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24
괴물 신앙 (1)
재환은 흐릿해진 의식 너머에서 늙은 사냥꾼의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그는 노인이었고, 노인은 곧 그였다.
늙은 사냥꾼이 증기와 화약 냄새가 자욱한 거리를 내려다본다.
괴물. 사방이 괴물로 가득했다.
추악한 몰골을 뻔뻔스럽게 들고 다니는 괴물들이 사방에 널려있다.
그는 저 괴물들을 모조리 사냥하기 전까지 잠들 수 없었다.
끝없이 악몽 속을 헤맬 바에는 차라리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편이 나으리라.
그는 끓어오르는 증오를 씹어 삼키며 자신의 마지막 무기를 들어 올렸다.
괴물들이 득실거리는 광경은 역겨웠지만, 새로 만든 무기를 시험하기에는 적당했다.
태엽 공방의 기계공학 기술과 화약 공방의 야금술, 그리고 신비 공방의 윤활제를 사용해 만들어낸 가변 무기. 자신의 지식과 기술을 총동원해 설계해낸, 최후의 역작.
그는 이 무기에 ‘탈바꿈’이란 이름을 붙였다.
탈바꿈을 양손으로 쥔 그는 지붕에서 뛰어내려 가장 가까이에 있던 괴물의 머리를 톱날 부분으로 내려찍었다. 묵직한 도끼날이 괴물의 머리를 단숨에 터트렸다.
괴물의 머리를 터트린 그는 곧바로 달려드는 괴물의 목에 탈바꿈을 박아 넣었다. 탈바꿈은 괴물의 목 중간 부분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괴물의 목 근육이 유난히 질겼던 탓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 무기에는 톱날이 돋아있었기 때문이다.
늙은 사냥꾼은 근력을 끌어모아 톱질을 시작했다.
서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괴물의 목을 썰려 나간다.
사냥꾼 특유의 강인한 근력과 탈바꿈의 예리한 톱날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사냥꾼의 무기는 난적 하나를 쓰러뜨린 뒤 다음 표적을 찾았다.
껍질이 단단해 보이는 벌레 괴물이었다.
도끼날로 후려치자 괴물의 단단한 껍질에 의해 무기가 튕겨 나갔다. 그는 자신의 무기가 튕겨 나갔음에도 당황하지 않았다.
애초부터 예상한 결과이기도 했다.
괴물의 모양새가 제각각이었으니 상성이 좋지 않은 무기도 분명히 있었다.
껍질이 단단한 괴물에게는 타점을 집중할 수 있는 무기가 유용하고, 가죽이 질긴 괴물은 절삭력이 강한 무기가 유용하며, 살점이 무른 괴물이라면 타점을 넓혀서 몰아붙일 수 있는 무기가 유용했으며, 몸놀림이 너무 잽싼 괴물이라면 가볍게 휘두를 수 있는 무기가 유용했다.
그는 상황에 따라 무기를 바꿔 쓰는 것에 불편함을 느꼈기 때문에 이 무기를 개발한 것이다.
노인은 거리를 벌린 뒤 탈바꿈의 톱니바퀴를 조작해 곡괭이 부분을 순식간에 펼쳤다. 그리고 손잡이를 다시 쥐어 곡괭이 부분이 앞으로 가게 한 뒤 괴물에게 달려들었다.
콰직.
머리 부분의 껍질에 구멍이 뚫렸고, 피의 분수가 정수리에서 솟아올랐다.
사냥꾼은 그 모습을 보며 흡족하게 미소 지었다. 단단한 괴물마저 해치운 사냥꾼은 이후 한참을 더 사냥의 밤을 활보했다.
노련하게 무기를 다루는 사냥꾼을 저지할 괴물은 이 거리에 없었다. 적어도 이 거리에는 없는 게 분명했다.
후려치고, 썰고, 터트려라.
사냥꾼은 피 튀기는 살육의 현장 속에서 마음껏 미쳐 날뛰었다.
그 무엇도 오늘 밤 사냥꾼을 막을 수 없으리라.
그리고 마침내 이 일대의 모든 괴물을 정리한 그는, 하수구의 맨홀을 응시했다.
이걸로 연습은 끝났다.
이 맨홀을 열고 내려가면, 지금까지 상대할 엄두를 내지 못한 ‘그것’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끊임없이 모습을 바꾸는 괴물.
꿈틀거리는 혼돈.
오물과 쓰레기의 지배자.
끊임없이 모습을 바꾸는 이 괴물에게는 이에 걸맞는 무기가 필요했다. 이제는 무기가 준비됐으니,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사냥에 나설 차례였다.
사냥꾼은 맨홀의 뚜껑을 열고 지하로 내려갔다.
일생의 숙적이 오물과 쓰레기로 가득한 하수도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 * *
사냥꾼의 꿈에서 깨어난 재환은 정신을 가다듬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사방에는 새까만 어둠에 내려앉아 있었고, 깨알 같은 별빛들은 어느새 자취를 감췄다. 그는 주머니를 더듬어 랜턴을 찾아낸 뒤 주변을 비췄다.
주변의 풍경은 어느새 지하 무덤을 닮은 지하철 내부의 것으로 바뀌어있었다.
‘방금 그건… 꿈을 꾼 건가…?’
순식간에 뒤바뀐 풍경에 얼떨떨해하던 그는 왼손의 손등이 화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시선을 돌려 살펴보니 500원짜리 동전 크기의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문신은 이국의 문자처럼 보였는데, 그는 이 문자를 보자마자 그 의미를 읽어낼 수 있었다.
“탈바꿈…”
무심코 문신의 내용을 읽어낸 그는 의아해했다. 자신이 어떻게 이 문자의 뜻을 이해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든 것이다.
하지만 ‘탈바꿈’이란 단어를 떠올리자마자 문신이 은은하게 빛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을 확인한 재환은 기억을 되짚으며 의문을 해결했다.
‘보물과 지식을 얻는다더니. 그래서 그런 건가.’
그는 저 구덩이 밑바닥에서 사냥꾼을 만났고, 그 사냥꾼을 살해했다. 그러니 지금까지의 일이 환상이 아니었다면, 이제는 보물과 지식을 얻을 차례였다.
하지만 정작 그는 지금 무언가를 얻었다는 실감을 얻지 못하고 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지그문트에게서 받았던 탈바꿈은 사라져있었고, 딱히 무언가를 더 배운 것 같은 기분도 들지 않았다. 만약 손등의 문신마저 없었다면 잠깐 꿈을 꾼 것으로 취급해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탈바꿈은 어디 간 거지? 가지고 나온 것까진 기억나는데···.’
모든 게 꿈처럼 몽롱하게 느껴졌을 때, 그는 손등의 문신에서 시선을 거둔 뒤 주변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만히 있어 봐야 답이 나올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단은 좀 돌아다녀 보자. 지금 당장은 이 문신밖에 단서가 없으니까.’
결론이 나오자 행동이 이어졌다. 그는 어두컴컴한 역사 내부를 탐색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관 모양의 캐비넷 하나가 별빛처럼 은은하게 빛을 내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동전만 한 크기의 빛을 발하는 캐비넷 앞으로 다가가니 그의 손등에 새겨진 문신과 같은 모양의 글자가 보였다. 그 글자 역시 ‘탈바꿈’이란 뜻을 담고 있었다.
글자를 읽어낸 그는 캐비넷 위에서 반짝거리는 문신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손끝에 전류가 흐르는 듯한 감각과 함께 머릿속에 지식이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지식의 내용은 ‘탈바꿈’이란 무기를 어째서 만들었는지, 어떻게 만들었는지, 어떻게 관리와 수리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식과 구체적인 사용법에 관한 것들이었다.
그 지식을 머릿속으로 읽어내던 그는 지그문트가 어떤 심정으로 이 무기를 만들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무기 하나로 다 죽이고 싶었던 건가.’
씁쓸함을 감내하며 머릿속에 들어온 지식을 정리한 그는 지그문트 지식을 활용해 손등의 문장을 캐비넷 위의 문장과 겹쳐놨다. 철컥거리는 소리와 함께 캐비넷의 잠금장치가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캐비넷의 문을 옆으로 열어젖혔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톱니바퀴 모양의 보안 장치였다. 강제로 문을 개방하려 하면 내용물을 망가뜨리는 용도처럼 보였다.
보안장치를 옆으로 젖혀내자 이제는 제법 눈에 익은 무기가 눈에 들어왔다. 태엽 공방 출신 사냥꾼 지그문트가 아낀 무기, 탈바꿈이었다.
탈바꿈을 집어 든 그는 그 무게를 느끼며 생각에 잠겼다. 이 무기 하나에 얼마나 많은 정성과 기술이 집약되어있는지 이제는 알 수 있었다. 이 무기는 한정된 자원으로 우수한 무기를 만들어야 했던 샬롬의 사냥꾼들이 지혜를 끌어모아 만든 역작이었다.
그는 무기 하나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사냥꾼의 집념에 경의를 표한 뒤 탈바꿈의 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지그문트의 지식을 활용해 탈바꿈의 기능을 하나하나 시험하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도끼 겸 톱으로 쓰는 게 최적인 거 같고, 곡괭이로 쓸 땐 무게중심에 신경 써야겠어. 그리고 빠르게 공격하거나 기동성을 살릴 때는 분해해서 칼로 쓰는 것도 고려해야 할 테고.’
그렇게 수차례 탈바꿈을 휘두르던 그는 기능을 시험하는 것이 끝낸 뒤 역사 바깥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바깥으로 나와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하니 벌써 오후 1시가 다 되어있었다.
그는 시간을 확인하자마자 곧바로 숙소로 이동했다. 지금부터 미리 자 두지 않으면 밤에 졸음으로 고생하는 것은 뻔한 일이었다. 몇 시간이라도 자 두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가 명확한 만큼, 쉬는 것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그러는 쪽이 보다 더 많은 괴물을 사냥할 수 있을 게 분명했으니까.
* * *
“오늘 부탁드릴 일은 저번에 했던 일의 연장선이에요. 마트 인근을 순찰하면서, 남아 있는 괴물이 보이면 사냥해주세요. 일종의 보급로 확보라고 보셔도 무방해요. 내일부터는 군부대가 소탕작전까지 하기로 했으니, 오늘만 고생해주세요.”
이해리의 브리핑을 받은 재환은 탄창을 챙겨서 사냥을 나설 준비를 했다.
지난밤의 성과를 인정받은 덕분인지 탄창의 숫자는 전보다 넉넉했다. K1탄창의 숫자는 총 6개로 늘어났고, 수류탄 2개를 덤으로 받았다. 보급품이 늘어났다는 것은 경찰뿐만이 아니라 군대 측에서도 그를 인정한다는 증거였으니, 받는 입장에서도 나쁠 것 없는 얘기였다.
그는 탄띠에 들어가지 않는 탄창을 배낭에 넣었다. 그러자 브리핑을 끝낸 이해리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지난번에 얘기해 주신 내용은 보고했어요. 다른 사냥꾼분들이랑 같이 교차 검증을 해봤는데, 이상한 점은 보이지 않았어요. 의견 반영 못 해 드려서 죄송해요.”
그 말에 재환은 씁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괜찮아요. 저도 그때는 좀 예민해서 그랬으니까요. 애먼 사람 죽이는 것보단, 제가 좀 미쳐있는 게 낫기도 하고요. 아무튼 너무 신경 쓰지는 마세요.”
남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본다는 사실이 불편하긴 했지만, 인정할 부분은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 역시 이해리와 얘기를 나눈 뒤 자신이 과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사람처럼 보이는 존재를 함부로 죽이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을 적으로 돌리는 일이었다.
“아니요. 재환님이 미쳤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사리분별이나 인지 능력에 문제가 있어 보이진 않으니까요. 사냥꾼이 미지의 존재인 만큼, 재환님만 볼 수 있는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도 고려하고 있어요. 아직은 소수 의견이지만요…”
그 말에 재환은 피식 웃었다.
“말이라도 고마워요.”
“혹시 물증이 될 만한 걸 찾으시면 저나 다른 직원분들한테 얘기해 주세요. 증거만 확실하다면, 시민분들의 반발을 무릅쓰고서라도 사형을 집행해야 하니까요.”
그는 그 말을 듣고 난 뒤에야 그때 봤던 유치장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범죄율은 증가하고, 수용 시설은 부족한데, 사형까지 하기에는 민심이 불안한 상황이었다. 그러니 경찰이 아직 정부기관으로서 행동하는 이상, 시민의 눈치를 보는 것은 어느 정도 필연적이었다. 무작정 힘으로 찍어 눌렀다가 폭동이라도 일어나는 것은 최악의 시나리오였으니, 조심하려 하는 것도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었다.
“가능하면 노력해 볼게요. 저도 미친 사람 취급받는 건 싫으니까요.”
“네, 오늘도 잘 부탁드립니다. 몸조심하세요.”
이해리의 배웅에 그는 고개를 꾸벅 숙여 답했다. 그의 심정을 어느 정도 이해해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는 게 나쁘지 않게 느껴졌다. 그에게 아직 사람의 마음이 남아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 * *
재환은 고층 건물의 옥상에 올라가 대형마트가 늘어선 거리를 내려다봤다. 괴물의 숫자가 워낙 적으니 고지대에서 찾아낸 뒤 움직이는 쪽이 더 나을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자리를 잡고 나니 괴물의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은 탓에 사냥 외적인 부분을 더 많이 알 수 있었다.
이를테면 도로의 자동차를 견인해 보급로를 확보하는 운전기사들의 모습이나, 보급품을 남들보다 먼저 배급받는 것을 약속받은 사람들이 물건을 옮기는 모습. 그리고 거리에 깔려있는 장애물을 치우는 자원봉사자들까지.
모두 소소하게나마 인상에 남는 모습이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민간인들끼리 힘을 합쳐서 괴물을 저지해내는 모습이었다.
“그쪽에 방패 들어! 일단 시간만 끌면 돼!”
“뒤로 빼! 뒤로! 다치지만 않으면 되니까 일단 빼!”
“좀만 더 버팁시다! 좀 있으면 군인 오니까 힘 좀 냅시다!”
괴물이 갑작스럽게 등장했음에도 그들은 당황하지 않았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만들어낸 강철 판자로 괴물의 공격을 막아내면서 주의를 끌고 있었다. 괴물을 죽이는 것까지는 무리더라도, 괴물을 막아섬으로써 저항했던 것이다.
결국 3분 정도 뒤에 재환이 현장에 도착해 괴물을 처치했지만, 그들이 벌어들인 3분이란 시간은 헛수고가 아니었다. 그들이 비켜났다면 보급 차량이 손상돼서 작업에 차질이 생겼을 게 분명했다.
소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괴물을 막는 모습에는 생명력이 담겨있었기에 훈훈함을 자아냈다.
‘오늘은 평화롭게 끝나는 건가.’
어느새 동이 틀 무렵이 되자 그는 긴장을 푼 채 주변을 둘러봤다. 하루 정도는 무사히 보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한 남자가 골목길로 들어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 왔고, 곧이어 속삭임이 들려왔다. 괴물이 나타났음을 알리는 목소리였다.
[사냥 대상: 피어오르는 사랑, 암브락사스의 권속] [분류: 권속] [사랑을 베푸는 성자(星子)의 권속. 사랑이 모이는 곳에 암브락사스가 임한다.]속삭임을 듣던 그는 한숨을 내쉬면서도 일단은 권속을 뒤쫓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괴물을 본 이상, 못 본 척하는 것은 사람이 죽는 것을 방관하는 것과 별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만약 운이 좋다면, 도시의 마약 사건과 관련된 단서를 잡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마약이 괴물병과 연관되어 있는 이상, 사냥꾼으로서 못 본채 넘어갈 수는 없었다.
들키지 않도록 천천히. 사건의 실마리를 잡기 위해 추적하던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권속을 곧바로 죽이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권속은 초소를 지키는 군인에게 ‘무언가’를 건네준 뒤 대피 구역으로 들어갔고, 권속은 재환이 군인과 실랑이하는 틈을 타 사람들을 끌어모았다.
그리고 그가 뒤늦게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권속이 사람들에게 약을 나눠주고 있었다.
더 끔찍했던 점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약을 받아갔다는 점이었다.
아가페가 도시에 창궐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