해 몸을 맡겼다.
‘알고 있습니다. 내가 당신을 사냥하려 하였을 때, 당신 역시 나를 사냥하려 하였음을.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당신 역시 이미 알고 있음을. 이제는 마음속 깊이 받아들이려 합니다.’
그는 달빛에 비친 강물을 내려다보았다. 강물은 바람결을 타고 휘휘 춤을 추었으며, 밑바닥에 잠든 사람과 괴물은 고이 잠든 채 물결에 몸을 맡겨 흐느적거렸다.
‘내가 당신을 바라보고 있을 때 당신 역시 나를 바라보고. 내가 바라보던 것은 당신 역시 바라보고 있으니. 내가 바라는 것은 곧 당신이 바라는 것이고, 당신이 바라는 것이 곧 내가 바라는 것이니. 당신과 나는 처음부터 하나였으며, 우리 모두는 처음부터 당신과 하나였음을. 이제는. 이제는 알 것만 같습니다.’
강물을 가르고 배는 앞으로 나아갔다. 사람도 괴물도 죽어서 잠든 한강변은 더할 나위 없이 고요하였으며, 요란스러웠던 성자들은 하늘로 돌아가 은은하게 별빛을 내렸다.
사람이든, 사냥꾼이든, 괴물이든, 하늘 아래에서 본다면 모두 똑같은 짐승이니. 일찍이 신앙촌의 주민이 그리하였던 것처럼, 자신이 사람인지 괴물인지 구분하려 하는 것은 더 이상 무의미했다.
‘괴물이면서 사냥꾼이고. 사냥꾼이면서 괴물. 괴물 사냥꾼이란 건 애초에 그런 거였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긴 세월을 보내왔지만, 이 모든 것은 찰나의 꿈에 불과할지도 몰랐다. 모든 게 끝나리라 믿으며 행해왔던 나날들은 하늘 위에서 관망하는 저 드높은 존재들에게 조롱당하며 짓밟힐지도 몰랐다. 이 심장을 지하에 반납하는 순간 천상에서는 비웃음 소리가 들릴지도 몰랐다.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이고, 사랑해마지않았던 것 역시 닳아 없어지기 마련이니. 제아무리 살업을 거듭하여 힘과 지혜를 쌓아왔다 하더라도 이 광활한 우주 앞에선 철창 속에 갇힌 짐승과 다를 게 없었다.
‘끝이 아닐 수도 있지. 또 농락당할 수도 있는 거고.’
강을 건너 뭍에 도착한 그는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한 걸음씩 발걸음을 옮기자 지하에 잠든 사냥꾼들의 심장 소리가 설렘에 겨워 두근거리는 것이 희미하게 느껴졌다.
‘만약 그렇게 돼도 어쩔 수 없지. 그런 건 어쩔 수 없는 거야.’
지하철의 입구에 도착한 그는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을 밟았다. 발걸음을 내딛는 소리에 맞춰 품에 안은 심장이 맥동했고, 품에 안은 심장의 울림에 맞춰 그의 심장 역시 공명하기 시작했다.
‘팔다리가 다 잘려도. 성대가 잘려 벙어리가 돼도. 몸부림칠 수만 있으면 발버둥치기로 맹세했으니까. 내가 나인 이상 이건 바뀌지 않을 거고, 그럴 수만 있다면 언젠가 끝은 나겠지.’
지하철 내부에는 불빛 하나 없었다. 최후의 사냥을 준비하기 위해 단 한 점의 불빛마저 아끼고자 하는 사냥꾼들의 집착이 투영된 결과였다. 그렇기에 그는 한 치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걸어가야 하였으나 등불을 켜지 않아도 발을 헛디디거나 길을 헤맬 걱정은 하지 않았다. 설렘에 겨워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를 따라 걷다 보면 목적지에 닿을 수 있다는 것을 이미 갈고 있었기 때문이다.
“달이여. 사랑해 마지않는 신이시여”
이제 곧 끝이 머지않았음을 알았기 때문일까. 그는 어둠 속을 걸어가며 아무도 듣지 않을 기도를 읊었다.
“저는 이제 늙고 쇠약하여 뼈대만 남은 나뭇가지나 다름없나이다. 당신이 나를 부러뜨리고자 한다면 나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으스러질 것입니다.”
한 걸음, 한 걸음. 한동안 어둠 속을 걸어간 끝에 그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사냥꾼의 피를 바치던 제단. 그 제단 앞에 도착하자 제단 근처에서 수많은 팔이 솟아나와 남자를 향해 뻗어 나왔다. 계획에 필요한 피와 살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고, 수많은 괴물과 성자의 피를 축적한 이 사냥꾼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제물이니. 사냥이 끝난 사냥개를 잡아먹는 것은 처음부터 예정된 결말이다.
“그러니 간절히 바라 건데. 당신이 진정 나를 비롯한 모두를 사랑했다면. 우리 모두를 어여삐 여겼다면.”
사냥꾼은 자신을 향해 뻗어 나오는 팔을 피하지 않았다. 이미 예견한 흐름이었고, 그 역시 사냥꾼들의 판단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는 쏟아져 나오는 팔에 저항하는 대신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았다.
“이 제사를 끝으로. 부디 끝에 이르기를. 간절히 바라나이다.”
마지막 기도를 끝으로 그의 의식이 끊겼다. 부디 계획이 성공하기를. 그 끝에 온전한 안식이 있기를. 간절함을 담은 기도를 끝으로 그는 사냥꾼의 도시에 녹아들었다.
그리고 사냥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마지막 사냥꾼이 지하에서 깨어났다. 그는 죽은 모든 사냥꾼을 대신할 꼭두각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