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21
사냥꾼의 카타콤 (1)
그가 신부와 목사의 차이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은 군대에 막 입대했을 무렵이었다. 훈련소에서는 매주 일요일마다 천주교, 개신교, 불교로 나눠서 종교 행사에 참여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당시에 그는 여느 훈련병처럼 어느 곳으로 가야 초코파이를 하나 더 받거나, 더 편하게 쉴 수 있을지를 놓고 고민했다. 천주교에 가면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말에 부담을 느껴 불교를 선택했지만, 그 당시의 고민이 덧없던 것은 아니었다.
덕분에 성직자란 인간들이 군대를 두 번 다녀와도 상관없어하는 독종이란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분이 신부님이셨다고요?”
“네. 중계동 성당 담당 신부님이셨어요.”
그녀는 그렇게 말한 뒤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낮에는 봉사 활동하러 다니시고, 밤에는 괴물 잡으러 다니시고… 그러셨죠. 종교 문제 때문에 자주 싸우긴 했어도, 좋은 분이셨어요. 적어도 제 기억에는… 그랬어요.”
헛소리라고 일축하고 싶은 말이었다. 그건 아무리 봐도 신부와는 거리가 먼 괴물이었으니까.
심지어 그 괴물은 단 한 번도 ‘하느님’이나 ‘예수님’ 따위의 말을 입 밖으로 꺼낸 적이 없었다. 그런 말을 꺼내기는커녕 광적으로 달을 찬미했을 뿐이었다.
‘아니, 잠깐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그는 괴물이 보여준 이미지를 떠올렸다. 그러자 창세기이자 묵시록이었던 이미지가 막연하게 떠올랐다.
‘그래서 그런 거였나?’
그는 그 괴물이 유난히 창세와 종말에 집착했다는 점이 기독교인답다고 생각했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보여주려 하고, 가르치려 들었다는 점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뜻이 예수의 뜻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였지만, 그 기세만큼은 종교인다웠다. 신실한 종교인이라면 시련이 가혹할수록 신에 대한 확신을 원하기 마련일 테니까.
‘후… 이걸 뭐라고 말해야 하지?’
그는 한사랑의 표정을 살피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도 떠올리기 꺼려지는 기억이었고,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는 얘기도 아니었다. 게다가 상대의 태도를 보아하니 가볍게 얼버무리기도 힘들 것 같았다. 이럴 때는 어떤 대답을 하는 게 좋을지 어색해하던 그는 잠시 숨을 들이쉰 뒤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냈다.
“얘기하자면 좀 길어요. 그리 듣기 좋은 얘기도 아니고요,”
“상관없어요. 낮에는 남아나는 게 시간이니까요.”
단호한 대답이 들려오자 그는 기억을 되짚어가며 얘기를 꺼냈다.
인적이 드문 도시에서 괴물 사냥을 하던 도중 낯선 남자를 만나게 된 것.
신부의 안내를 받아 마트 지하에 있는 냉동고에 도착한 것.
그곳에서 괴물과 인간의 시체가 뒤섞여있는 것을 본 뒤 그 남자에게 총을 쐈던 얘기까지.
“저는 그분이 신부님인 줄도 몰랐어요, 괴물이 된 신부님은… 하느님 대신 달님을 찾더라고요. 미친 사람처럼, 달을 외쳤어요.”
“달…”
“네. 만월이요. 그 시퍼런 거.”
괴물이 된 마태오 신부와 관련된 얘기를 모두 털어내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정적 속에서 재환은 그녀의 침묵을 고인에 대한 애도로 받아들였다. 고인을 모욕하지 않기 위해 유혈 낭자한 내용을 생략한 것이 다행이라고 여겨졌다.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래도 마태오 신부님다웠네요.”
재환이 의아한 표정을 짓자 그녀가 설명을 덧붙였다.
“항상 식량문제 때문에 고민하셨어요. 앞으로 이런 상황에서 10년, 20년을 살아야 할지 모르니까 식량을 최대한 수급해야 한다면서요. 제일 열심히 사냥하러 다닌 것도 그래서였을 거예요. 일단 땅을 확보해야 농사를 짓든 가축을 기르든 할 테니까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말들이 나오자 그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자신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괴물을 사냥한 사람의 얘기를 듣게 되자 문화 충격에 가까운 기분이 느껴졌다.
그는 지금까지 이 악몽을 어떻게든 빨리 끝내려 했다. 하지만 누군가는 땅을 개척해 터전을 잡아 이 악몽에 적응하려 한 것이다. 그 남자의 냉동고에 잔뜩 쌓여있던 고깃덩어리가 그 신념을 반증했다.
자신의 말을 끝낸 한사랑은 재환의 표정을 살폈다. 그의 표정이 어두워진 것을 확인한 그녀는 챙겨왔던 기타 케이스를 무릎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솔직하게 얘기해 주셔서 고마워요. 덕분에 이걸 소개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기타 케이스를 개방했다. 그녀는 케이스 안에서 볼트액션식 나무 소총을 꺼내 재환에게 건네줬다.
“이게 뭔데요?”
재환은 그녀가 건넨 물건을 만지작거리며 질문했다. 핸드가드 부분에 홈이 파여 있고, 개머리판 부근에 손잡이 같은 홈이 파여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특이할 것 없는 소총이었다.
“총검이예요. 다시 주세요. 왜 총검인지 보여드릴게요.”
그는 소총을 반납했고, 소총을 받아 든 그녀는 방아쇠 부근에 있는 버튼을 눌렀다. 그 순간. 재환은 소총이 변신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철컥!
철로 된 기계 장치가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소총에서 칼날이 돋아났다. 그는 기다란 칼날이 총구부터 방아쇠 부근에 양면으로 돋아난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트랜스포머식 변신 로봇을 목격한 심정이었다.
그녀는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키득거렸다. 보아하니 기대했던 반응이 나오자 즐거운 모양이었다.
“이제 왜 총검인지 알겠죠?”
재환은 대답하는 대신 실소를 머금었다. 그가 아는 총검이란 소총의 총구 부근에 짧은 대검을 부착한 무기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 무기는 달랐다.
이것은 총이면서 검이었고, 검이면서 총이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총검을 양손으로 쥔 뒤 휘적거렸다. 재환은 저것이 총 모양의 장검인지, 장검 모양의 총인지 헷갈려하며 말했다.
“그건 어디서 나온 거예요? 직접 만들기라도 한 거예요?”
저 ‘총검’은 확실히 신기한 물건이었다. 하지만 괴물만큼 불가해한 물건은 아니었다. 현대식 기계장치를 정성스럽게 조립하면 저런 물건을 만드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무기 시연을 끝낸 그녀는 다시 버튼을 눌러 칼날을 수납시킨 뒤 대답했다.
“일종의 오파츠 같은 거예요. 지하철에서 받아왔죠.”
“지하철이요?”
“네. 그 지하철 맞아요. 많이 달라지긴 했어도, 지하철이었던 곳은 맞아요. 이제 지하철은 안 다녀도, 지하철은 지하철인 거죠.”
그는 지하철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어색하게 쓰일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에게 지하철이란 단지 교통수단에 불과한 공간이었다. 그런 공간에서 저런 물건이 나왔다니. 차라리 괴물이 나온다는 말이 더 믿기 쉬울 지경이었다.
“…지하철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그녀는 그 말에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결투. 그리고 무덤이 있죠.”
“무덤이요?”
“무덤이라고 부르는 수밖에 없더라고요. 아, 마태오 신부님은 카타콤이라고 불렀어요. 사냥꾼들의 카타콤이요.”
재환은 그녀의 말을 들을수록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카타콤이 기독교의 지하 무덤을 의미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어째서 지하철에 나타났는지는 미스터리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총검을 다시 기타 케이스에 넣으며 말했다.
“시간 있으시면 안내해드릴게요. 어때요?”
재환은 그녀의 말이 끝나자 잠시 고민했다. 맥락을 살펴보면 그 역시 저런 무기를 얻을 수 있다는 말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수상하게 느껴지는 것과는 별개로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다.
‘무기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니까. 도끼 하나로 다 때려잡을 수도 없는 거고.’
그는 구석에 놓여있는 소방도끼를 흘끗 바라봤다. 아직 구부러지거나 부러지진 않았지만, 요 며칠 사이에 무리하게 쓴 탓에 날이 상해있었다. 둔기로는 쓸 수 있을지 몰라도, 날붙이로서의 수명은 거의 다한 셈이었다.
결국 고민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그는 테이블을 정리하며 대답했다.
“안내해주시면 저야 고맙죠. 잘 부탁드릴게요.”
“아니에요. 저도 마태오 신부님한테 소개받아서 알게 된 거였으니까요. 새로 사냥꾼이 오면 알려달라고 부탁받았거든요.”
그녀는 기타 케이스를 어깨에 메며 말했다.
“호신용품 정도는 챙겨오세요. 거기도 괴물이 나오거든요. 유령이나, 좀비 같은 걸로요.”
그는 지하철이 도대체 어떻게 변했기에 저런 얘기가 나오는 건지 꺼림칙해 하며, 소방도끼와 K1을 집어 들어 무장했다.
결투, 무덤, 유령, 좀비. 어느 것 하나 반가울 것 없는 단어들이었다.
* * *
그는 서울에 괴물이 출몰한 이후 지하철에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누가 언제 괴물이 될지 모르는 판국이니 외출을 자제한 탓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지하철 입구에 깔린 어둠을 보며 눈살을 찌푸리는 수밖에 없었다.
“랜턴으로 비춰 봐도 어둡네요.”
“그쵸? 저도 처음 봤을 땐 놀랐어요. 괴물 입안으로 들어가는 것 같아서요,”
그녀는 그렇게 말한 뒤 랜턴을 비추며 앞장섰다. 마찬가지로 랜턴을 킨 채 지하철 내부를 살펴보던 재환은 이곳이 어째서 ‘카타콤’인지를 실감했다.
“무덤이라더니… 진짜 그러네요.”
지하철 내부는 그가 알던 공간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변질되어있었다. 벽의 곳곳에는 이국적인 문자가 해골 위에 새겨져 있었고, 곳곳에는 관처럼 보이는 장식물들이 캐비넷처럼 벽에 묻혀있었다. 공동묘지를 연상시키는 서늘하고 음산한 기운이 곳곳에서 풍겨온 나머지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지하 무덤으로 변질된 지하철 내부를 걸어가던 중, 한사랑은 발걸음을 멈춘 채 어둠 속에 있는 무언가를 향해 랜턴을 비췄다.
“저기 나오네요. 저게 그 ‘좀비’에요.”
그녀는 랜턴을 입에 문 뒤 소총을 장전했다. 재환은 랜턴에 비친 ‘좀비’의 모습을 주시했다. 거적때기를 입은 채 뼈만 남아 움직이는 그 괴물은 확실시 기이한 존재였다.
‘속삭임이 안 들리는 걸 보면, 괴물은 아닌 건가?’
괴물 같은 게 나왔음에도 속삭임은 조용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저 괴물을 일단 ‘좀비’라고 부르는 것에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어찌 되었든 저 괴물과는 오래 볼 사이가 아니었고, 일단은 의미만 통하면 되는 일이었다.
탕!
랜턴을 입에 물고 있던 한사랑이 총을 발사했다. 날아간 총알은 괴물의 가슴을 꿰뚫는 것을 넘어 상반신의 절반을 날려버렸다. 소총이 아니라 대포가 아닐까 싶은 위력이었고, 사냥꾼이 아니었다면 반동을 감당할 수 없는 위력이기도 했다.
괴물을 쓰러뜨린 그녀는 주머니에서 총알을 꺼내 재장전을 시작했다. 그 모습을 유심히 보던 재환은 이상하게 느꼈던 점을 질문했다.
“궁금한 게 있는데, 탄 수급은 어떻게 하는 거예요? 보니까 보통 총알을 쓰는 것 같진 않은데.”
“아-그거여?”
그녀는 랜턴 때문에 뭉개진 발음으로 대답한 뒤 재장전을 끝냈다.
“괴물의 피랑 뼛가루를 기름이랑 같이 틀에 굳혀서 만든 거예요. 달빛에 말리면 혈석이 되거든요. 한번 굳으면 증발하지 않아서 편하죠.”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지하철 선로를 따라 걸어갔고, 좀비가 나타날 때마다 손쉽게 처리했다. 그러다 보니 그녀를 따라 걷던 재환은 자연스럽게 랜턴을 비추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일종의 랜턴 셔틀인 셈이었다.
“부담 갖지 마세요. 총알도 아껴야 되고, 어차피 제가 안내하겠다고 한 거니까요.”
그녀는 그의 표정이 어떤지 보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을 하고는 앞으로 나아갔다. 같은 사냥꾼인데 한쪽만 계속 사냥하는 구도를 감안하여 하는 말이었다.
‘나야 편해서 좋긴 하지만.’
그렇게 탄 수급이 자유로운 총의 위력을 실감하며 앞으로 나아갔을 때, 앞서가던 한사랑은 바닥을 향해 랜턴을 비추며 멈춰 섰다.
“다 왔어요, 여기가 제가 무기를 얻은 곳이에요.”
그는 그녀의 옆에 선 뒤 선로의 밑바닥을 비췄다. 그러자 선로의 밑바닥에 파여진 구덩이가 보였고, 그 밑에서 사람처럼 보이는 수십 개의 실루엣이 유령처럼 흐느적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저건 뭐지? 귀신인가?’
그 기묘한 구덩이를 바라보고 있던 순간, 구덩이에서 묘비 하나가 신기루처럼 올라와 눈앞에 펼쳐졌고, 묘비 뒤쪽에는 안개처럼 흐릿한 계단이 어둠의 밑바닥을 향해 뻗어 나오고 있었다.
한사랑은 묘비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거는 사냥꾼들한테만 보이는 건가 봐요. 다른 사람들은 안 보인다고 하더라고요.”
재환은 그녀의 말을 들으며 묘비에 적힌 내용을 읽었다. 낯선 문자였지만, 정신을 집중해서 바라보니 ‘상태창’을 읽어냈을 때처럼 그 의미가 눈으로 스며들었다.
[무기는 하나. 사람은 둘. 무덤은 하나. 시체는 둘.] [무기를 원하는 자, 무덤에 뛰어들 준비에 임하라.]문장을 읽어낸 재환은 혹시나 싶은 심정으로 그녀에게 되물었다.
“결투라고 했었죠? 그럼 설마…”
“네. 맞아요.”
그녀는 부드럽게 대답을 내놨다.
“저기 뛰어들어서, 이기고 돌아오면 돼요. 지면 죽고, 이기면 돌아오는 거죠.”
사지(死地)를 권유하는 그녀의 말에 재환은 눈살을 찌푸렸다. 마태오 신부든, 이 여자든, 둘 다 제정신이 아니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이상할 것도 없는 얘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마저 운에 기대야 하는 시대에, 목숨을 걸고 도박을 하는 것 정도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얘기였다.
언제 판돈을 올리고, 언제 죽어야 할지 아는 것이 도박의 기본이라면, 이 세상은 이미 거대한 도박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