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31
피로 물든 사냥꾼 (5)
의식을 잃은 재환은 꿈속에서 천국의 풍경을 보았다.
깨끗한 인도에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거리에 죽 늘어선 상점들은 화려한 간판과 감미로운 유행가로 행인의 시선을 끌어모은다.
식당, 카페, 디저트 전문점. 영화관, 오락실, PC방. 화장품 가게, 의류점, 백화점,
음식과 상품으로 풍요로운 거리.
이곳에는 부족한 것이 없고, 모자란 것이 없다. 모든 것을 가질 순 없어도, 필요한 만큼은 가져갈 수 있는 곳.
건재한 번화가의 모습을 보자 그는 눈물이 핑 돌 지경이었다.
그래. 이대로 깨어나면,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올 거야.
의식이 깨어나는 것과 함께 번화가의 풍경이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부디 일어났을 때는 지금까지 겪었던 일들이 악몽이 되어있길 바라며, 그는 잠에서 깨어나 눈을 떴다.
그리고 그를 기다리고 있던 건 암브락사스를 목전에 둔 도시의 모습이었다.
* * *
눈을 뜨자 주변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였다. 낡은 상가 건물이었지만, 다행히 살점 덩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재환은 가슴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눈살을 찌푸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그의 등 뒤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일어났어요?”
그는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사복 차림의 이해리 순경이었다. 꽃무늬 원피스로 멋을 낸 그녀는 이 낡은 상가에서 이질적인 수준으로 화사했다. 그는 어째서 이런 상황에서 경찰 제복 대신 사복을 입고 있는지 궁금했지만, 지금 당장 해야 할 질문은 아니었기에 다른 질문을 먼저 했다.
“여긴 어디예요? 난… 난 어떻게 여기 온 거고요?”
“여긴 격리 구역이에요. 재환 씨가 구금되고, 전염병 같은 게 퍼졌거든요. 사람을 나무로 만드는… 그런 전염병이요. 꽃가루 같은 거로 전염되는 것 같으니, 건물 하나를 밀폐시켜서 거점으로 만든 거예요. 별 쓸모는 없었지만요.”
재환은 그녀의 말을 듣자 주변의 풍경이 이해가 갔다. 창문은 테이프와 종이상자로 밀봉되어있었고, 곳곳에는 의료 설비가 널브러져 있었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이곳에 어째서 환자가 자신밖에 없는지 의아해했다. 이 격실에는 이해리를 제외하면 다른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저는 그쪽이 옮겨온 거예요?”
“아니요, 제가 안 했어요. 혹시 김태현 순경 기억해요? 제 동기였는데.”
재환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잠깐 스쳐 갔던 사람을 일일이 기억하고 있기에는 경황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 역시 크게 기대를 하지는 않았는지 담담하게 설명을 이어나갔다.
“바깥으로 나갔다가 재환 씨 쓰러진 걸 보고 주워왔더라고요. 목숨값을 해야 한다면서, 은혜는 갚아야 한다면서요. 그리고 저한테 떠넘기고 다시 바깥으로 나갔어요.”
재환은 그 말을 듣고 난 뒤에야 김태현 순경이 누구인지 떠올렸다. 대피 구역에 처음 오기 전, 경찰 한 명을 구해준 일이 떠오른 것이다.
괴물에게 쫓겨 자살하려던 순경 한 명을 구해준 게 이런 식으로 돌아올 줄은 몰랐기 때문에 그는 뭉클한 심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그분은 어디로 간 거예요? 고맙다고 해야 하는데.”
“상황이 이런데, 나간 이유는 하나죠. 죽으러 간 거예요. 건물 안에서 죽으면 다 끝장이니까요.”
“죽으러 갔다고요? 대체 왜…”
“감염됐으니까요. 손가락이 나뭇가지처럼 변하기 시작하는 걸 보고, 마음을 굳힌 거죠. 다들 그렇게 나갔어요. 생존자도. 다른 경찰들도… 이제 남은 건 저 혼자고요. 그리고 사실 재환 씨 간호하는 것만 아니었으면… 저도 나갈 생각이기도 했고요.”
재환은 망연자실한 심정으로 고개를 떨궜다. 결국 경찰 조직이 붕괴됐다. 상황이 안 좋을 거란 예상을 아예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 결과를 직접 전해 듣자 참담한 심정이 들었다.
“…다른 사냥꾼들은요? 생존자는 더 없어요?”
“생존자들은… 아마 없을 거예요. 다들 미치거나, 도망치거나, 죽었거든요. 사냥꾼들도 마찬가지고요. 한사랑 님은 자살했고, 설지훈은 도망쳤고, 강철우 님은 전사했어요. 이제 남은 건… 재환 씨 혼자네요.”
그는 사냥꾼들의 이름을 곱씹었다. 이대로 넋 놓은 채 절망하고 있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이번 생이 파국을 맞이했어도, 정보는 최대한 모아야 한다. 그래야 다음 생이 시작될 때는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이고,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회귀가 끝나버리는 게 아닌 이상, 이번 생의 죽음은 다음 생의 시작과 같은 의미인 것이다.
재환은 사냥꾼들의 이름을 전부 외운 뒤 입을 열었다. 상황은 대략 파악했으니, 이제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물어볼 차례였다.
“말해줘요.”
그는 최대한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는 편이 상대를 안정시킬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지난 3일 동안 무슨 일이 있었길래 여기가 이 지경이 된 건지 말해주세요. 부탁할게요.”
그 말에 그녀는 힘없이 웃었다. 체념한 자만이 지을 수 있는 미소였다. 그 미소를 보며 재환은 그녀가 제복을 입지 않은 이유를 직감했다. 지금 그녀의 모습은 도시를 지키지 못한 경찰의 말로인 셈이었다.
“말해주는 건 어렵지 않지만, 시간이 그렇게 많지는 않아요.”
그녀는 그렇게 말한 뒤 창문을 밀봉한 테이프를 때어냈다. 그리고 창문을 가린 박스를 제거하자 건물 바깥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저기 저거 보여요? 저 커다란 거.”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웬만한 고층 건물보다 커다란, 세계수처럼 느껴지는 괴물이 꽃가루를 흩날리며 피난촌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재환은 저 괴물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암브락사스가 마침내 뿌리를 들어내 이곳에 임하려 하는 것이다.
[사냥 대상: 만개한 사랑, 암브락사스] [분류: 추종자] [사랑을 베푸는 성자(星子). 지상의 피를 승천시켜 달을 찬미한다. 사람을 현혹하는 꽃가루에 주의할 것.]저 끔찍한 괴물이 만개했다는 사실을 속삭임이 증명했다. 확실히 몇 시간 전과는 존재감 자체가 달라져 있었다.
뿌리를 들어낸 암브락사스는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뇌가 녹아버릴 것만 같은 위압감을 자아낸다. 흐느적거리는 수백 가닥의 살점 덩굴은 건물 곳곳으로 파고들어 피와 살을 흡수했고, 주변의 피와 살을 흡수한 암브락사스는 하늘 위로 시뻘건 꽃가루를 흩뿌려 달을 향해 올려보냈다.
재환이 황망한 시선으로 그 모습을 보고 있자 이해리가 말했다.
“저게… 저게 뭔진 몰라도… 여기 오면 다 끝나는 거겠죠···. 깨알같이 남아 있던 사람도,.. 사람들도… 전부 다 개미처럼 밟혀 죽겠죠. 개미핥기를 만난…. 개미처럼요…”
그녀는 몸이 떨려오는 것을 억누르며 창문에서 시선을 뗐다. 먼 거리에서 안개 너머로 흐릿하게 봤을 뿐인데도 그녀의 눈에는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미쳐버리지 않은 게 용할 지경이었다.
‘아니면 이미 미쳐있거나.’
그는 불현듯 떠오른 직감을 억누른 뒤 심호흡을 시작했다. 그의 반응 역시 이해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암브락사스를 멀리서 본 것만으로도 정신력이 갉아 먹힌 기분이 들었다. 아무리 지혜를 올렸어도, 저 불가해한 존재 앞에서 인간은 모두 평등한 셈이었다.
간신히 호흡을 되찾은 이해리는 기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줄게요. 대신 부탁 하나만 들어줘요.”
그녀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재환은 불길한 예감을 억누르며 대답했다.
“무슨… 무슨 부탁인데요.”
그녀는 재환의 허리춤에 있던 리볼버를 꺼냈다. 그리고 리볼버를 그의 손에 쥐여주며 말했다.
“얘기가 끝나면, 이걸로 날 쏴줘요. 정확하게 머리를 노려서…. 쏴 주세요.”
손끝이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재환은 그녀의 손을 때어내며 말했다.
“도망치는 건요?”
“소용없어요. 노원구도, 광진구도. 이미 괴물 소굴이니까요. 그리고 서울 안쪽으로 도망친다고 해도… 오래 살 것 같지도 않으니까요. 거긴 아마 더 심하겠죠.”
그녀의 말에 그는 할 말을 잃었다. 사실 그 역시 그녀와 같은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외곽지역이던 이곳마저 이 지경이 됐으니, 서울 중심부에는 어떤 지옥이 펼쳐지고 있을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희망을 가지라는 것은 폭력이나 다름없는 말이었다.
재환이 말이 없자 그녀는 사과했다.
“이런 부탁 해서 미안해요. 사실 진작에 혼자서 해 보려고 하긴 했는데… 잘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그랬어요. 미안해요.”
재환은 목소리가 떨리지 않게 조심하면서, 최대한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상황일수록 최소한의 평정은 유지해야 했다. 벌써 정신이 무너질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알겠으니까 말 해봐요. 부탁 들어줄 테니까.”
오래 고민해서 결정할 문제는 아니었다. 도시 전체가 괴물이 되는 상황 속에서 맨정신으로 버티는 것은 가혹한 일이었으니까. 본인의 목숨을 어떻게 다룰지는, 본인의 뜻을 존중해야 하는 법이었다.
말이 끝나자 그녀는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재환 씨가 수감되고, 그날 새벽에 유치장에서 사건이 일어났어요. 사람들이 나무 괴물로 변하면서, 도시 곳곳에 새빨간 꽃가루가 퍼진 거예요. 나무가 된 사람들이 다시 꽃가루를 퍼트리고, 꽃가루를 마신 사람이 다시 나무가 되고… 그러면서 치안이 붕괴됐어요. 도시가 망할 것 같으니까 곳곳에서 폭동이 일어나고… 우리는 농성하는 것만으로도 벅찼어요. 사정은 군대도 마찬가지였고요. 그 많은 시민 전부를 학살하는 건 윤리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요. 그렇게 전부 다 망했어요. 전부 다. 무너진 거예요. 그 마약 때문에… 전부 다…”
그녀는 말이 길어지자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마지막이 가까워지자 메말라 있던 감정이 북받쳐 오른 것이다. 재환은 그녀의 눈물을 닦아줄 수 없었다. 건네줄 손수건을 가지고 있기는커녕 몸에 걸친 옷가지 전부가 피범벅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더군다나 최악의 경우에는 이 도시를 버리고 다른 곳에 정착할 생각까지 한 적이 있었다. 그런 생각까지 했던 사람이 이제 와서 위로를 건네는 것은 가식을 넘어서 모욕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스스로 눈물을 닦아낸 그녀는 심호흡을 해 감정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한결 나아진 목소리로 초연하게 말했다.
“얘기는 이게 끝이에요. 이게… 내가 아는 전부예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재환의 손 위에 자기 손을 포개었다. 그 손에는 리볼버가 쥐어져 있었다.
“이제 부탁할게요. 이런 부탁 해서… 미안해요.”
재환은 그녀의 손을 떼어낸 뒤 리볼버를 겨눴다. 그의 목소리는 침울함에 가라앉아있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함께 협력했던 동료에 대한 예우를 갖출 시간이었다.
“수고했어요.”
그녀는 힘없이 웃었다. 총성이 이어졌고, 그녀는 쓰러졌다. 대피 구역의 마지막 경찰이 그렇게 죽었고, 꽃무늬 원피스는 수의가 되었다.
재환은 자신의 재킷을 벗어서 그녀의 몸 위에 덮었다. 고인에 대한 예우이기도 했지만, 그대로 보고 있기 힘들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는 배낭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담배 맛이 쌉싸름한 것이 시기적절했다. 담배를 권했던 대대장에게 고맙기까지 할 정도였다.
담배 연기를 내쉰 그는 자신의 짐을 챙겨서 일어났다.
이제 종말이 머지않은 것이 확실해졌다.
암브락사스가 서울 전역에 퍼지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고, 혼자서 이를 막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 암브락사스를 피해 도망칠 수도 있었지만, 그래 봐야 시간문제일 거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운석에 맞은 지면이 움푹 파이는 것처럼, 압도적인 재앙이 그의 정신에 흠집을 내었다. 머리에 구멍이 난 것만 같은 기분을 억누르며, 그는 건물 바깥으로 나갔다.
대피구역 내부의 풍경은 동대문구에서 봤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곳곳에는 사람의 살점으로 이루어진 나무와 꽃이 만개해 있었다. 암브락사스가 임하자 꽃잎을 활짝 피움으로써 이를 환영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이 흉측한 봄의 제전 속을 걸어가며 담배를 태웠다.
‘그래. 다 끝났어. 다 끝났지.’
정처 없이 걷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명확한 의지를 담아 군부대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끝났어. 끝난 건 맞는데.’
그는 다 타버리는 담배꽁초를 버리며 중얼거렸다.
“죽을 땐 죽어도, 그냥은 못 죽지.”
암브락사스는 승리했다. 이 땅에 임한 이상, 이 도시는 이미 저 괴물의 것이었다. 혼자서 저 괴물과 싸운다는 것은 도시 전체를 적으로 돌리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는 정원사 하나가 달려드는 것을 보며 탈바꿈을 들어 올렸다. 푹 쉬고 난 덕분인지 정신이 날카로워져 있었다. 말끔해진 기분으로 정원사의 목을 썰어버렸다. 피가 튀기는 것을 보자 속이 조금 후련해진다.
‘일단 부대에 가 보자. 거기 가면 뭐가 있기는 하겠지. 아무것도 없으면…’
그는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며 거리를 걸어갔다.
‘…그때는 맨몸으로라도 달려들어야지.’
목숨은 소중히 사용해야 한다. 세상에 목숨보다 귀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설령 다음 생이 기다리고 있다 하더라도, 목숨의 가치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목숨을 최대한 가치 있게 사용할 방법을 구상했다.
그리고 군부대에 도착한 그는 비교적 멀쩡해 보이는 두돈반 트럭과 ‘땔감’들을 찾아낸 뒤 미소를 지었다. ‘땔감’을 보자 아껴둔 목숨을 화려하게 불태울 방법이 떠오른 것이다.
울분과 원념과 함께.
최초이자 최악의 불장난이 그의 머릿속에 피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