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16
달에서 온 색채 (4)
총알이 얼굴을 스쳤다. 움직이는 게 조금만 늦었더라면 머리에 구멍이 났을 것이다. 재환은 섬뜩함을 느끼며 탄창을 다 쓴 K1을 팽개치듯 내려놓은 뒤 권총을 꺼냈다. 하지만 총을 겨눌 틈도 없이, 또다시 괴물이 쏜 총성이 옥상을 울렸다.
탕!
재환은 이번에는 왼쪽으로 몸을 굴렸다. 바닥을 구르는 와중에 총알이 얼굴 바로 옆의 바닥에 박힌다.
‘예측 사격?’
우연인지 실력인지 확인할 길은 없었다. 잠깐이라도 움직임을 멈추는 순간 몸에 구멍이 나고 말 테니까. 재환은 몸을 일으킨 뒤 곧바로 뒤쪽으로 뛰어올랐다. 조금이라도 거리를 벌려야 총에 맞을 확률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재환은 좌우로 스텝을 밟으며 총구의 방향을 주시했다. 하지만 날아오는 것은 총알이 아닌 비웃음이었다.
“하하하! 벌레! 벌레! 데굴데굴구르는 모습이 어찌나 깜찍한지! 하하하하하!”
괴물은 총상으로 너덜너덜해진 배를 움켜쥐며 웃음을 터트렸다.
‘일부러 빗맞혔다고? 대체 왜?’
그는 의아해하면서도 자세를 잡아 권총을 겨눴다. 지금 해야 하는 일은 겨우 얻은 기회를 활용하는 것 뿐이었다.
‘일단 쏘자.’
그리고 권총의 가늠쇠로 괴물을 주시한 순간, 괴물은 권총을 버렸다.
“때가 됐어. 드디어 때가 된 거야,”
하늘을 향해 양팔을 뻗으며 말했다.
“만월이 날 부른다. 영원토록 지지 않을 만월이 날 부르고 있어. 드디어 계시를!”
그리고 괴물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재환의 리볼버가 불꽃을 뿜었다. 총성과 함께 탄두가 허공을 질주한다. 20M의 거리를 순식간에 날아간 탄두가 괴물의 머리를 꿰뚫었다. 급하게 쐈다는 걸 고려하면 운이 따른 결과였다.
‘끝났나?’
그는 괴물의 두개골을 날려버렸음에도 안심할 수 없었다. 상대는 K1 한 탄창을 전부 쏟아부었어도 여전히 움직였던 괴물이다. 그런 괴물이 이렇게 쉽게 쓰러질 거라고 생각하긴 힘들었다. 상상력이 미지의 위협을 경고했다.
‘천천히 하자.’
재환은 여전히 양팔을 하늘로 치켜든 괴물을 향해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괴물에게 가까워질수록 도끼를 쥔 오른손에 힘이 들어갔다. 권총을 쥔 왼손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한 걸음 움직일 때마다 심장이 조여 오는 기분이 든다. 상상력은 공포의 근원이기도 했다.
‘다 왔다.’
앞으로 한 걸음. 괴물이 올라서 있는 곳까지의 거리가 한 걸음 남았다. 이제 한 발자국만 더 걸어가면 뛰어오를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두 다리에 힘을 준 뒤 뛰어오르려던 순간, 그의 눈앞에 달빛이 내려앉으며 시야가 일그러졌다.
‘이건… 무슨…’
그는 비틀거리는 몸을 부여잡으며 괴물을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봐야 한다. 봐야만 한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봐야만 한다. 설령 지금 당장 죽는 한이 있더라도, 조금이라도 더 정보를 모아야만 한다. 그것이 불가해라고 불리는 괴물을 상대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흐릿해지는 시야가 선명해지기 시작할 때, 그는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고 말았다.
“저건……”
달빛을 머금은 괴물의 몸에 새살이 돋아나고 있었다. 그리고 살이 돋아난 자리에는 흉터 대신 사람의 눈과 입술로 이루어진 날개가 피어나고 있었다. 총상이 난 자리에서 새롭게 피어난 수십 개의 입술이 일제히 입을 열었다. 생명의 신비를 한몸에 욱여넣은 목소리였다.
“그동안 참 어리석었지.”
괴물의 몸이 달빛의 세례를 받는다.
“사람인지, 괴물인지 구분하는 건, 의미 없는 일인데 말이야.”
새로 돋아난 한 뼘 크기의 날개들이 푸드득거리며 달을 찬미한다.
“그분께서 알려주셨다.”
괴물이 읊조리는 목소리가 시체처럼 창백했다.
“인간의 껍데기를 벗어야만 별의 뜻을 알 수 있지.”
달에서 내려온 색채가 괴물을 축복한다.
“달께서 원하시는 이상 시간문제일 뿐인 거야.”
인간의 모습마저 잃어버린 흉물이 하늘에 손을 뻗으며 달을 찬미했다.
“달을 사랑하라. 달을 사랑하라. 만물을 사랑하는 만월을 사랑하라! 모두를 사랑하는 달을 사랑하라!”
수십 개의 목소리가 메아리치는 것과 함께, 부서진 두개골에서 수십 개의 귀가 꽃처럼 피어올랐다. 사람의 귀로 만들어진 꽃이 부서진 머리를 대신했다.
남자의 모습을 바라보던 재환은 자기도 모르게 머리가 지끈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눈을 감고 귀를 막은 채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아아악!”
두뇌가 지끈거린다. 이성이 마비된다. 형언할 수 없는 존재의 등장에 본능이 울부짖는다. 저것은 추하면서도 아름다웠고, 아름다우면서도 추했다. 저것은 남자이면서 여자였고, 아이면서 어른이었고, 미인이면서 흉물이었다.
분명 인간의 미학에서 벗어났을 존재에, 인지를 초월한 아름다움이 담겨있었다니. 저 괴물을 보는 것만으로도 미학과 가치관이 실시간으로 부정당했다. 괴물의 존재는 그 자체로 모순이었다.
논리와 이성, 그리고 직관과 본능이 일제히 비명을 지른다.
도망쳐라. 지금이라도 당장 도망쳐라. 인간은 괴물을 상대해선 안 된다. 괴물을 쓰러뜨린 자리에는 또 다른 괴물이 남을 뿐. 괴물은 괴물이기 때문에 괴물이다.
불가해 한 괴물의 등장에 몸과 정신이 일제히 비명을 지르던 그 순간, 속삭임이 계시처럼 내려와 그의 머리에 꽂혔다.
[사냥 대상: 날개 달린 주시자 , 크로드의 단말] [분류: 권속 → 추종자] [성자(星子)로 갓 우화한 괴물. 사냥꾼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괴물이 된다.]속삭임이 말한 ‘사냥 대상’이라는 단어가 그를 일깨웠다.
사냥 대상. 사냥해야 할 존재. 원수이자 숙적이며, 힘을 내리는 양식인 존재. 사냥꾼으로 살기로 결심한 이상, 사냥해야 할 대상을 외면해선 안 됐다.
“크으으으…!”
그는 손가락을 움직여 강제로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괴물의 모습이 선명하게 눈에 꽂혔다. 달에서 내려온 색채로 물든 괴물의 모습은 형언할 수 없는 두려움을 자아냈다.
그 모습은 미지에 대한 공포였고, 미래에 대한 절망이었으며, 미형에 대한 집착이 하나로 뭉친 콜라주였다.
재환은 괴물의 모습을 노려보며 왼손에 쥔 권총을 들어 올렸다.
죽여야 한다. 괴물을 죽여야 한다. 설령 그 끝에 파멸만이 있을지라도, 그는 괴물을 죽이기 전에는 죽을 수조차 없었다. 괴물로 시작된 이 악몽을 끝내는 것만이 그가 살아있을 유일한 이유였다.
가늠쇠 너머로 괴물의 모습이 보인다.
손끝은 여전히 흔들린다. 하지만 그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고, 가늠쇠로 괴물을 조준했다. 숨이 멎은 뒤 천천히 방아쇠가 당겨진 순간, 총알이 비상하여 괴물의 가슴에 꽂혔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괴물의 속삭임이 그의 귓가에 꽂히며 기이한 풍경이 펼쳐졌다. 괴물의 기억이 담긴 찰나의 이미지였다.
* * *
우연히 사냥꾼이 된 남자가 있었다.
달빛이 내려앉은 도시에서 그는 본능이 이끄는 대로 사냥을 계속했다.
괴물의 피를 마신 이상, 괴물을 사냥해 사람들을 지키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힘을 가진 자로서의 긍지가 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였을까.
안개가 걷히고, 달빛이 선명하게 내려오면서, 그는 더 이상 사람과 괴물의 모습을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괴물을 사냥한 줄 알았더니 사람인 경우가 있었고, 사람을 죽인 건가 싶어서 살펴보면 괴물인 경우도 있었다. 괴물이 사람이 돼. 사람은 괴물.사람 사람.괴물이 사람이.사람. 괴물.사람을 괴물로. 사람!괴물은 괴물?사람에서 괴물이.사람이야.괴물인데.사람을!.괴물이!사람!
공황에 빠진 남자는 집 안에 틀어박혀 고뇌했다. 사람과 괴물을 구분할 수 없게 됐다는 사실이 절망스러웠다. 인간과 괴물을 구분하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인가. 무엇이 인간과 괴물을 구분하는가. 무엇이 인간을 괴물을 구분하는가. 고뇌는 깊어져갔고, 의식은 고뇌 속에 매몰되어가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언젠가 이성을 잃고 사람을 해치는 괴물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불안과 죄의식이 그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죽음만이 유일한 구원이라 여기며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을 때, 선명한 달빛 너머로 별처럼 빛나는 존재가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천사면서 계시이고, 계시이면서 구원인 자.
끊임없이 모습을 바꾸며 부유하던 그 존재는 날개가 수백 장 달린 까마귀 군체의 모습으로 그에게 속삭였다.
그러자 별의 저편에서 내려온 이미지가 그의 머릿속에 펼쳐졌다.
별의시작.종말의풍경.별빛의여로.생명의신비.죽음의순환.암흑의바다.별의죽음.황홀한메아리…
그것은 미래이자 종말의 계시였고, 인간의 발상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는 지혜였다.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은 고통 속에서 괴로워하던 그는 어느새 자신의 몸이 커다란 알이 되어있음을 깨달았다. 지혜를 내린 존재가 그를 구원한 것이다. 덕분에 그는 알 속에서 충분히 고뇌할 시간을 벌었고, 1초의 시간을 1년처럼 사용할 수 있었다.
그 속에서 1시간 = 60분 = 3600초 = 3600년의 시간을 보낸 그는 마침내 미련했던 자기 자신을 되돌아봤다.
어째서 인간과 괴물을 구분해야 했을까. 왜 자신은 인간과 괴물을 구분하려 했을까. 만물은 하나에서 비롯됐고, 결국 하나로 돌아가기 마련인 것을.
처음부터 전제가 잘못되어있었다.
애벌레와 나비의 본질은 동일하다. 인간과 괴물의 본질 역시 동일했다.
어리석었다. 이 둘을 구분하려 했던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었다.
환희와 감사가 소용돌이친다.
지혜를 얻게 된 그는 어리석었던 자신을 인간의 모습으로 뱉어냈다. 이 어리석은 자가 죽게 되는 순간, 그는 저 하늘의 별처럼 위대한 존재로 우화할 것이다.
알 속에서 그는 달을 향해 경배했다.
달빛 아래에서 삶은 죽음이 되고, 죽음은 삶이 된다.
달에 가까워진 자만이 알 수 있는 지혜였다.
* * *
괴물이 보여준 찰나의 풍경이 끝나자 재환은 비틀거렸다.
‘방금 그건…?’
그는 자신의 상황을 떠올리며 정신을 부여잡았다. 지금은 1초라도 방심해선 안 될 순간이었다. 그는 괴물이 있던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가 발사한 총알은 명중한 것처럼 보였다. 빗나가는 게 이상할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으니 놀랄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재환은 괴물의 모습을 보며 경악했다.
“재생…?”
총알을 맞은 상처에는 또 다시 새 살이 돋아났고, 그 사이에 괴물은 잠시 주춤거렸을 뿐이었다. 재생을 끝낸 괴물은 또다시 그에게 속삭였다.
“하나가 되라. 하나가 되어라… 만물의 어머니인 만월을 사랑하라…”
괴물의 목소리가 들리자 뇌가 뒤흔들리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괴물이 설교하는 것을 잠자코 듣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그는 양손으로 도끼를 쥔 뒤 괴물을 향해 뛰어올랐다.
“으아아아아아아!”
그는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로 기합을 내질렀다. 이성이 아닌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목소리였다. 인간을 초월한 괴력이 담긴 도끼날이 괴물의 몸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괴물은 도끼를 맞아주진 않았다. 한때 사냥꾼이었던 이 괴물은 날렵하게 몸을 움직여 도끼를 피했다. 도끼가 허공을 가르자 괴물이 다시 속삭였다.
“나에겐 죄가 없다.”
인간의 언어로 발음하는 말이 아니었다.
“나는 괴물을 죽였을 뿐이다.”
그가 알고 있는 언어가 아니었다.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것에 어떤 잘못이 있단 말인가.”
하지만 저 말에 담긴 의미는 그의 뇌에 내리꽂혔다.
“유년기가 끝난다. 모든 것은 우주로 나아가야 하는 인간의 숙명에서 비롯되었다.”
괴물의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뇌출혈이 일어나는 기분이었다.
‘지혜가… 이래서…’
그는 본능적으로 거리를 벌리며 속삭임이 했던 지혜의 의미를 되새겼다.
‘지혜가, 이래서 필요한 거였나?’
그는 도끼를 지팡이 삼아 돌아버릴 것만 같은 감각을 간신히 버텨냈다. 그리고 괴물이 다시 설교를 시작하려던 순간, 자신이 어떻게 해야 저 괴물을 죽일 수 있을지 생각했다.
‘총알은 맞아줬고, 도끼는 피했지.’
생사가 걸린 극한의 상황 속에서, 그는 저 괴물을 죽일 수 있는 실마리를 간신히 떠올릴 수 있었다. 여유가 있었으면 진작에 떠올릴 수 있는 발상이었다.
‘그래… 재생력에도 한계는 있겠지.’
그는 도끼를 오른손으로 쥔 뒤, 왼손으로는 권총을 쥐었다. 그는 오른손에 쥔 도끼를 괴물에게 겨눴다.
‘총으로 모자라면 도끼로.’
속삭임이 말했던 ‘지혜’는 이미 충분히 갖춰져 있었다. 그렇다면 사냥하지 못할 이유는 더 이상 없었다. 그는 숨을 내쉬며 도끼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남은 것은 그의 정신이 무너지기 전에, 저 괴물의 숨통을 끊는 일뿐이었다.
그리고 괴물의 목을 향해 도끼를 휘두르려던 순간, 괴물의 속삭임이 그의 머릿속으로 파고들었다.
`보아라, 이것이 바로 시작이자 끝의 풍경일지니.`
뇌를 헤집는 목소리에 그의 의식이 흐릿해졌다. 그리고 흐릿해진 의식 너머에서 그는 잠시 꿈을 꾸었다. 별의 끝자락에서 내려온 종말의 풍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