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27
피로 물든 사냥꾼 (1)
군인의 손에 이끌려 도착한 구치소는 정신병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멀쩡한 수용 시설이 거의 없다 보니 폐쇄병동을 구치소처럼 쓰고 있는 모양이었다.
시설 관리는커녕 청소조차 제대로 되지 않은 건물을 보며 재환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건물을 이 상태로 일주일만 더 방치하면 영화 곤지암에나 나올 법한 흉가가 될 게 뻔했기 때문이다.
먼지와 곰팡이로 더러워진 복도를 지나 폐쇄병동에 도착하자 수감자들이 음산하게 중얼거리는 것이 들려왔다.
“밥…배고파…밥…”
“지금 몇 시야? 지금 낮인 거 맞지? 낮인데 왜 이렇게 어두워…”
“아니, 시발 진짜 특종이었다니까. 구라 아니고 진짜. 짭새한테 걸리지만 않았어도… 시발…”
그는 수감자들의 말을 한 귀로 흘려들었다. 정신 건강에 별로 좋지 않을 거라는 판단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자신의 감방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른 창살이 설치된 문을 열자 제법 넓은 크기의 독방이 눈에 들어왔다. 다른 방에 비하면 유독 깔끔했기에 이질적이었다. 세면대와 화장실까지 준비되어있는 것을 보면 이 병원이었던 시절에도 제법 비싼 방이었던 것은 분명해 보였다. 임시로 지낼 감방치고는 지나친 호사였다.
“따로 부르기 전까진 여기 계시면 됩니다. 필요한 물건이 있으시면 당직병을 불러서 얘기해 주십시오. 더 궁금하신 점 있으십니까?”
수감자가 아니라 손님이라도 대하는 듯한 말투에 재환은 헛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참아야 했다.
‘세상이 망해도, 힘이 있어야 대접 받는구만.’
그의 감방은 경찰서에서 본 유치장은 물론이고, 이 병원의 다른 감방과 비교해 봐도 호텔이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미리 병사를 동원해 청소라도 했는지 먼지가 거의 보이지 않았고, 곳곳에는 각종 생필품이 정갈하게 배치되어있었다. 사냥꾼이란 인력이 워낙 귀한 만큼, 채찍 대신 당근으로 통제하겠다는 의도가 노골적으로 보일 정도였다.
‘돼지우리 같은 데서 지내는 것보단 낫겠지.’
그는 예상치 못한 호사를 묵묵히 받아들였다. 이 특혜에 담긴 의미를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사서 고생할 이유도 없었다. 굳이 사서 고생을 하지 않아도 그에게는 이 세상 자체가 고행 덩어리였다.
그는 감방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러자 군인이 그의 수갑을 풀며 말했다.
“한숨 주무시고 나시면 당직병을 불러주세요. 대대장님께서 만나 뵙고 싶어 하셨거든요.”
그는 대답하는 대신 침대 위에 놓인 자신의 사복을 바라봤다. 죄수복이나 환자복 대신 사복을 준비했다는 점 역시 노골적인 과잉친절이었다.
‘집까지 뒤지고 왔나 보네. 참 친절하기도 해라.’
수갑을 푼 군인은 밖으로 나가 문을 잠갔다. 재환은 인기척이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뒤 세면대로 가서 몸을 씻었다. 괴물의 피와 타액으로 지저분해져 있던 게 신경 쓰였던 차였기 때문이다. 지저분해진 옷을 벗고 새 옷으로 갈아입자 몸의 긴장이 풀리면서 나른해지기 시작했다.
‘만약에. 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만. 진짜 만약에…’
그는 침대에 몸을 뉘이며 생각했다.
‘내가 진짜 미친 거고, 사실 여기가 진짜 정신병원이면 어떻게 할까.’
본래 이곳이 정신병원이었기 때문일까. 여유가 생기자 지난 일이 떠올랐고, 그는 자신의 행적을 돌이켜보며 불안해했다.
괴물이 된 아버지를 죽이고, 괴물이 된 사냥꾼을 죽이고, 낯선 곳의 사냥꾼을 죽이고, 사람을 괴물로 만드는 괴물을 죽이기까지.
이 모든 것들이 현실과는 동떨어진 일처럼 느껴졌다. 그동안은 사냥하는 것에 몰두하느라 생각하지 못했던 잡념이 세상과 격리된 상황이 되자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마태오 신부도 그랬지. 자긴 사람이라고. 사실은 괴물이었는데 말이야.’
홀로 방에 있으니 정신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는 정신질환자들이 자신이 미치지 않았다고 하는 모습을 TV를 통해 본 적이 있었다. 광인은 현실과 가상을 구분할 수 없기 때문에 광인이고, 그들의 시선으로는 세상이 미쳐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일이 자신에게도 일어날지 모른다고 생각하자 불쾌한 기분이 피어올랐다.
그는 두 눈을 감은 채 자신이 미치지 않았다는 근거를 떠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억을 하나씩 떠올려 보던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생각을 그만두었다.
세상이 정상이라면 그가 미쳐있는 것이고, 그가 미쳐 있지 않다면 세상이 미쳐있다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이다.
어느 쪽도 그리 유쾌한 결론이 아니었고, 가뜩이나 정신 건강에 해로운 것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불쾌한 생각에 사로잡히는 것은 정신적인 자해나 다름없었다.
잡념을 없앤 그는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밤을 새운 피로가 그의 몸을 휘감았고, 그는 피로감에 몸을 맡긴 채 잠들었다.
* * *
잠에서 깨어나자 창밖에 달이 떠 있었다. 재환은 손목시계로 현재 시각이 밤 11시 20분이라는 것을 확인한 뒤 침대에서 일어나 세수를 했다. 푹 쉬고 난 덕분인지 몸이 한결 가벼워진 것이 느껴졌다.
세수를 끝낸 그는 문밖에 있는 당직병을 불렀다.
“일어났어요. 대대장님이 찾으셨다면서요?”
“아, 네.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당직병은 그렇게 말한 뒤 자신의 선임병을 불러서 문을 열었다. 재환은 그들을 따라 어두컴컴한 복도를 걸어갔다. 정신병원을 빠져나와 10분 정도 걸어가니 중학교 건물을 막사로 쓰고 있는 대대 본부의 모습이 보였다.
호송을 맡은 군인은 정문을 지키는 당직병 중 한 명에게 그를 인계한 뒤 병원으로 복귀했고, 재환은 정문 당직병의 안내를 받아 대대장실 앞에 도착했다. 본래는 교장실이었을 이 방에는 군부대에서 사용하는 장식물이 곳곳에 붙어있었다.
문 앞에 선 당직병은 노크를 했다. 그러자 대대장실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들어와.”
당직병과 함께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날카로운 인상의 중년 남자가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보였다. 담배 연기로 자욱한 대대장실에서 당직병은 경례했다.
“충성. 정문 당직병 상병 이철수입니다. 말씀하셨던 사냥꾼분이 기상해서 보고 드리러 왔습니다.”
대대장은 담배 연기를 내뱉은 뒤 말했다.
“그래, 수고했어. 들어가.”
“충성.”
당직병은 문을 닫고 돌아갔고, 대대장은 다시 담배를 한 모금 마신 뒤 의자를 권했다.
“어서와. 일단은 좀 앉아서 얘기하자고.”
재환은 고개를 꾸벅 숙인 뒤 자리에 앉았다. 대대장은 불붙은 담배꽁초를 까딱거리며 말했다.
“담배는? 피울 거면 한 대 줄 수도 되는데.”
“전역하고 끊었어요. 끊었긴 했는데…”
그는 담배로 가득 찬 공기를 들이킨 뒤 숨을 내쉬었다. 진하게 피어오른 담배 향을 맡자 잊고 있었던 흡연 욕구가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담배란 건강에 좋지 않은 흉물이지만, 스트레스 해소에는 도움이 되는 요물이다. 그는 군대에 있을 당시에 담배를 피우며 작업의 스트레스를 풀곤 했었다.
“…요즘은 다시 땡기네요. 한대 주세요. ”
금연을 한 지 2년 가까이 되었음에도 망설임은 없었다. 폐암에 걸려 죽는 것보다 괴물에게 죽는 걸 걱정해야 하는 시대였기 때문이다.
그는 담배와 라이터를 받은 뒤 담배에 불을 붙였다. 흡연실이 아닌 실내 공간에서 담배를 피워보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독특한 맛이 있었다.
대대장은 담배를 한 모금 머금으며 말했다.
“깜방 간 건 너무 안 좋게 생각하지 마. 다 짭새 놈들이 지랄해서 그런 거니까.”
재환은 담배를 피우며 말없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대대장은 그동안 쌓인 게 많았는지 경찰에 대한 불만을 거침없이 늘어놓았다.
“그 새끼들은 눈칫밥 먹는 버릇만 들었어. 지금도 시민들 눈치 보느라 쩔쩔매고 있을걸? 일단 군부 정치라고 욕먹기 싫어서 같이 일하고 있긴 한데, 솔직히 같이 일할 맛 안 나는 것들이야.”
대대장은 그렇게 말을 한 뒤 담배 연기를 내쉬었다.
“아무튼, 당분간은 우리 쪽에서 편의를 봐 줄 테니까, 그렇게 알아 둬. 며칠 자숙하고 나오면 그 새끼들도 할 말 없겠지.”
대대장의 말이 끝나자 재환은 담배를 입에 문 채 생각에 잠겼다. 경찰과 군대가 이 정도로 긴장 관계에 있는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하긴, 사실 완전 다른 조직이긴 하니까. 원래 성향이 다른 조직이기도 하고.’
그는 떠오른 잡념을 그렇게 일축한 뒤 입을 열었다. 지금 그에게 중요한 문제는 자신의 처우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면 저는 언제쯤 석방 돼요?”
“최대 일주일. 최소 삼일. 그냥 잠깐 쉬다 간다고 생각해. 그러는 쪽이 자네도 속 편할 테니까.”
그는 ‘속 편할 테니까’라는 말이 유독 귀에 꽂혔다. 군경의 사정이 어찌 됐든, 사람 껍질을 쓴 괴물을 죽였다는 이유로 구속당한 것에는 불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불만이 떠오르는 것과 동시에 한 가지 사실을 떠올릴 수 있었다. 바로 저 지휘관이 자신의 편의를 최대한 봐 주려고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방은 잘 받았습니다. 깨끗하고 좋은 방이더라고요. 감방이 아니라 호텔인가 싶을 정도로요.”
그는 그렇게 운을 떼며 말했다.
“왜 저한테 이렇게까지 해 주시는 거예요? 설마 재입대하라는 건 아니죠?”
그 말에 지휘관은 피식 웃었다. 엄밀히 따지면 군대를 전역한 20대 남성의 신분은 대부분 예비군이다. 그러니 전시 상황에 준하는 위협이 생기면 인근의 군부대에 입대하는 것이 원칙적으로는 옳았다.
하지만 행정 명령을 집행할 정부가 붕괴한 상황에서 그런 명령이 부질없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설령 강제로 입대시킨다 하더라도, 이미 징집된 병력도 탈영하는 마당에 사기가 바닥인 병사가 얼마나 짐 덩어리가 될지는 무능한 지휘관이 아닌 이상 뻔히 알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입대하라 그러면 입대하게? 나야 좋기야 한데, 그럴 사람 같진 않은데. 이미 입대할 애국자들은 진작에 다 자원입대했거든.”
“그러면 뭐 때문에 절 챙겨주는 건지 말해 봐요. 어차피 알게 될 거, 그냥 속 시원하게 얘기해 주세요. 그러는 게 나도 ‘속 편하니까.’ 무슨 말인지 알겠죠?”
대대장은 했던 말을 돌려받자 시원스레 미소를 지었다. 군인다운 호기로움이 느껴지는 미소였다. 그는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생기가 도는 말투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래. 그냥 속 시원하게 얘기하지. 이번 마약 사건, 나는 그냥 두고 볼 생각 없어. 괴물이랑 연관됐으면 더 그렇고. 괴물 놈들을 싹 쓸어버리는 게 우리 일이니까. 그래서 우리 쪽도 괴물 소탕 작전 하면서, 마약이 어디서 왔는지 나름 추격을 해 봤지. 마약이 동대문구 쪽에서 오는 것도 알아냈고. 근데 말이야, 이게 참 파면 팔수록 묘하더라고.”
“뭐가 이상한데요?”
“동대문구에서 실종됐던 장병들이 돌아오고 있어. 하나같이 편안해 보이는 표정으로 왔지. 왜 실종됐냐고 물어봐도 대충 둘러대기만 하고, 다시 동대문구에 수색 작업을 보내 달라고 조르기까지 하더라고. 참 기분 나쁘지 않아? 자기가 실종된 곳에 다시 보내 달라니. 정상이 아니야. 차라리 PTSD가 정상적으로 보일 정도로 말이야. 아니, 이것도 PTSD라고 불러야 하나?”
대대장은 그렇게 말하며 담배 연기를 내쉬었다. 연기가 한숨처럼 느껴지는 것은 기분 탓이 아닌 듯했다. 잠시 정적이 흐른 뒤, 대대장은 계속 말을 이었다.
“아무튼, 자네한테 잘 보이려고 애쓴 이유가 이거야. 동대문구에 몰래 다녀와 줘. 거기에 뭐가 있길래 다들 맛이 가서 돌아오는지, 직접 알려 달라는 거지. 사냥꾼이 가면 뭐가 좀 다를지도 모르니까.”
“다른 사냥꾼들은요? 그 사람들이랑은 얘기 안 해봤어요?”
“다 제멋대로야. 자네가 특이한 거고. 그 전도사년은 교회 것들이랑 친목질이나 하고 다니고, 한 놈은 완전 양아치고, 나머지 하나는 괴물 죽이는 것 말곤 관심도 없어.”
대대장은 다 피운 담배를 재떨이에 눌러 꺼트리며 말했다.
“잘 생각해 봐. 일이 잘 풀리면 감형은 물론이고, 앞으로는 이런 일 없게 손 써줄 테니까. 사람 탈 뒤집어쓴 괴물 죽였다고 깜빵가는 일은 없다는 거야. 짭새들이 워낙 고지식해서 그렇지, 그런 새끼들은 원래 즉결처형하는 게 답이니까.”
대대장의 말이 끝나자 재환은 잠시 담배를 태웠다.
사실 오래 고민할 문제는 아니었다. 무기력하게 독방에서 시간을 때우는 길과 조금이라도 더 괴물을 잡을 수 있는 길.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후자를 택하는 것이 그의 마음에 이끌렸기 때문이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대대장의 재떨이에 담배를 꺼트렸다.
“준비되면 바로 출발하죠. 장비만 제대로 챙겨 주세요.”
대대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악수를 청했다.
“이쪽이야말로. 잘 부탁하지.”
“아, 그리고.”
재환은 악수를 하며 말했다.
“박영수 하사란 사람 그쪽 소속이면 제대로 조사 좀 해주세요. 그 사람 마약 하는 거 같더라고요.”
대대장의 인상이 씁쓸하게 구겨지는 것을 보며 재환은 대대장실을 나왔다. 복수라는 것이 생각보다 짜릿하다는 것을 실감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