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2
퍼스트 블러드 (1)
또다시 돌아오자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벌써 네 번째 되풀이된 장면이었다.
재환은 창밖에 떠오른 푸른색 보름달을 멍하니 바라봤다.
시퍼렇다 못해 창백하게 느껴지는 달. 그는 퍼렇게 질린 달을 응시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속삭임’이 머릿속으로 들려왔다. 늙은 남자가 낮게 속삭이는 목소리였다.
[괴물을 사냥하지 않으면 아침은 오지 않는다] [괴물의 피를 마셔 힘을 취하라] [악몽의 근원인 달을 사냥하라]영문을 알 수 없는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연달아 울려 퍼졌다.
강요처럼 들리기도 하고, 협박처럼 들리기도 하고, 세뇌처럼 들리기도 하는 목소리.
그는 이 음성이 어디에서 들려오는지, 무엇을 위해 들려오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 목소리가 말하는 ‘괴물’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다.
괴물병.
사람을 괴물로 만드는, 불가사의한 재난 현상.
이 재앙은 그가 알던 서울을 일주일 만에 멸망시켰다.
정부는 기능을 상실했다. 군대는 연패를 거듭했다. 경찰은 치안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병원은 치료법을 개발하지 못했다. 대학은 원인을 알아내지 못했다. 종교인이 신을 찾는 목소리만 높아질 뿐이었다.
모두가 도망치길 원했다. 사람이 괴물이 되고, 괴물이 사람을 해하는 이 도시에서 벗어나길 원했다.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아무도 서울을 나갈 수 없다. 그 누구도 서울을 나갈 수 없다.
도시 외곽에 펼쳐진 ‘안개의 장벽’은 그 무엇도 서울 밖으로 내보내지 않았고, 들여보내지도 않았다. 모두가 서울에 갇혀버렸다.
이 악몽 같은 상황 속에서 시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상황이 나아지길 바라며 집안에 틀어박히는 것뿐이었다. 갑자기 일어난 재앙인 만큼, 갑자기 사라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일반인으로서는 최선에 가까운 대처였다.
하지만 버티는 것에도 한계가 찾아왔다. 식수나 식량이 떨어졌기 때문이 아니다. 아끼기만 하면 일주일은 더 버틸 수 있었다. 생존이 걸린 문제인 만큼 가족 모두 자제력을 발휘했다.
괴물이 집 밖에서 침입한 것도 아니었다. 모든 사람들이 문단속에 집착하는 시기였다. 외출만 조심하면 괴물에게 습격당하는 일은 많지 않았다.
가족 간의 불화 역시 이유가 되지 못했다. 그의 가족은 화목한 편이었다. 이런 시기일수록 의지할 것은 가족밖에 없었다.
결국, 남은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가족 중 누군가가 괴물이 되었다. 괴물병이 결국 그의 가족을 집어삼킨 것이다. 이 불합리한 재앙 앞에서 그는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까드득, 까드득. 파직!
안방에서 사람의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섬뜩하게 들려왔다. 이미 네 번이나 반복해서 들은 소리였지만 여전히 끔찍했다.
재환은 울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아가며 핸드폰의 시간을 확인했다.
3월 11일 밤 12시 03분.
벌써 네 번째 반복된 시간이었다.
그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는 원래 눈물이 많은 성격이 아니었다. 오히려 눈물이 없는 편에 속했다. 그는 군대까지 다녀온 25살 청년이었고, 부조리와 더러운 꼴도 겪어본 몸이었다.
하지만 그가 울먹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명확했다.
안방에서 들려오는 저 소리는 어머니의 허리뼈가 부러지는 소리였다.
그는 저 소리를 낸 ‘괴물’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뇌리에 꽂혀서 잊혀지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를 동강 낸 것은 곰 인형 모습을 한 괴물이었다.
[사냥 대상: 포옹하는 인형탈, 허그베어] [분류: 선공형] [포옹하는 것을 좋아하는 괴물. 내구력과 근력을 주의할 것.]또다시 ‘속삭임’이 들려왔다. 젊은 여자가 사무적인 어조로 읊조리는 소리였다. 재환은 이 ‘속삭임’들이 어째서 들리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속삭임들이 말하는 내용은 한결같았다.
사냥.
괴물을 사냥하라.
괴물의 피를 마셔서 힘을 취하라.
쉽게 납득할 수는 없는 말들이었다.
그는 자신의 방에서 고작 7m 정도 거리에 괴물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더군다나 그는 이 괴물의 정체를 알고 있다. 이 집에는 아버지, 어머니, 그 자신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면 소거법으로 남은 진실은 명확했다.
이 괴물은 원래 그의 아버지였다.
괴물병이 순식간에 사람을 괴물로 만든다는 소식은 유감스럽게도 진실이었다. 러시안룰렛에 당첨된 기분이었다.
‘왜 이렇게 된 거지?’
재환은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은 심정으로 가족들을 떠올렸다.
‘우리 집에 무슨 죄가 있다고?’
그의 집안은 평범했고, 죄 따위는 지은 적이 없었다.
평범한 것을 넘어서 선량하기까지 했다.
전직 간호사였던 어머니는 괴물병이 창궐하자마자 의료인으로서 자원봉사 활동에 기꺼이 참여했고, 소방관인 아버지는 이 지옥 같은 상황 속에서도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고 출근했다.
괴물병이 전염병이라는 증거는 없었다. 사실 ‘질병’이 맞기는 한 것인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재환은 이때만큼은 어머니와 아버지의 선량함을 원망했다.
만약 조금만 더 조심했더라면,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적어도 괴물병에 전염성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에 남을 도왔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다못해 어머니와 아버지가 각방을 썼다면 좋았을 텐데.
부질없는 가정법이었고, 근거 없는 망상에 불과했다. 재난은 선한 자와 악한 자 모두에게 평등하고, 운이 좋은 자와 운이 나쁜 자를 가려낼 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뭐든 핑계를 씌우지 않으면 이 상황에서 도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숨을 고르던 재환은, 사무적인 태도로 들려왔던 ‘속삭임’ 떠올렸다.
[사냥 대상: 포옹하는 인형탈, 허그베어] [분류: 선공형] [포옹하는 것을 좋아하는 괴물. 내구력과 근력을 주의할 것.]사실 이 상황을 끝낼 방법이 하나 남아있었다.
저 안방에 있는 괴물을 사냥하는 것.
식칼이든, 망치든, 소방도끼든, 야구 배트든.
뭐든 사용해서 괴물을 죽이는 것.
도저히 하고 싶지 않은 방법이었고, 해낼 수 있을 거란 실감도 나지 않았다.
그는 이미 세 번이나 저 괴물에게 살해당했고, 이번에도 살해당하면 네 번째 죽는 것이었다.
하지만 재환은 동시에 안 될 것도 없다는 생각을 같이했다.
어차피 그는 죽으면 이 시간, 이 장소로 되돌아온다.
이는 세 번의 죽음을 겪으면서 증명된 사실이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도망쳐보자.’
어차피 죽어도 되살아난다면, 도망치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는 사냥 따위는 해본 적도 없었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더군다나 그 대상이 괴물이 된 아버지라면 더더욱 그랬다.
‘그래도 안 되면···.’
하지만 최선을 다해 노력해도 도망치는 게 불가능하다면, 그는 최후의 선택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럴 일은 없어야지.’
그는 숨을 들이마시며 각오를 다졌다. 심호흡을 하고 나니 한결 차분해질 수 있었다. 재환은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었다.
그는 숨을 죽인 채 현관문을 바라봤다.
‘빌어먹을 알람 소리.’
현관문을 열면 도어락에서 알람 소리가 난다. 그리고 알람 소리가 울려 퍼지면 안방에 있던 괴물이 문을 부수고 나타난다. 녀석은 소리에 민감했고, 포옹에 집착했다. 그 집착이 너무 과한 나머지 포옹 당하는 사람은 허리가 두 동강 난다. 그 당시의 경험들을 떠올리자 그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첫 번째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
부정. 첫 번째 죽음을 경험하기 직전, 그는 이런 일이 자신에게 일어날 리 없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방으로 도망친 뒤 울부짖었다. 그리고 방문을 부수고 들어온 허그베어에게 포옹 당해 죽었다.
‘두 번째는 화가 나서 견딜 수 없었고.’
분노. 두 번째 죽음을 경험하기 직전, 그는 왜 자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하는지 분노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식칼을 들고 안방 문을 열었고, 피범벅이 된 안방의 현장을 보는 것과 동시에 몸이 굳어버렸다. 그다음에는 허그베어에게 포옹 당해 죽어버렸다.
‘세 번째는 살고 싶어서 간절했고.’
타협. 세 번째 죽음을 경험하기 직전, 그는 더 이상 죽고 싶지 않다는 생각으로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열었다. 이번만큼은 반드시 살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알람 소리를 생각하지 못한 탓에 허그베어의 주의를 끌고 말았다. 그리고 포옹 당했다.
‘이제는···.’
슬픔을 모두 토해낸 그는 한결 차분해져 있었다. 숨을 죽인 채 진정할 시간을 가진 덕분이었다.
‘죽고 싶네. 좀 많이.’
우울이 그를 잡아먹기 전에, 그는 현관문을 열었다.
삐리릭.
도어락이 열리자 알람 음이 울렸다. 이와 동시에 그는 문을 벌컥 열어 계단으로 뛰어내렸다.
쾅! 쾅!
문이 부서지는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괴물이 문을 부수고 나오는 소리였다. 재환은 어금니를 악 물으며 계속 움직였다.
‘온다.’
쿵쿵거리는 묵직한 발소리가 심장을 자극했다. 하지만 이런 압박감도 이제는 제법 익숙해졌다. 덕분에 재환은 침착하게 계단의 난간을 연달아 뛰어넘을 수 있었다. 계단을 내려간다기보다는, 뛰어내리는 모양새였다.
‘앞으로 13층.’
그는 16층에서 13층까지 내려가며 남은 층수를 헤아렸다. 다행히 운동 신경이라면 남들만큼 자신이 있었다. 한때는 아버지를 따라 소방관이 될 작정이었으니까. 덕분에 그는 눈 깜빡할 사이에 3층을 더 내려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를 쫓아오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괴물이었다.
허그베어가 쿵쾅거리는 소리가 더 가깝게 느껴진다. 그는 뒤돌아볼 시간도 아껴가며 계단의 난간을 연달아 뛰어넘어 아래층으로 뛰어내렸다.
‘앞으로 4층.’
이제 쿵쾅거리는 소리가 바로 뒤에서 들릴 지경이었지만, 계단이라는 지형 덕분에 녀석은 괴력을 지녔음에도 그를 쉽게 껴안지 못했다. 덕분에 그는 괴물의 손길을 피해 계속 뛸 수 있었다.
‘다 왔다.’
현관까지 내려온 재환은 자동문이 열리는 것을 보며 침을 삼켰다. 이제 조금이다. 조금만 더 있으면 도망칠 수 있다. 그는 뒤에서 허그베어가 넘어지는 듯한 소리를 들렸다. 그는 속으로 환호했다. 그리고 문이 열리는 타이밍에 맞춰서 밖을 향해 질주했다.
‘조금만 더, 숨을 곳만 찾자.’
녀석도 결국 오감에 의존하는 존재인 만큼,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몸을 숨기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밖을 나서는 순간, 안갯속에 가려졌던 풍경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는 바깥의 풍경을 바라보며 숨을 죽였다.
“씨발···.”
괴물. 바깥에는 괴물이 너무 많았다. 촉수가 돋은 괴물도 있었고, 곤충을 닮은 괴물도 있었으며, 얼굴이 여러 개 달린 괴물도 있었다.
그 순간, 그의 귓가에 속삭임들이 연달아 울려 퍼졌다. 괴물의 정보를 간략하게 알려주는 말들이었지만, 그는 귓가의 속삭임에 집중할 수 없었다.
괴물, 괴물, 괴물!
그는 괴물이 사방에 괴물이 깔려있다는 사실 자체에 압도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등 뒤에서 불투명 유리로 된 자동문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
생명의 위협이 느껴지자 그는 뒤를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제법 거리를 벌렸다고 생각했지만, 허그베어는 순식간에 도약해 그의 등 뒤로 다가온 것이다. 아무리 둔해 보여도 괴물은 괴물. 인간의 상식으로 괴물의 신체 능력을 단정했던 것이 그의 실수였다.
허그베어.
포옹하는 것을 사랑하는, 키 190cm의 거대 곰 인형.
얼핏 보기에는 덩치 큰 인형탈처럼 보였지만, 녀석의 누런색 털은 사람의 피를 흥건하게 뒤집어썼다. 저 피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는 재환은 뒷걸음질을 쳤다.
하지만 이 거대 곰 인형의 집념은 말 그대로 괴물다웠다.
허그베어는 재환이 뒤로 물러나는 것보다 더 빠르게 도약해 그를 껴안았다. 녀석의 북슬북슬한 털이 몸을 휘감는 것을 느껴지자 재환은 필사적으로 몸부림쳤다.
하지만 이미 잡힌 이상, 뿌리치는 것은 불가능했다.
우드득.
허리뼈가 끊기는 소리와 함께 술래잡기가 끝났고, 재환은 네 번째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의식이 끊기기 직전, ‘속삭임’이 했던 말들이 주마등이 되어 떠올랐다.
[괴물을 사냥하지 않으면 아침은 오지 않는다]] [괴물의 피를 마셔 힘을 취하라] [악몽의 근원인 달을 사냥하라]마지막 순간, 그는 무엇을 위해 속삭임이 들려오는지 실감했다. 네 번의 죽음을 겪은 다음에야 도달한 결론이었다. 그는 마침내 죽음을 수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