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15
달에서 온 색채 (3)
“왜. 왜 그러세요!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재환이 총구를 겨누자 남자는 양팔을 들어 올려 항복했다. 재환은 싸늘한 시선으로 남자를 노려봤다. 상대가 괴물인 이상 방심은 금물이었다.
“당연히 잘못했지. 이게 괴물이라고? 이게 어딜 봐서 괴물인데?”
그러자 남자는 억울해하며 말했다. 울먹임에 가까운 목소리였다.
“그게 무슨… 진정하세요. 저건 아무리 봐도 괴물….”
“사람이라고, 씨발새끼야. 정 못 믿겠으면 사람 불러올까? 누가 미쳤는지 한 번 확인해 보자고.”
“그런… 그런 말도 안 되는… 저게 어떻게… 저게 어째서…”
남자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잠시만. 잠시만 시간을 주십쇼, 선생님. 방금 말씀하셨던 저 고기, 자세히 살펴보고 싶습니다.”
연장자에게 ‘선생님’ 소리를 들은 재환의 얼굴이 구겨졌다. 이제 와서 저런 말을 한다고 해서 그의 비위가 맞춰지는 것은 아니었다.
“당신이 저걸로 뭔 짓을 할 줄 알고?”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제발… 제가 미친 건지 확인할 기회를 주십쇼. 제발…”
간절함이 담긴 부탁이었지만, 꺼림칙한 부탁이기도 했다. 특히나 부탁하는 상대가 괴물일 가능성이 현저히 크다면 더욱 그랬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지금 당장 방아쇠를 당겨야 하는 것이 옳았다. 그의 이성은 지금 비명을 지르며 경고하고 있었다.
하지만 저 남자의 애원을 뿌리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저항할 의사도 없고, 간절하게 애원하는 상대를 쏘는 것에는 거부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인간성이 이성이 내지르는 경고를 틀어막았다.
‘잠깐 정도는 괜찮겠지.’
그는 여전히 총구를 겨눈 채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의 허락이었고, 남자는 허리를 숙여 꾸벅 절을 한 뒤 재환이 가리켰던 ‘고기’를 향해 다가갔다. 재환은 남자가 다가오자 옆으로 길을 비킨 뒤 냉동실 문 바깥으로 나갔다. 남자가 달려들 경우를 대비해 동선을 제한한 것이다.
‘여차하면 일단 쏘고 보자. 멍 때리고 있다가 죽을 순 없으니까.’
그는 그렇게 긴장하며 남자를 주시했다. ‘고기’에 다가간 남자는 ‘고기’를 향해 얼굴을 들이밀며 중얼거렸다.
“아… 다행이야. 다행이야. 내가 착각한 게 아니라 다행이야…”
남자는 그렇게 말한 뒤 혼자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사람이 아니라 괴물이었어. 다행이야… 다행…”
재환은 사람의 형상을 한 고깃덩어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흥분이 조금 가라앉자 냉정이 돌아오면서 존댓말이 흘러나왔다.
“마지막으로 한 번 만 더 확인할게요.”
그는 숨을 멈춘 뒤 방아쇠를 느슨하게 당기기 시작했다. 군대에서 배운 사격술이었다.
“여기 있는 것들, 전부 당신이 사냥한 거 맞죠?”
여기서 조금만 더 방아쇠에 힘을 주면, 총구에서 불이 뿜어져 나온다. 사람의 모습을 하고, 사람의 말을 하는 존재에게 총을 쏘는 것이다.
재환의 질문에 중년인은 고개를 돌려 대답했다. 순수함마저 느낄 정도로 환한 표정이었다.
“네, 물론이죠! 전부 제가 잡은 겁니다! 열심히 일한 덕분에, 이 건물의 창고들을 가득 채울 수 있었죠.”
방아쇠에 힘이 들어간다. 딸각.
탕! 탕! 탕! 탕! 탕! 탕! 탕! 탕! 탕! 탕! 탕! 탕! 탕! 탕! 탕! 탕! 탕! 탕! 탕! 탕!
한 탄창을 전부 비우고 나자 중년인의 몸은 넝마가 되었다. 현대 화기의 연사력이 사람 하나 정도의 표적을 순식간에 벌집으로 만든 것이다.
“어… 어째서…”
온몸이 구멍 난 남자가 갈라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모습을 본 재환은 오히려 안도했다. 사람이었으면 쇼크로 즉사했어야 하는 부상을 입고도 남자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사람이야……”
처음에는 믿기지 않는다는 것처럼 힘없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의 목소리에 원념과 울분이 섞이기 시작했다.
“사람! 사람! 사람! 사람이야! 나는 사람이라고! 사람이라고!”
재환은 K1을 내려놓은 뒤 좀비처럼 흐느적거리는 남자를 향해 도끼를 겨눴다. 상대가 무력화된 이상, 총을 더 쏘는 것은 총알 낭비라는 판단이었다.
“진짜 사람이면, 곱게 좀 갑시다.”
그는 도끼로 남자의 목을 후려쳤다. 세찬 바람 소리와 함께 도끼가 남자의 목에 꽂혔다.
“커헉! 꺼…꺼어어억”
웬만한 괴물 정도는 한 번에 죽이고도 남을 일격이었다. 하지만 목의 힘줄이 워낙 질긴 탓에 도끼는 남자의 목을 완전히 끊어내지 못했다. 경이로울 정도의 내구력이었고, 사람이 아니라는 증거이기도 했다.
재환은 한 손으로 남자의 목을 짚은 뒤 도끼를 빼냈다. 동맥을 끊겼는지 남자의 목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다. 슬쩍 몸을 비켜 피가 묻지 않도록 움직인 그는 다시 도끼를 휘둘렀다.
퍼석!
목의 힘줄을 가르고 나아간 도끼는 목뼈까지 끊어낸 뒤 바깥 공기를 마셨다. 툭! 하고 떨어지는 남자의 머리를 내려다본 재환은 숨을 내쉰 뒤 K1의 탄창을 갈아 끼웠다.
‘신경 쓰지 말자.’
그의 몸은 요동치고 있었다. 사람으로서의 본능이 그에게 동족상잔을 훈계했다.
사람을 죽였어. 네가 죽인 건 사람이야. 사람이 사람을 죽이다니.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냐? 살인, 살인, 살인! 살인이라니, 살인이라니!
몸이 울부짖는 감각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괴물이야. 괴물이었어. 사람이 저럴 리 없으니까.’
그는 심호흡을 하며 떨려오는 몸을 진정시키려 했다. 쉬운 일은 아니었어도, 반드시 해야 하는 절차였다. 이 정도의 일로 멘탈이 무너지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겉모습에 연연하지 말자.’
그는 숨을 내쉬며 각오를 다졌다.
‘괴물 같은 사람이 있으면, 사람 같은 괴물도 있는 거니까.’
세상이 이렇게 되기 전에도 죽어 마땅한 인간이라면 얼마든지 있었다. 오죽하면 사형제가 금지된 나라에서도 다시 사형제를 실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가 방금 죽인 남자가 사람이었든, 괴물이었든, 죽어 마땅한 존재였다는 점은 변하지 않았다. 군인이나 경찰이 왔어도 달라지는 것은 남자의 몸에 난 총알 개수 정도였을 것이다.
그렇게 홀로 되뇌던 그는 남자가 흘린 피에 시선을 돌렸다.
‘사람인지, 괴물인지. 확실하게 확인할 방법이 하나 있지.’
죽은 괴물의 피를 마시면 레벨이 오른다. 사람과 괴물을 구분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이었다.
그는 무릎을 굽혀서 남자가 흘린 피를 손으로 담았다.
‘만약에… 진짜 만약에… 사람이면 어떡하지?’
그는 자신이 틀린 선택을 했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직면하려는 순간에는 불안함이 찾아왔다. 달이 사람을 미치게 한다는 경찰의 정보 때문이었다. 최악의 경우에는, 미친 건 자기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은연중에 피어올랐다.
‘우물쭈물하지 말자.’
그는 피를 마시며 생각했다.
‘틀렸으면, 다음번에는 제대로 하면 되는 거니까.’
그는 되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위안 삼아 피를 마셨다. 그리고 잠시 시간을 들여 속삭임이 들려오길 기다렸다. 이 순간만큼은 자살로 잘못을 되돌릴 수 있다는 사실이 축복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인 채 속삭임이 흘러나오길 기다리던 그는 당황스러운 상황에 직면했다.
‘뭐야…’
5분이 넘도록 멍하니 기다렸지만, 레벨업을 알리는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상태창을 떠올려 레벨이 올랐는지 확인해봐도 마찬가지였다. 레벨은 여전히 오르지 않았다.
‘불가해라서 그런 건가? 아니면 그냥 우연?’
그는 불가해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그가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는 사냥하기 위해서는 ‘지혜’ 능력치가 필요하다는 사실 뿐이었기 때문이다.
‘뭔가 이상해. 뭔가 잘못됐어…’
그는 불길함을 느끼며 주변을 둘러봤다. ‘불가해’라고 불릴 정도의 괴물이 레벨을 1도 올려주지 않을 정도로 약하다는 사실에 위화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논리와 이성이 아닌 본능과 직감으로 떠올린 판단이었다.
그리고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친 채 주변을 살펴보던 그때, 옥상 방향에서 음울한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정도는 약하지만, 이전에 ‘불가해’라고 불린 괴물들이 울부짖던 때와 비슷한 감각이었다.
괴물의 울음소리가 들렸을 때 그는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그러면 그렇지.”
그는 헛웃음을 내며 중얼거렸다.
“이렇게 쉬울 리가 없지.”
그는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하며 위층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상대한 것은 사람이 아니라 괴물이었다. 그 사실이 증명되자 발걸음이 가벼워진 기분이 들었다.
* * *
최상층으로 향하는 에스컬레이터는 유리벽을 넘어온 달빛을 받아 창백했다. 재환은 움직이지 않는 에스컬레이터를 하나씩 밟아 위쪽으로 올라갔다.
‘조용하네. 쥐 죽은 듯이 조용해.’
울음소리가 들렸던 것은 처음 한 번뿐이었고, 인적이 끊긴 마트 내부는 유령처럼 창백했다. 혼자서 사람이 없는 건물을 돌아다니는 일은 괴물의 아가리 속을 거니는 것만큼이나 끔찍한 기분이 들게 했다.
‘5층… 여기는 의류 코너인가?’
최상층에 도착한 그는 이전 층에서 그랬던 것처럼 괴물의 흔적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주인을 잃은 가게에는 옷을 빼입은 마네킹들이 늘어서 있었다. 달빛을 받아 창백해진 마네킹들의 빛깔이 시체를 닮아있었다. 그 모습을 본 재환은 냉동실에서 봤던 광경을 떠올리며 어금니에 힘을 주었다.
‘이번에는 우물쭈물 거리지 말자. 죽어도 싼 놈이었어.’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수색을 끝냈다. 이번 층 역시 괴물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소거법으로 남은 결론은 하나였다. 그는 옥상으로 가는 비상계단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문을 열고 바라본 비상 통로는 달빛이 닿지 않아 어두컴컴했다. 재환은 손전등의 전원을 켠 뒤 계단을 따라 옥상으로 이동했다.
‘다 왔다.’
그는 한 손으로 K1을 쥔 체 옥상의 문을 열어젖혔다. 그는 달빛이 내려앉은 옥상을 살펴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저게 괴물인 건가?’
그는 눈에 들어온 것에 시선을 집중했다. 알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깨져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여느 알과는 다르게 근육이나 지방을 닮은 살덩어리처럼 생겼다는 점이 달라 보였다.
‘좀 더 가까이 가서 살펴보자.’
그는 그렇게 판단한 뒤 살덩어리로 된 알을 향해 이동했다. 그리고 알을 향해 가까워지는 순간, 그의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살하고 싶었지. 자수하고 싶었고.”
그는 이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알아. 알게 된 거야. 그분께서 달빛으로 속삭이셨거든.”
뒤를 돌아보자 그가 죽였을 터인 남자가 옥상 통로의 지붕 위에 올라서 있었다.
“사람은 모두 괴물이 되지.”
재환은 가늠쇠로 남자를 겨냥했다. 거리는 대략 10M 정도였다.
“늦든 빠르든, 괴물이 되는 건 피할 수 없는 거야. 너도 언젠간 그렇게 될 테고.”
탕! 탕! 탕! 탕! 탕! 탕! 탕! 탕! 탕! 탕! 탕! 탕! 탕! 탕! 탕! 탕! 탕! 탕! 탕! 탕!
20발을 전부 연발로 쏟아붓자 남자의 몸에 열 개가 넘는 구멍이 생겨났다. 하지만 남자는 여전히 제자리에 선 채 말을 이었다.
“이번에는 내가 널 쉬게 해주마.”
재환은 괴물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을 알아보자 황급히 몸을 피했다.
괴물이 손에 들고 있던 것은 경찰용 리볼버였다.
탕!
괴물이 쏜 총성이 옥상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