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26
괴물 신앙 (3)
도끼의 톱날 부분이 권속의 목에 꽂힌 순간, 그는 무언가 잘못됐음을 직감했다.
공격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지그문트의 걸작은 지나칠 정도로 예리했고, 톱날은 거침없이 권속의 목을 절단하고 있었다.
하지만 목이 절단되는 그 순간, 권속은 웃고 있었다.
세상에 미련이 없는 자의 표정.
순교자만이 지을 수 있는 미소였다. 그 미소가 눈에 들어오자 재환은 소름이 돋는 기분이 들었다.
‘뭐지?’
찰나의 순간에 불길함이 엄습한다.
사람 모습을 한 존재를 죽였기 때문은 아니었다. 설령 상대가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그 본질이 괴물인 이상 언젠간 죽여야 하는 것이 옳았다. 그로 인해 살인자란 오명을 쓸 각오라면 얼마든지 되어있었다.
‘뭔가… 이상해… 뭘 놓친 건가?’
의식이 가속하면서 시간이 느리게 흘렀다. 주마등처럼 느려진 세상 속에서 탈바꿈은 가속하고 있었다. 그는 불길함을 억누르기 위해 계속 생각했다.
죽어야 한다. 괴물은 죽어야만 한다. 그것 자체는 분명 후회하지 않았다. 하지만 도끼가 목을 완전히 절단하고 난 다음에도 불길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정장을 입은 권속이 쓰러진 순간, 그는 남자가 어째서 웃었는지 깨닫고 말았다. 남자의 몸이 부풀어 오르더니, 이내 폭발하면서 붉은색 꽃가루 같은 무언가가 사방에 흩어진 것이다.
재환은 옷소매로 얼굴을 가리며 황급히 물러났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가루를 마셔봐야 좋을 것 같지 않았다. 반응이 빨랐던 덕분에 그는 무사히 거리를 벌릴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니었다.
평범한 시민들은 사냥꾼만큼 민첩할 수 없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옷으로 호흡기를 가리지도 못했고, 설령 가렸다 하더라도 이미 얼굴에 꽃가루를 묻힌 뒤였다.
“꺄아아아아아악”
“뭐야! 뭐가 터졌어!”
“으아아아아!”
폭발의 효과는 직관적이었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위협에 군중들이 비명을 질렀고, 몇몇 사람은 나무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꽃가루를 직접 마신 사람들이었다.
“사랑이.사람이임하시어.이땅에사랑을모두사람을.”
“보고싶.었어요.엄마.아빠.엄ㅁㅏ…ㅇㅏ으ㅃㅡㅏ…”
“행복이넘쳐흘러이땅에모두사랑을나누시어하나되어모두사랑을…”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재환은 정신을 차린 뒤 상황을 파악했다.
‘이걸 노린 건가.’
그는 권속이 어째서 도시 한복판에서 사람들에게 마약을 나눠준 것인지 깨달았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마약을 마실지는 사실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을 최대한 많이 모으는 것 그 자체에 있었던 것이다.
도시로 들어오고, 사람들을 모은 순간, 권속은 이미 자신의 할 일을 다 한 셈이었다.
혼란에 빠진 군중들이 도망치는 것과 동시에 재환은 무기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지금은 저 사람들처럼 혼란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었다.
일단 ‘사냥’을 저지른 이상, 확실하게 마무리하는 것이 옳았다. 주변에는 아직 사람 가죽을 뒤집어쓴 나무들이 널려있었기 때문이다.
재환은 나무꾼이 된 기분으로 나무 앞에 마주 섰다. 때마침 그의 손에는 톱이면서 도끼인 무기가 있었으니, 가로수 크기 정도의 나무라면 어렵지 않게 벨 수 있었다. 심지어 저들은 저항조차 하지 않고 있으니, 지금부터 마음만 먹으면 순식간에 모조리 썰어버리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총 24개. 아니, 24명이라고 해야 하나.’
그는 빠르게 숫자를 센 뒤 숨을 내쉬었다. 마약을 먹고 괴물이 된 숫자가 12명이었으니, 나머지는 꽃가루가 퍼진 직후에 괴물이 된 것이었다.
그는 숨을 들이쉰 뒤 탈바꿈을 쥔 손에 힘을 쥐었다. 저항하지 않는 괴물을 죽이는 것에 한순간 망설임이 있었지만, 그는 이내 고민을 그만뒀다. 지금은 한가하게 도덕성을 고민할 시간이 아니었다.
경찰이 오면 분명 도시에 혼란을 일으킨 책임을 물을 것이고, 그렇다면 이 괴물들은 그의 손을 떠나게 될지도 몰랐다. 사냥꾼에게 사냥감을 놓치는 것만큼 분통한 일도 없었다.
재환은 허리를 젖힌 뒤 탈바꿈을 나무에 꽂았다. 그러자 피가 튀기는 것과 함께 나무가 속삭였다.
“분이 풀린다면, 얼마든지.”
천상에서 내려오는 것만 같은 목소리가 귓가에 파고들었다. 나무의 몸을 빌려서 말하는 목소리에는 어머니 자연과 같은 너그러움이 담겨있었고,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넓어지는 자비로움이 담겨있었다.
“우리는 이미 천국에 있습니다. 당신도 어서 이곳으로 오세요.”
그럼에도 파고든 톱날을 쥔 손은 멈추지 않았다.
“피는 땅에 스며들고, 햇빛을 받아 승천하여, 달까지 닿으리라.”
나직한 단말마와 함께 ‘암브락사스의 사랑’ 한 그루가 쓰러졌다.
“기분 나쁜 새끼들…”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다른 ‘나무’를 향해 이동했다. 그들은 여전히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이곳은 행복으로 가득해요.”
“온 세상이 사랑으로 가득한 게 보여요. 가족과 친구들도 모두 이곳에 있어요.”
“조금 전에 어머니와 아버지를 만나고 왔습니다. 모두 무사하셨어요. 어찌나 다행인지.”
살가죽을 뒤집어쓴 나무들은 쉴 틈 없이 속삭였다. 재환은 지난번에 상대했던 불가해를 떠올리며 쉴 틈 없이 몸을 움직였다. 잡생각이 많아질 것 같을 때는 몸을 움직이는 것이 최선이었기 때문이다.
쩌억, 하는 소리와 함께 피가 튀기고, 사람의 뼈와 살로 이뤄진 나무가 쓰러진다. 피가 땅에 스며드는 것과 함께 재환은 다른 인육 나무를 쓰러뜨렸다. 일방적인 학살이었고, 벌목이나 도축에 비견되는 무자비함이었다.
‘망설이면 안 되지.’
또다시 인육 나무를 쓰러뜨린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괴물은 괴물이야. 그 암브락사스라는 놈의 괴물이라고.’
이 괴물 자체는 분명 무해했다. 생긴 것만 기괴할 뿐, 가로수나 다름없을 정도로 무해했다. 만약 속삭임이 들이지만 않았더라면 그 역시 이 괴물을 방치했을지도 몰랐다. 누가, 어떤 괴물이 됐든, 발목만 잡지 않는다면 그가 신경 쓸 문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알고 있었다. 속삭임은 괴물에 관해 설명할 때마다 주의사항을 덧붙인다. 내구력에 주의하거나, 소리에 민감하다는 등의 정보였다. 그리고 이 괴물에 대해서는 ‘암브락사스가 임한다.’는 말로 경고했다. 그러니 ‘암브락사스’가 무엇이든,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위험하다는 의미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는 이미 한차례 ‘불가해’였던 괴물을 상대한 경험이 있었고, 그 괴물에게는 정신을 뒤흔드는 힘이 있었다. 그 당시의 경험이 이미 뇌리에 박힌 만큼, 그는 이 ‘암브락사스의 사랑’을 해치우는 일에 열과 성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마지막인가…’
24그루의 인육 나무를 모조리 도륙 내는 대에는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탈바꿈이 워낙 예리했던 덕분이기도 하지만, 놈들이 조금도 저항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재환은 거칠게 숨을 내쉬며 주변을 둘러봤다. 주변에는 겁에 질린 사람들이 괴물이라도 보는 것만 같은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사람이었던 것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는 모습이 충격으로 다가온 것이다.
‘그래, 그럴 만 하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은 아니었다. 매번 사냥하고 돌아오면 그의 몸은 피투성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피투성이가 된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은 저것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괴물과 사냥꾼은 한 끗 차이에 불과한 것이다.
‘피곤해… 잠 잘 시간이라서 그런가.’
그는 털썩 주저앉으며 몰려오는 피로를 만끽했다. 흥분이 가라앉으니 밤을 새운 피로까지 한 번에 느껴졌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숨을 가다듬고 있을 때, 저편에서 사이렌 소리와 함께 경찰차가 오는 것이 보였다.
경찰차에서 내린 경찰들은 피바다가 된 현장을 보자마자 권총을 겨누며 말했다.
“신고받고 왔습니다! 무기 내려놓고 손들어주세요!”
그 말에 재환은 피식 웃으며 총과 탈바꿈을 내려놨다. 이 모든 게 형식적인 절차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냥꾼이 마음만 먹으면 맨주먹으로도 사람을 찢어 죽일 수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그러니 하다못해 무기라도 버리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사람들이 안심할 수 없는 것이다.
“서로 동행해주셔야겠습니다. 협조 부탁드립니다.”
그는 수갑을 차기 전에 뒤를 돌아왔다. 그리고 목이 잘려나간 권속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저씨, 저게 사람으로 보여요, 괴물로 보여요?”
경찰은 수갑을 채우며 말했다.
“살인 사건 신고 때문에 온 겁니다. 수사에 협조해주세요.”
그는 얌전히 수갑을 차며 중얼거렸다.
“나만 괴물로 보였나 보네.”
* * *
“그러니까… 사람이 아니라 괴물처럼 보여서 죽였다고요…?”
취조를 담당한 이해리는 조심스럽게 정황을 확인했다. 그녀의 뒤에는 군인 두 명이 소총을 든 채 그를 감시하고 있었다. 사건 당시에 군대에서 보급받은 총기를 들고 있었던 만큼, 군대 측에서도 이를 주시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재환은 군인에게서 시선을 거둔 뒤 차분하게 대답했다.
“나 안 미쳤어요. 잘 생각해 봐요. 거기에 사람 시체가 더 있었는지.”
그 말에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어요. 그 한 구를 제외하면, 모두 괴물 사체였으니까요. 하지만… 한 명이라도 죽었다는 게 중요한 거예요. 한 명이라도 죽었으면 살인은 살인이니까요.”
“그러면 그대로 내버려뒀어야 했어요? 그 새끼가 사람들 괴물로 만드는데?”
“죽일 필요까진 없었다는 거예요. 제압만 하고, 지원 요청을 했어야죠. 아무리 비상 상황이었어도 그게 원칙이란 거, 처음에 교육받았잖아요.”
“하, 씨발…”
그는 답답한 마음에 욕설을 내뱉었다.
“미쳐 돌아가는구만 진짜.”
노골적인 욕설에 이해리는 인상을 찌푸렸다.
“말조심하세요. 그래도 지금까지 협조해주셨으니까 편의 봐 드리는 거예요. 다른 선배들 대신 굳이 제가 온 것도 그나마 안면이 있으니까 온 거고요.”
재환은 한숨을 내쉰 뒤 숨을 들이켰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조금이라도 진정하기 위해서였다. 잠시 숨을 고른 그는 한결 차분해진 말투로 입을 열었다.
“이제는 좀 알겠어요. 사람이랑 괴물이랑 뭐가 다른 건지. 나름대로 기준을 세워 본 거예요. 사람처럼 생긴 괴물을 봤으니까.”
한결 정갈해진 목소리가 취조실에 맴돌았다.
“내 생각은 이래요, 사람처럼 생겼으면서 사람답게 행동하면 사람인 거고, 사람처럼 생겼어도 괴물처럼 행동하면 괴물인 거예요. 사람 가죽을 뒤집어썼어도, 괴물처럼 행동하면 그건 괴물이라고요. 연쇄살인마나 강간범도 그렇잖아요? 그런 새끼들 사람취급해줄 필요 없는 것처럼, 괴물처럼 행동하는 것들은 사람 취급해줄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특히 이런 상황일수록 더 그렇죠.”
한바탕 말을 쏟아 부은 그는 다시 숨을 고른 뒤 말했다.
“내가 죽인 건 괴물이에요. 다른 괴물보다 질이 더 나빴죠. 사람을 괴물로 만드는 괴물이었으니까. 유치장에 가뒀으면, 더 끔찍했을 거고요.”
이해리 역시 정황을 보고받은 상태였기 때문에 그의 말에 일리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경찰로서의 규율과 상식이 그의 말에 동의하는 것을 저지하고 있었다.
취조실에 잠시 침묵이 흘렀고, 정적을 깬 것은 재환의 목소리였다.
“아무튼 내 얘기는 여기까지예요. 판단은 그쪽이 알아서 하시고요. 귀찮으면 총살해도 상관없으니까, 결정이나 빨리 내려줘요.”
“…일단 보고는 드릴게요. 재환 씨 의견이 반영되는 쪽으로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서류를 정리한 뒤 일어나려 했다. 그리고 떠나려는 그녀에게 재환이 말했다.
“유치장에 있는 그 여자, 조심하세요. 그 약쟁이 여자 말이에요.”
그는 그녀를 통해 경찰에게 경고했다.
“조만간 거기서 오늘 있었던 일이 또 일어날 것 같으니까요. 하다못해 독방 같은 곳에라도 가둬놓으란 거예요. 경찰서 전체가 괴물 밭이 되고 싶은 게 아니면.”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고, 재환은 그녀가 떠나는 것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남은 것은 경찰의 지휘부가 그의 의견을 얼마나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달린 것이다.
‘별 일 없으면 좋겠지만…’
그는 군인의 손에 이끌려 구치소로 향했다. 경찰은 시민들의 불안이 잠잠해질 때까지 최대 일주일 정도 군부대가 관리하는 수감 시설에서 지내길 권했고, 그는 마지못해 이를 받아들였다. 일종의 영창행이나 마찬가지인 처분이었다.
만족스러운 처분은 아니었지만, 불만을 제기하기에는 경찰의 명분이 견고했다. 경찰은 일반인들이 보기에 도시 한복판에 날뛰는 사냥꾼의 모습은 괴물과 별로 다를 바 없다고 말했고, 그는 이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피 묻은 옷을 입고 도시로 돌아오면 괴물이나 다름없는 몰골이 되었기 때문이다.
구치소를 향해 이동하던 도중, 그는 사람들이 자신의 모습을 어떻게 바라볼지 잠시 상상했다. 피투성이가 된 채로 괴물을 죽이는 모습이 떠올랐다. 썩 유쾌한 모습이 아닌 것은 확실했다.
하지만 자신의 행적이 괴물을 닮았다고 해서 자신에게 죄가 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그 당시 현장에 군인이나 경찰이 있었어도 자신과 별 다를 바 없이 행동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사람을 괴물로 만드는 꼴을 가만히 지켜봐야 하는 게 정상이라면, 그는 기꺼이 비정상이 될 각오가 되어있었다.
‘너무 오래 갇혀 있을 것 같으면 탈옥이라도 해야지.’
그는 한숨을 내쉬며 호송 차량에 올라탔다. 아무리 경고성에 가까운 처분이라고는 해도, 어딘가에 갇혀서 지낸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한 마리라도 더 괴물을 잡아야 하는 시기라면 더더욱 그랬다.
‘시간 낭비하는 것도 정도가 있는 거지. 일단 상황을 좀 보고, 아예 여길 뜰 생각도 해야겠어.’
전력을 다하면 쇠창살도 우그러뜨릴 수 있는 근력이 있는 이상, 그를 가둘 수 있는 감옥은 없었다. 그러니 이 도시와 함께 침몰할 일이 생긴다면, 그는 주저 없이 도시를 버리고 탈출할 생각이었다. 설령 그 과정에서 총에 맞아 죽는 불상사가 일어난다 하더라도, 감옥에 갇힌 채 미쳐가는 것보단 나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수감자를 태운 차량이 경찰서를 떠났다. 난생처음 감방에 들어갈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