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25
괴물 신앙 (2)
권속이 지나간 자리에 곳곳에 불그스름한 점액질이 묻어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권속을 인식한 직후부터 보이기 시작한 흔적이었고, 덕분에 그는 권속을 수월하게 쫓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미행은 도시 입구 부근에서 차질을 빚었다. 당직 근무를 선 군인이 권속에게 무언가를 받더니 권속을 도시 안쪽으로 통과시킨 것이다.
뒤늦게 도착한 재환은 어처구니없는 심정으로 그들에게 항의했다.
“방금 뭘 받은 겁니까?”
군인이 뇌물을 받는 것은 금기다. 이유와 목적을 불문하고, 허가받지 않은 물품을 받아서는 안 되는 게 당연하다. 특히나 그 군인이 초병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들려오는 답변은 당당하기까지 했다.
“영양젠데요. 왜 그러세요?”
“영양제요?”
그는 어처구니없는 심정으로 말했다. ‘권속’인 괴물이 영양제나 나눠줬을 리 없다는 생각이었다.
“영양제면 한번 보여줘 봐요. 아, 못 보여드리나? 보여주면 군기 위반으로 영창 가니까. 이 시국에 군인이 약 빨고 다니면, 윗대가리들이 참 좋아하겠네. 안 그래요?”
날이 선 말투에 당직 부사관인 박영수 하사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하사는 오히려 뻔뻔하게 말했다.
“사냥꾼도 엄밀히 따지면 민간인인데, 군인한테 이래라저래라 해도 되나? 내가 뭘 먹든 말든, 당신이 뭔 상관인데?”
그 말을 듣던 재환은 보란 듯이 한숨을 내쉬며 생각했다. 당치도 않은 협박이었지만, 지금은 상대할 시간마저 아까운 상황이었다.
‘지랄났네 진짜. 미쳐 돌아가는구만.’
그는 속으로 욕을 쏟아 부은 뒤 상대의 명찰을 흘끗 살펴봤다. 나중에 신고할 일이 있으면 이름 정도는 알아 둬야 했기 때문이다.
“알았으니까 일단 비켜 봐요. 그쪽이랑 말씨름할 시간도 아까우니까.”
그 말에 당직 부사관인 박영수 하사는 인상을 찌푸렸지만, 이 이상 대화가 길어지는 것은 그에게도 불편한 일이었는지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았다. 검문소를 통과해 도시로 들어선 그는 안개가 내려앉은 거리를 질주하며 권속의 흔적을 쫓았다.
‘별일 없어야 할 텐데.’
실랑이를 벌인 시간은 10분도 채 안 되었지만, 그는 동이 트는 모습을 보며 불안감에 시달렸다. 이제 곧 사람들이 일어나 거리로 나올 시간이었으니, 그 사이에 무슨 일이라도 벌어지면 피해가 커질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런 불안감이 과민반응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는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권속의 흔적이 끊긴 것을 바라봤다.
‘여기다.’
더 이상 흔적이 보이지 않는 것을 확인한 그는 군중의 한가운데에서 연설을 하는 권속을 찾아냈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권속은 정장을 갖춰 입은 채 백 명에 가까운 군중을 향해 연설하고 있었다.
“오늘 모여주신 시민 여러분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재환은 시민들에게 혼란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 상황을 지켜봤다. 피 묻은 옷을 입은 채 흉기를 든 남자와 정장을 입은 신사 중 어느 쪽이 더 믿음직해 보일지는 쉽게 판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 여러분을 구원으로 이끌 비약, 아가페를 나눠드리겠습니다.”
얼핏 보기에는 강연 현장처럼 보였지만, 음료가 담긴 병을 잔뜩 쌓아놓고, 이를 나눠 주려 하고 있다는 점을 보면 약장수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약장수와의 차이점이 있다면, 성직자처럼 보일 정도로 경건한 분위기로 말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정장을 입은 남자가 열정이 담긴 목소리로 웅변했다.
“주님께서 별빛으로 계시를 내리셨습니다. 이 비약을 마신 자, 영생과 구원을 얻으리라. 믿음을 증명하는 자, 고통과 절망에서 구원받으리라!”
경건한 목소리가 군중을 향해 퍼져나갔다. 기묘한 카리스마가 군중을 휘어잡았다.
“여러분 중에서는 가족을 잃으신 분이 계실 겁니다. 친구와 동료를 잃은 분도 계시겠지요. 상황은 절망적입니다. 사방에 괴물이 창궐하고, 누가, 언제 괴물이 될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괴물을 죽이고, 식량을 모아도, 결국은 하루하루 연명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모두가 절망하고 있다는 것, 뼛속 깊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남자의 말은 갈수록 열기를 띄었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 모든 시련은 천국으로 이어지는 계단일 뿐이니. 모두 하나 되어 두려움을 이겨내 천국에 닿아라!”
저 남자는 괴물이었다. 머리 위에 뇌를 닮은 덩굴 몇 가닥이 얇게 자라난 것이 그 증거였다. 비록 그의 눈에만 보이는 증거였지만, 그럼에도 재환은 저 남자가 권속인 것을 확신했다.
“여기 주님의 피가 있습니다. 이 피를 마시면 여러분은 육신의 굴레에서 벗어나 승천의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형제자매가 그러했듯이, 낡은 육신을 버려야 천국으로 가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잔을 들어 올렸다. 붉은색 액체가 투명한 잔에서 찰랑거리고 있었다.
“주께서 말씀하시길!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이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내 피의 잔이니 죄를 사하여 주려고 너희와 많은 이를 위하여 흘릴 피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그는 잔을 휘휘 저은 뒤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잔을 권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쉽게 잔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낯선 액체를 받아 마시는 것에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낀 것이다.
하지만 연설을 하던 남자는 그런 반응을 예상하기라도 했던 것처럼 망설임 없이 말했다.
“네. 알고 있습니다. 두려울 수밖에 없죠. 두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이 보았던 괴물이란 주님께서 용기를 시험하기 위해 만들어낸 형상이니까요. 새로운 세계로 나가려면 용기가 필요한 게 당연합니다. 천국의 입구는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만큼 좁으니, 그 속에서 가려진 옥석이야말로 천국의 주민이 되어 영생을 누릴 겁니다.”
거리를 둔 채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재환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지랄 났네.’
그는 어처구니없는 심정으로 그 모습을 지켜봤다.
‘이런 말에 사람들이 속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하지만 그는 미처 알지 못했다.
사이비는 마음이 약해진 틈을 파고든다. 면역력이 약해진 사람이 병에 걸리기 쉬운 것처럼, 마음이 약해진 사람일수록 유혹을 이겨내기 힘들기 때문이다.
현실이 절망적이고, 자신의 무력함을 실감할수록, 도망치고 싶은 욕구는 강해진다. 힘을 가진 자들은 알 수 없는, 약자로서의 욕구를 그는 간과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질문했다.
“정말… 이걸 마시면 천국으로 갈 수 있습니까?”
권속은 흔쾌히 대답했다.
“증거라면 여기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이분을 주목해주십시오.”
그는 사람들 틈에서 여자 한 명을 불러낸 뒤 잔을 마시게 했다.
“모습이 변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외형은 껍데기일 뿐입니다. 진정한 인간성은 외면이 아닌 내면에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남자에게 불려 나온 여자는 미리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잔을 받아 마셨다. 망설임 없는 그 행동은 마치 순교를 방불케 했다.
그리고 여자가 잔을 비웠을 때, 그녀의 몸이 부풀어 오르면서 몸이 나무를 닮은 모습으로 자라나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은 풍성하게 자라나 잎사귀가 되고, 하늘로 뻗은 두 팔은 가지가 되었으며, 다리는 뿌리가 되어 땅으로 뻗어 나갔다.
마치 만개한 벚나무가 피어나는 것처럼, 사람의 피부를 지닌 나무가 자라나는 모습에는 마성에 가까운 아름다움이 담겨있었다.
저 우아한 곡선. 저 탐스러운 둘레. 아름드리의 아름다움이 완연한 봄의 우상!
정장을 입은 남자는 인간과 자연이 하나가 된 결과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자, 보십시오. 이것이 궁극의 사랑입니다. 아무도 해치지 않고, 아무도 다치지 않는, 자연의 이치. 무한에 가까운 사랑이 이곳에 임했습니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속삭임이 그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사냥 대상: 암브락사스의 사랑] [분류: 비선공형] [암브락사스가 이뤄낸 사랑의 형태. 사랑이 숲을 이루면 암브락사스가 임한다.]사람이 괴물이 되는 이 기괴하기 짝이 없는 풍경은 그의 눈에만 보이는 현상이 아닌 듯했다. 주변에서 사람들이 술렁거리는 소리가 연속해서 울려 퍼졌다.
“저게 뭐야…”
“사람이 나무가 됐는데?”
“이거 말려야 하는 거 아니야?”
약을 먹은 사람이 괴물이 되는 것을 지켜봐야 했던 그는 속으로 환호했다. 이제 저 꼴을 가만히 두고 볼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이제 됐다.’
그는 탈바꿈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이제 죽이기만 하면 돼.’
드디어 저 괴물들을 쓸어버릴 명분이 생겼다. 괴물을 죽일 수 있다니. 얼마나 속 시원한 일일이었는지 탄성이 나올 지경이었다.
하지만, 간신히 떠오른 명분은 그가 행동하기도 전에 박살 나고 말았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비약을 드신 분들은, 여러분을 해치지 않습니다.”
정장을 입은 남자는 나무가 된 사람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자, 말씀해 주시지요. 지금 심정이 어떠십니까.”
군중을 사로잡는 카리스마에 사람들이 숨죽였다. 그 불길한 침묵 속에서 재환은 비명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가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나무가 된 사람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보입니다. 천국의 문이 보입니다.”
나무가 된 사람이 내는 목소리는 신성했다. 그 목소리에는 행복과 평화가 담겨있었고,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담겨있었다. 천상의 목소리가 지상에 내려온 것이다.
“가족들이 보입니다. 어머니. 아버지. 아아, 내 동생. 우리 애기. 아아, 보입니다! 아이들이… 가족들이… 친구들이 보여요…”
나뭇가지에서 나뭇잎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여기는 천국입니다. 저는… 천국에 왔습니다…”
너무나도 행복해 보이는 목소리에 군중은 압도되었다. 재환 역시 같은 반응이었다. 어찌나 기뻐 보이는 목소리였는지, 저걸 죽이려 했다는 것에 죄책감마저 느낄 정도였다.
그는 이를 악문 채 권속을 노려봤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그에게서 비약을 받아 마시기 시작했다.
어린아이 한 명이 정장을 입은 남자에게 다가갔다,
“이거 마시면… 우리 엄마 볼 수 있어요?”
남자는 인자한 미소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물론이란다. 주님께서는 모두를 천국으로 이끄시니까.”
그 말에 어린아이 역시 미소를 지으며 잔을 받아 마셨다. 그리고 나무가 되었다.
“나도 한 잔 주세요.”
허리가 굽은 노인이 불편한 걸음으로 다가갔다.
“더 오래 살아봐야 밥만 축내는데, 나무가 되는 것도 좋지요.”
“예. 주님께서는 모두를 환영하십니다.”
노인이 잔을 받아 마셨다. 그리고 나무가 되었다.
그 뒤를 이어 30대 정도로 보이는 여자가 앞으로 나서려 할 때, 이 상황을 보다 못한 재환은 본능적으로 그 여자를 말렸다.
“정말 저걸 마시려고요? 뭐가 들었는지도 모르는데?”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그녀는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것 같은 얼굴로 비약을 받으러 걸어가고 있었다. 그러자 그녀는 자신의 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우리 애기… 보러 가려고요… 우리 애기는… 그 착한 애기는… 천국 갔을 테니까요···.”
유산을 연상시키는 제스쳐에 재환은 흠칫하고 말았다.
‘이런 씨발…’
그는 하는 수 없이 여자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머리가 지끈거리는 기분과 함께 주변을 둘러봤다. 그제야 미처 보지 못했던 사실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이곳에 모인 군중은 대부분 노약자였다. 애초에 마음이 약해져 있었기 때문에 저 남자의 말을 쉽게 이끌렸던 것이다.
‘죽여야 돼. 죽여야 되는 데,..’
그는 이를 악문 채 잔을 나눠주는 남자를 노려봤다.
‘죽이면 내가 괴물 취급당하겠지.’
그는 사람들의 상태를 간과하고 있었다. 미친 세상에서는 미친 사람들이 사는 법. 이 세상은,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그의 예상보다 좀 더 미쳐있었다.
재환은 사람들이 나무가 되어가는 모습을 망연하게 바라봤다.
괴물. 괴물이. 괴물이 늘어난다.
저들은, 저들은 괴물이 될 걸 알면서도 약을 마시는 사람들이었다.
자살하고 싶은 사람들이 지천에 널려있는 시국이었고, 웃으면서 죽을 수 있다면 마다하지 않을 시국이었다. 그러니 언젠가 괴물이 될 거라면, 차라리 지금 괴물이 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이 자리에 있었다.
그리하여 잔을 받아 마시는 사람이 12명까지 늘어났고, 집단 자살이나 다름없는 광기가 군중을 지배했다.
재환은 이를 악문 채 주변을 살폈다. 점점 괴물이 늘어가는 이 풍경을 보고만 있을 순 없었다. 사냥꾼으로서의 본능과, 괴물을 향한 해묵은 증오가 그를 이끌었다.
그는 사람들이 나무가 되는 백화요란의 현장을 지나 권속을 향해 걸어갔다. 불안함과 불길함, 그리고 불쾌함이 요동치며 그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멈춰.”
멈춰야 했다. 지금이라도 멈춰야 했다. 더 이상 이 상황을 방치하면, 어떤 파국이 나타날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그는 권속에게 말했다.
“멈추라고, 씨발새끼야.”
그는 쌍욕을 쏟아 부으며 탈바꿈을 겨눴다. 총 대신 이 무기를 겨눈 것은 그쪽이 더 직관적으로 협박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톱날이 돋아난 도끼를 든 사람의 말을 함부로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런 배짱은 광인만이 가질 수 있는 법이었으니까.
하지만 상대는 사람이 아니라 괴물이었다. 권속은 인자하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내려놓으시지요. 폭력은 좋지 않습니다. 이 모든 것은 주님의 시련일 뿐. 폭력을 이겨내고 승천하는 것이 우리에 남겨진 사명입니다.”
남자가 멈춰선 덕분에 비약을 배급하는 흐름은 끊겼다. 하지만 상황 자체는 호전되지 않았다. 여기서 이 괴물을 놓아주면 똑같은 일이 벌어질 게 분명했다.
재환은 여전히 탈바꿈을 겨눈 채 협박했다.
“죽기 싫으면 멈추라고.”
“그럴 순 없습니다. 사명이니까요.”
“죽어도 상관없다고?”
“네. 상관없습니다.”
살의가 담긴 목소리에 주변 사람들이 겁먹은 것이 느껴졌다, 흉기를 든 남자가 협박하는 광경은 공포를 부르기 마련이었으니까.
“마지막으로 하나만 물어보자.”
재환은 겁에 질린 사람들을 무시한 채 말했다. 각오를 끝내자 목소리는 오히려 차분해져 있었다.
“너는 사람이냐, 괴물이냐?”
정장을 입은 남자는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물론 사람입니다. 누가 봐도 사람이죠.”
재환은 웃음기 없는 얼굴로 대답했다.
“그 괴물도 그렇게 말했지. 자긴 사람이라고.”
말이 끝나자마자 행동이 이어졌다. 그는 권속의 목을 향해 탈바꿈을 후려쳤다. 사냥꾼의 증오와 괴력이 담긴 일격이 권속의 목을 찍은 것은 순식간이었다.
“꺄아아아아악!”
살육의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이 일제히 비명을 질렀다. 예정된 파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