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20
싹트는 아가페 (3)
조아라의 머리에 돋아난, 뇌 모양의 새싹을 보자 그는 자신의 상식이 부정당하는 느낌을 받았다.
사람의 뇌는 갑자기 돋아날 수 없다. 뇌처럼 예민한 기관은 두개골 밖으로 나와선 안 되는 것이 이치에 맞았다. 설령 나올 수 있더라도, 잠깐 한눈파는 사이에 빠져나온다는 것은 상식에 어긋나는 현상이었다.
하지만 이 자그마한 뇌는 분명 머리 위에 돋아나 있었다. 심지어 수축하고, 부풀어 오르며,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무슨 일 있으세요?”
조아라의 머리 위에 돋아난 ‘무언가’를 넋 놓고 보고 있으니 이해리 순경이 말을 걸었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조아라의 정수리 부분을 가리켰다.
“이거… 보여요?”
이해리 순경은 의아한 표정으로 재환이 가리킨 부분을 바라봤다. 유심히 조아라의 머리를 바라보던 이해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대답을 내놓았다.
“네. 보여요.”
“보인다고요?”
너무나 태연스러운 반응에 재환은 당황했다. 사람의 머리에 뇌처럼 생긴 것이 돋아난 것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다니. 자신의 상식이 부정당하는 기분이 들자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에 그는 의아해했다.
“머리카락이잖아요. 왜 그러세요?”
잠시 정적이 이어졌다. 대화의 흐름이 어긋나자 그는 다시 한 번 되물었다.
“이 사람 머리에 이상한 거 났잖아요. 이거 정말 안 보여요?”
“머리카락밖에 안 보여요. 그리고.,.”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자세한 얘기는 나가서 할까요? 여긴 좀 시끄럽잖아요?”
재환은 주변을 둘러본 뒤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은 유치장.
미쳤거나, 미치기 직전인 수감자들이 아우성치는 마굴이었다.
“꺼내줘! 씨발. 꺼내달라고! 이 미친 새끼들이랑 어떻게 있으라고!”
“살려줘요! 여기 이상해! 살려달라고요!”
“사랑해요우리사랑해!다같이사랑해요사랑사랑!우리!”
“흐흫. 냄새. 냄새 좋아. 냄새!”
“야 이 씨발년아! 좋냐! 나와 있으니까 좋냐고 개씨발년아!”
사방에서 들려오는 욕설을 뒤로한 채 두 사람은 유치장을 나왔다. 오래 있어 봐야 정신 건강에 도움되지 않는 장소였다.
* * *
유치장에서 나와 휴게실에 도착한 재환은 자신이 본 것에 대해 설명했다. 마약을 먹은 조아라의 머리에서 뇌를 닮은 무언가가 자라났고, 그것을 내버려두면 괴물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아니 그러니까, 내가 무슨 말 하는 건지 지금 이해해요?”
대화가 이어질수록 그의 언성이 높아졌다. 히스테릭한 목소리였다.
“그냥 괴물보다 훨씬, 훨씬! 위험하다고요! 사람 정신을 가지고 논다는 게 무슨 뜻인지 몰라요? 총이든 기관총이든 대포든, 사람이 맛이 가면 다 소용없다니까요!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요?”
그의 경고가 끝나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무적인 태도였다.
“일단 회의 때 보고는 해 볼게요. 다른 사냥꾼분들한테도 보이는지 확인해야 되고요.”
“아니, 그렇게 여유 있는 게 아니에요. 저거 그대로 두면 다 죽어요. 아니, 죽는 게 나을 정도로 망가질걸요? 지금 안 죽여두면, 모두 다 같이 끝장날 수도 있어요. 그래도 된다는 거예요?”
그는 ‘권속’을 내버려두는 게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알고 있었다. 저것이 ‘성자’라는 괴물로 우화하는 순간, 이 도시는 그 날로 미쳐버리고 말 것이다.
사냥꾼마저 돌아버리게 만드는 괴물이 사냥꾼이 아닌 사람에게는 어떤 식으로 작용할지는, 안 봐도 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확답을 내놓지 않았다.
“그래도 절차는 지켜야 돼요. 사람을 그냥 죽이면 그건 경찰이 아니니까요. 우리가 절차를 안 지키면, 아무도 안 지킬 거예요.”
그녀의 말에 재환은 미간을 찌푸렸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런 시국일수록 명분이 중요한 법이었으니까. 치안을 유지하는 것도 버거워하는 경찰이 명분까지 잃는다니. 그래서야 조직의 존재 이유를 잃게 되는 셈이었다.
재환이 따로 말을 하지 않자 그녀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했다.
“오늘은 고생하셨으니까 좀 쉬고 계세요. 1층에서 괴물 피 모아온 거 받아 가시는 거 잊지 마시고요. 오늘 수고 많으셨습니다.”
대화가 끝났음을 선언한 그녀는 그대로 업무에 복귀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래… 씨발…’
재환은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너무 과몰입했어.’
애초에 그는 경찰이 아니었다. 괴물을 잡는 김에 경찰과 협력하는 자원봉사자였을 뿐.
도시 내의 치안 문제를 처리하는 것이 경찰의 영역인 이상, 이에 간섭하는 것은 선을 넘는 행위였다.
‘알아서 잘하겠지. 못하면 지들 탓이고.’
설령 이 도시가 망해도, 그것이 그의 목숨과 연결되는 것도 아니었다. 이 도시가 망하면 다른 거점을 찾으면 될 일이었고, 여차하면 혼자서 살면 그만인 일이었다.
‘나는 내 할 일이나 하자. 필요하면 지들이 알아서 부르겠지.’
그는 자신의 본분을 되새기며 1층 창구에 방문해 군경이 모아온 괴물의 피를 챙겼다. 한 박스에 담긴 괴물의 피가 제법 묵직했다.
‘그래, 나쁘진 않아. 아직까지는. 아직까지는 그렇지…’
그는 박스를 든 채 숙소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괴물을 사냥해 이 악몽을 끝내는 것이 그의 궁극적인 목표였고, 나머지는 모두 수단에 불과했다. 괴물이 된 아버지를 죽이고, 그 피를 마신 이상,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이다.
* * *
그는 500mL 페트병에 담긴 괴물의 피 50병을 바라봤다. 군경이 도시의 치안 유지에 집중하고 있고, 낮에 주로 활동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적지 않은 양이었다.
‘나한테만 주는 건 아니겠지만.’
생각해 보면 간단한 일이었다. 괴물 한 마리에서 나오는 피가 수십 리터는 넘을 텐데, 그것을 500mL 병 하나에만 담았을 리는 없었기 때문이다.
사냥꾼이 괴물의 피를 마셔야 강해지는 이상, 군경의 입장에서도 괴물의 피는 중요한 거래 자원인 셈이었다.
‘어쩌면 더 모아뒀을지도 모르지. 어차피 덤으로 얻는 거라 상관없지만.’
그는 사냥개가 된 대가로 얻어낸 괴물의 피를 한 모금씩 마셨다.
끈적거리고, 질척거리며, 비릿한 맛. 아무리 좋게 말해도 ‘역겨움’에 가까운 맛이었지만, 그는 이 맛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괴물의 피에 중독되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자 꺼림칙한 감각이 스멀스멀 기어왔다.
‘중독되면 어때. 어차피 안 마실 것도 아니면서.’
그렇게 한 모금씩 괴물의 피를 목에 넘기고 있을 무렵, 그의 귓가에 방문을 두들기는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똑!
그는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말했다.
“누구세요?”
“안녕하세요! 혹시 여기 윤재환님 숙소 맞나요?”
“네, 그런데요.”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여자의 목소리에 그는 의아해했다. 친구도 가족도 없는 마당에 누군가 자신의 숙소로 찾아온다는 점이 이상했기 때문이다.
“아, 다름이 아니고. 새로 사냥꾼분이 오셨다고 해서 인사 좀 드리러 왔어요. 저도 사냥꾼이거든요. 혹시 잠깐 시간 되시나요?”
그는 사냥꾼이라는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다른 사냥꾼에 대해 딱히 좋은 얘기를 들은 적이 없었고, 지난밤에는 괴물이 된 사냥꾼을 죽이기까지 했다.
그러니 다른 사냥꾼의 방문에 경계심을 느낄 수밖에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호기심을 느끼기도 했다. 미치지 않은 사냥꾼과 교류할 수 있다면 그만큼 든든한 일도 없었으니까.
‘언제 한번 볼 생각이긴 했으니까.’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문을 열었다. 그러자 2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여자가 등에는 기타 케이스를 메고, 품에는 선물 상자를 안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그 여자의 모습이 눈에 익었다. 처음 대피 구역에 왔을 때 봤던 여자 전도사였다.
“한사랑이라고 해요. 이건 선물.”
그는 곱게 포장된 선물 상자들 받아들였다.
“괴물 피 좀 담아왔어요. 제가 직접 구해온 거니까, 안심하고 드셔도 돼요.”
떡이라도 돌리러 온 듯한 태도에 그는 황당해 했고, 그 틈에 한사랑은 그의 옆을 지나 방 안으로 들어와 기타 케이스를 내려놨다.
“방 좋네요. 스위트룸?”
“글쎄요. 그냥 받은 거라.”
그는 그렇게 말하며 의자를 권한 뒤 물컵 하나를 가져왔다.
“차는 뭘로 드릴까요? 커피랑 녹차 있고,..”
그는 탁자 위에 올려둔 괴물의 피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거 좀 나눠드릴 수도 있고요.”
그 말은 일종의 테스트나 다름없었다.
사냥꾼에게 괴물의 피는 곧 힘이고, 힘은 곧 금이다. 괴물의 피를 얼마나 마실지에 따라서 저 사람이 얼마나 힘에 집착하는지 가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힘으로 다른 사람의 목숨과 재물을 빼앗아도 어쩔 수 없는 세상인 만큼 허투루 넘길 수 없는 문제였다.
“한 컵만 주세요. 너무 많이 마는 건 좀 그래서요. 선물 드린 걸 그대로 돌려받는 것 같기도 하고.”
무난한 대답이 들려오자 그는 경계를 누그러뜨리며 컵에 괴물의 피를 반 정도 채웠다. 그는 피를 채운 컵을 건네며 말했다.
“궁금한 게 있는데, 그쪽도 한 모금만 마셔도 힘이 세지고 그래요? 막 레벨 업하는 것처럼요.”
“레벨 업은 잘 모르겠고, 힘이 조금씩 세지는 건 느껴져요. 한 괴물당 한 모금만 마셔도 돼서 다행이에요. 여러모로… 그렇죠.”
한사랑은 힘없이 웃으며 괴물의 피를 홀짝거렸다. 괴물의 피에 담긴 의미를 모르면 나올 수 없는 태도였다.
그 태도를 눈여겨본 재환은 ‘속삭임’과 ‘상태창’, ‘회귀’등에 대해 질문하려던 것을 잠시 주저했다. 아무리 궁금하다곤 해도, 비교적 멀쩡해 보이는 사람에게 미친 사람이나 할 법한 소리를 늘어놓는 것은 꺼려지기 마련이었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이어진 틈에 그는 생각을 정리했다.
‘회귀는 나중에 얘기하자. 이건 너무 미친 소리기도 하고.’
환청과 환영은 기이하기는 해도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이었다. 세상이 이렇게 되기 전에도 환청과 환영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적게나마 있었으니까.
하지만 회귀는 달랐다. 시간 여행은 과학적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증명된 일이었고, 일어나는 게 불가능한 일이었다.
심지어 자신이 죽어야 회귀를 할 수 있다는 점 역시 함부로 말하기 꺼려지는 요소였다. 시간을 돌리고 싶어 하는 사람이 넘쳐나는 시국인 만큼, 목숨과 연결된 정보는 조심히 다뤄야 했다.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요.”
그는 그렇게 운을 떼며 속삭임과 상태창에 대해 질문했다.
“그쪽도 혹시 환청이나, 환영 같은 거 본 적 있어요? 괴물을 죽이라던가, 레벨이 올랐다던가 하는 소리요.”
“…….”
한사랑은 곧바로 대답하는 대신 피가 담긴 컵을 뚫어질 듯 쳐다봤다.
어색한 침묵이 방 안을 휘감았다. 그 침묵을 불편하게 여긴 재환이 다시 질문하려 했을 때, 그녀의 대답이 먼저 침묵을 깨뜨렸다.
“목소리는 잘 들려요. 괴물을 사냥하라는 목소리요. 어두우면서, 차갑고. 으르렁거리는 것 같은 목소리요.”
“아, 저도…”
재환이 동질감을 표현하려던 순간, 한사랑의 목소리가 그의 말을 끊었다.
“주님의 목소리예요.”
“네?”
그녀는 의아해하는 대답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종교인 특유의 확신이 담긴 목소리였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거예요.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오신 거죠. 이 지옥을 이겨내라. 이겨내서 마침내 천국에 이르라.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죠.”
“…….”
재환은 잠시 할 말을 잃은 채 그녀를 바라봤다. 만약 이 모든 게 신의 뜻이라면, 그의 부모가 죽은 것 역시 신의 뜻이냐는 말이 목 끝을 맴돌았다. 신이 정말 인간을 사랑한다면, 인간에게 이런 짓이 일어나도록 둬선 안 됐기 때문이다.
그렇게 말없이 그녀의 얼굴을 노려보던 재환은 한숨을 내쉬었다.
‘초면에 선 넘지 말자. 애초에 싸우러 온 것도 아닌 것 같고.’
그가 한숨을 내쉬는 것을 본 한사랑을 쓴웃음을 지었다. 이런 반응에 익숙해 보이는 태도였다.
“이상하게 생각하시는 거 이해해요. 억지로 전도하러 온 것도 아니고요. 초면에 예민한 얘기 꺼내서 죄송해요.”
“아니, 괜찮아요. 종교 얘기가 나쁜 것도 아니고, 제가 한숨 쉰 게 잘못한 거죠.”
한차례 사과를 주고받자 분위기가 풀어졌다. 그리고 풀어진 분위기 틈으로 그녀가 본론을 꺼냈다.
“사실 오늘 찾아뵌 것도 주님의 뜻을 확인하고 싶어서 온 거예요.”
“주님의 뜻이요? 그걸 왜 저한테…”
“마태오 신부님이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여쭤보고 싶어서요.”
그 말에 재환은 의아해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불길한 예감이 뇌리에 꽂혔다.
“마태오 신부님이, 누군데요.”
잠시 어색한 정적이 흘렀고, 그녀가 입을 열었다. 들려오는 목소리에 그는 심장이 멎는 기분이 들었다.
“실종됐다가, 돌아가신 사냥꾼분이요. 재환님이 마지막으로 보셨다고 들었어요.”
그녀는 그의 눈에 시선을 맞추며 말했다.
“말씀해주세요. 최성찬 마태오 신부님은, 어떻게 돌아가셨어요?”
그는 사람을 죽였다는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외면하고 있었다. 모든 정황이 ‘그것’을 괴물이라고 정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괴물은 한때 사람이었고, 이름이 있었으며, 신부이기도 했다. 그 사실을 일깨운 순간, 그는 지난밤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사지를 토막 내고, 뼈와 살을 가르고, 살점을 짓뭉갰다.
사람이 할 짓과는 거리가 먼 행동들이었다.
그리고 그 기억이 되살아났을 때, 그는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