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29
피로 물든 사냥꾼 (3)
K1 탄창을 5개째 비웠을 때, 그의 주변에는 정원사 여섯의 사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총과 탈바꿈을 활용해 한 마리씩 처치하는 것을 여섯 번 반복한 것이다.
격렬하게 몸을 움직인 여파로 숨이 거칠어졌다. 걸치고 있던 옷은 괴물의 피로 더러워져 있었다. 피 튀기는 싸움을 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증거였다.
그는 숨을 내쉬며 안개 너머를 바라봤다. 그리고 안개 너머에서 20마리가 넘는 정원사들이 몰려오는 것을 보며 혀를 찼다. 잠시 쉬면서 재정비를 하고 싶었지만. 이 도시는 그가 쉬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산 넘어 산이구만. 이대로는 끝이 없겠어.’
한 마리씩 해치우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가능했다. 신체 능력의 차이는 확실했고, 이쪽에는 원거리 무기인 소총까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 정도 숫자를 한 번에 상대하는 것은 그에게도 위험한 일이었다. 이쪽은 한 명이고, 저쪽이 여러 명인 이상, 포위당하게 되면 그대로 끝장이었다. 제아무리 기동성이 뛰어나도 등 뒤에서 공격받는 것까지 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그는 수류탄의 안전핀을 만지작거리면서 생각했다.
‘5초 안에 고르자. 돌아갈지. 아니면 돌파할지.’
돌아가는 것은 안전한 선택지였다. 일단 군대에 이 상황을 보고한 뒤 병력을 지원받는다면 훨씬 안전하게 이 지역을 탐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 선택지를 고르는 것이 그다지 내키지 않았다. 저 너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이상, 조금이라도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꺼림칙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돌파하자.’
그는 수류탄의 안전핀을 뽑으며 각오를 다졌다.
저 너머에 어떤 마경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사람을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괴물이 있을 수도 있고, 뇌를 마약으로 절여버리는 괴물이 있을 수도 있었다. 죽을 때마다 쌓아왔던 모든 것을 잃고, 고통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이상, 그에게도 목숨을 거는 것은 큰 부담이었다.
하지만 그는 암브락사스가 무엇인지 알아내야 했다.
도대체 어떤 괴물이기에 사람을 괴물로 만들고, 마약을 퍼트리는 것인지 알아야 했다. 그리고 만약 암브락사스라는 괴물이 서울을 이 꼴로 만든 원흉이라면, 그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 괴물에게 복수해야 했다.
설령 목숨을 잃는 고통을 수차례 겪더라도, 계속 반복되는 이 지옥을 반드시 끝내야 했다.
오직 그것만이 그에게 남겨진 유일한 집념이었다.
안전핀이 뽑힌 수류탄이 괴물들의 한가운데에 착지했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괴물들의 사지가 갈기갈기 찢어졌고, 조각난 살점들이 날아가 흩어졌다.
수류탄 하나로 모든 괴물을 처치한 것은 아니었다. 해치운 것은 절반 정도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충격에서 회복하여 몸을 추스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 정도로도 충분했다. 그가 수류탄을 던진 이유는 애초에 빈틈을 만들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괴물의 숫자까지 이 정도로 줄어든 것은 덤이나 다름없는 수확이었다.
그는 괴물들이 비틀거리는 틈을 뚫어 도로를 질주했다. 다행히 괴물의 추격은 이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안개를 뚫고 도로를 달릴수록 주변의 풍경이 갈수록 기괴해졌다.
‘암브락사스의 사랑’이라 불리는 인육 나무가 곳곳에 가로수처럼 늘어서 있었다. 사람이 나무가 된 그 모습은 지난번에 도시에서 봤던 것과 동일한 모양새였다.
기이한 것은 사람으로 이루어진 가로수길 뿐만이 아니었다. 곳곳에는 기괴한 형상의 꽃밭이 펼쳐있었기 때문이다.
손가락, 눈알, 입술, 심장이나 폐 따위로 이루어진 꽃들이 곳곳에 피어있는 모습은 이곳이 지옥이 아닐까 싶을 정도의 기이함을 자아냈다.
이 꽃들은 나무와는 달리 속삭임에 의해 사냥대상으로 지목되진 않았지만, 저런 것이 과연 이 세상에 있어도 되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끔찍한 형상이었다.
인간의 상식을 벗어난 풍경을 지나 휘경동 시내로 진입한 그는 근처의 상가 건물에 몸을 숨겨 잠시 숨을 골랐다. 다행히 이곳에는 무언가가 있는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씨발… 저게 다 사람이었던 건가?’
부정하고 싶었지만, 지금으로써는 그렇게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적지 않은 거리를 이동했음에도 사람을 만나지 못한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람을 나무로 만드는 광경을 직접 본 적이 있는 만큼, 저 나무들이 한때 사람이었다는 걸 짐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숨을 내쉰 뒤 바닥에 주저앉았다.
‘여기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세상이 미쳐버렸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곳곳에 괴물이 나타나고, 불가해한 존재가 판치는 시국이었으니까.
하지만 이 도시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기이한 현상은 정도를 넘어섰다. 마치 도시 전체가 괴물이 되어버린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그는 상가 건물의 최상층으로 올라가 창문 바깥을 바라봤다. 주변을 정찰해 어느 방향으로 이동할지 결정하기 위해서였다.
8층 건물에서 바라본 도시의 풍경은 한눈에 봐도 정상이 아니었다. 살점으로 뒤덮인 건물 곳곳에는 ‘암브락사스의 정원사’들이 살점을 가지치기하고 있었다. 드문드문 간격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아 숫자 자체는 그다지 많지 않아 보였지만, 혼자서 모두 사냥하려면 꽤나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그래, 사람은 그렇다 치고, 괴물은?’
그렇게 의문을 지닌 채 주변을 둘러보던 그는 다른 괴물이 모두 어떻게 됐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암브락사스의 정원사 세 마리가 괴물 하나를 사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촉수가 여러 개 돋아난 그 괴물은 덩치 자체만 보면 정원사의 두 배 정도는 되어 보였지만, 정원사들은 촉수를 하나하나 잘라내며 괴물을 무력화하고 있었다.
그리고 촉수를 모두 잘라내 괴물이 저항하지 못하게 되자 양손에 있던 가위를 뭉툭한 집게로 변형시켰다.
그들이 집게로 괴물을 집은 뒤 어디론가 끌고 가기 시작하는 것을 본 재환은 건물 바깥으로 나와 그들을 미행했다. 저들을 따라가면 본거지를 찾아낼 수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원사가 땅바닥에 뚝뚝 떨어뜨린 점액질을 쫓아가던 그는, 고층 건물 하나 정도 크기의 ‘무언가’를 발견했다.
정원사들이 괴물을 그 ‘무언가’에게 바치고 무릎을 꿇었다. 그들은 두 팔을 들어 그 ‘무언가’를 찬양했고, 주변에는 사람의 껍질을 뒤집어쓴 권속들이 두 손을 모아 기도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마치 신을 찬미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는 수백 마리가 넘는 괴물들이 한곳에 모여 다른 괴물을 신앙하는 모습에 압도되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재환은 속이 울렁거리는 것을 느끼며 뒷걸음질 쳤다. 뇌가 녹아버릴 것만 같은 마성의 매력이 저 ‘무언가’에게서 풍겨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건… 저건 대체···.’
그는 그 ‘무언가’의 모습을 제대로 바라볼 수조차 없었다. 끊임없이 형태가 바뀌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거대한 촉수 군집처럼 보이기도 했고, 신록이 우거진 정글처럼 보이기도 했으며, 쭉쭉 뻗어 나가는 햇살을 보는 것만 같기도 했다. 그 ‘무언가’의 모습을 보며 혼란스러워하던 그때, 속삭임이 그에게 저것 역시 ‘불가해’임을 알렸다.
[사냥 대상: 불가해(不可解)] [분류: 추종자]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해서도 안 되는 괴물 중 하나.] [사냥하기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하다.]속삭임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끊임없이 모습을 바꾸는 저 혼돈을 직시하려면 지혜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는 저것을 감히 쳐다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저게… 저런 게… 저런 게 세상에 있어도 된다고?’
구역질이 나올 것만 같은 것을 참으며 그는 뒷걸음질 쳤다. 더 이상 저것을 보았다간 뇌가 녹아버릴 것만 같았다. 과부하된 컴퓨터 부품이 고장 나는 것처럼, 넘쳐나는 정보를 뇌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그는 ‘무언가’에서 시선을 뗀 뒤 근처에 있는 건물에 들어가 몸을 숨겼다.
곳곳에 고깃덩어리가 얽혀있는 건물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신경 쓸 처지가 아니었다.
‘미쳤어… 여긴 미쳤어…’
그는 어두컴컴한 건물 구석에 주저앉아 두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았다.
‘알려야 돼… 이런 걸… 이런 걸 어떻게… 어떻게…’
그렇게 도망치는 것을 고려하며 몸서리치고 있을 때, 그는 건물 내부에서 기이한 기척이 느껴지는 것을 감지했다.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감각이었다. 마치 어머니 뱃속에서 태아가 발버둥 치는 것처럼, 이 건물은 무언가를 품고 있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랜턴을 켜서 주변을 비췄다. 그리고 이어지는 풍경을 보자마자 숨을 죽였다.
건물 내부의 벽에는 사람과 괴물들이 파묻혀있었다. 사람은 머리에서 뇌를 닮은 새싹이 돋아났고, 괴물들은 정원사에 가까운 모습으로 변형되고 있었다.
‘재활용? 재활용이라고?’
미스터리가 풀렸다. 어째서 이곳에 정원사를 제외하면 사람도 괴물도 보이지 않았는지 알게 된 것이다.
이 도시에 똬리를 튼 ‘무언가’는 사람과 괴물을 집어삼켜 자신의 것으로 재생산하고 있었다. 괴물을 먹어서 힘을 키우는 것은 사냥꾼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황당한 심정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던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정신차려… 정신차리자…’
넋을 놓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이곳은 괴물의 소굴.
언제 무엇이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은 마굴이었다.
그리고 그는 곧이어 자신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했다.
건물의 벽에 묻혀있던 괴물이 정원사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그 모습을 확인한 순간, 그의 몸은 본능적으로 반응했다. 양손으로 탈바꿈을 쥔 뒤 괴물을 향해 달려든 것이다.
랜턴이 땅에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탈바꿈이 정원사의 목에 박힌 것은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어둠 속에 갓 태어난 정원사가 비틀거리는 모습이 흐릿하게 보였다. 그는 눈이 어둠에 익는 것을 기다릴 틈도 없이 탈바꿈을 휘둘렀다. 흐릿한 실루엣이 짓뭉개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하아… 하아…”
그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정원사의 사체를 보았다. 눈이 어둠에 익으면서 정원사의 모습이 또렷하게 보였다. 그는 그 모습을 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무의식이 의식에게 보내는 암시였다.
“아직 움직일 수 있어. 죽일 수 있어…”
일종의 방어기제나 다름없는 말들이 나열되었다.
“생각하자. 생각. 일단 생각을 하자.”
극한의 상황 속에서 그의 뇌는 기억을 되짚었다. 정신을 가다듬기 위해 의식이 재부팅되는 과정이었다. 두뇌가 뱉어내는 키워드가 주마등처럼 나열되었다.
사방에 깔린 괴물. 괴물을 죽여 레벨 업. 이곳은 암브락사스의 도시. 피난촌에 창궐한 아가페. 암브락사스 강림은 시간문제.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얼굴의 근육이 풀어졌다. 터무니없는 일을 직면하자 헛웃음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긍정적으로…”
실소가 건물 안에 울려 퍼졌다.
“괴물이 이렇게 많아. 다 사냥감이지. 사냥감이야.”
속삭임은 매번 말했다.
[괴물을 사냥하지 않으면 아침은 오지 않는다] [괴물의 피를 마셔 힘을 취하라] [악몽의 근원인 달을 사냥하라]그는 어째서 속삭임이 이 말을 반복했는지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이 말은 언제나 적용되는 금언이었던 것이다.
두려울 때. 도망치고 싶을 때. 무너지고 싶을 때. 그때마다 그를 채찍질해 일으켜 세우는 목소리. 그 목소리의 뜻을 떠올린 그는 자신의 본분을 떠올렸다. 그리고 정신이 돌아오자 혼잣말이 멈추면서 기분이 가라앉았다.
‘그래. 어차피 끝날 거면. 최대한 사냥해야지.’
판단은 순식간에 끝났다. 이제는 예비 능력치 따위를 아껴둘 시점이 아니었다. 그는 상태창을 떠올린 뒤 남은 능력치를 모두 지혜에 투자했다.
[현재 레벨: 88] [강화 가능 능력치(+0)] [근력: 30] [민첩: 20] [체력: 20] [내구: 20] [재생: 20] [지혜: 37] [현재 지력: 3]37까지 상승한 지혜를 확인한 그는 조금 전에 봤던 ‘무언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여전히 모습을 제대로 인식할 수 없었지만, 지혜가 낮았을 때보다는 한결 견딜만해 진 것이 느껴졌다.
‘적어도 저게 뭔지는 보고 죽어야지. 그래야 죽을 때 죽더라도 억울하지는 않지.’
이미 이번 생에는 파국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의 직감이 맞다면, 암브락사스가 임하는 것을 막기에는 이미 늦었을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그는 탈바꿈을 쥔 뒤 벽에 들러붙은 괴물들을 사냥했다.
설령 이번 생에 파멸할지라도, 그 기억은 다음 생으로 넘어가 거름이 된다. 죽은 자가 거름이 되어 산 자를 먹여 살리는 것처럼, 이번 생의 죽음이 다음 생의 발판이 되는 것이다.
온몸에 피를 뒤집어쓴 그는 건물 내의 괴물을 모두 사냥한 뒤 다른 건물로 이동했다. 괴물들의 격이 낮기라도 한 건지 레벨은 거의 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이 사실에 개의치 않았다. 사방에 괴물이 널려 있으니, 모조리 죽이기 전에는 사냥감이 마르질 않는 것이다.
광란에 가까운 사냥의 밤이 도시에 임했다. 체내에 침입한 바이러스가 몸을 파괴하는 것처럼, 그는 괴물의 역병으로서 도시를 활보했다.
새벽에 불어오는 바람이 상쾌하다.
피를 뒤집어쓴 사냥꾼은 이 순간 모든 것에서 자유로웠다. 사람도, 사랑도, 기억도, 미련도, 명예도. 삶과 죽음마저 그를 막을 순 없었다. 이 순간 그는 온전히 사냥꾼으로서 도시를 활보했다. 인간은 죽을 때를 알아야 비로소 자유로워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