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18
싹트는 아가페 (1)
동틀 무렵의 새벽녘.
무사히 휴식을 취한 뒤 돌아오던 재환은 은근하게 달라진 도시의 분위기에 눈살을 찌푸렸다.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무언가가 달라진 것이 느껴졌다.
건물 내부에는 사람이 아닌 것들이 똬리를 틀고 있는 것만 같았고, 거리에서 노숙하던 사람들에게서는 기이한 모양의 반점이 돋아나 있었다. 하루아침에 도시가 벌레 소굴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너무 예민해진 건가?’
그는 달빛이 사람을 미치게 한다는 얘기를 떠올렸다. 지난밤 상대했던 괴물 역시 한때는 사냥꾼이었으니, 그 역시 미치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며 경찰서 방향으로 걸어갔다.
‘여차하면 자살해야지. 정신병원 다닌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니까.’
그렇게 안개 낀 거리를 걸어가고 있을 무렵, 그는 한 카페에 등불이 켜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자세히 보니 세이렌 로고로 유명한 커피 전문점 스타벅스였다.
‘영업중인 건가?’
이런 시국에 영업을 하는 것은 이상하긴 했어도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다. 커피 같은 기호품은 스트레스가 심한 상황일수록 수요가 늘기 마련이었으니, 아직 연료가 남아 있을 때 팔아치우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라 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인적이 드문 새벽부터 불이 켜져 있다는 사실 자체에 의문을 품었다.
아무리 이제 곧 낮이 된다곤 하지만, 여전히 거리는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새벽에는 경찰이나 군인마저 활동을 꺼려하는 만큼, 이런 타이밍에 가게를 여는 것 자체가 위험을 동반하는 행위였다.
나방이든, 괴물이든, 강도든, 어두울 때 활동하는 것들은 불빛에 이끌리기 마련이니까.
‘잠깐 들렸다 갈까?’
의아하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호기심이 동했다.
이런 시국에 한가하게 카페나 운영하는 게 가능하긴 한 일인지. 만약 운영하는 게 가능하다면 요금은 어떤 식으로 받을지, 메뉴는 과연 어떤 게 나올 것이며 품질은 어떨지.
궁금한 것들이 새록새록 피어오르자 그는 카페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 역시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커피를 좋아하던 대학생이었던 만큼, 한편으로는 기대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너무 비싸면 어떡하지.’
사실 그의 지갑 사정은 좋지 않았다. 평소에 체크카드나 금융 어플로 결재를 하고 다니다 보니 현금을 쓸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히 그런 고민은 곧바로 사라졌다. 쓸데없는 걱정이란 것을 깨달은 것이다.
‘여차하면 물물교환이라도 해 달라고 해야지. 주인분 입장에서도 그게 더 나을 테고.’
사실은 그에게 돈 걱정만큼이나 무의미한 것이 없었다. 그는 서울의 거리를 자유롭게 활보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었고, 서울에는 지금 주인을 잃은 물자가 널려있었다.
그러니 마음만 먹으면 마을 하나 규모 이상의 빈집털이를 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고, 어젯밤만 해도 대형 마트 규모의 물자가 쌓여 있는 곳을 여러 군데 찾아낸 참이었다. 만약 욕심을 좀 부린다면 쌓아놓은 물자를 바탕으로 갑질을 하며 왕처럼 사는 것도 가능했다.
‘괴물 잡으러 다니기도 바쁜데, 괜한 욕심 부리진 말자. 호의호식하려고 이 지랄 하는 것도 아니니까.’
그는 스스로를 다잡으며 생각했다.
누군가의 위에 군림한다는 것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이었고, 그는 다른 사람들을 책임질 자신이 없었다.
당장 불가해한 존재들에게서 자기 자신 하나 간수하기도 벅찬 상황인 만큼 다른 사람들의 안전까지 책임지는 것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총대를 메고 영웅 놀이하는 것은 그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다 왔네.’
유리문 너머에서 중년 남자 한 명이 커피 원두를 갈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원두를 가는 작업에 집중하던 남자는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 올렸다.
“어서오세.. 아…!”
인사를 하려던 남자는 재환의 모습을 보고 당황스러워했다. 그제야 재환은 자신의 몰골이 정상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괴물의 피로 범벅이 된 옷을 입고 소총을 어깨에 멘 모습은 손님이 아니라 강도에 가까운 모습이었으니까.
‘옷 갈아입고 들를 걸 그랬나?’
어떻게 설명하는 게 좋을지 잠시 고민하던 그때, 남자가 먼저 말을 꺼냈다.
“어휴, 놀래라. 경찰 쪽 직원이세요?”
“네? 아…”
그는 쓰고 있던 경찰용 근무모를 벗으며 대답했다.
“진짜 경찰은 아니고, 인턴 같은 거예요. 괴물 잡으러 다니는 엽사 같은 거요.”
“아~ 사냥꾼분이셨구나. 요즘 얘기가 자자해요. 무슨 어벤저스 같다고 그러더라고요,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고요.”
남자는 넉살 좋게 웃으며 재환에게 자리를 권했다.
“잠깐 앉아 계세요. 금방 한 잔 내려드릴게요. 에스프레소랑 아메리카노 중에서 뭘로 드릴까요? 아, 아이스는 안 되는 거 아시죠?”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꺼냈고, 재환은 의아해하며 대답했다.
“아메리카노로 주세요. 그런데, 돈은 안 받으세요?”
“아, 그거요?”
남자는 주전자에 물을 담아 가스레인지에 올려 물을 끓였다.
“이거 자원봉사로 하는 거예요. 제가 여기 점장이거든요.”
“자원봉사요?”
“네. 어차피 재고 처리 안 하면 썩는 거, 마셔서 없애는 게 낫죠. 가진 건 바리스타 자격증밖에 없는데, 이런 거라도 해야죠. 다들 고생하고 있으니까요.”
재환은 그제야 저 남자가 왜 새벽부터 원두를 갈고 있는지를 이해했다. 사람들에게 커피를 대접하려면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어지간한 근면함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새벽부터 고생하시네요.”
“뭘 요. 일어난 김에 하는 거죠.”
점장은 겸손하게 대답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전자에서 물이 끓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에 점장은 원두를 갈던 것을 멈춘 뒤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다. 연륜 있는 바리스타가 능숙하게 커피를 내리는 솜씨에 재환은 숨죽여 감탄했다.
‘돈만 많아서 점장한 건 아닌가 보네.’
커피를 내리는 모습을 처음 본 것은 아니었다. 개방된 공간에서 커피를 내리는 카페라면 서울 전역에 널려있었으니까.
하지만 이런 시국에 자연스럽게 커피를 내리는 모습은 생경하기 그지없었다. 괴물이 나오고, 사람이 미쳐가는 시대에 태연하게 커피를 대접하려는 모습은 너무나 일상적이었기에 비일상처럼 보였다.
“자, 다 됐습니다. 설탕이나 시럽 넣어드릴까요?”
“아뇨, 블랙으로 주세요.”
재환은 아메리카노가 담긴 종이컵을 받아들었다. 모락모락 김이 피어나는 톨 사이즈 커피를 받아들자 지난 학기에 학교 근처의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셨던 일이 떠올랐다.
근처에 비치되어있던 커피스틱으로 커피를 한 모금 마시자 점장이 말했다.
“어떠세요? 입에 좀 맞아요?”
커피의 쌉싸름한 맛을 음미하던 재환은 미소를 지었다. 다행스럽게도 바리스타가 손수 내린 핸드드립 커피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네, 맛있네요. 잘 마실게요.”
재환은 꾸벅 인사를 한 뒤 가게를 나섰고, 점장은 손을 흔들어 그를 배웅한 뒤 다시 원두를 가는 작업에 몰두했다.
‘장사 잘 됐으면 좋겠네. 아니, 너무 잘 되면 그거대로 문젠가?’
그는 사람들이 그 카페에서 북적거리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리고 줄지어 늘어선 사람들이 커피를 달라고 아우성치는 모습을 떠올리니 피식 웃음이 나오고 말했다.
‘그래도 아무도 안 오는 것보단 낫겠지.’
그는 그런 생각을 하며 숙소에 들러 몸을 씻은 뒤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이제부터 경찰서에 보고를 하러 가야 하는데, 미친 사람 꼴로 갈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 * *
안개가 깔린 거리를 걸어가자 경찰서의 모습이 보였다.
경찰서에 도착한 그는 당직 중인 경찰에게 보고할 내용이 있으니 담당 직원을 불러달라고 요청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여경이 그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지난밤 브리핑을 담당했던 이해리 순경이었다.
“어서 오세요. 어디 다치신 데는 없어요?”
“네. 크게 다치진 않았어요. 지금은 거의 다 회복됐고요.”
“다행이네요. 그러면 회의실로 안내해드릴게요. 아마 지금은 비어있을 거예요.”
재환은 고개를 끄덕여 그녀를 따라갔다. 커피를 홀짝거리며 걸어가니 이 순경이 은근한 말투로 질문했다.
“커피는 어디서 구하셨어요? 스타벅스가 아직도 영업해요?”
“아, 이거요? 오는 길에 스타벅스가 열려있더라고요.”
“가격은요.”
“제가 갔을 땐 공짜였어요. 자원봉사하신다고 하셔서요.”
“그래도 아직 세상이 살 만한가 보네요.”
그렇게 얘기를 나누며 걷다 보니 어느새 회의실이 눈에 들어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녀가 말했던 대로 회의실은 비어있었다.
그녀는 회의실 서랍의 자물쇠를 푼 뒤 그곳에서 노트와 샤프를 꺼냈다. 일종의 회의록처럼 보이는 물건이었다.
“그러면 지금부터 보고 부탁드릴게요. 어젯밤부터 있었던 일을 얘기해주시면 돼요.”
그녀의 말이 끝나자 재환은 기억을 더듬어가며 지난밤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기이할 정도로 고요했던 도시, 유난히 적었던 괴물의 숫자, 그리고 그 원흉이 정신을 일그러뜨리는 괴물이라는 사실까지.
그 모든 것들을 얘기한 뒤 인근의 대형 마트들을 조사한 얘기를 하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생 많으셨어요. 전부 다 도움되는 내용이네요. 도시 문제 해결에 크게 도움될 거예요. 다른 변수만 없으면요…..”
재환은 그녀가 말끝을 흐리자 의아해했다. 도시의 상황을 자세히 알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자신이 가져온 정보가 보물지도나 다름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괴물의 숫자가 거의 없는 지역. 그곳에 방치된 빈집과 물자들. 가뜩이나 주거 시설과 생활 물자가 부족한 상황인 만큼 희소식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정보를 눈앞에 두고도 걱정을 드러냈다는 사실에 재환은 의문을 느꼈다.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
의아함이 담긴 질문에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대피 구역 바깥에서 마약 사범이 들어왔어요. 사람들한테 마약을 나눠주고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그 마약이 좀 이상한 건 덤이고요.”
마약이라는 단어에 그는 불길함을 느꼈다. 가뜩이나 불안한 시국에 마약까지 퍼지게 되면 어떤 지옥이 펼쳐질지는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어떤 점이 이상한데요?”
“증상을 보면 환각이랑 수면 효과가 있는 것 같긴 한데,.. 약에 취한 사람치고는 너무 논리적이었거든요. 얼핏 보면 마약상이 아니라 시식 코너 직원처럼 보일 정도로요.”
“시식 코너 직원이요?”
“네. 뭘 나눠주는 든 솔직히 상관은 없는데, 나눠주는 게 마약은 좀 문제죠. 게다가 그것들을 공짜로 나눠줘서 더 문제였어요. 차라리 돈이라도 비싸게 받았으면 피해자가 줄었을 텐데.”
그녀가 말을 끝내자 시식 코너 직원이 마약을 마셔보라고 권하는 모습이 잠시 떠올랐다. 음지에 있어야 할 마약이 일상에 녹아든 광경은 기이한 불쾌함을 자아냈다.
“그래서, 그 약 이름은 뭐래요?”
“…설마, 약 하실 생각 있는 건 아니죠?”
“안 해요. 미리 알아두면 도움될 것 같아서 그런 거니까, 오해하지 마세요.”
그 말에 그녀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농담이었어요. 약 이름은 아가페래요.”
“아가페?”
“네. 아가페요. 무슨 생각으로 쓰는 말인진 모르겠지만, 약쟁이끼리 쓰는 은어 같은 건가 봐요. 아니면 아예 신종 마약이거나.”
그녀의 말에 재환은 생각에 잠겼다. 아가페라는 말을 기독교에서 자주 쓴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제대로 된 기독교인이라면 마약에 그런 말을 붙일 거라고 생각하긴 힘들었다.
“그 사람, 혹시 잠깐 만나볼 수 있어요?”
그 말에 그녀는 기꺼이 대답했다.
“음… 이미 한 번 취조하긴 했는데, 아마 괜찮을 거예요.”
편의를 봐주려는 태도에 그는 의아해했다.
“그래도 돼요?”
“되죠. 안 그래도 저희 쪽에서 부탁드릴 계획이었거든요. 사냥꾼분들이 보기에는 뭐가 다를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그녀는 그렇게 말한 뒤 그를 유치장으로 안내하기 위해 자리에 일어섰다. 그녀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난 재환은 가슴 한편에 피어오르는 불길함을 억누르며 발걸음을 옮겼다.
‘아니겠지. 약이라니, 그렇게 귀찮은 걸 왜 쓰겠어.’
그는 불가해한 존재들이 미지의 마약을 만들어 퍼트리는 모습이 떠오르려는 것을 간신히 억눌렀다.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간 불길한 상상이 밑도 끝도 없이 떠오를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초자연적인 존재들이 인간을 쾌락으로 길들이는 세계라니.
비명조차 지를 수 없는 천국이야말로 그가 가장 두려워하는 지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