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23
사냥꾼의 카타콤 (3)
광장에 도착한 재환은 저편에서 다가오는 안개의 벽을 보며 말했다. 앞으로 10분에서 15분 정도면 안개의 벽이 광장까지 도착할 것만 같았다.
“아까 전에 무덤이라고 했죠? 그 무덤이란 건 무슨 뜻으로 한 말이에요? 설마 이 동네 전부가 무덤이란 뜻은 아닐 테고.”
“그런 뜻으로 한 말이 맞네. 이곳은 저승의 영역에 발을 걸친 무덤이니까. 망자의 기억으로 만들어낸… 감옥이기도 하지.”
재환은 들려오는 대답에 의아해했다. 지금까지 노인이 비유를 들어서 말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이 도시가 무덤이면서 감옥이라는 말을 흘려넘길 수 없었다.
“농담하는 거 아니죠? 이 도시 전체가 무덤이라는 말.”
노인의 말에서는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말에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었다. 현실적으로 따지기 시작하면 지하철이 다른 세계의 도시와 연결되어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질적이었기 때문이다.
“거짓말은 하지 않았네. 애초에 자네에게 해를 끼칠 생각이었다면 대화를 나눌 이유가 없었으니까. 지금 당장에라도 목을 취하면 그만인데, 망설일 게 뭐가 있겠나.”
“…자신감이 넘치시네요.”
재환은 ‘목을 취한다’는 노인의 표현에 거북함을 느끼며 총을 쥔 손에 신경을 집중했다. 여차하면 곧바로 싸울 태세를 취하기 위해서였다. 한사랑이 말했던 대로 이곳이 결투를 위한 공간이라면, 그는 저 남자를 쓰러뜨려야 이곳에서 나갈 수 있었다.
“사냥한 세월만 수십 년일세. 죽어서도, 사냥은 끝나지 않는 법이니까. 그래도 불쾌했다면, 내 정중히 사과하지.”
재환은 노인의 사과를 받아들이며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화낼 일도 아니었으니까요.”
노인을 완전히 믿는 것은 아니었다. 낯선 환경에서 낯선 사람을 함부로 믿는 게 얼마나 순진한 일인지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그는 노인과 대화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언제든지 총을 발사할 수 있도록 이미지 트레이닝을 실시했다. 노인의 무기에 닿지 않도록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면서 k1을 난사하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아무리 저 노인이 연륜 있는 사냥꾼이라 해도, 총알보다 빠를 리는 없었기 때문이다.
“보아하니 아직도 불안한 모양이군. 동공이 벌어져 있어.”
속내를 들여다본 듯한 말투에 재환은 섬뜩한 기분을 느꼈다. 자신의 말을 마친 노인은 톱날이 돋아난 도끼를 겨누며 말했다.
“어디 한번 쏴보게. 한 발이라도 맞출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겠지.”
재환은 자기도 모르게 노인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에게서 풍겨오는 위압감에 본능이 먼저 움직인 것이다.
‘그냥 쏠까.’
등 뒤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저 깡마른 노인이 마치 유령처럼 음산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곳이 결투의 공간이라는 말을 전해 들은 것도 그를 조급하게 만들었다. 어차피 상대를 쓰러뜨려야 나갈 수 있는 거라면, 기회가 있을 때 쓰러뜨리는 것도 썩 괜찮아 보이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총을 내려놓고 말았다. 저 노인에게는 아직 궁금한 점이 남아있었다. 이 공간의 정체는 무엇이고, 영혼과 육신을 걸고 싸운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지. 그리고 지식과 보물을 얻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까지.
아직 알아야 할 것이 남아있는 이상, 싸움부터 하는 것은 미련한 일이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실례했네요.”
재환은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며 고개를 숙였다. 조정간은 여전히 단발로 유지되어있었다.
지그문트는 그 사과를 받아들이며 말했다.
“자네 탓이 아닐세. 의심하는 것도 예민해지는 것도, 푸른 달이 떠 있는 이상 자유로울 수 없는 법인 게야.”
그는 그렇게 말한 뒤 달을 향해 도끼를 겨눴다.
“달이야말로 악몽의 근원이지. 푸른 달이 뜨면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무너지니까. 덕분에 자네가 사는 곳의 그림자에, 우리가 기생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마치 거머리처럼 말이야.”
그는 ‘초현실’이라는 말이 친숙하게 느껴진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느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이상하게 느낄 일은 아니었다.
괴물병. 회귀. 환청. 환각. 불가해. 지혜. 지력까지.
지금까지 그가 겪어왔던 일들은 초현실적인 일들뿐이었고,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를 흐트러트려 놓는 일들뿐이었다. 덕분에 그는 노인의 말을 어렵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래서 지하로 내려가면, 여기로 올 수 있는 거였나 보네요. 지하에는 그림자가 듬뿍 쌓여있으니까요.”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이해해도 무방하네. 중요한 것은 이 공간의 정체가 아니라, 이 공간의 용도니까.”
“용도라면… 결투 말씀하시는 거죠?”
“맞네. 자네 역시 무언가를 원했으니 목숨을 건 거겠지. 설마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것마저 모르고 오진 않았을 거라 믿겠네. 그래서야 자넬 시험하는 것도 무의미한 일일 테니.”
시험. 그 말에 담긴 의미를 깨닫자 재환은 서늘함을 느꼈다. 저 노인은 그를 시험하고 있었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자신을 제압할 수 있다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아까 총을 쐈으면, 내가 먼저 죽었겠지.’
상황이 심각해지자 머릿속에서 떠오른 지식이 경고했다.
사냥꾼은 피를 마실수록 강해진다. 그리고 전해 들은 의하면, 동서울에는 장갑차만큼이나 강한 사냥꾼이 있다. 그렇다면 수십 년 동안 사냥을 한 사냥꾼은 어디까지 강해질 수 있을까.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영역이었지만, 지금은 그 아득함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눈앞의 노인이 이제 막 사냥꾼이 된 자신보다는 강하다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재환은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변수인 K1 소총을 쥔 채 말했다.
“목숨을 건 것은 맞습니다. 저도 간절한 건 마찬가지니까요. 지금 당장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한다면, 기꺼이 그럴 생각이고요.”
그 말을 듣던 노인은 고개를 들어 재환의 눈동자를 응시했다. 노인의 탁한 눈동자가 섬뜩했지만, 그는 시선을 회피하지 않았다. 이것 역시 일종의 시험일지 모르는 이상,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최소한의 자존심인 셈이었다.
잠시 재환의 눈동자를 응시하던 노인은 자신의 무기를 재환에게 보여줬다.
“이 무기는 내 오랜 친구지. 제일 뛰어난 작품은 아니어도, 만능에 가까운 무기였으니까.”
노인은 곳곳에 톱니바퀴가 박혀있는 도끼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도끼처럼 후려칠 수도 있고, 톱처럼 썰어버릴 수도 있지. 그리고 약간의 조작을 가하면…”
노인은 그렇게 말하며 도끼의 톱니바퀴 하나를 비틀었다. 그러자 도끼날의 뒷부분에서 곡괭이를 닮은 끝단이 튀어나왔다.
“단단한 껍질에 구멍을 낼 수 있고…”
노인은 또 다른 톱니바퀴를 꾹 눌렀다. 그러나 철컥거리는 기계음과 함께 도끼에 붙어있던 톱니바퀴가 스스로 분해됐다. 스스로 모든 부품을 분리해낸 도끼는 자루만 남은 채 휑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재환은 그 자루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도낏자루의 모습은 코등이가 없는 칼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저 도끼는 칼을 도낏자루로 쓴 셈이었다.
“…다 벗겨내고 나면, 이렇게 칼 한 자루가 남지. 가볍고, 예리하면서, 만능에 가까운 무기가 바로 칼이지. 만능이야말로 무능에 가까운 법이지만, 마지막 수단으로 쓰기엔 나쁘지 않지.”
노인은 그렇게 말한 뒤 자리에 앉아 분해된 부품을 조립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 무기를 ‘탈바꿈’이라고 부르네. 어느 것 하나 특출날 순 없어도, 어느 상황에서든 대응할 수 있는 변형 무기지. 이 무기야말로 내 자식이며, 지식이자,.. 보물이지.”
재환은 다가오는 안개의 벽을 보며 초조함을 느꼈다. 그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 순간에도 안개의 벽은 시시각각 도시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안갯속으로 사라진 건물들이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면, 저 안개에 녹아들었다간 곱게 죽지 못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안개가 착실하게 공간을 제한하고 있음에도, 노인은 느긋하게 분해된 무기를 조립하고 있을 뿐이었다.
“자네는 무엇이 인간과 괴물을 구분하는지 알고 있나?”
답답해하는 그의 심정을 읽기라도 하는 듯한 말이었다. 재환은 그의 말에 곧바로 대답했다.
“생김새죠. 딱 보면 다르게 생겼으니까요.”
“그것도 답이 될 수 있겠지. 하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네.”
그는 조립이 끝난 도끼를 재환에게 건네며 말했다.
“인간과 괴물을 구분하는 건 바로 참을성이야. 욕망이든, 분노든, 두려움이든. 참을 수 있다는 것이 인간이라는 걸 증명하지.”
재환은 그가 무기를 건네는 모습을 보며 내키지 않아 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공짜로 무언가를 받는다는 사실이 꺼림칙했기 때문이다. 특히나 상대가 목숨을 걸고 결투를 해야 하는 상대였기에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꺼림칙한 기분을 억누른 채 무기를 받아들였다. 상대가 스스로 무장을 포기하는 것은 나쁠 것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걸 왜 저한테 주시는 거죠?”
“자네는 이미 증명하지 않았나. 끝까지 참았으니까, 자네는 사람인 게지. 괴물이 아니라.”
노인은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푸른 달을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죽음에 미련이 없는 망자의 목소리였다.
“아직 미치지 않았고. 적당히 참을성도 있지. 무엇보다도 아직 실패하지 않았어. 영혼이 부서지지 않았다는 말일세. 그것만으로도 투자하기에는 적당한 그릇인 게야.”
그는 그렇게 말하더니 다가오는 안개의 벽을 보며 말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군. 이제 악몽이 끝날 시간일세.”
그는 그렇게 말한 뒤 자신의 목을 손가락으로 훑으며 말했다. 목을 치라는 신호였고, 재환은 망설였다.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이유가 뭡니까.”
“증오와 미련. 단지 그것뿐이지. 그것뿐이야. 저 달만 죽여버릴 수 있다면, 죽음 따윈 아무것도 아닌 게야.”
재환은 말없이 노인을 바라봤다. 노인은 힘없이 웃으며 말했다.
“그런 표정으로 보지 말게. 젊은이의 양분이 되는 건, 언제나 늙은이의 몫이었으니. 무덤에서 피어난 작물이 후대를 먹여 살리는 게야. 이것만큼은 변하지 않았어. 변하지 않았지… 하지만 마지막으로 충고 하나를 하자면…”
그는 재환의 눈을 응시했다. 생기를 잃은 눈동자에서 이글거리는 원념이 느껴졌다.
“다음부터는 이런 요행을 기대하지 말게. 초행길의 행운은 단 한 번뿐이니까. 사냥꾼들 간의 오래된 의례일 뿐이지. 그마저도 이성을 잃은 사냥꾼은 지키지 않기 마련이고.”
재환은 노인에게 받은 무기 ‘탈바꿈’을 쥐며 대답했다.
“은혜는… 잊지 않을게요. 고맙습니다.”
“잊게. 그러는 쪽이 다음에 만날 때 더 속 편할 테니.”
안개의 벽은 이제 50m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재환은 톱날이 돋아난 도끼를 양손으로 쥔 뒤 허리를 젖혔다. 가능하면 한 번에 끝내는 것이 최선의 배려였다.
퍽!
도끼가 휘둘러지는 것과 함께 살덩이가 퍼석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전력을 다해 휘두른 도끼는 노인의 목을 3분의 1도 채 베어내지 못했다. 인간의 몸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의 내구력이었다.
재환은 뒷걸음질 치려는 것을 겨우 참아냈다.
망설이고 있을 시간은 없다. 아무리 상대가 망자를 자처하는 몸이라곤 해도, 스스로 무덤에 들어가길 택한 이상 최대한 빨리 해방시켜주는 것이 이치에 맞는 일이었다. 그는 가까스로 정신을 가다듬으며 톱질을 시작했다.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그로테스크한 광경에 그는 숨을 죽였다.
조금 전까지 대화를 나눈 상대의 목을 톱질하는 것은 정신력을 갉아먹는 일이었다. 마치 슬래셔 영화의 전기톱 살인마가 된 것만 같은 불쾌함이 온몸을 휘감았다. 아무리 해야 하는 일이라곤 해도, 사람의 살점을 썰어내는 일은 유쾌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목을 썰어나가는 손놀림은 거침없었다. 피와 살이 튀는 와중에도 그 질긴 목을 망설임 없이 토막 낸 것이다. 그 역시 정상과는 거리가 멀어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목이 썰려 나가는 와중에도 노인은 비명조차 지르지 않았다. 목이 떨어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시체처럼 푸른 달을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수십 년의 세월 동안 괴물을 사냥한 자의 정신은 괴물만큼이나 불가해했다.
한 땀 한 땀 톱질을 한 끝에, 마침내 노인의 목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노인의 피로 물든 바닥에서 블랙홀을 닮은 구덩이와 밑으로 뻗어있는 계단이 생겨났다.
보고 있으면 빨려들어 갈 것만 같은 구덩이 속에는 깨알만 한 별빛들이 은은하게 반짝거리고 있었다. 찬란한 밤하늘이 바닥에 생겨난 것을 보던 재환은 떠나기 전에 주변을 둘러봤다.
‘샬롬이라…’
그는 노인에게 받은 무기와 자신의 짐을 챙겨서 구덩이 속으로 들어갔다.
‘올 곳이 못 되는 동네야…’
사냥꾼의 무덤. 푸른 달이 뜨고, 안개의 벽이 있으며, 사냥꾼이 서로를 사냥하는 도시. 그곳에서 살아남았음에도 그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무언가를 죽이고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실감했기 때문이었다.
무언가를 죽이고, 그 양분을 취한 자는 죽은 자의 몫까지 살아남아야 한다. 노인은 자신의 몸을 바쳐 젊은 사냥꾼에게 교훈을 새겨 넣은 것이다.
피와 살로 각인 된 교훈과 함께, 그는 구덩이 속의 계단으로 걸어갔다. 처음 들어왔을 때처럼 유령을 닮은 계단이 아래를 향해 펼쳐져 있었다.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는 별빛이 은하수처럼 반짝거리고 있었다. 들어올 때는 보지 못했던 풍경이었다. 그리고 한참을 걸어가던 바로 그때, 오래된 지식이 그의 손등에 문신을 새겼다.
문신에 담긴 지식은 손등의 혈관을 따라 심장을 거쳐 뇌까지 흘러들어왔다. 그는 몽롱한 기분으로 그 지식을 받아들였다. 그것은 태엽 공방 소속 사냥꾼 지그문트의 비전(祕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