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30
피로 물든 사냥꾼 (4)
3월 16일 오전 10시.
동이 튼 거리에서 그는 괴물들을 노려봤다.
적은 셋. 모두 암브락사스의 정원사들이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떼 그들을 기습하려 했다. 하지만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지난 3일 동안 쌓인 피로가 한 번에 몰려온 탓이다.
‘이놈들… 이놈들만 잡고 자자…’
숨고, 사냥하고, 숨고 사냥하고. 사냥하는 것을 반복하고.
이 괴물의 도시에 도착한 것은 3월 14일 새벽이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는 권속과 괴물을 수백 마리 넘게 사냥했다.
하지만 숫자를 세는 것을 그만둘 만큼 괴물을 사냥했음에도 그는 아직 만족하지 못했다. 레벨이 쉽게 오르지 않아서 그랬던 것도 있지만, 조금이라도 빨리 이 도시를 지옥으로 만든 원흉에 대해 파헤쳐야 했기 때문이다. 언제 ‘암브락사스’라는 괴물이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이상, 그는 강박에 가까운 수준으로 사냥에 몰두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피로에 절은 몸이 삐걱거리는 것을 간신히 가다듬으며, 그는 탈바꿈을 쥔 채 사냥감의 뒤를 쫓았다.
거리는 앞으로 일곱 걸음.
한걸음, 한걸음 씩 거리를 좁힌 그는 탈바꿈의 곡괭이 부분으로 정원사 하나의 머리를 내리찍었다.
두개골이 쪼개지는 소리가 허공을 가른다.
머리를 찍힌 정원사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힘을 잃었다. 두개골에서 튀어나온 괴물의 피가 햇볕에 증발한다. 쓰러지는 정원사의 머리에서 탈바꿈을 빼낸 그는 다른 정원사 둘이 달려드는 것을 보며 뒷걸음질 쳤다.
한 번에 하나씩.
침착하게 한 마리씩 처리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먼저 달려든 정원사를 향해 탈바꿈의 톱날 부분을 휘둘렀다. 다른 한 마리가 다가오고 있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이 찰나의 순간을 줄타기하는 것이야말로 다 대 일 싸움의 기본이었으니까. 지난 3일 동안 수십 번 넘게 성공한 묘기를 이제 와서 실패할 것 같지 않았다.
탈바꿈이 정원사의 목에 박혔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남은 정원사 하나가 가위 팔을 뻗는다. 그는 탈바꿈을 회수한 뒤 물러서려 했다. 하지만 발에 힘을 주고 물러서려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리더니 그의 몸이 휘청거렸다.
밤낮없이 사냥을 한 피로가 쌓여 몸이 한계를 맞은 것이다.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는 틈을 타 정원사의 가위 팔이 그의 가슴팍을 베어냈다. 내구력 능력치 덕분에 가슴뼈까지 가르진 못했지만, 살점이 베여나간 고통에 그는 비명을 흘렸다.
가슴팍의 살점이 찢겨나가는 고통 속에서 그는 권총을 꺼내기 위해 왼손을 움직였다. 살아야 한다. 아직 죽기엔 일렀다. 이 도시에 똬리를 튼 ‘그 괴물’의 정체를 알아내기 전엔 죽을 수 없었다.
찰나의 순간, 간신히 권총을 꺼낸 그는 정원사의 머리를 향해 권총을 속사했다. 세 차례 총성이 울리자 정원사가 비틀거린다. 재환은 그 틈을 타 다른 정원사에게 박혀있던 탈바꿈을 빼내 마지막 정원사를 공격했다.
괴물의 피와 살점이 허공으로 튀어 그의 얼굴에 닿았다. 재환은 한 손으로 찢어진 상처를 막는 것과 함께 입으로 먹는 모르핀을 꺼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모르핀 병의 뚜껑을 열었다.
‘이건 먹을 일 없길 바랬는데…’
그는 고통 속에서 숨을 헐떡이며 모르핀을 마셨다. 모든 고통을 없애는 마약성 진통제. 보통 진통제로는 억누를 수 없는 통증을 끊어내는 최후의 마약.
이 약의 약효가 돌면 이 고통도 잠잠해질 터였다.
그는 가슴팍의 상처를 매만지며 부상을 파악했다. 가슴뼈가 버텨준 덕에 다행히 치명상은 아닌 듯했다.
‘죽지는 않겠지. 아마도… 지금 당장은 안 죽겠지…’
상처가 가슴뼈가 아닌 복부에 났더라면 그는 이미 죽은 운명이었다. 장기를 손상당하면 내구력과 재생력 능력치로도 버틸 수 없었을 테니까. 그나마 내구력 능력치로 강화된 가슴뼈가 치명상을 막아준 것은 천운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만약 그 정원사의 절삭력이 조금 더 강했더라면 가슴뼈가 부러지는 것과 함께 그대로 즉사했을 테니까.
‘이놈들 뒤처리까지만 하고 한숨 자자. 약발이 돌면 잠은 잘 수 있겠지.’
모르핀의 효과로 정신이 점점 몽롱해졌지만, 그는 정신을 부여잡아 강제로 몸을 움직였다.
그는 쓰러진 정원사 하나의 목덜미를 잡은 뒤 근처의 건물을 향해 질질 끌고 갔다. 볕이 들지 않는 곳에서는 괴물의 피가 증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닥에 혈흔을 남기며 정원사의 사체 세 구를 모두 옮겨낸 그는 사체의 상처에서 난 피를 받아마셨다.
그리고 레벨 업을 알리는 속삭임을 확인한 뒤 상태창을 떠올렸다.
[현재 레벨: 118] [강화 가능 능력치(+1)] [근력: 30] [민첩: 20] [체력: 20] [내구: 20] [재생: 20] [지혜: 66]얻은 능력치를 지혜에 투자한 그는 벽에 등을 기댄 채 자리에 주저앉았다.
‘1이라도 오른 게 다행이지. 다행이야…’
레벨이 100을 넘어간 시점에서 레벨 업 효율은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졌다. 열 마리를 잡아야 레벨이 1 오르는 수준까지 내려간 것이다. 그는 그렇게 한 땀 한 땀 모은 능력치를 모두 지혜에 투자했다. 이 모든 것이 그 ‘불가해’의 정체를 보고 죽기 위한 발악이었다.
‘보여라. 이번엔 제발 보여라.’
그는 창문 너머로 꿈틀거리는 ‘불가해’를 바라봤다.
지혜가 67까지 오른 덕분인지 모습이 또렷하게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드디어 모습이 보였다.
저 괴물은, 저 괴물은, 사람의 피부를 뒤집어쓴 꽃봉오리 모양을 하고 있었다. 길바닥에 깔려있던 기이한 모양의 꽃과 비슷한 생김새였다. 줄기는 사람 피부를 닮은 살구색이었고, 집채만 한 크기의 꽃잎은 핏빛으로 은은하게 물들어있었다.
금방이라도 피어오를 것만 같은, 100미터가 넘는 크기의 이 꽃봉오리는 수십 가닥의 살점 덩굴을 땅에 심어두고 있었다.
그는 땅에 뿌리내린 살점 덩굴이 꿀렁꿀렁거리며 무언가를 흡수하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러자 속삭임이 ‘불가해’의 정보를 읊기 시작했다. 지혜가 66일 때는 알 수 없었던 정보였다.
[사냥 대상: 피어오르는 사랑, 암브락사스] [분류: 추종자] [사랑을 베푸는 성자(星子). 만개하면 뿌리를 들고 일어나 사랑이 모인 곳에 임한다. 만개한 암브락사스는 지상의 피를 승천시켜 달을 찬미한다.]속삭임이 읊조리는 것을 묵묵히 듣고 있던 그는, 암브락사스가 금방이라도 뿌리를 들고 일어날 것처럼 요동치는 것을 보며 기겁했다. 미약한 지력이 저것이 어떤 존재인지 암시했기 때문이다.
별에서 내려와 사랑을 나누는, 꽃가루와 씨앗의 여왕.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사랑을 흩뿌리는 밀림.
알을 깨고 나와 신세계로 승천하는 , 달의 추종자.
그 위대한 별의 존속이 꽃잎의 형태로 만개할 준비를 끝낸 것이다.
재환은 당장에라도 무릎을 꿇고 경배하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다.
아무리 위대하고 고등한 존재일지라도 괴물은 괴물.
상대가 괴물인 이상 죽여야 하는 존재라는 것 자체는 변하지 않았다.
이렇게라도 합리화하지 않으면 제 정신을 유지하기 힘들 정도로 그의 정신력은 궁지에 몰려있었다.
‘알려야 돼.’
잠이 확 달아나는 것과 함께 의식이 되살아난다. 지금은 잠들어 있을 시간이 아니었다. 생존 본능이 그의 뇌를 각성시켰다.
‘알려야 돼. 어떻게든 저건 알려야 돼.’
그는 무너질 것 같은 몸을 일으켜 세웠다. 모르핀의 약효가 돌기 시작해 통증은 없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피로가 누적된 몸이 삐걱거렸다.
암브락사스. 저 빌어먹을 괴물은 금방이라도 뿌리를 들고 일어날 것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는 사람들이 나무가 되는 풍경을 떠올렸다.
저것이 만개하면 어떤 지옥이 펼쳐질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러니 모두가 끝장나기 전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것을 죽여야 했다.
‘탱크. 대포. 기관총. 뭐든 좋으니까. 저걸 죽여야 돼.’
군부대가 괴물을 상대로 고전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보통 사람은 ‘불가해’ 수준의 괴물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미쳐버릴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시시콜콜한 것들을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군인들이 얼마나 죽든, 얼마나 미치든, 이대로 저 끔찍한 괴물이 활보하도록 둘 수는 없는 법이었으니까.
정신이 깨어나자 몸이 활기를 되찾는다. 약 기운으로 몸을 혹사시키는 일이었지만, 지금은 몸을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감사할 지경이었다. 그는 몸을 움직여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걷는 것에 익숙해지자 빠른 걸음으로 움직였다. 빠른 걸음마저 몸이 적응한 다음에는 아예 질주를 시도했다. 몸이 삐걱거리는 감각이 둔탁하게 울려 퍼진다.
몸이 둔해지는 것과 동시에 의식이 팽창한다. 약간의 희망이라도 부여잡아 몸을 움직이려는 방어기제였다. 주워들었던 정보들이 마구잡이로 뒤섞이며 의식을 가속시켰다.
‘피난촌의 추정 인구는 약 3만 명. 군인이랑 경찰을 합치면 300명은 넘게 병력이 있고. 성인 남자만 해도 만 명은 되겠지. 그 사람들을 예비군으로 모으면 적어도 천 명은 넘게 병력이 모이겠지. 그다음은. 그다음엔 화력으로 밀어붙이면 돼. 정 안되면 사람들을 전부 사냥꾼으로 만드는 거야. 대부분은 ‘부작용’에 걸리겠지만, 아무리 사냥꾼이 될 확률이 낮아도 몇 명 정도는 사냥꾼이 되겠지. 그다음은. 그다음엔 다 같이 저 괴물을 죽이는 거야. 모두가 죽는 것보단 낫잖아. 다 같이 괴물이 될 바에는, 죽을 각오로 다 같이…‘
망상에 가까운 생각이 뒤섞이며 몸에 동기를 부여한다. 상황이 극한에 치닫자 몸이 엔도르핀을 분비하는 것이다. 그렇게 통증을 잊은 몸은 폭발적으로 가속하여 동대문구 외곽을 향해 나아갔다.
하지만 이 도시는 그를 쉽게 보내주지 않았다. 20마리가 넘는 정원사들이 나타나 그의 앞길을 막은 것이다.
“돌아가거나, 함께해라.”
무의미한 항복 권유에 그는 수류탄을 던지는 것으로 대답했다. 폭발과 함께 활로가 열리자 그는 그 틈을 질주해 정원사들을 지나쳤다.
“돌아가거나, 함께해라.”
포위망을 뚫었음에도 저편에는 아직 대여섯 마리의 정원사들이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마지막 남은 K1 탄창을 사용해 아낌없이 총알을 퍼부었다.
그는 총알에 맞은 정원사들이 비틀거리는 틈에 그는 거리를 벌렸다. 정원사들이 뒤쫓아오는 것을 실감하며 그는 피난촌을 향해 질주했다.
‘이제… 이제 조금만 더…!’
세차게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그는 한참을 질주했다. 하지만 그의 발걸음은 가볍지 않았다. 사람의 피와 살로 이루어진 꽃들과 ‘암브락사스의 사랑’이 길가에 늘어서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길. 제발 아니길. 너무 늦지 않았길 바라며, 그는 온몸의 힘을 끌어내 다리를 움직였다.
그 노력이 닿은 덕분인지, 그는 결국 피난촌의 모습을 두 눈으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도시의 문턱 앞에서 그는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건…”
검문소에 살점 덩굴이 뿌리내린 모습이 보인다. 입구를 지키던 당직병이 ‘암브락사스의 사랑’으로 변해있었다. 나무가 된 당직병들의 모습과 살점으로 뒤덮인 건물의 모습을 멍하니 보던 그는 나직하게 욕설을 내뱉으며 정신을 다잡았다.
“이런… 씨발…”
그는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정신을 부여잡아 도시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는 이제 고작 도시의 일부만을 봤을 뿐이었다. 내부로 들어가면 아직 멀쩡한 부분이 남아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걸음을 옮길수록 그의 발걸음은 무거워졌다.
상가 건물에 살점 덩굴이 엉겨있었다. 자원봉사자들이 구호물품을 분배하던 곳에는 나무가 된 사람들이 그를 유혹했다.
“어서 사랑을… 사랑을 나눠요.”
“우린 지금 천국에 있어요. 아직 늦지 않았으니. 어서 천국으로…”
“당신도 가족을 만날 수 있어요. 어서 사랑으로 세례받아 행복을 찾으세요.”
그는 저 인육 나무들을 모조리 베어내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아가며 발걸음을 옮겼다. 지금 중요한 것은 생존자를 찾는 것이지 사냥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일단 생존자가 있어야 암브락사스를 잡을 희망이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항하기 위해 발버둥 치던 그의 마음은 어느 건물을 본 순간 꺽이고 말았다.
사람을 유혹하는 세이렌이 그려진, 세계적인 커피 브랜드.
살점 덩굴로 뒤덮인 그 건물은 스타벅스 중랑 지점이었다. 무료로 커피를 나눠주던 마음씨 좋은 점장이 있던 곳. 그곳에서 마셨던 따뜻한 커피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보인 풍경을 참담한 심정으로 바라봤다. 그곳에는 살점으로 이루어진 아름드리나무 하나가 스타벅스 매장 내부를 꽉 채우고 있었다.
충격으로 인해 의식이 흐릿해진다. 여기서 쓰러져서 안 된다는 것은 알지만, 지금 그에게는 흐릿해진 의식을 부여잡을 여력이 없었다. 몸이 털썩 쓰러지는 것과 함께 의식이 끊겼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는 낯선 건물에서 정신을 차렸다. 살점 덩굴이 자라나 있지 않은 건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