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19
싹트는 아가페 (2)
유치장에 가까워지자 시끌벅적한 소음이 들려왔다. 수십 명이 넘는 사람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소리였다.
유치장의 문을 열기 전, 이해리 순경은 그에게 경고했다.
“문 열면 아무한테도 시선 주지 마세요. 말도 걸지 마시고요. 아셨죠?”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던 재환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같이 정상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목소리뿐이었다.
“꺼내줘! 아니 씨발, 꺼내달라고 개새끼들아!”
“야 이 미친놈들아! 나 안 미쳤다고! 몇 번을 말해야 알아 듣냐! 안 미쳤다니까!”
“거기 누구 없어요? 누가 저 좀 꺼내주세요! 아무튼 잘못했으니까 제발 좀 꺼내주세요!”
“온다!온다!그분이오신다!그분께서사랑을!”
“조용히 좀 해 씨발년들아! 늬들 때문에 여기 당직도 안 서잖아!”
소란스러운 소리가 귀에 꽂히자 재환은 인상을 찌푸렸다. 유치장을 감시하는 사람이 없는 것이 이해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건 무슨 정신병원도 아니고… 여기 오래 있으면 진짜 정신병 걸리겠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 이해리 순경이 유치장 입구의 문을 열었다. 그러자 수감자들이 창살 안쪽에 빼곡히 들어선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양계장이나 돼지우리를 방불케 하는 풍경이었다.
안개 때문에 벽지 곳곳에는 곰팡이가 피어 있었고, 퀴퀴한 냄새가 은연중에 풍겨왔다. 누가 봐도 청소나 관리가 전혀 되지 않은 기색이 역력했다.
‘나가고 싶어 할 만 하네.’
세상이 미쳐가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실체를 직접 보자 기분이 착잡했다. 경찰 역시 수감자들에게까지 신경 쓸 여력은 없는 것이다. 지금이야 어떻게든 경찰다운 구색이라도 갖추고 있지만, 이것이 파도 앞의 모래성에 불과해 보였다.
인권, 청결, 복지, 자유와 같은 권리들이 생존이란 이름 앞에 으스러지는 시국이었다.
그는 수감자들의 아우성을 뒤로한 채 몇 걸음 더 걸어갔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이해리 순경이 걸음을 멈췄다.
“여기에요. 이분이 용의자세요.”
그녀가 발걸음을 멈춘 감방은 유독 조용했다. 다들 마치 수면제라도 먹은 것처럼 쥐 죽은 듯이 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삼단봉을 펴서 한 수감자를 툭툭 건드렸다. 약에 취해 잠들어있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조아라 씨. 일어나세요, 조아라 씨. 잠깐 협조 좀 부탁드립니다.”
이해리 순경의 부름에 한 여자가 머리를 벅벅 긁으며 일어났다. 멀쩡하게 생긴 20대 후반의 여자였다.
“무슨 일이세요? 얘기해 드릴 건 다 해드린 거 같은데?”
“몇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협조 좀 부탁드릴게요.”
그 말에 조아라는 오른손 손바닥을 펼치며 말했다. 약에 취해 있던 사람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또박또박한 목소리였다.
“아가페 돌려주면 생각해 볼게요.”
이해리 순경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며 주머니를 뒤졌다. 그리고 믹스커피 봉지처럼 생긴 물건을 하나 꺼내 보여주며 대답했다.
“하나. 그 이상은 안 돼요.”
조아라는 씩 웃으며 OK 사인을 보냈고, 이해리 순경은 열쇠를 꺼내 유치장 창살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재환은 어처구니없어하며 말했다.
“아니, 그거 마약 아니에요? 그렇게 막 줘도 되는 건가?”
“수사용 샘플로 몇 개 받은 거예요. 수사 끝나면 폐기할 물건이니까, 이런 식으로 쓰는 게 더 나아요.”
태연스러운 태도에 재환은 황당해 했지만, 한편으로는 안심할 수 있었다.
‘그렇게 위험한 약은 아닌가 보네. 차라리 다행인가.’
만약 불가해한 존재들이 저 약을 만들어낸 것이라면, 저렇게 함부로 나눠줘도 될 정도로 약하게 만들었을 것 같지 않았다. 인간의 인지를 초월한 존재라면 조금만 마셔도 미쳐버리는 수준의 약을 만들어내는 쪽이 차라리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래도 일단 왔으니 얘기는 들어봐야지. 아직 확실한 것도 아니니까.’
그렇게 잠시 기다리자 철컥! 거리는 소리와 함께 유치장 창살의 문이 열렸다. 그러자 문이 열리는 것을 본 수감자들이 길길이 날뛰기 시작했다.
“뭐야, 씨발! 나도 꺼내줘! 꺼내달라고!”
“문 열어 씨발년아! 여기도 문 열라니까!”
“저기요! 여기도 열어주세요! 제발 좀 열어주세요 선생님!”
사방에서 들려오는 살기 어린 아우성에 재환은 걱정이 앞섰다. 문을 열고 닫을 때 폭동이라도 일어나면 어쩌나 싶은 생각이 든 것이다.
“이렇게 함부로 문 열어줘도 되는 거예요? 위험할 것 같은데…”
그녀는 창살의 문을 잠근 뒤 조아라에게 수갑을 채우며 대답했다.
“그러니까 2인 1조로 왔죠. 왜요? 무슨 일 생기면 보고만 있으려고 그랬어요?”
“아니, 뭐 그런 건 아니고…‘
당연하기까지 한 핀잔이 돌아오자 그는 할 말을 잃었다. 돌이켜보니 경찰한테 총까지 받은 마당에 남처럼 구는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찰칵!
수갑이 채워지는 소리와 함께 이해리가 앞장섰다.
“취조실로 이동할게요. 재환 씨는 이분 뒤에서 따라와 주세요.”
그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 뒤 조아라의 뒤를 따라 걸었다. 아무리 상대가 수갑까지 찬 여성일지라도, 수감자를 이송할 때는 돌발 상황에 조심하는 것이 옳았다. 가뜩이나 불안한 시국인 만큼 작은 변수일지라도 큰 문제로 번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몇 분 정도 경찰서 내부를 걸어가자 취조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해리 순경은 취조실의 문을 연 뒤 조아라를 의자에 앉혔다. 조아라는 의자에 앉자마자 칭얼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가페. 아가페부터 줘요. 안 주면 아무 말도 안 할래요.”
이해리는 그 말을 예상하기라도 한 것처럼 아가페를 꺼내 그녀의 눈앞에서 흔들었다.
“이거 갖고 싶어요?”
그녀는 마치 미끼를 가지고 노는 낚시꾼처럼 조아라의 시선을 흔들었다. 마약사범을 상대로 심문한 경험이 있는 것처럼 능숙해 보이는 솜씨였다.
그렇게 아가페를 가지고 조아라의 인내심을 시험하던 그녀는 아가페를 탁자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마시멜로 얘기 아시죠? 그거보다 짧아요. 10분. 딱 10분만 참으면 이거 드릴게요. 콜?”
어린애를 다루는 듯한 태도에 조아라의 동공이 흔들렸다. 그녀는 아니꼬운 기색이 역력했지만, 아쉬운 것은 언제나 을의 몫이었다.
“…콜.”
대답이 끝나자 이해리는 미소를 지으며 재환에게 의자를 권했다. 이미 경찰 측에서는 한차례 취조를 한 직후였으니, 궁금한 게 있으면 직접 물어보라는 배려였다.
그는 고맙다는 뜻으로 묵례한 뒤 자리에 앉았다.
‘특별히 이상한 점은 안 보이긴 하는데…’
조아라의 모습을 살펴보던 재환은 숨을 고르며 자신의 생각을 정정했다.
‘아니지. 그 사람도 대충 봤을 때는 사람이었으니까. 이 사람이라고 그러지 말란 법은 없겠지.’
결론을 내린 그는 편견을 버린 뒤 그녀에게 말했다.
“이 약, 언제, 어디서, 누구한테, 어떻게 받은 거예요?”
한 번에 여러 개의 질문이 쏟아졌음에도 조아라는 조리 있게 대답했다.
“석계역 근처 카페에서 어떤 사람이 나눠주더라고요. 시간은 어제 오후 세 시쯤? 먹어보고 맛있으면 자기 대신 홍보해달라고요.”
위화감이 느껴지는 대답이었다.
괴물이 판치는 와중에 마약을 나눠주는 사람이나, 그걸 좋다고 받아들이는 사람이나 이상하긴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거짓말이냐고 되묻는 것은 시간 낭비인 만큼, 그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누가 만든 건데요?”
“모르죠. 저야 그냥 시키는 대로 한 거니까.”
그녀의 말에 재환은 어처구니없어했다.
“아니, 누가 시킨다고 마약을 나눠주고 다니는 게 말이 돼요?”
“왜 안 돼요? 세상이 좆같으면 약 좀 먹고 다닐 수도 있는 거지, 그게 그렇게 잘못됐어요?”
“무슨 부작용이 있을 줄 알고?”
“있으면 어쩌라고요. 그냥 뒤지면 되는 거지.”
막 나가는 중학생이나 할 법한 발상에 재환은 황당해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녀의 심정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몰아붙일 기분이 들지 않았다. 가족, 친구, 연인이 언제든 괴물이 될 수 있는 세상에서 산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 세상이 좆같긴 하지.’
그는 잠시 한숨을 내쉰 뒤 이어서 질문했다.
“그러면 이 약은 왜 나눠준 거예요? 그냥 혼자서 다 가지면 되는 거였잖아요.”
“아 그거요? 혼자 먹기 아까워서 그런 것도 있죠. 이 좋은 걸 저 혼자 먹으려니까 벌 받는 기분이더라고요. 그래서 나눠줬어요. 그러다 걸렸고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더니 이해리 순경을 향해 말했다.
“경찰 언니도 그거 맛 좀 봐봐요. 진짜, 지인~짜 끝내주거든요. 그거. 완전 천국이 따로 없다니까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호객 행위에 이해리는 눈살을 찌푸렸고, 재환은 조아라의 말을 끊으며 질문했다.
“이거 나눠준 사람, 뭐 이상한 건 없었어요? 인상이라던가, 말투라던가, 외모 같은 거요.”
“이상한 건 딱히 없었고… 아. 자주 웃고 다니더라고요. 뭐가 그리 좋은지, 계속 웃고 다녔어요. 웃으면 복이 온다면서요.”
그다지 유용한 정보는 아니었다. 마약에 중독된 사람이 히죽거리고 다니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쓸 만한 정보가 하나도 없네…’
그는 한숨을 내쉰 뒤 마지막으로 궁금했던 점을 말했다.
“그러면 왜 약 이름이 아가페인지는요?”
그녀는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부드러운 미소에 담긴 평안함에 그는 불길함을 느꼈다.
“사랑 덩어리니까요.”
부처와 같은 인자함에 소름이 돋는 게 느껴졌다.
“무슨 말인지는 드셔 보면 알 거예요. 왜 아가페인지.”
대답이 끝나자 잠시 정적이 이어졌다.
그녀와 대화를 나눠본 재환은 취조를 그만뒀다. 이 이상은 고문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쓸만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고, 대화를 나눌수록 불쾌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재환은 이해리를 흘끗 쳐다보며 말했다.
“따로 물어볼 거 더 있으세요?”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일단은 이 정도면 된 것 같아요. 선배들이랑 신문했을 때랑 크게 달라진 내용도 없고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아가페’를 꺼내 조아라에게 건넸다.
“잘 먹겠습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한 뒤 봉지의 끝부분을 입으로 뜯어낸 다음 내용물을 입안에 털어 넣기 시작했다. 얼핏 보기에는 가루로 된 비타민C를 섭취하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하아… 그래… 씨발, 이거야…”
약발이 돌기 시작하는지 조아라는 나른하게 숨을 내쉬었다.
“역시 최고야… 아가페… 아가페는. 정말 좋은 거야… 정말 좋지…”
재환은 이해리를 도와 조아라를 부축하며 말했다. 수사와는 별개로 호기심 때문에 묻는 말이었다.
“도대체 뭐가 그렇게 좋은 건데요?”
“…한번 빨면 마음이 편해지고, 근심이 없어져요. 불안, 근심, 걱정. 이런 감정이 병이라면, 아가페만큼 좋은 약도 없는 거죠. 아가페는… 아가페는 정말 좋은 거예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더니 약 기운에 취해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재환은 이해리를 도와 그녀를 부축해 유치장으로 옮겼다.
“취조 해본 소감은 어때요?”
그녀는 조아라를 유치장에 넣은 뒤 창살을 잠그며 말했다.
“미치겠더라고요. 약쟁이 상대하는 것도 할 짓이 못되네요.”
그러자 그녀는 히죽 웃으며 농담을 건넸다.
“미칠 것 같으면 말해요. 제가 싸게 치료해드릴게요.”
그녀는 허리에 찬 총을 툭툭 건드렸다. 그의 걱정이 무엇인지 이미 짐작한 눈치였다. 그녀의 블랙 유머를 듣던 재환은 피식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이 여자도 맛이 갔네.’
머리가 문제라면, 머리를 날려버리면 그만이라는 태도라니. 경찰이 아니라 보안관이나 떠올릴 발상이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는 이런 태도가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총알이야말로 만능해결사이자 만병통치약이라는 점에는 동의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 역시 현실을 직시하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미칠 땐 미쳐도. 이 여자보단 늦게 미쳐야지.’
그렇게 결론을 내린 뒤 이해리 순경과 함께 유치장을 나가려던 순간, 그의 귓가에 속삭임이 들려왔다.
[사냥 대상: 피어오르는 사랑, 암브락사스의 권속] [분류: 권속] [사랑을 베푸는 성자(星子)의 권속. 사랑이 모이는 곳에 암브락사스가 임한다.]그는 유치장을 나가려던 발걸음을 멈춘 채 뒤를 돌아봤다. 잠시 주변을 둘러보니 조아라의 머리에 엄지만 한 크기의 ‘무언가’가 버섯처럼 돋아나 있었다.
그는 그녀에게 다가가 그 ‘무언가’의 정체를 확인했다.
그것은 사람의 뇌를 닮은 새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