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34
괴물 사냥의 도시 (2)
이천 명에 가까운 인파를 한 사람이 이끌고 오는 장면은 검문 초소에 파문을 일으켰다.
아무리 비무장 상태라고는 해도 이천 명이 한 번에 몰려오는 모습은 시위 현장을 방불케하는 위압감을 자랑했기 때문이다.
재환은 난처해 하는 초병의 모습을 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그 역시 이 정도로 사람이 많이 모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분들이 전부 오늘 길에 만난 사람들이다, 이거죠? 무슨 집회 소속이 아니라.”
초병의 말에 재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사람들이 어째서 이렇게 모였는지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했다.
처음에는 수백 명 정도였던 행렬이 이렇게 길어진 이유는 간단했다. 저 많은 사람들이 어디로 가는지에 궁금증을 느낀 사람들이 하나둘 행렬에 합류했기 때문이다.
“다들 어디로 가는 거예요?”
“대피 구역이 있대요. 군대랑 경찰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진짜요? 그럼 저도 따라가도 돼요?”
“오지 말란 말은 없었으니 괜찮지 않을까요?”
이런 대화가 반복되자 행렬이 몸집을 불린 것은 필연적인 흐름이었다.
물론 이곳까지 오는 과정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었다. 사람이 많아진다는 것은 괴물에게 공격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지켜야 할 사람의 숫자가 늘어난다는 것에 조금 부담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재환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걱정이 과민반응이었음을 깨달았다. 이 많은 사람들이 모두 순한 양들이었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피난민 중에서는 호신용 무기를 챙겨온 사람들도 있었고, 이들은 서로 힘을 합쳐 괴물을 격퇴했다. 아무리 괴물이 사람보다 강하다고 하더라도, 그 숫자가 한두 마리 정도라면 수십 명의 사람들이 달려들어서 공격하는 것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약간의 계기와 무기만 있다면 사냥꾼이 아니어도 누구나 괴물을 죽일 수 있는 셈이었다.
인해전술이 효과적으로 적용됐던 모습을 떠올리며 재환은 미소를 지었다. 사람들에게는 단지 약간의 용기가 필요했을 뿐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희망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지난 일을 떠올리며 대기하고 있을 때, 저편에서 군인 한 명이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 군인은 A4용지가 담긴 상자 하나를 품에 안은 채 사람들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전입 수속 시작하겠습니다! 예비군 신분이신 분들이랑 입대 희망하시는 분은 이쪽에 서 주시고, 아닌 분들은 이쪽에 서 주시면 됩니다!”
재환은 군인의 말에 따라 입대 희망자들이 줄을 서는 곳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때 안내를 맡은 초병이 그를 불렀다.
“사냥꾼이라고 하셨죠? 대대장님이 따로 뵙고 싶다고 하셔서, 줄은 안 서셔도 될 것 같습니다. 이 서류만 작성해 주세요.”
재환은 군인에게 펜을 건네받은 뒤 서류를 작성했다. 이전 생에 이미 한 번 작성해봤던 서류였기에 작성하는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재환은 작성된 서류를 군인에게 건넨 뒤 대피 구역 안쪽으로 들어갈 준비를 했다.
그리고 그때, 한 여인의 목소리가 그를 불러 세웠다.
“저기요!”
재환은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했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던, 아기를 안고 있던 여인이었다. 그녀는 사람들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안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수고 많으셨어요!”
여인은 그렇게 말한 뒤 허리를 굽혀서 인사했다. 그러자 그 뒤를 이어서 다른 사람들 역시 한마디씩 거들기 시작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일제히 울려 퍼졌다.
“수고하셨습니다!”
“고생하셨어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사람들의 환호성에 재환은 고개를 꾸벅 숙이는 걸로 대답했다. 인사를 끝낸 그는 군인의 안내를 받아 대피소 안쪽으로 들어갔다. 안쪽에는 그를 안내하기 위한 승용차가 준비되어있었다. 깔끔하게 세차 된 산타페였다.
“타시죠. 부대까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재환은 군인의 배웅을 받아 차량에 탑승했다.
우중충하게 안개가 깔린 거리가 전과는 다르게 보이는 것이 썩 나쁘지 않게 느껴졌다. 비록 이제 시작에 불과했지만, 조금은 나아지고 있다는 실감이 든 것이다.
* * *
담배 연기로 자욱한 대대장실.
그곳에서 대대장은 한숨 쉬듯 담배 연기를 내쉰 뒤 말을 건넸다.
“그래서… 자네 같은 괴물이 왜 입대하려는 건가? 굳이 군대에 안 들어와도 혼자서 잘 살 것 같은데.”
재환은 대대장의 단어 선택에 피식 웃었다. 대대장은 적당히 던져 본 말일 테지만, 사실 그 역시 사냥꾼과 괴물 사이에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을 은근히 실감하던 차였기 때문이다. 이 둘 사이의 차이란 힘을 사용하는 방식과 외형 정도일 뿐이었으니까.
재환은 대대장에게 받은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했다.
“이해관계가 맞을 것 같아서요. 괴물을 죽여서 이 사태를 끝내고 싶어 하는 건, 군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거든요. 오래 끌어서 좋은 상황도 아닌 것 같고요.”
“그러면 자네는 괴물 토벌과 인명 구조 중 어느 쪽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나? 보아하니 지금은 인명 구조에 관심이 좀 있나 본데. 우리 쪽은 최악의 상황도 생각해야 해서 말이야.”
대대장의 눈매가 날카로워지는 것을 보며 재환은 곧바로 대답했다. 이미 고민을 끝낸 문제였으니 대답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당연히 괴물 토벌이죠. 괴물을 근절시키는 게 아니면, 아무리 사람을 구해봐야 다 같이 끝장이니까요.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상황이면, 전 괴물부터 죽이고 볼 겁니다. 미적지근하게 굴면 어떻게 될지 잘 알고 있거든요.”
지난 생에는 사람답게 살고 싶었기에 선을 넘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서 살았다. 그는 괴물이 되는 것이 두려웠고, 사람과 괴물을 구분하는 기준이 인성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고민이 얼마나 사치스러웠는지는 암브락사스를 보면서 깨달았다. 그 까마득한 존재를 죽이려면 어설프게 굴어선 안 됐다. 상대의 격이 아득하게 높은 만큼, 그 발끝에라도 닿으려면 이쪽 역시 최선을 다해야 했던 것이다.
재환의 대답을 듣자 대대장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 그 말이 맞아. 가뜩이나 식량난에 난민 문제도 심각한데, 오래 끌어봐야 좋을 게 없긴 하지. 언제까지고 이 콩알만 한 곳에서 꾸역꾸역 뭉쳐 살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말이야. 그런 마인드, 아주 좋아.”
대대장은 담배를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그러면 계획은 있나? 아무 생각 없이 사람들을 끌고 온 것 같진 않진 않고, 뭔가 생각이 있어서 온 것 같은데. 좋은 수라도 있으면 말해 봐. 작전 세우는 데 참고할 테니.”
기대 이상으로 대화가 수월하게 풀리자 재환은 안도했다. 군대의 지원을 얻는 게 생각보다 쉬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지금이 기회라는 것을 직감한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대대장에게 공유했다.
“동대문구에 거대한 괴물이 나타난 걸 봤어요. 가만히 두면 사람이랑 괴물을 자기 부하로 만드는 능력이 있으니, 최대한 빨리 처리해야 됩니다. 최대한 화력을 모아서 한 번에 처리해 주세요.”
“근거랑 증거는?”
“제가 직접 봤으니까요. 제가 거짓말하는 것 같으면 총살해도 상관없어요. 다들 목숨 걸고 하는 일인데, 저도 목숨을 걸어야죠.”
대대장은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한숨을 쉬었다. 상대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 않았기 때문에 더 고민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었다.
“무슨 말인진 알겠어. 무슨 말인진 알겠는데… 그것만으론 부족해. 그 거대 괴수란 것들, 우리 쪽에서도 골칫거리거든. 그놈들 잡으러 간 부대가 다 연락 두절 됐으니까. 수방사 주력이랑 북한산 부대 주력이 그렇게 날아갔어. 일개 대대가 함부로 상대할 문제는 아니란 거지.”
“그 말은…”
“공격을 하긴 하되, 신중해야 한단 뜻이야. 자칫하다가 전멸이라도 하면 개죽음이니까.”
대대장의 말의 말을 듣자 재환은 생각에 잠겼다. 그는 어째서 서울의 주력 부대가 연락 두절이 됐는지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포격 지원을 받는 것도 힘들 수 있겠어. 그놈들이 비명을 지르면 멀리 있어도 영향을 받는 것 같으니까.’
그는 괴물의 비명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알고 있었다. 충분히 지혜를 높인 상태에서도 버티기 힘들었는데, 지혜를 올릴 수 없는 일반인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사냥꾼을 대규모로 육성할 계획이라도 세우는 게 아닌 이상, 군부대 규모의 화력을 지원받는 것은 힘들 것처럼 보였다.
결론을 내린 재환은 대대장의 말에 대답했다.
“네. 일단 정찰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다 같이 한번 확인하고, 계획을 짜는 게 맞겠죠.”
“그래… 그러면 그 문제는 부대 편성이 끝나면 바로 출발하는 걸로 하고…”
대대장은 그렇게 말한 뒤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솔직히 말해봐. 그 괴물, 정말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해? 자네가 봤을 땐 가능성이 얼마나 될 것 같아?”
“제 생각엔…”
재환은 담배를 태우며 대답했다.
“전멸까지도 각오해야 한다고 봅니다. 최악의 경우에는 대포 한 번 쏠 때마다 한 사람씩 죽을 수도 있다고 보거든요. 어쩌면 다 같이 미쳐서 자살할 수도 있고요. 영화 미스트처럼.”
그 말에 대대장이 킬킬거렸다. 워낙 결말이 유명한 영화였으니,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지 이해한 것이다. 압도적인 존재란 그 자체만으로 사람에게 절망으로 다가오는 법이었다.
대대장은 담뱃재를 재떨이에 털어내며 말했다.
“미군이 아니라 미안하구만. 아니, 주한미군도 연락 두절이니, 우리 탓은 아니지. 안 그래?”
“그렇긴 하죠. 대포로 싹 쓸어버릴 수 있으면 편했을 텐데. 유감이네요.”
씁쓸한 농담이 오고 간 뒤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방금 전의 대화로 이번 작전의 성공률이 희박하다는 것을 둘 모두 인지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굳이 이 얘기를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그만큼 애초에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가만히 앉아 있다가 말라 죽거나, 싸우다가 괴물에게 죽거나. 어느 쪽이든 굳이 입 밖으로 내어 봐야 기분만 나빠지는 얘기인 것은 분명했다.
대대장은 담배꽁초를 재떨이에 비벼 불을 꺼트렸다. 대화가 끝났음을 알리는 무언의 신호였다. 재환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담뱃불을 꺼트렸다.
대대장은 자리에서 일어난 재환에게 악수를 건네며 말했다.
“그래, 그러면 일단 입대했으니, 계급은 어떻게 달아줄까. 아무리 그래도 초인을 사병이랑 같이 취급할 순 없는 거니까. 그에 맞는 대우는 해 줘야지.”
“그냥 병장 달아주셔도 돼요. 어차피 계급이 이병이어도, 사냥꾼은 사냥꾼이니까요. 괴물만 잡으러 다닐 수 있으면 사실 이등병이어도 상관없어요.”
“병장으로 하지. 군대까지 다녀온 친구가 이병 노릇 두 번 하는 건 좀 그렇잖아?”
대대장은 그렇게 악수를 마치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입대 환영하네. 장비는 행보관한테 말했으니, 필요한 거 있으면 말만 하고.”
재환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는 곧바로 대대장실을 나가는 대신 그에게 질문을 건넸다. 이대로 가면 이전 생과 별다를 게 없을 것 같다는 예감 때문이었다.
“마지막으로 여쭤보고 싶었던 게 하나 있는데, 시간 괜찮으세요?”
“5분 정도라면 괜찮지. 어디 말해 봐.”
“좀 뜬금없는 질문일 수도 있는데…”
그는 그렇게 뜸을 들인 뒤 말했다.
“만약 대대장님이 시간여행자라고 치면 무슨 방법을 써야 대대장님한테 신뢰받을 수 있을까요? 미래를 아는 대대장님이, 미래를 모르는 대대장님을 설득하는 거죠.”
대대장의 얼굴에 순간 실망해하는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현실주의자에게 공상의 영역에 나올 법한 얘기를 갑작스럽게 들이밀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대대장에게는 그 말을 하는 상대가 ‘사냥꾼’이라는 점을 고려할 분별력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지휘관으로서 판단했다. 상대가 아무리 헛소리를 늘어놓더라도, 귀중한 전력인 이상 귀빈으로서 대접해야 한다는 결론이었다.
“글쎄… 그런 일이 만약에 있다면, 자기가 시간여행자라는 걸 증명해야지.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지한다든가. 뭐, 그런 것들 말이야.”
대대장은 그렇게 말한 뒤 미심쩍은 눈초리로 그를 바라봤다.
“그래서, 이런 질문을 한 이유는 뭔가? 설마 진짜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온 건 아니지?”
그 말에 재환은 씨익 웃었다.
“그건 지금부터 증명하면 되는 거니까요. 관심 있으십니까?”
그는 지금까지 자신의 시간이 되돌아간다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상대방을 설득시킬 수 있을 만큼의 지식이 없으니 말을 해봐야 소용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비록 일주일에 불과할지라도, 그는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있었다. 아는 것이 곧 힘이라면, 이 지식은 분명 큰 힘이 될 터였다. 쓰지 않으면 아까울 정도로 귀중한, 일주일 분량의 미래 지식이 그의 머릿속에 담겨있었다.
대대장은 의심 어린 눈초리로 그를 바라봤다. 하지만 그의 말을 곧바로 마다하진 않았다. 만약 눈앞에 있는 이 남자가 정말로 예언자라면, 이 지옥 같은 상황을 뒤집을 희망이 될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실낱같은 희망에라도 의지해야 할 정도로 이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대대장은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그의 말에 대답했다.
“어디 한 번 말해봐. 들어는 봐 줄 테니까.”
대대장의 대답이 들려오자 재환은 미래의 지식을 읊었다.
얘기가 끝나자 대대장은 눈을 가늘게 뜬 채 의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맨정신으로 듣기에는 기괴하기 짝이 없는 얘기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