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14
달에서 온 색채 (2)
재환은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친 채 저편에서 중년 남자가 다가오는 것을 노려봤다. 얼핏 봤을 때는 깡마른 체구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이상할 것 없는 외형이었다. 하지만 그는 ‘속삭임’이 말했던 정보를 떠올리며 경계했다.
[사냥 대상: 불가해(不可解) → 날개 달린 주시자 , 크로드의 권속] [분류: 권속] [성자(星子)로 우화하기 직전인 괴물. 사냥꾼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괴물이 된다.]‘무슨 뜻인진 잘 모르겠지만, 일단 조심해 둬야지.’
저 남자가 괴물일거란 물증은 아직 없었다. 아무리 속삭임이 믿음직스러워도, 눈앞의 상대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의심을 멈출 수 없었다. 사람이 괴물이 되는 판국이니, 괴물이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이상하지는 않은 것이다. 무엇보다도 눈앞의 남자에게서는 괴물을 볼 때 느껴지는 불쾌한 감각이 느껴졌다. 예전에 기독교인 사냥꾼을 봤을 때와 비슷한 감각이었다.
‘그냥 쏴 버릴까?’
그는 저 남자에서 느껴지는 불쾌한 감각이 꺼림칙했다. 방 안에 모기나 바퀴벌레가 나타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방아쇠를 당기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하지만 상대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고, 대화가 통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이상 최소한의 자제력을 발휘하는 것이 옳았다. 기분이 나쁘다고 사람을 죽이는 것은 미치광이나 하는 짓이었으니까.
“일단 거기서 멈추세요. 얘기는 그다음에 하죠.”
재환은 그렇게 말하며 중년인이 다가오려는 것을 제지했다. 그러자 중년은 양손을 들어 올린 상태로 순순히 멈춰 섰다. 재환은 상대가 멈춰 선 것을 확인한 뒤 질문했다.
“무슨 일이시죠? 그냥 인사나 하려고 부른 것 같진 않은데.”
그러자 남자가 자신의 머리 쪽을 검지 손가락으로 툭툭 치면서 말했다.
“경찰에서 오신 거 맞으시죠? 그거 경찰모 같은데.”
“네, 그런데요?”
“아, 다행이다, 다행이야! 이렇게 다행일 수가!”
기분 나쁠 정도로 들뜬 목소리에 재환은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중년은 자신에게 총이 겨눠지고 있다는 사실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환호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기다리고 있었다고요! 경찰 출신 사냥꾼분이 오시길 손꼽아 기다렸는데, 이렇게 빨리 오다니. 아아, 운이 좋았네요. 운이 너무 좋네요. 하늘이 절 도우시나 봅니다!”
중년의 말을 듣던 재환은 그의 말투에 기이함을 느꼈다. 목소리 톤은 격양되어있었고, 말하는 리듬은 지리멸렬했다. 아무리 들어 봐도 정상적으로 말하는 방식과는 거리가 먼 화법이었다.
‘뭐지? 미친놈인가?’
아무리 봐도 미친 사람처럼 보이는 태도에 방아쇠를 쥔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여기서 만약 조금이라도 인내심을 자극당하면 그는 주저 없이 방아쇠를 당길 작정이었다. 저 남자와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이성의 끈이 갉아 먹히는 기분이었다. 그 사실을 불쾌히 여긴 재환은 불편한 기색을 담아 그의 말을 끊었다.
“빙빙 돌려 말하지 말고, 본론부터 말하세요. 시간 낭비할 생각 없으니까.”
“아, 이런. 죄송합니다. 경찰 쪽 사냥꾼분을 뵌 건 처음이라, 너무 기쁜 나머지 실례했네요. 식량 때문에 오신 거죠? 안내해드릴게요. 안 그래도 저 혼자 먹기엔 양이 좀 많았거든요.”
재환은 조금 전과는 다르게 차분하게 들려오는 대답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걸 어떻게 알았는데요? 난 그런 말 한 적 없는 것 같은데. 내가 사냥꾼이라고 말한 적도 없고요.”
그는 자신을 사냥꾼이라고 소개한 적이 없었고, 자신이 왜 이곳에 왔는지 얘기한 적도 없었다. 그런 와중에 저 남자는 자신이 말하지도 않은 사실을 주절거리고 있었다. 기이하게 느낄 수밖에 없는 언행이었다.
재환의 질문에 중년인은 낄낄거리며 대답했다.
“너무 예민하게 생각하실 필요 없습니다. 저도 사냥꾼이거든요. 괴물의 피를 마신 사람끼리는 서로 느껴지는 게 있더라고요. 자석의 같은 극처럼, 밀어내는 느낌 말이죠.”
“그러면 식량을 찾으러 온 건 어떻게 알았는데요?”
“식량에 대한 건 말할 것도 없죠. 밥 문제는 누구한테나 중요한 거 아닙니까? 저도 식량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죠. 서울은 좁은데, 먹여 살릴 사람은 많으니까요.”
중년의 말이 끝나자, 재환은 그를 노려보며 생각에 잠겼다. 저 남자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 역시 지난번에 우연히 사냥꾼을 바라본 뒤 기묘한 감각을 느꼈기 때문이다.
또한, 식량을 목적으로 이곳에 온 것 역시 조금만 생각해보면 쉽게 추론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서울이 고립 된 지 벌써 일주일이 넘게 지났으니, 식량 고갈은 누구에게나 고민거리였다. 특히나 군경처럼 먹여 살릴 사람이 많은 조직이라면 최우선으로 고민할 문제였으니, 저 남자가 그의 목적을 꿰뚫어본 것 역시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이치에 맞아떨어지더라도, 그는 여전히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오히려 저 남자와 대화를 할수록 그의 신경은 한층 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일이 복잡해졌어.’
대화를 하면서 저 남자가 괴물일 거란 생각은 확신에 가까워져 있었다. 속삭임은 권속에 관해 설명할 때 ‘사냥꾼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괴물이 된다.’고 말했고, 저 남자는 자기 자신을 사냥꾼이라고 지칭했다. 그렇다면 눈앞에 있는 이 ‘사냥꾼’이 괴물이라는 사실을 유추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차라리 말이라도 안 통했으면 속 시원했을 텐데.’
괴물을 죽일 각오라면 되어있었다. 괴물을 사냥해 힘을 얻는 것이 이 악몽을 끝낼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말을 하는 괴물을 죽이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상대가 인간처럼 말을 할 수 있고, 서로 정보와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존재라면, 이는 살인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그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은 사람을 죽일 정도로 미쳐있지 않았다.
‘찝찝해도 어쩔 수 없지. 일단은 장단에 맞춰주는 게 좋겠어.’
재환은 한숨을 내쉰 뒤 그에게 말했다.
“식량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주신다고 했죠?”
그는 여전히 총을 겨눴다.
“앞장서세요. 아직 그쪽을 완전히 믿는 건 아니니까, 수상한 짓은 하지 맙시다.”
“기꺼이 그래야죠. 가뜩이나 사방에 괴물이 깔려있는데, 사람끼리 협력해야 하는 거 아니겠어요? 자, 따라오시죠.”
남자는 그렇게 말한 뒤 앞장서서 걸어갔다. 재환은 그 뒷모습을 주시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찝찝하기 짝이 없는 동행이었다.
* * *
남자가 식량을 보관해 둔 장소로 가는 길은 한적했다. 괴물은커녕 괴물의 시체마저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기분 나쁠 정도로 조용한 이 거리에는 오직 달빛만이 선명하게 내려앉아 있을 뿐이었다.
남자를 따라가던 재환은 그에게 물었다.
“이 근처에 있는 괴물, 혹시 그쪽이 다 처리한 거예요?”
“아, 네 뭐… 다는 아니고,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그는 허허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도와주는 분이 계셨거든요. 아주 친절하고… 다정한 분이셨죠… 사랑스러울 정도로요. 그분 덕분에 많은 것을 배웠죠.”
황홀해 하는 목소리에 재환은 하마터면 방아쇠를 당길 뻔했다. 지금까지도 기분 나쁜 말투였던 건 마찬가지였지만, 조금 전의 목소리는 소름이 돋을 정도로 섬뜩했다.
‘참자. 죽일 땐 죽여도 식량이 있는지는 확인하고 죽여야지.’
그는 이성의 끈을 놓을 뻔한 것을 간신히 참아가며 고요한 거리를 걸어갔다.
“이제 다 왔어요. 이 건물입니다.”
그가 안내한 곳은 재환의 목적지였던 백화점 근처에 위치한 대형마트였다. 앞장서는 남자의 뒤를 따라가던 재환은 입구를 따라 눌어붙은 핏자국을 보며 의아해했다.
“여기 다른 사람은 없어요?”
괴물에 신경 쓰느라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사실을 떠올렸다. 이곳은 대형마트치고는 인적이 없었고, 생필품도 멀쩡했다. 대부분의 대형마트가 재난이 발생하자마자 생필품이 동났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상한 일이었다.
“네. 다들 괴물 때문에 도망친 모양이더라고요. 덕분에 저는 편했지만요.”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이동했고, 재환은 핏자국을 한 번 더 살펴봤다.
‘변색 된 걸 보면 며칠 된 것 같은데, 왜 증발을 안 한 거지? 낮에는 그늘이라도 지는 건가?’
건물 내부에 핏자국이 있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괴물의 피는 햇볕에 닿아야 증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물의 바깥에 있는 핏자국이 증발하지 않았다는 점은 신경 쓰이는 부분이었다.
‘핏자국을 봐도 아무렇지 않다니. 괴물이라서 그런 건가?’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K1의 조정간을 확인했다. 조정간은 단발로 맞춰져 있었다. 조정간을 확인한 그는 아예 장전까지 해 놓은 뒤 남자를 따라 지하의 육류 보관 창고를 향해 이동했다. 창고에 가까워질수록 핏자국이 선명해지는 것을 넘어서 흥건해질 정도로 늘어져 있었다.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결국 재환은 말을 꺼낼 수 밖에 없었다.
“이 핏자국은 다 뭡니까?”
그러자 남자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괴물들 피예요. 괴물 중 먹을 만 해 보이는 것들을 여기서 손질했거든요.”
“괴물을 먹는다고요?”
재환이 황당해 하자 남자는 오히려 의아해했다.
“피도 마시는데 고기는 못 먹을 게 뭡니까?”
그는 그렇게 말하더니 고기를 손질하던 장소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멧돼지를 닮은 괴물의 가죽과 해체된 고깃덩어리가 있었다. 남자는 근처에 있는 푸줏칼로 고기를 한 점 썬 뒤 재환에게 건넸다.
“맛 좀 보세요. 어제 잡은 거라 싱싱해요.”
재환은 대답을 하는 대신 총을 겨눴다. 괴물일지도 모르는 상대가 주는 것을 함부로 받아먹을 생각은 없었다.
“됐고, 식량은 이게 답니까? 겨우 이거 보여주려고 부른 건 아니죠?”
괴물의 고기로 식량난을 해결한다는 발상 자체는 이해할 수 있었다. 설령 저 고기를 먹고 부작용이 나타나도, 굶어 죽는 것보단 위험을 감수하는 쪽이 낫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자가 보여준 고기의 양 정도로는 시민들을 먹여 살리기에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물론 아니죠. 손질 못 해놓은 고기들은 냉동실에 있어요. 사실 이것 때문에 사냥꾼이 필요했거든요. 이 많은 고기를 혼자 손질하려니 일손이 모자라더라고요.”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마스크를 벗은 뒤 썰어낸 고기조각을 입으로 넣었다.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날고기를 먹는 그의 모습은 들짐승을 닮아있었다.
고기를 씹어 넘긴 그는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안내해드릴게요. 따라오세요.”
남자는 그렇게 말한 뒤 근처에 있는 냉동 창고로 이동했다. 창고 앞에 도착한 그는 냉동실의 문을 열며 말했다. 자랑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였다.
“자, 직접 확인하시죠. 신선한 괴물 고기가 이렇게 많습니다. 다 제가 직접 잡은 거라고요!”
재환은 냉동실에서 흘러나오는 냉기가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전기가 끊긴 상황인데 냉동 설비가 제대로 작동한다는 점이 꺼림칙했기 때문이다.
“자, 어떠십니까. 이 정도면 꽤 많죠? 이게 다 괴물 고기입니다!”
남자가 그렇게 소개를 끝내자 재환은 경찰서에서 보급받은 랜턴을 비춰서 내부를 확인했다. 남자가 말했던 대로 냉동실의 내부에는 손질이 덜 된 고깃덩어리가 잔뜩 있었다. 사체가 잔뜩 쌓여있는 광경을 보던 재환은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로테스크한 광경이었다.
‘괴물밖에 없는 것 같긴 한데… 내가 너무 예민했던 건가?’
그렇게 생각하며 고깃덩어리들에서 시선을 떼려던 순간, 재환은 이질적인 모습의 ‘괴물 고기’를 보며 심장이 멎는 기분이 들었다. 괴물의 고깃덩어리 사이에는 옷가지를 챙겨 입은 ‘괴물 고기’가 있었다.
“저기요.”
재환은 그가 ‘괴물 고기’라고 말했던 것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거, ‘괴물 고기’ 맞아요?”
그는 랜턴을 그 ‘고기’에 비추며 물었다. 남자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
“네, 괴물 고기인데요? 무슨 문제라도…?”
재환은 구역질이 나올 뻔한 것을 간신히 참아가며 냉동실 내부로 들어갔다.
그리고 옷가지를 챙겨 입은 ‘고기’를 살펴봤다.
아무리 봐도 이 ‘고기’는 옷가지를 제대로 갖춰 입은 소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더 심각한 점은, 이런 식으로 옷을 갖춰 입은, 사람 형상의 ‘고기’가 하나만 있는 게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랜턴으로 주변을 비추던 재환은 옷을 갖춰 입은 ‘고기’ 중 가장 멀쩡해 보이는 것의 주머니를 뒤졌다. 그러자 주머니에서 지갑과 주민등록증이 나왔다. 쐐기를 박는 물증이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물어볼게요.”
그는 자신이 지갑을 꺼낸 ‘고기’의 머리 부분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게 사람으로 보여요, 괴물로 보여요?”
그리고 대답이 들려오는 순간, 그는 K1의 조정간을 연발로 바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