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22
사냥꾼의 카타콤 (2)
그녀는 계단의 밑바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불빛조차 닿지 않는 심연이 까마득하게 펼쳐져 있었다.
“저 안으로 들어가면, 어느샌가 모습이 사라져요. 그리고 눈을 뜨면, 전혀 다른 곳, 샬롬에서 깨어나죠.”
“샬롬이라… 처음 듣는 이름이네요.”
“네. 증기기관이랑 고딕 건물이 늘어선 도시에요. 마태오 신부님이랑 같이 얘기해 봤는데, 외국은 아닌 것 같았어요. 시대 자체가 현대랑 동떨어져 있는 느낌이었거든요.”
재환은 그녀의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그녀가 하는 말은 처음부터 끝까지 해괴했다. 무덤 안으로 들어가면 새로운 세계가 나온다니. 쉽게 납득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한 얘기였다.
하지만 그 말을 하는 당사자는 한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의 총검을 들어 올렸다.
“그쪽으로 가면 무기나 기술을 보유한 사람을 만날 수 있어요. 그 사람을 죽이고, 이 무기와 이 무기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고요.”
“그 사람은 뭐 하는 사람인데요? 다 똑같은 사람을 만나는 거예요?”
“지금까지는 서로 다른 사람을 만났어요. 마태오 신부님은 젊은 여자를 만났다고 했고, 저는 한쪽 팔이 없는 남자 분을 만났고요.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그 사람도 아마도 우리와 같은 사냥꾼이었을 거예요.”
“사냥꾼이었다고요?”
“네. 그 사람들, 괴물을 죽이는 것에 집착하고 있었거든요. 제가 본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지독하게요.”
그녀는 굳어있는 재환의 표정을 흘끗 살피며 말을 이었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건 분명해요. 둘 중 하나가 죽지 않으면 나갈 수 없는 구조였던 것도 맞고요. 그 사람을 죽인 다음에야 이쪽으로 돌아올 수 있었으니, 이것만큼은 아마 확실할 거예요. 그러니까…”
그녀는 그렇게 말한 뒤 묘비를 흘끗 쳐다봤다.
“들어갈 생각이 있으시면,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는 하셔야 할 거예요. 무기나 지식이 목숨보다 귀한 건 아니니까요.”
재환은 심연의 밑바닥에서 유령처럼 흐느적거리는 ‘무언가’를 훑어봤다. 저 모습 그대로 공포영화에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것들이 눈앞에서 일렁거리니, 쉽게 들어가겠다는 말이 쉽게 나오진 않았다.
오죽했으면 이 여자가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쪽이 더 합리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이 여자를 미친 사람이라고 취급하기에는 물증이 너무 확실했다. 그녀가 들고 온 저 ‘총검’이라는 물건은 명백히 오파츠에 가까운 물건이었으니까. 칼이 튀어나오는 총을 만드는 것은 그렇다 쳐도, 총탄을 수급하는 방식은 그만큼 기괴했다.
괴물이 나타난 지 고작 열흘도 채 되지 않은 기간 사이에, 그 누가 괴물의 피와 뼛가루로 탄약을 만들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그것도 양산할 수 있는 방법까지 고안하다니. 기이하기 짝이 없는 발상이었다.
“…일단은 믿을게요. 일단은 말이에요.”
죽으면 되살아난다는 것을 알더라도, 목숨으로 도박을 하는 것은 항상 꺼림칙하기 마련이었다. 지금까지 이뤄놓은 것을 모두 잃은 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니. 그것도 끔찍한 정신 공격까지 견뎌가면서 해야 한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부담이었다.
하지만 마태오 신부가 10년, 20년 뒤의 일을 생각했던 것처럼, 그 역시 미래에 대한 생각을 어렴풋하게 상상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그는 만약 이 사냥을 장기간 해야 한다면, 정보는 최대한 많이 모으고 시작하는 것이 옳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작은 정보 하나를 알지 못해 수십 년의 세월을 날릴 수도 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공포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도대체 이 지하에 무엇이 있기에 ‘속삭임’이 잠잠한지, 그는 알아낼 필요가 있음을 인정했다.
무엇보다도 앞으로 불가해한 괴물을 상대해야 하는 만큼, 이쪽 역시 이에 준하는 무기로 대응할 필요가 있었다. 설령 그 과정에서 목숨을 잃을지라도, 목숨을 칩으로 삼아 도박판 위에 올라와야 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
“너무 걱정하진 않으셔도 돼요. 처음 한 번은 봐주는 게 규칙인 것 같더라고요.”
“그게 무슨 소리예요?”
“저도 잘은 몰라요. 원래대로였으면 피 터지게 싸워야 하는데, 처음 한 번에 한해서는 봐주는 게 의례라고 했어요. 그쪽 사람들끼리의 불문율 같은 건가 봐요. 그래서 저도 재환님한테 소개해준 거고요.”
그녀는 계단으로 걸어가던 재환에게 충고했다.
“깨어나서 정신을 차리면 이상한 목소리가 들릴 거예요. 싸워라, 죽여라, 하는 목소리 말이에요.”
재환은 발걸음을 멈춘 뒤 그녀의 충고에 귀 기울였다.
“그 목소리대로 하실 필요 없어요. 오히려 처음 갔을 때는 인간답게 행동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했으니까요.”
“그건 왜요?”
“괴물처럼 날뛰면, 실수로 죽여 버린다고 하더라고요. 일단은 결투니까요.”
결투라는 말에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괴물이 된 사람을 죽인 마당에 주저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살인에 대한 거부감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이 거부감마저 없어지면 말 그대로 살인마가 되고 말 거라는 위기의식 때문이었다.
정신줄을 놓은 채 무분별하게 사람을 죽이는 것이야말로 그가 생각하는 최악의 미래였다.
“충고 고마워요. 다녀올게요.”
“네, 조심히 가세요. 아, 그리고 내일 오후 4시에 모임 있는 거 잊지 마시고요.”
그는 의아해하며 대답했다.
“무슨 모임이요?”
“사냥꾼끼리 모이기로 한 게 내일이거든요. 재환님한테 전달해 달라고 경찰 언니한테 부탁받았어요. 까먹지 말고 경찰서로 모이세요. 아시겠죠?”
그녀는 그렇게 말한 뒤 손을 흔들어 그를 배웅했다.
“잘 다녀오세요! 어디 다치지 마시고요!”
그는 무사 귀환을 바라는 그녀의 말에 어처구니없어했다. 사람에게 사지(死地)나 다름없는 곳을 소개해준 사람의 태도치고는 지나치게 명랑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안전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속 편하게 내려가기에는 저 밑바닥의 심연이 심상치 않았다.
‘쫄지 말자. 이미 두 사람이나 성공했으면 나도 할 수 있겠지.’
결정을 끝낸 그는 계단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허공에 구름처럼 둥둥 떠 있는 계단을 내려가는 것은 살벌하게 느껴지는 일이었다. 썩은 동아줄처럼 언제 끊어질지 모른다는 점에서 더욱 그랬다.
하지만 이제 와서 되돌아가는 것은 이대로 내려가는 것보다도 꺼림칙한 일이었다. 미지의 것에 도전할 때마다 일일이 도망치는 것은 그만큼 이 악몽 속에서 오래 지내야 한다는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심연을 향해 계단을 밟으며 내려갔다. 그리고 마침내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것이 암흑에 잠기고, 랜턴의 불빛마저 어둠 속에 묻혀버렸을 때, 그는 의식을 잃고 새로운 도시에서 깨어났다. 그곳은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증기와 태엽의 도시였다.
* * *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것은 자욱하게 깔린 안개와 그 위로 피어오른 증기기관이었다. 정신을 차린 재환은 주변의 태엽 장치와 고딕 건물을 둘러보며 자신이 처한 상황을 파악하려 했다.
‘증기기관이라…’
주변의 풍경은 서울의 것과는 명백히 동떨어져 있었다. 사방에는 지붕이 뾰족한 건물들이 오래된 숲처럼 펼쳐져 있었고, 그 위로는 드문드문 증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서울과 같은 점이 하나 있다면, 안개가 자욱하게 깔렸고, 하늘에 푸른 달이 떠 있다는 점뿐이었다. 그는 저편에 펼쳐진 안개의 장벽을 보며 한사랑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여기서 결투를 해야 한다고 그랬지?’
그는 k1의 조정간이 단발로 맞춰져 있는 것을 확인하며 주위를 경계했다. 상대가 누구이고, 어떤 자인지 알 수 없는 이상 신중을 기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주변을 경계하던 그때, 그의 귓가에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속삭임’이 그에게 말하던 것과 비슷한 흐름이었다.
[육신과 영혼, 보물과 지식을 건 결투가 성사됐다] [무덤은 하나. 시체는 둘] [산 자는 여명을 이끌고, 망자는 무덤에 잠들라] [찾아내어, 죽이고, 그 시체를 넘어 사냥을 계속하라]한사랑에게 들었던 대로, 목소리가 말하는 바는 명확했다. 두 사냥꾼이 싸우고, 살아남은 자만이 사냥을 계속하는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이 도시가 거대한 콜로세움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주변을 살피며 상황을 지켜보던 그때, 저편에 펼쳐져 있던 안개의 장벽이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며 건물을 으스러뜨리고 있었다. 그리고 저 안개의 장벽이 점점 도시 안쪽으로 조여들고 있는 것 역시 눈에 들어왔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저 안개의 장벽에 강제로 온몸이 으스러질 게 분명해 보였다.
‘배틀그라운드 생각나네. 무슨 자기장도 아니고…’
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적당히 높은 지붕 위로 올라가 도시를 내려다봤다. 그리고 도시의 중심부로 예상되는 광장을 찾아내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안개의 장벽이 점점 조여든다면, 결국 상대방 역시 원의 중심부로 모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어느 쪽이든 미리 기다리는 쪽이 유리하겠지. 시가전이면 더 그렇고.’
아직까지는 결투를 한다는 실감이 없었기 때문에 살의는 떠오르지 않았지만, 미리 가서 준비해두는 게 나쁘게 작용할 리는 없었다. 공격하는 쪽보다는 방어는 쪽이 더 유리하고, 방어하는 쪽이 기습까지 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는 게 서바이벌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비록 게임으로 배운 서바이벌 지식일지라도,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판단을 내리는 것에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광장을 향해 이동하던 그는, 등 뒤에서 인기척을 느꼈다. 그는 K1의 방아쇠에 손가락을 건 뒤 뒤를 돌아봤다.
“보아하니 초행인가 보군. 공방의 흔적이 보이지 않아.”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증기가 피어오르는 건물의 지붕 위에서였다. 10m가 넘어 보이는 건물 위에서 낡은 코트와 중절모를 쓴 노인이 이국의 언어로 말했다.
“바로 총을 쏘지 않은 건 칭찬해주겠네. 인간이라면 결투의 의례를 지켜야 하는 법이지.”
등에 무기를 들쳐 맨 노인은 그렇게 말하더니 지붕에서 그대로 뛰어내렸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돌로 만든 도로가 움푹 파였다.
재환은 피어오르는 먼지 너머로 상대의 모습을 노려봤다. 그리고 저 남자가 이국의 언어로 말하고 있음에도 그 의미를 읽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의식과 무의식이 뒤섞인 꿈속을 헤매는 감각이었다.
‘사냥꾼인가.’
그렇지 않고서야 10m가 넘는 높이에서 떨어지고 무사할 리가 없다. 그는 노인이 등에 멘 무기를 꺼내는 모습을 지켜봤다. 얼핏 봤을 때는 도끼처럼 보이는 물건이었지만, 톱날이 달린 것을 보면 손잡이가 달린 톱처럼 보이기도 한 무기였다.
노인은 오른손에 쥔 무기를 앞으로 들어 올려 재환을 향해 겨눴다. 그리고 팔을 안으로 굽힌 채 허리를 숙여 예의를 표했다.
“증기와 신비의 도시 샬롬에 온 걸 환영하네. 나는 태엽 공방 소속 사냥꾼 지그문트라고 하네. 자네 이름은 무엇인가, 이방인.”
재환은 상대의 인사에 답하기 위해 허리를 숙여 절을 한 뒤 대답했다.
“윤재환이라고 합니다. 소속은 굳이 따지면 경찰 쪽입니다.”
“경찰이라… 그쪽은 아직 그런 게 남아있는 모양이군. 축복받을 일이야.”
지그문트는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무기를 다시 등에 멨다.
“광장으로 가는 길이었지? 일단 그쪽으로 가세. 자네는 아직 알지 못하는 게 너무 많아.”
“…왜 굳이 그러시는 거에요? 보아하니 제 결투 상대이신 것 같은데.”
재환의 질문에 지그문트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무지한 자를 공격하는 것은 무고한 자를 기습하는 것이나 다름없지. 의례에 어긋나는 일이고, 인간답지 못한 짓이야. 이미 실패한 사냥꾼이 하기에는 추하기 짝이 없는 짓이지.”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안개의 벽은 광장을 향해 조여들고 있었다. 재환은 시간을 오래 끌어서 좋을 게 없다고 생각하며 그의 제안에 따랐다. 그 역시 이곳에 대해 궁금한 것은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 전에 하나만 물어볼게요.”
그는 지그문트를 따라 걸어가며 말했다.
“당신은 누구고, 여긴 뭐 하는 곳이죠?”
그가 묻는 ‘누구’라는 것이 이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자명했다. 조금 전에 설명한 이름을 또다시 언급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노인은 곧바로 대답했다.
“나는 망령이고, 여기는 무덤이지. 미련이 남은 사냥꾼들이, 산 사냥꾼을 탐하는 무덤 말이야.”
회한이 서린 목소리가 거리에 울려 퍼졌다. 재환은 그 목소리에 무게가 담겨있음을 실감하며 묵묵히 그를 따라 광장으로 이동했다. 이 밤과 안개는 느긋하게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