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35
멸망의 예언자 (1)
“…그러니까, 지금 나보고 그 말을 믿으라는 건가? 진심으로?”
“네, 전부 사실이니, 확인만 하시면 됩니다. 어떤 것부터 확인할지는 대대장님 몫이고요.”
재환은 자신이 알고 있는 미래의 사건을 대대장에게 전달했다.
괴물이 된 마태오 신부가 사람과 괴물을 가리지 않고 사냥해 냉동고에 보관 중인 사건.
대피 구역에 아가페란 마약이 퍼져서 사람들이 나무 괴물로 변해버린 사건.
그리고 이로 인해 도시 기능이 마비되어 대피 구역 전체가 몰락한 일과 암브락사스가 임해 모든 것이 끝나버린다는 결론까지.
모든 것을 전해 들은 대대장은 수심이 깊어진 표정으로 재환에게 말했다. 미친 자의 헛소리로 치부하기에는 꺼림칙한 얘기였기 때문이다.
그의 눈에는 멀쩡한 얼굴로 정신 나간 소리를 읊조리는 저 남자가 괴물처럼 보였다.
“일단 다시 앉아 봐. 그냥 넘어갈 문제는 아닌 것 같으니까.”
재환은 대대장의 권유를 받아들여 다시 자리에 앉았다. 대대장은 새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며 말했다.
“다른 사람이 그런 말을 했으면 개소리하지 말라고 했을 거야. 완전 미친놈 헛소리 같은 얘기니까. 솔직히 지금도 실감이 안 나는 건 마찬가지야. 그런 얘기를 덥석 믿으면 그게 더 미친놈인 거지.”
그는 담배 연기를 후욱 하고 내뱉었다.
“문제는 그 미친놈이 그냥 미친놈이 아니라는 거지. 비정상적인 힘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괴물을 죽이는 미친놈이 진지하게 개소리를 늘어놓고 있어. 그것도 사람을 2천 명씩이나 구조해서 데려온 다음에 말이야.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지. 미칠 노릇이야.”
재환은 대대장의 넋두리에 쓴웃음을 지었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면 골치 아픈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냥 믿기에는 검증할 수단이 부족하고, 믿지 않고 넘어가기에는 위험 부담이 상당하다.
자신의 선택 하나로 수많은 목숨이 좌지우지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지휘관으로서는 골치 아픈 난제일 수밖에 없었다.
재환은 담배 연기를 내쉬는 대대장에게 충고했다. 그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서였다.
“지금 당장 믿어달라는 뜻은 아니에요. 지금부터 하나씩 차근차근 확인하면 되는 거니까. 괴물이 된 사냥꾼 문제도, 마약 문제도, 거대 괴물도. 하나씩 검증하다 보면 제가 무슨 뜻으로 이런 말을 한 건지 이해할 수 있겠죠.”
하지만 그 말에 대대장의 표정은 오히려 더 어두워졌다. 도시 하나가 멸망한다는 예언을 증명하는 것이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자네 말대로면… 우리한테 희망이 있긴 한 건가? 우리는 겨우 일개 대대 병력이야. 최대 화력이라고 해 봐야 장갑차 셋에 박격포 일곱이 전부라고. 이걸로 그 ‘암브락사스’라는 놈 못 잡으면 다 끝나는 일인데, 이게 다 의미가 있냐 이 말이야.”
재환은 그 말에 곧바로 대답하는 대신 대대장의 표정을 살폈다. 이전에 만났던 대대장에게는 괴물을 쓸어버려 이 악몽을 끝내려는 의지가 있었다. 그 호전성을 높이 샀기 때문에 그는 대대장에게 자신의 지식을 공유한 것이었다.
‘군부대가 그 꼴이 난 것도 후퇴하는 대신 싸우자고 했다가 그렇게 된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람을 잘못 본 건가.’
그렇게 결론을 내리려던 재환은 대대장의 표정이 굳어있는 것을 본 뒤 생각을 바꿨다.
그의 표정이 어두워진 것은 그만큼 승리에 대한 확신이 간절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읽어냈기 때문이다. 질 게 뻔한 전쟁에 참여하고 싶지 않은 것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였으니까.
“희망이 있는지는 저도 몰라요. 솔직히 이길 수 있을지는 저도 잘 모르겠고요.”
암브락사스는 까마득하다. 만약 그 괴물이 인간을 사랑으로 이끄는 성자가 아니라 마구잡이로 잡아먹는 포식의 성자였다면, 이 도시는 개미핥기를 만난 개미집처럼 유린당했을 것이다. 그 정도로 인간과 성자의 격차는 아득했고, 이는 직접 상대한 이후에는 더욱 뚜렷해진 생각이었다.
“그래도 하나는 확실하게 알죠. 이대로 있으면 일주일 안에 여긴 확실하게 망한다는 겁니다. 다들 죽거나, 미치거나, 괴물이 되는 거죠. 그런 꼴을 그냥 두고 볼 생각이면, 굳이 말리진 않을게요. 그럴 바에는 이대로 군대 해산하고 각자 알아서 사는 게 나을 테니까. 다 같이 마약이나 빠는 게 해피엔딩일지도 모르죠. 그러면 웃으면서 죽을 순 있을 테니까.”
암브락사스의 사랑은 마약이다. 상대에게 강제로 행복을 주입해 천국으로 이끄는 그 방식은 허울 좋은 폭력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괴물의 사랑을 그대로 내려받은 사람들은 모두 죽거나 미치고 만다.
일방적인 사랑이 폭력인 이상, 암브락사스의 사랑을 그대로 놔두는 것은 인간의 존엄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일이었다.
지난 일을 떠올리자 재환의 목소리가 거칠어졌다. 지난날의 실패와 절망, 그리고 분노가 떠오르면서 말투가 예리해지기 시작했다.
“다시 말하지만, 이길 수 있다는 보장은 없어요. 저는 이미 한번 실패했고, 또 실패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는 차갑게 식은 목소리로 대대장에게 말했다. 이 말은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대신 이거 하나는 확실하게 말할게요. 군대가 망해도, 경찰이 망해도, 이 도시 전체가 망해도, 나는 괴물을 죽이고 죽을 겁니다. 괴물이 이 악몽의 원인인 이상, 몇 번을 죽어도 괴물은 죽이고 죽을 거란 말입니다.”
말이 끝나자 잠시 정적이 흘렀다.
대대장은 대답을 하는 대신 묵묵히 담배를 태웠다. 저 남자의 말을 완전히 믿을 순 없었다. 사실에 근거해 전략을 세워야 하는 위치에 앉아있는 이상, 섣불리 결정을 내리는 것은 수많은 목숨을 사지를 내모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이대로 농성을 하는 것 역시 소용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농성이 길어질수록 보급품은 떨어지고, 보급품이 떨어지면 탈영병이 늘어난다. 모든 병사가 사냥꾼처럼 괴물의 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되는 게 아닌 이상, 이는 막을 수 없는 흐름이었다.
대대장은 담뱃불을 꺼트린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재환에게 악수를 건네며 말했다.
“아버지는 폐암으로 돌아가셨어. 할아버지는 직장암으로 돌아가셨지. 자네가 진짜 시간 여행자면, 다음번에는 한번 써먹어 봐. 스토커 취급은 안 할 테니까.”
결국 대대장은 눈앞에 있는 이 ‘자칭 예언자’의 말을 인정하기로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희망조차 없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암브락사스를 사냥하기 위한 계획이 시작되었다.
* * *
면담이 끝나고 여덟 시간이 지난 뒤. 대대장은 경찰 간부를 초청해 군사 회의를 진행했다.
그곳에서 재환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대대장의 공인 하에 ‘군부대의 첩보’라고 설명한 뒤 암브락사스를 사냥할 계획을 제시했다.
“…마지막으로 정리하겠습니다. 계획의 핵심은 총 세 가지. 사냥꾼들은 괴물의 피를 마셔서 괴물에 대항할 힘을 기르고, 그 사이에 사냥꾼이랑 경찰이 협조해 ‘아가페’란 약물이 퍼지지 않게 억제하면서, 준비가 끝나면 군부대의 화력을 지원받아 거대 괴물, ‘암브락사스’를 공격하러 가는 거죠. 여기까지가 이번 계획의 핵심 내용입니다. 질문 있으십니까?”
재환의 말이 끝나자 회의에 참석한 모든 이들의 표정이 굳었다. 가뜩이나 식량난과 주거 문제로 인력이 부족한 와중에 거대 괴물이 도시를 멸망시킬 거란 얘기를 받아들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잠시 적막이 이어지던 그때, 상석에 앉아있던 경찰서장 김태수가 입을 열었다.
“얘기 잘 들었습니다. 만약 그쪽이 말한 ‘첩보’가 사실이라면, 합당한 내용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사실이라고 가정한다면 말이죠.”
김태수는 재환이 말했던 ‘첩보’라는 단어를 강조해서 말했지만, 이를 굳이 문제 삼지는 않았다.
정보의 출처가 미심쩍기는 해도 이를 검증할 수단이 마땅치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보의 출처를 하나하나 따지기 시작하면 회의의 진행이 지지부진해질 뿐이었다.
자신의 입장을 은근하게 표현한 김태수는 그렇게 운을 뗀 뒤 본론을 말했다.
“얘기를 들어보니, 저희가 도와드려야 하는 부분은 ‘아가페’라는 마약 부분인 것 같은데, 이 부분에 대해서 질문이 있습니다.”
“어떤 질문이시죠?”
“방금 설명하신 말에 따르면, 사냥꾼분들은 아가페라는 마약을 복용해 괴물이 된 사람을 어느 정도 구분할 수 있는 것 같은데, 맞습니까?”
재환은 마약을 복용해 권속이 된 사람들의 머리에 뇌를 닮은 새싹이 돋아났던 것을 떠올리며 말했다.
“네. 저는 일정 수준 이상으로 복용한 사람은 구분할 수 있습니다. 완벽하게는 아니지만요.”
“그러면 다른 사냥꾼분들도 그렇습니까? 그리고 만약 그런 게 가능하다고 한다면, 괴물이 된 사람들은 어떻게 처리할 겁니까? 우리는 이해할 수 있어도, 사람처럼 생긴 괴물을 죽이는 이유를 설명하는 건 쉽지 않을 겁니다. 경찰도 군인도, 다들 원래는 서울 시민이었으니까요. 시민들의 불안과 안전을 생각하면, 함부로 결정할 일은 아닌 것 같은데요.”
‘안전’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재환은 이를 악물었다. 지난 생에서 사람 탈을 뒤집어쓴 괴물 때문에 감방에 갔던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안전, 안전, 안전! 그놈의 안전 때문에 미적거리느라 다 죽었지.’
안전 때문에 안일하게 대처한 결과, 도시가 어떤 꼴을 당했는지 떠오르자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도시 전체가 암브락사스의 사랑으로 뒤덮이고, 동료였던 여자의 자살을 도왔던 경험은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악몽이었다.
하지만 그는 히스테릭해지는 것을 간신히 억눌렀다. 그당시의 일에는 자신의 책임도 있었고, 여기서 분노를 토해내 봐야 미친 사람 취급당할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참자. 이건 참아야 돼. 여기서 못 참으면 혼자서 고생하는 길밖에 안 남으니까. 혼자서 지랄하는 건 나중에 해도 돼.’
한순간의 짜증으로 인해 군경과의 협력을 망칠 수는 없었다, 군경과 협력하면 총기류와 의약품, 그리고 괴물의 피 등을 지원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혼자서 괴물의 피를 모으는 것에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는 만큼,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 이들과의 관계는 원만히 해 두는 편이 좋았다.
“아직은 확답을 못 드려요. 다른 사냥꾼들도 저처럼 사람과 괴물을 구분할 수 있는지는 실험을 해 봐야 아는 거거든요.”
그러자 경찰서장은 재환의 말에 의문을 제시했다.
“실험이라면 무슨 실험을 말하는 거죠?”
“괴물의 피에 관한 거예요. 괴물의 피 중에서도 특별한 피가 있거든요. 사람이라고 다 같은 사람이 아닌 것처럼, 괴물이라고 다 같은 괴물이 아닌 거죠. 저는 그 피를 일단 ‘위대한 피’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사냥꾼이 그 피를 마시면, 감각이 확장되면서 볼 수 없던 게 보이거든요.”
‘위대한 피’라는 말에 회의에 참석한 간부들의 표정이 굳었다. 괴물의 피에 ‘위대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는 사실이 기괴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잠시 정적이 흐른 뒤, 김태수는 다른 이들을 대표하여 질문했다.
“…그 정보도 ‘첩보’로 안 겁니까? 그 ‘위대한 피’라는 거 말이에요.”
재환은 그 말에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이건 경험으로 안 거예요. 제가 직접 그런 괴물을 죽여 봤고, 그 괴물의 피를 마셔봤어요. 이게 저한테만 그런 건지, 다른 사냥꾼한테도 그런 건지는 확인해 봐야겠지만요.”
그 말에 김태수 총경은 한숨을 내쉬었다. 대화를 하면 할수록 미궁에 빠져드는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사냥꾼들이 일반인에 비하면 특이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의 눈에는 저 남자가 괴물만큼이나 불가해한 존재처럼 보였다.
김태수 총경은 기운 없는 표정으로 질문했다.
“그러면 그 ‘위대한 피’라는 물건은 어떻게 구할 겁니까? 보아하니 어떻게 구할지는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네, 알고 있죠. ‘위대한 피’를 가지고 있는 괴물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거든요. 사람의 탈을 뒤집어쓴 괴물이… 어디에 둥지를 틀었는지 말이죠.”
김태수 총경은 그 음산한 말에 식은땀을 흘렸다. 사람의 모습을 한 괴물을 죽이는 것에 거리낌 없어 하는 태도를 보자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낀 것이다. 경찰이 지금까지 괴물을 거리낌 없이 죽일 수 있었던 것은 외형이 명백하게 달랐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진짜였으면 좋겠군.’
김태수 총경은 저 사냥꾼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길 바랐다. 만약 저 남자가 사기꾼이라면 괴물을 죽인다는 명목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마녀사냥을 당할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싸늘한 적막이 흐르며 회의는 일단락되었다. 그리고 그날 밤, 재환은 군인 몇 명과 함께 ‘인육창고’를 수색하러 나섰다.
괴물이 된 사냥꾼을 찾아내 ‘위대한 피’를 얻기 위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