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32
피로 물든 사냥꾼 (6)
군부대는 피로 물들어 있었다. 곳곳에는 총상을 입은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고, 드문드문 나무가 된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모종의 이유로 총격전이 벌어진 것이다.
‘최소 프래깅. 최대 쿠데타인가.’
그는 운동장 곳곳에 주차된 차량들을 하나씩 살펴봤다. 대부분은 총격전 당시 엄폐물로 사용된 탓에 망가져 있었고, 그나마 멀쩡해 보이는 것들도 자세히 보면 살점 덩굴이 돋아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단 하나라도 찾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인내심을 발휘했다. 어차피 운전수는 혼자이니, 여러 대가 있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렇게 한참 동안 차량을 살펴보던 그는 마침내 시동이 걸리는 두돈반 하나를 찾아냈다. 운전석에 총에 맞은 운전병이 앉아있었다는 것을 제외하면 완벽에 가까운 물건이었다. 재환은 운전병의 시신을 적당한 곳에 내려놓은 뒤 묵념했다.
‘차는 구했고… 이제 땔감만 구하면 되겠지.’
그는 연료의 잔량이 충분한 것을 확인한 뒤 트럭의 적재함으로 향했다. 적재함에는 식량과 생필품이 적지 않게 쌓여있었다. 그는 그 모습을 보며 이 트럭을 운전하려던 운전병의 사인을 짐작했다. 이 운전병은 이 보급품과 함께 대피 구역을 빠져나가려다가, 혹은 이 보급품을 가지고 부대에 돌아왔다가 변을 당한 것이다.
보급품이 약탈당하지 않은 것을 보면 전자일 가능성이 커 보였지만, 어느 쪽이든 비참하기 짝이 없는 말로였다.
재환은 식량과 생필품을 모조리 꺼내 바깥으로 던져버렸다. 무엇보다 귀중하게 취급받아야 할 물건들이 쓰레기처럼 내팽개쳐졌다. 그에게는 이 물건들이 쓰레기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이것들은 살아남으려는 자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물건이었지만, 살 생각이 없는 자에게는 필요가 없는 물건이다. 그는 오늘 안에 죽을 생각이었고, 이 주변에는 살아있는 사람이 없었으니, 이 물건들이 결국 쓰레기로 전락하고 만 것은 지극히 당연한 흐름이었다.
‘땔감은 뭐가 좋을까… 휘발유도 좋지만… 탄약통이 더 끌리긴 하는데…’
그는 탄약고로 쓰던 강당 건물이 반파되어있는 것을 보며 혀를 찼다. 저 안에 있을 탄약이 무사할 것 같지 않아 씁쓸한 심정이었다.
하지만 건물을 향해 걸어가던 그는 곧이어 탄약고가 폭발하지는 않았다는 점을 깨달았다. 탄약고가 폭발하면 건물이 반파되는 수준으로 끝나지 않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그 말은 건물 내부의 탄약이 무사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래, 탄약통은 그래도 튼튼한 편이니까, 폭발만 안 했으면 쓸 수 있잖아?’
그는 건물의 잔해를 파헤쳐 입구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입구 너머에 탄약 상자가 50 박스가량 남아있는 것을 보며 나직이 환호했다. 마지막 불꽃놀이에 쓸 재료가 남아있다는 사실이 다행처럼 느껴졌다.
그는 찌그러져 있는 탄약통 하나를 들어 올리며 씩 웃었다. 이곳에 있는 탄약통들은 대부분 불발탄으로 분류되어있었다. 도망친 군인들이 멀쩡한 탄약통을 탈취해간 여파인 듯 보였다.
하지만 그는 이 총알들을 쏘기 위해 모으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목적은 이 탄약통들을 한곳에 모아 불을 질러 폭발시키기는 것이었으니까. 그러니 설령 불발탄일지라도, 안에 화약만 들어있다면 그에게는 ‘땔감’으로서 충분했다.
탄약통 네 개를 한 번에 들어 올린 그는 두돈반 트럭에 탄약을 적재했다.
수십 박스의 탄약 상자를 나르는 일은 고된 일이었지만, 그다지 어렵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사냥꾼이 된 덕에 몸이 강해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제 끝이 머지않았다는 생각이 그의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30kg 탄약 상자를 한 번에 네 개씩 들어 올려도 마음만큼은 가벼워진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잃을 게 없다는 사실이 이토록 상쾌할 수 있다는 게 놀라울 정도였다.
탄약 상자를 전부 실어나른 그는 두돈반 트럭의 적재함을 응시했다. 수십 박스 두돈반 트럭의 적재량이 워낙 많은 탓에 적재함의 공간은 아직 적지 않게 남아있었다. 남은 공간이 허전하게 느껴지자 재환은 근처에 반파된 건물들을 살펴봤다.
‘창고라도 좀 찾아서 뒤져볼까. 아무리 급조한 기지여도 나름 군부대인데, 뭐가 있긴 있겠지.’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폐허가 된 건물 내부로 들어갔다. 총알과 수류탄으로 엉망이 된 건물에는 멀쩡한 것이 없어 보였다. 창고로 쓰던 교실 대부분은 거의 다 훼손됐거나 약탈당했고, 그 자리에는 군인들의 시신만이 널브러져 있었다. 군인들의 시신에서 수류탄 세 개를 주운 것 정도가 지금까지는 유일한 수확이었다.
‘수류탄 정도로는 택도 없겠지만… 성냥 역할 정도는 할 수 있겠지.’
그렇게 피로 물든 복도를 터벅터벅 걷던 그때, 그는 교실의 저편에 철문으로 밀봉된 교실이 있는 것을 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그 교실에는 ‘휘발유 창고’라고 적혀있었다.
‘하긴. 저게 터지면 다 죽는 거니까.’
그는 자물쇠를 탈바꿈으로 부순 뒤 문을 열었다. 그러자 교실 안에 드럼통에 담긴 휘발유가 80통가량 쌓여있는 모습이 보였다. 주유소가 괴물에게 점령당했을 때를 대비한 예비용 휘발유인 모양이었다. 원래대로였다면 이 역시 군부대가 직접 관리할 정도의 중요 자원이었지만, 군대가 괴멸한 상황에 그런 것을 신경 쓸 이유는 없었다. 그는 기꺼운 마음으로 두돈반 트럭이 꽉 찰 때까지 휘발유 통을 실어 올렸다.
작업을 끝낸 재환은 두돈반 트럭에 가득 담긴 탄약통과 휘발유 통을 보며 담배를 피웠다.
‘이제 다 왔어. 이제 가기만 하면 돼.’
그는 시계를 확인해 지금이 몇 시인지 확인했다. 시계는 밤 12시 3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자정을 넘겼으니, 오늘은 집을 떠나 이곳에 도착한 지 일주일 째 되는 날이었다.
‘처음엔 신기했지. 나름 정도 붙었고…’
처음 피난촌에 왔을 때가 떠올랐다. 돌이켜보면 그때는 사람들이 도시를 이뤄 산다는 것 자체가 반가웠고, 아직 멀쩡하게 굴러가는 도시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다행처럼 느껴졌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제멋대로 괴물을 사냥하는 대신 경찰과 공생하는 방향으로 행동했고, 사람들과 상부상조하면서 사는 것에 조금이나마 보람을 느꼈다.
하지만 그런 날들은 이제 끝났다. 다음 생이 시작되면 이 도시를 보는 시선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미 도시가 멸망한 모습을 본 이상, 전과 같은 태도로 이 도시의 모습을 바라볼 수는 없었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애초에 정 붙이는 게 아니었어. 정을 붙이는 게 아니었는데…’
지금 하려는 짓이 미친 짓이란 것은 알고 있었다. 더 나은 선택이라면 분명 더 있을 터였다. 뭘 해도 불나방이 되는 것보단 나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마음은 착 가라앉았고, 돌이킬 수 없는 충동이 그를 휘감았다.
‘그것도 이미 늦은 거지.’
그는 담배를 밟아 불을 꺼트렸다.
이 도시에서는 많은 것을 얻었다. 그는 이 도시에서 쉼터를 얻었고, 양질의 식사를 제공 받았으며, 여벌 옷과 총기를 아낌없이 지원받았다. 다른 사냥꾼을 만나 좋은 무기를 얻게 된 것도, 맘씨 좋은 바리스타를 만나 커피를 얻어 마신 것도 이 도시에서 얻은 인연이었다. 오늘 죽게 되어 모든 게 사라진다 하더라도, 이 기억만큼은 뇌리에 꽂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저주나 다름없을 정도로 지독한 추억이었다.
이 미련에서 벗어날 방법은 오직 하나. 최대한 크고 화려하게 괴물을 불태우는 것뿐이었다. 설령 실패하고 말지라도, 미련을 다음 생까지 가져가는 것만큼은 하고 싶지 않았다.
흡연을 끝낸 재환은 두돈반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이제 이번 생의 마지막을 장식할 캠프파이어를 하러 갈 시간이었다.
* * *
도로의 상황은 운전하기에 좋지 않은 편이었다. 곳곳에 살점 덩굴이 자라난 탓에 덜컹거렸고, 인육 나무와 고장 난 차량들이 도로를 막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운전을 오래 할 필요는 없었다. 그가 멀리 가지 않아도, 암브락사스가 이미 도시 내부까지 들어왔기 때문이다.
암브락사스의 모습이 또렷하기 보이는 거리가 되자 재환은 최대 속력까지 악셀을 밟았다. 거친 엔진음과 함께 두돈반이 질주한다.
덜컹거리는 두돈반의 운전석에서 그는 차 문을 열어 탈출할 준비를 했다. 이 차량을 폭파시키는 걸로 암브락사스가 죽지 않을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아무리 죽을 각오를 했다고는 해도, 저 괴물을 죽이겠다는 생각 자체는 진심이었다.
만개한 암브락사스와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생각이 피어올랐다.
‘달을 사랑하자. 우리 하나 되어 달을 사랑하자.’
낯선 생각이 불현듯이 떠오르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는 이런 현상을 경험한 적 있었다. 서울 밖으로 나가려 했을 때 ‘미스크네’라는 괴물이 이런 식으로 생각을 주입했던 것이다.
머릿속에 피어오른 생각을 으스러뜨리기 위해 그는 이빨로 볼살을 꽉 깨물었다. 피가 배어 나오는 고통과 함께 정신이 확 깨어난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까이!’
거리는 대략 600m. 최대 속력인 80km에 가깝게 달리고 있으니 앞으로 30초 정도면 이 트럭을 저 괴물에게 처박아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암브락사스는 그 30초를 순순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암브락사스가 속삭이는 천상의 이미지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가족이 모두 살아있는 세계가 보인다. 모든 게 풍족한 거리가 보인다. 아무도 다치지 않은 세계가 보인다. 그 세계에서는 모두가 행복했다.
하지만 그는 ‘행복’이라는 감각에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우리는 천국에서 모두 행복해.’
그는 들려오는 생각을 무시한 채 이미 최대로 밟아놓은 악셀에 힘을 주었다. 페달이 부서질 듯이 밟아 두돈반을 몰아붙였다.
‘이곳에서는 아무도 다치지 않고, 아무도 고통스럽지 않아. 모두가 행복한 세상에서 다 같이 사는 거야.’
암브락사스가 그를 받아들이기 위해 몸을 열어젖혔다. 저 거대한 세계수의 밑동이 갈라지면서 살점으로 이루어진 동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수십 가닥의 살점 덩굴이 꿈틀거리는 저 살점 동굴의 모습은, 끔찍할 정도로 아름다운 ‘천국’의 꽃가루를 내뿜고 있었다.
재환은 꽃가루가 자욱하게 몰려오는 것을 보며 차의 문을 열어젖혔다.
‘그래. 들어가자. 저기에 들어가서 모두 달을 찬미하는 거야. 달과 하나가 되어 영생을 누리자.’
재환은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을 흘려보냈다. 사전에 높여놓은 지혜 능력치가 불가해를 상대하기 위해 방어기제를 작동시킨 것이다. 생각 자체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그는 크게 아쉬워하지 않았다. 애초에 이 시점에서 생각 따위는 필요 없었기 때문이다.
‘알을 깨고 나오렴. 신세계가 널 기다리고 있어. 내 품으로 들어와 천상의 계단을 밟으렴.’
끊임없이 유혹하는 암브락사스의 사념을 뒤로 한 채, 그는 수류탄의 안전핀을 제거해 조수석에 올려놓은 뒤 두돈반에서 뛰어내렸다.
시속 80km의 관성을 그대로 받은 몸이 도로를 뒹군다. 몸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통증과 함께 그의 의식이 흐릿해졌다. 아무리 사냥꾼의 몸이 튼튼하다고는 해도, 내구 능력치가 낮은 시점에서 도로에 몸을 던지는 것은 위험천만한 도박이었다.
하지만 그는 비틀거리면서도 상처투성이가 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저 너머에서 가속력을 받은 두돈반이 암브락사스의 체내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를 받아들이려 했던 암브락사스에게 폭약을 배송한 셈이었다.
그리고 안전핀이 제거된 수류탄이 폭발하는 것과 함께, 암브락사스의 몸에서 불꽃이 피어올랐다.
세계수를 닮은 저 거대한 괴물의 밑동이 삼분의 일 가까이 날아갔다. 재환은 폭발의 충격으로 흩날리는 암브락사스의 피와 살을 뒤집어쓰며 등에 매어뒀던 탈바꿈을 꺼냈다. 미리 칼날 형태로 분리한 뒤 버려져 있던 군복으로 동여맨 덕분에 칼날은 부러지지 않았다.
“———————”
암브락사스가 비명을 지르는 것을 보며 재환은 흡족한 표정으로 웃었다.
“그래. 더 울어 봐.”
고통스러워하던 암브락사스가 상처를 재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상처가 수복되는 것과 함께 그녀의 몸에서 수백 가닥이 넘는 살점 덩굴이 뻗어나와 그를 공격했다. 재환은 몸을 움직여 덩굴을 피하거나 쳐냈지만, 지친 몸으로 비처럼 쏟아지는 살점 덩굴을 상대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3초 뒤.
재환의 몸은 결국 살점 덩굴로 뒤덮였다. 필사적인 저항도 만개한 암브락사스 앞에선 무의미한 것이다.
몸에 덮인 살점 덩굴에서 얇은 줄기가 돋아나기 시작했다. 돋아난 줄기는 그의 귓구멍으로 파고들어 뇌를 간지럽히기 시작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한마디만 하자. 사랑한다고. 사랑한다는 단 한마디만 하면 구원받을 수 있어.’
의식이 무너지는 것을 느끼며 그는 암브락사스를 노려봤다. 암브락사스를 직접 본 여파로 뇌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지혜로 뇌를 강화했어도, 결국 정신은 인간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재환은 뇌가 녹아내리는 기분을 실시간으로 느끼며 미소 지었다.
이번 생은 실패했다.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행동들은 결국 무의미했다. 밤낮없이 괴물을 사냥했던 날들도, 사람들을 도와 도시를 발전시켰던 것도 결국은 헛수고였다.
하지만 의식이 꺼져가는 와중에도 그는 각오를 다졌다.
다음 생이 있다면. 다음번에는 반드시 죽여주마.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널 죽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 갈기갈기 찢어주마. 설령 다음이 안 된다면 그다음에, 그 다음도 안 된다면 또 다른 생에서. 영원히 반복해서라도 반드시 죽여주마.
의식이 흐릿해지는 것과 함께, 그의 몸에 나뭇가지가 돋아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의식이 완전히 끊어졌을 때, 그는 처음 괴물을 죽였던 날에서 다시 깨어났다.
또다시 집으로 돌아온 재환은 허탈한 심정으로 히죽거렸다.
설령 괴물이 되는 일이 일어나도 악몽은 끝나지 않는다. 그 사실이 기쁘게 느껴지자 정신이 나가버릴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