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28
피로 물든 사냥꾼 (2)
감방으로 돌아온 재환은 당직병이 문을 잠그지 않는 것을 보며 피식 웃었다. 대대장과 합의한 이상, 이제 이곳은 감방이 아니라 숙소인 셈이었다.
‘황송하기 짝이 없구만.’
그는 실리가 원칙을 뛰어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만끽한 뒤 돌려받은 장비를 확인했다. 동대문구로 떠나기 전에 자신의 상태를 점검할 필요가 있었다.
K1과 20발들이 탄창 6개
경찰용 S&W M60 리볼버와 권총탄 30발
수류탄 2개
탈바꿈
입으로 먹는 모르핀 1회분
주요 장비를 확인한 그는 탄창과 모르핀을 배낭에 넣으며 생각했다.
‘장비는 충분해. 모자란 건 현장에서 구하면 되니까. 이 정도면 장비는 충분한데···.’
그는 상태창을 떠올려 자신의 능력치를 확인했다.
[현재 레벨: 88] [강화 가능 능력치(+25)] [근력: 30] [민첩: 20] [체력: 10] [내구: 20] [재생: 20] [지혜: 22]‘레벨업 효율이 눈에 띄게 떨어졌어.’
괴물의 피를 약 100마리 분량 가까이 섭취하자 레벨이 25만큼 올랐다. 이중 직접 사냥한 것은 50마리 정도고, 나머지 50마리는 군경에게 받았으니, 레벨이 오르는 속도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 군경의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될 경우도 생각한다면, 괴물을 4마리 잡아야 레벨이 1 오르는 것은 불안한 수치였다. 갈수록 레벨을 올리기 위해 잡아야 하는 숫자가 점점 늘어난다면, 나중에는 레벨을 올리기 위해 잡아야 하는 괴물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갈수록 노가다가 되겠지. 젠장.’
그는 불길한 미래를 떠올리는 것을 그만둔 뒤 체력에 능력치를 10만큼 분배했다. 소거법을 적용하면 체력이 지구력에 관여하는 능력치일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대피 구역을 떠나서 활동해야 했으니 장기전에도 대비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그는 남은 능력치 15를 예비용으로 남겨둔 뒤 배낭을 챙겼다. 동대문구에서 무엇이 나올지 모르는 이상, 예비용 능력치가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능력치가 남아 있으면 돌발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고, 최악의 경우 불가해 상태인 괴물을 만나도 지혜를 올려서 대처할 수 있었다. ‘성자’란 괴물이 얼마나 끔찍한 존재인지 알게 된 이후, 그때 당시 받았던 정신적인 충격이 여전히 뇌리에 꽂혀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준비를 끝낸 그는 배낭을 맨 뒤 창밖의 달을 바라봤다. 저 푸르스름한 달이 아득히 멀게 느껴졌다.
언제쯤 이 악몽을 끝낼 수 있을까. 악몽을 끝낼 날이 오기는 하는 걸까. 까마득한 밤에 집어 삼켜질 것 같은 기분이 들자 그는 바깥으로 나왔다.
괴물이 창궐한 세상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한 가지.
괴물을 사냥해 이 세상에서 발버둥 치는 것. 오직 그것만이 그에게는 구원처럼 느껴졌다. 사냥을 계속하고, 지식을 모은다면, 언젠가 이 악몽을 끝낼 방법이 드러날지도 몰랐다. 설령 그 과정에서 몸과 마음이 무너져도, 마지막 순간에 이 악몽이 끝난다면, 그는 그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었다. 처음부터 그의 목적은 이 악몽의 굴레를 끊어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직 발버둥 칠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그는 인적이 끊긴 거리를 향해 나아갔다.
* * *
동대문구로 넘어가는 길은 예상보다 수월했다. 군인들이 한차례 소탕 작전을 벌인 덕분이었다. 곳곳에 탄피가 떨어져 있는 것과 괴물의 사체가 널브러져 있는 것으로 보아 꽤나 치열하게 접전을 벌인 것처럼 보였다.
저 괴물들에게 총탄이 통한다는 사실에 군인들은 안도했을 것이다. 총알이 소용없는 괴물이 나타나는 순간, 일방적으로 학살당하는 일만이 남았을 테니까.
중랑구에서 동대문구로 향하는 길목에 들어서자 재환은 며칠 전의 일을 떠올렸다. 고작 며칠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 사이에 그는 수백 마리가 넘는 괴물을 사냥한 사냥꾼이 되었다. 이제는 괴물을 만나도 무기력하지 않았고, 초현실적인 존재를 만나도 저항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처음 괴물을 마주했을 때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하지만 안갯속을 걷는 그의 발걸음은 여전히 긴장돼있었다. 아무리 몸이 강해져도 그의 정신은 여전히 인간의 것이다. 끔찍한 것을 보면 눈살이 찌푸려지고, 기습을 당하면 심장이 벌렁거린다. 괴물을 죽이고 피를 뒤집어쓰는 것은 여전히 끔찍했고, 괴물의 피를 마시고 나면 모기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는 도로변에 나타난 괴물을 탈바꿈으로 처치하며 생각했다.
‘그래도 많이 익숙해져서 다행이야.’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던가. 괴물을 사냥하는 것은 여전히 끔찍한 일이었지만, 그는 조금씩 이 세계에 적응하고 있었다. 괴물을 마주보는 감각도, 괴물을 죽이는 기술도, 모두 천천히 나은 방향으로 개선되고 있었다.
그 사실이 다행으로 여겨졌지만, 한편으로는 불안함을 자극하기도 했다. 이 세상에 적응한다는 것은 보통 사람에서 멀어진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기 때문이다.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사냥꾼이 사냥을 많이 했다고 해서 사람이 아니게 되는 건 아니니까. 짐승 사냥꾼이든, 괴물 사냥꾼이든, 하는 일은 사실 다르지 않으니까.’
사냥꾼이 인류의 가장 오래된 직업이라는 것을 떠올리며, 그는 동대문구로 진입했다. 이곳은 그의 집이 있던 도시이기도 했고, 죽을 때마다 돌아오는 곳이기도 했다. 그런 장소에 산 채로 돌아왔다는 것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조금이나마 앞으로 나아간 것 같아 나쁘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도로를 따라 동대문구로 들어선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변하기 시작한 풍경에 경계심을 끌어올렸다. 곳곳에는 고층건물이 무너진 흔적이 보였고, 무너진 잔해 틈으로 기이한 고깃덩어리가 자라난 것이 보였다.
그는 담쟁이덩굴처럼 건물을 휘감은 고깃덩어리를 살펴봤다. 뇌 주름을 쭉 펴서 걸어놓은 것만 같은 모양새가 기이하게 느껴졌다.
‘도대체 여기에 뭐가 지나갔길래 이렇게 된 거지?’
동대문구를 떠날 때 거대 괴수 하나가 도시를 휩쓸었던 것은 알고 있었다. 애초에 그 괴물 때문에 그는 집을 버리고 도망쳐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고작 며칠 사이에 도시의 풍경이 이렇게 변해버렸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초자연적인 무언가가 이 도시에 저주를 내렸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암브락사스에 대해 떠올리며 최악의 경우를 상상했다. 이미 그 괴물이 동대문구에 임했다면, 그는 지금 당장 결정을 내려야 했다. 피난 구역을 떠나 새로운 거처를 마련하거나, 죽음을 각오하고 그 괴물을 만나러 가거나.
어느 쪽이든 꺼림칙한 건 마찬가지였지만, 그는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단 한 번이라도 겁을 먹는다면 두 번 다시 도전하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 이미 여러 번 죽어봤는데, 한 번 더 죽는다고 뭐가 바뀌진 않겠지.’
어차피 잃어본 목숨, 미련은 없었다. 애초에 그의 인생은 괴물이 된 아버지에게 살해당했을 시점에서 이미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여벌 인생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안개가 자욱한 도로를 걸어가던 그는, 땅바닥에 무언가가 밟히는 소리와 함께 발걸음을 멈췄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밟았는지 확인하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건 뭐지? 꽃인가?’
짓이겨진 꽃에서 핏물 같은 수액이 흘러나왔다, 그 주변에는 사람의 피부를 닮은 살구색 줄기와 핏빛 잎사귀를 지닌 꽃이 드문드문 피어있었다. 그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만 같은 꽃들을 자세히 보기 위해 무릎을 굽혔다. 조심스럽게 꽃잎을 때어내 보자 피를 닮은 수액이 또르르 떨어졌다. 마치 사람이 피를 흘리는 듯한 모양새에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사람을 닮은 이 기이한 꽃을 살펴보며 눈살을 찌푸리던 그는 안개 너머에서 무언가가 다가오는 기척을 느낀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실루엣을 살펴보며 K1을 장전했다. 성인 남성을 닮은 그 ‘무언가’의 양팔에는 거대한 가위를 닮은 집게가 달려있었다. 사람이 아니라 괴물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모양새였다.
[사냥 대상: 암브락사스의 정원사] [분류: 권속] [암브락사스가 이뤄낸 정원의 관리인. 정원을 망치는 것들을 가지치기한다.]속삭임과 함께 괴물의 모습이 드러났다. 양팔에는 손 대신 50cm 길이의 대가위가 자라나 있었고, 상반신의 곳곳에는 자그마한 가위들이 뒤죽박죽 자라나 있었다. 그야말로 인간 가위, 가위 인간이라고 부를만한 형상이었다.
“돌아가거나, 함께해라.”
암브락사스의 정원사가 경고했다. 그는 권속의 모습을 보며 K1을 겨눴다.
‘권속이라고 다 사람처럼 생긴 건 아니구만.’
속으로 결론을 내린 그는 방아쇠를 당기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단발로 끊어 쏜 총알 하나가 권속의 몸에 직격했다.
퍼억!
고기 주머니가 터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권속의 살점이 터지는 게 보였다. 하지만 총알이 몸을 꿰뚫지는 못했다. 내구력이 상당히 강한 괴물인 것처럼 보였다.
“————————-”
대답 대신 총알을 선물 받은 괴물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기 시작했다. 20m 거리를 순식간에 주파하는 괴물에게 재환은 총알로 세례를 내렸다. 괴물의 몸에 탄환이 박히면서 상처가 늘어나는 게 보였다.
그리고 상처투성이가 된 괴물이 7m 거리까지 근접했을 때, 그는 왼손으로 K1을 쏘면서 오른손으로는 탈바꿈을 쥔 뒤 크게 휘둘렀다. 총에 맞아 주춤거리는 괴물을 향해 사냥꾼의 괴력이 담긴 톱날 도끼가 날아갔다.
괴물은 비틀거리는 와중에도 본능적으로 팔을 들어 올려 가드했다. 하지만 그 대가로 팔의 절반 정도에 도끼가 박히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재환은 자신의 공격을 막아선 괴물에게 계속 총알을 퍼부었다. 단발로 끊어 쏜 총알이 몸에 박히자 괴물이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괴물이 고통에 몸부림칠 때, 그는 괴물의 팔에 박힌 탈바꿈을 빼내 괴물의 목을 후려쳤다. 목 주변에 돋아난 가위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탈바꿈이 괴물의 목에 박혔다. 그는 도끼날을 빼내는 대신 탈바꿈을 양손으로 쥐어 크게 톱질했다.
서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피가 튀겨나간다.
땅바닥이 피로 물들고, 괴물의 목이 툭 하고 떨어졌다. 목을 잃은 괴물은 잠시 비척거리더니 실이 끊긴 꼭두각시처럼 쓰러졌다. 목이 급소일 거란 짐작은 정답이었다.
‘총알은… 한 열 발 정도 쐈나.’
그는 숨을 고르며 주변을 살폈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그는 무릎을 꿇은 뒤 권속의 피를 받아 마셨다. 레벨이 1 오르는 것을 보며 그는 생각에 잠겼다.
‘마태오 신부 때는 예외였던 건가. 내가 그때 봤던 게 꿈이 아니었구나.’
그는 괴물이 된 마태오 신부가 보여준 환영을 통해 사람이 성자(星子)로 우화하는 모습을 엿봤다. 그 당시에 마태오 신부는 인간이었던 부분을 절개해 그에게 보냈으니, 권속이었음에도 레벨이 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레벨이 오르는 건 좋기는 한데.,,’
그는 입가에 묻은 피를 닦으며 주변을 살폈다.
‘왠지 찝찝해. 뭔가 놓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야.’
그는 저편에서 새롭게 기척이 느껴지는 것을 보며 K1의 조정간을 연발로 바꿨다. 그리고 안개 너머에서 조금 전에 봤던 것과 동일한 형상의 실루엣이 나오는 것을 확인한 뒤 탄창에 남은 총탄을 쏟아 부었다.
총알 세례를 받은 괴물 여섯 마리가 안개를 뚫고 달려드는 것을 보며 그는 재장전했다.
‘그래, 이거였구만.’
새 탄창을 끼운 그는 온몸에 가위가 돋아난 암브락사스의 정원사 여섯이 달려드는 것을 보며 오른손에 탈바꿈을 쥐었다.
‘어쩐지 하나만 있을 것 같지 않더라.’
공장에서 찍어낸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똑같이 생긴 괴물 여섯 마리가 그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지금까지 만났던 괴물들이 모두 제멋대로 생겼다는 걸 생각하면 이는 그다지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이 괴물들을 뛰어넘는 무언가가 괴물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총이 불을 뿜는 소리와 살점이 터지는 소리가 도로 위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