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3
퍼스트 블러드 (2)
또다시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재환은 창밖에 떠오른 푸른색 보름달을 멍하니 바라봤다. 시퍼렇다 못해 창백하게 느껴지는 달. 그가 퍼렇게 질린 달을 보고 있자 또다시 늙은 남자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는 것이 들렸다.
[괴물을 사냥하지 않으면 아침은 오지 않는다]]재환은 자신의 손을 쥐었다 피며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닌지 확인했다. 손의 촉감이 생생했다. 차라리 꿈이었으면 좋았겠지만, 그러기에는 지금도 죽었을 당시의 고통이 생생했다. 그는 지난 네 번의 죽음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괴물의 피를 마셔 힘을 취하라] [악몽의 근원인 달을 사냥하라]‘악몽… 악몽이라고 했지?’
재환은 조용히 숨을 고르며 생각했다. 네 번이나 죽은 덕분에 그는 이 상황이 조금 익숙해졌다. 그 증거로 이제는 울고 싶은 기분마저 들지 않았다
‘차라리 악몽인 게 낫겠지. 그래야 속 편하니까.’
그에게는 이제 이 순간이 꿈인지 현실인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몇 번이고 반복되는 이 악몽의 굴레를 끝장낼 방법뿐이었다.
죽거나 도망치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면, 남은 방법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괴물을 사냥하지 않으면 아침은 오지 않는다]늙은 남자의 속삭임을 떠올린 그는 이를 꽉 깨물었다.
‘괴물, 괴물, 괴물…’
사람이 아니라 괴물이다. 저 방 안에 있는 것이 아버지였던 괴물이든, 어머니를 토막 낸 괴물이든, 그가 해야 할 일은 변하지 않았다.
‘괴물이야, 괴물이지. 저 안에 있는 건 괴물이야.’
네 번이나 부정해왔던 사실을 받아들인 순간, 그는 도망치는 것을 포기했다. 죽어도 저 괴물에게서 도망칠 수 없다. 그렇다면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수밖에 없었다.
‘만약 괴물을 사람으로 되돌리는 방법이 나오면······.’
그는 창밖의 달을 바라보며 다짐했다.
‘그때는 자살해야겠지.’
인륜을 초월한 재난에 직면했을 때, 생사의 기로 속에서 인간은 밑바닥을 드러낸다. 그리고 밑바닥까지 내려앉은 재환은 마침내 자신의 민낯을 마주 볼 수 있었다.
그는 끝을 원했다.
어떤 형태로든 좋으니, 몇 번이고 반복되는 이 악몽을 끝내고 싶었다.
‘죽는 건 나중에 해도 되니까.’
사냥해라. 사냥해서 악몽을 끝내라.
서슬 퍼런 달빛이, 내려앉은 안개가, 머릿속의 속삭임이, 안방의 괴물이 모두 하나 되어 말하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고양이를 상대하게 된 쥐가 된 기분이었지만, 저항도 없이 순순히 죽어주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네 번 만에 포기해서 미안해요.’
그가 진정 착한 아들이었다면 백 번, 천 번 정도는 죽어가면서 기적이 일어나길 바랐을 것이다. 운이 좋아 기적이 일어난다면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간 채 아침을 맞이했을지도 몰랐다.
어머니의 부드러운 목소리, 아버지의 다정하던 미소, 햇살이 가득한 거리. 괴물 따위는 없는, 평화로운 도시.
너무나도 당연했던 것들이 그리워지자 눈물이 핑 돌 지경이었다. 하지만 우는 소리를 낼 수는 없었다. 그랬다간 안방의 괴물이 우는 아이를 혼내주러 올 게 뻔했기 때문이다.
‘무기가 필요해.’
그는 평정심을 유지하며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었다. 안방의 문이 닫혀있던 덕분에 미세한 소리까지는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는 아파트의 방음 설비에 조용히 찬사를 보냈다.
‘망치나 야구 배트는 소용없겠지. 딱 봐도 푹신해 보였으니까. 식칼은 너무 얕을 것 같고···.’
섬뜩하기 짝이 없는 생각이었고,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생각이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지키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자 권리인 이상, 이제 와서 도망칠 생각은 없었다.
‘남은 건 역시 그것밖에 없겠지.’
튼튼하면서 날카롭고, 초보자도 비교적 쉽게 다룰 수 있는 무기.
소방관인 아버지가 화재가 일어났을 경우 가족과 이웃을 구하기 위해 보관했던 소방도구.
쓰는 일이 없는 게 최선이고, 베란다 한구석에 처박혀있어야 다행인 애물단지.
베란다의 문을 열고 화재 진압용 소방도끼를 집어 든 재환은 시뻘건 도끼날을 바라봤다.
‘일단은 밖으로 나가는 것만 생각하자.’
소방도끼는 무언가를 죽이기 위해 제작된 도구가 아니다.
소방차를 상징하는 빨간색이 그려진 이상, 이 물건은 무너진 잔해 따위의 장애물을 부숴서 활로를 만들 때 쓰는 것이 옳았다.
‘일단 나가야 무덤이라도 만들지.’
하지만 저 괴물이 장애물인 이상, 그는 소방도끼를 쓰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다. 어찌 됐든 활로를 만드는 데 쓴다는 점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 *
재환은 자세를 잡은 뒤 도끼를 내리쳤다.
머리 위에서부터 무게가 실린 도끼가 중력의 흐름을 따라 세차게 내리꽂혔다.
턱!
둔탁한 소리와 함께 도끼가 목표에 명중했다. 하지만 재환은 결과물을 살펴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도끼는 통나무의 중앙에 꽂혀있을 뿐이었다.
“아빠처럼 안 되는 거 보니, 오늘 캠프파이어는 글렀나 봐요.”
힘에는 문제가 없었다. 19살이면 성장기는 한창 지났을 나이였고, 운동 역시 꾸준히 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몸 하니만큼은 또래보다 평균 이상이라는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전력을 다해 도끼질을 했음에도 장작은 제대로 쪼개지지 않았다. 그 사실에 재환은 살짝 기가 죽었다. 간만에 가족과 함께 캠핑장에 놀러 왔는데 남자 구실을 제대로 못 하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자세를 제대로 잡아야지.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니까.”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시범을 보였다. 그는 머리 위로 도끼를 들어 올린 뒤 무게를 실어 내리쳤다. 그러자 콱! 하는 소리와 함께 그 굵은 통나무가 두 쪽으로 갈라졌다. 재환은 아버지의 솜씨에 감탄하며 말했다.
“소방관들은 이런 훈련도 해요?”
“도끼질을 전문적으로 배우는 건 아니지. 비슷한 건 하긴 하지만.”
그는 그렇게 말하며 도끼를 재환에게 넘겼다.
“그래도 연습해둬서 나쁠 건 없어. 화재나 지진이 나면 잔해가 많이 나오니까. 잘만 연습하면 도움될 수도 있지.”
소방관이 되고 싶었던 재환은 도끼를 받아들며 미래를 상상했다.
화재로 무너지기 시작하는 건물.
천장이 무너지고, 기둥이 흔들거리고, 책장이나 옷장 같은 가구들이 무너지며 앞길을 막는 상황. 그런 상황 속에서 소방복을 입은 채 도끼질을 하는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불과 연기로 가득 찬 건물 속에서 활로를 뚫고 나오는 모습을 상상하자 도끼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다시 해볼게요.”
재환은 그렇게 말하며 도끼를 위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통나무 장작이 깔끔하게 두 동강 났다. 도끼질하는 방법에 그럭저럭 익숙해진 것이다. 그는 흡족한 표정으로 자신의 아버지를 바라봤다. 그러자 아버지는 말했다.
“너무 좋아하진 말고. 그래도 쓸 일이 없는 게 최선이니까.”
소방관은 출동하지 않는 게 제일이다. 일단 소방관이 나서면, 누군가는 위험해졌다는 뜻이었으니까.
소방관은 소방서에, 경찰은 경찰서에, 군인은 군대에 틀어박혀 꿀이나 빠는 세상.
닳고 닳은 소방공무원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그런 세상을 바랐다. 그런 세상 따위는 영영 오지 않을 거란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원했다. 이상향은 닿을 수 없음에도 아름다운 법이었다.
아직 어렸던 재환은 아버지의 이상이 마음에 들었다. 제법 멋진 풍경이었고, 꽤나 괜찮은 미래였다.
하지만 그는 모르고 있었다. 아버지의 눈에 비친 현실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당시에는 전혀 알 수 없었다.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게 어떤 의미인지, 재난에 맞선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생명이 걸려있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 결과 스물다섯 살이 된 재환은 도끼를 쥐며 옛일을 반성했다. 그땐 너무 순진했다.
* * *
재환은 심호흡을 한 뒤 자세를 잡았다.
선택은 끝났다. 남은 것은 행동하는 일뿐이었다.
핸드폰을 손에 쥔 재환은 숨을 고르며 알람 버튼을 누르려 했다. 이 버튼을 누르면 알람 소리가 울리면서 괴물이 뛰쳐나올 것이다. 그는 뛰쳐나온 허그베어의 머리를 도끼로 내리칠 생각이었다.
‘당황하지만 않으면 돼. 그냥 잘 휘두르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그리고···.’
재환은 각오를 다지며 침을 꿀꺽 삼켰다. 자기 자신을 미끼로 삼는 일인 만큼 온몸이 긴장됐다.
‘…어차피 죽어도 상관없는 몸이니까.’
영원히 죽든지. 아니면 계속 살아나든지. 그에게는 이제 어느 쪽도 상관없었다.
이제 잃을 게 없다고 생각하자 몸의 긴장이 조금은 풀렸다. 그는 왼손에 쥔 핸드폰 알람을 울린 뒤 핸드폰을 소파에 던졌다.
띠리리리리링!
핸드폰 알람 소리가 울리자 안방의 문이 부서졌다.
쾅!
괴물이 문을 부술 때의 박력은 언제 봐도 소름이 끼쳤다. 그는 도끼를 내리칠 자세를 잡으며 괴물이 뛰어드는 것을 마주 봤다. 정면에서 일격으로 끝내는 것이 그의 계획이었다.
‘침착하게, 실수 없이.’
이미지 트레이닝.
그는 이 순간을 마주하기까지 수차례 상상했다. 괴물이 자신에게 달려들고, 자신은 그 괴물의 머리에 도끼를 박아 넣는 상상.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인간은 훨씬 능숙하게 움직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예행연습은 허사가 아니었다. 건장한 성인 남성이 휘두른 도끼는 허그베어의 머리에 정확히 꽂혔다.
“꾸어억…”
괴물은 기괴한 소리를 흐느끼며 뒷걸음질 쳤다. 그러자 재환은 도끼를 쥔 손에 힘을 꽉 주며 도끼를 회수하려 했다.
‘너무 깊게 박혔나?’
도끼는 쉽게 뽑히지 않았다. 괴물이 달려드는 가속도가 너무 폭발적이었던 탓에 일어난 참사였다. 그가 이대로 도끼를 포기해야 하는지 갈등한 것은 잠깐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잠깐의 틈 사이에 허그베어가 몸부림쳤다.
“끄어억!”
기괴한 것을 넘어서 소름이 끼치는 음성에 재환은 몸이 굳었다.
그는 멈칫했지만, 괴물은 주저하지 않았다. 그 한순간의 틈을 놓치지 않고 괴물이 달려들었다.
‘아…!’
잠깐 당황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잠깐의 망설임이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졌다. 허그베어가 그를 껴안은 것은 순식간이었다. 굵직한 털 뭉치가 우악스럽게 휘감겼다.
재환은 녀석에게 포옹 당하면서 ‘속삭임’이 했던 충고를 떠올렸다.
[내구력과 근력을 주의할 것]의식이 끊기는 순간, 재환은 녀석이 ‘괴물’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도끼로 머리를 찍히고도 살 수 있는 생물이 괴물이 아닐 리 없었으니까. 그는 피가 역류하는 감각과 함께 의식을 잃었다.
* * *
또다시 창밖의 푸른 달을 멍하니 바라보던 재환은 계획을 바꿔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너무 안일했어. 한 방에 잡는 건 안 된다고 봐야겠지.’
일격으로 끝내려던 방법은 통하지 않았다. 어느 부위가 약점인지 알 수 없는 이상, 일방적인 연타를 꽂아 넣을 방법이 필요했다. 상대가 괴물인 이상, 한 방에 끝내려는 생각 따위는 사치에 불과한 것이다.
‘뒤통수치는 건 꺼림칙해서 안 하려고 했는데… 이러면 어쩔 수 없지.’
그는 다행히 더 쉽고 편하게 죽일 수 있는 방법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었다. 이곳은 그의 집이었고, 그는 괴물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었다.
재환은 핸드폰으로 알람을 설정한 뒤 현관문 쪽에 내려놓았다. 덫을 놓는 것만으로도 한결 차분해진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