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37
멸망의 예언자 (3)
“변명할 거면 변명해 봐. 이것도 그 잘난 ‘예언’ 안에 들어가는 내용인가? 우리 부대원 여섯 명이랑 경찰 두 명을 정신병자로 만들어놓은 게?”
상황이 종료되자 보고를 전해 받은 대대장은 재환을 불러 윽박질렀다. 괴물의 단말마에 직격당한 부대원들이 모두 백치나 다름없는 상태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대장은 부대의 지휘관으로서 작전을 수행하러 간 부대원 모두가 사실상 전투불능 상태가 된 이 상황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했다.
하지만 재환은 대대장의 질책에 미안해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미쳐버린 덕분에 더 많은 인명을 아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필요한 희생이었다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이는 지난밤 내내 스스로를 설득한 결과물이었다.
재환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며 말했다.
“대대장님. 다른 분들이 그렇게 된 건 유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는 불이 붙은 담배를 입으로 가져가며 말했다.
“그런데, 말은 똑바로 하셔야죠. 사람들을 그렇게 만든 건 제가 아니라 괴물이니까요.”
“지금 그걸 말이라고…!”
“대대장님도 사실 잘 알고 계시잖아요. 경찰이랑 군인분들이 그렇게 된 덕분에 인명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게 된 거, 설마 모른 척하실 건 아니죠? 그리고 애초에 이번 작전은 대대장님도 동의하신 내용이었고요. 저 혼자 결정한 건 아니었잖아요.”
재환의 말에 대대장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괴물의 단말마가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게 된 것은 분명 큰 수익이었다. 만약 이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부대를 총동원했다면 암브락사스를 토벌하는 것에 성공하더라도 부대가 전멸했을 가능성이 농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알게 됐더라도 대대장의 표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괴물을 죽이게 되면 누군가는 반드시 미쳐버리고 만다는 사실이 그의 머릿속을 압박했다.
“그래… 알지. 잘 알지. 박격포 한 번 쏠 때마다 사람 한 명이 죽을 수도 있다는 거, 잘 알고 있다고. 알고 있었다고… 젠장…”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진실이 수면 위로 떠오르자 대대장은 괴로워했다. 서울에 주둔한 주력 부대가 어떤 식으로 패퇴했는지 윤곽이 드러나자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든 것이다.
재환은 담배를 한 모금 마신 뒤 입을 열었다.
“부대원들한테 쏘라고 하기 힘들면, 제가 대신 쏘겠습니다. 저는 그래도 그 괴물들 상대로 어느 정도 버틸 수 있거든요. 부대원들 희생을 최소화하려면, 그게 최선입니다.”
“뭘 믿고 자네한테 박격포를 맡기란 건가? 포 조작하는 게 그렇게 만만해 보이나 보지?”
대대장이 언성을 높이자 재환은 그를 노려봤다.
“대대장님… 뭘 착각하고 계시나 본데, 저는 믿어달라고 애원한 적 없어요. 저는 정보를 드린 거고, 판단은 대대장님이 한 거죠. 그리고 제가 거짓말을 한 게 아니란 건 대대장님이 더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인육 창고도 사실이고, 마태오 신부가 괴물이 된 것도 사실이고, 사람을 미쳐버리게 만드는 괴물이 있는 것도 사실이었죠. 자, 이래도 내가 장난치고 있는 걸로 보입니까? 아직도 내가 구라치고 있는 걸로 보이냐고요.”
그 말에 대대장은 침묵했다. 그의 말을 믿는 것도, 그의 말을 부정하는 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전한 미래의 지식은 그만큼 절망적이었고, 이를 부정할 근거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수렁 속으로 빠져드는 것만 같은 기분에 대대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네 말이 틀려서 다 죽으면 어떻게 책임질 건가… 다 죽었는데 나중에 지원군이라도 오면… 그땐 어떻게 할 거냔 말이야…”
그는 지휘관이었기 때문에 잘 알고 있었다. 바로 서울을 봉쇄한 이 재앙이 어느 날 갑자기 끝날 수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애초에 아무런 전조도 없이 시작된 현상인 만큼, 아무런 전조도 없이 사라질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 실낱같은 희망 때문에 대대장은 탈영하지 않았다. 세상이 멀쩡해지면 평생 동안 쌓아온 장교 인생이 한순간에 무너질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재환은 대대장의 얼굴에 두려움과 불안이 퍼져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재환은 그를 동정하는 대신 미래의 지식을 읊어서 쐐기를 박았다.
“이거 하나는 확실하게 말할게요. 지원군은 안 옵니다. 적어도 일주일 안에는 절대 안 와요. 서울 밖에서도 안 오고, 서울 안에서도 안 옵니다. 만약 온다고 해도, 암브락사스가 살아있으면 다 소용없는 짓이기도 하고요.”
그는 그렇게 말한 뒤 대대장의 재떨이에 담배꽁초를 지져 담뱃불을 꺼트렸다.
“그래도 여기서 농성하고 싶으시면, 말리진 않을게요. 다 죽거나, 미치거나, 괴물이 되거나. 그렇게 돼도 상관없으면 그냥 이대로 농성이나 잘하고 계세요. 그것도 싫으면 차라리 모르핀 한 대 빨고 권총 자살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죠. 적어도 죽을 땐 사람 꼴로 죽을 수 있으니까.”
한바탕 폭언이 쏟아지자 대대장실에 정적이 흘렀다. 뿌연 담배 연기가 안개처럼 자욱하게 대대장실을 매웠다. 대대장은 피우던 담배를 재떨이에 지져 꺼트린 뒤 창문을 열어 환기했다.
“시간 나면 박격포 조작하는 법 배우러 와. 애먼 우리 대원 죽는 것보단 박격포 몇 대 맡기는 게 낫겠지.”
재환은 등을 돌린 대대장에게 경례한 뒤 대대장실을 나왔다. 이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지휘관으로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에 대한 예우였다.
* * *
대대장과의 면담이 끝난 뒤, 재환은 경찰서를 방문했다. 사냥꾼을 소집해 그들에게 협력을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지금 당장은 스케줄 조정 때문에 힘들어서 아마 힘들 겁니다. 오늘이 3월 12일이니까, 내일 오후 4시에 다 같이 뵙는 건 어떠세요?”
담당 경찰의 말에 재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다른 사냥꾼을 만나기 전에 확인해야 했던 것들이 남아있던 차였기 때문이다.
“네, 그러면 그때 뵐게요. 수고하세요.”
그렇게 인사를 마친 뒤 경찰서를 나오려 했을 때, 그는 무의식적으로 숨을 죽이고 말았다. 자신을 구해줬던 김태현 순경과 자신이 죽여야 했던 이해리 순경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는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을 느끼며 시선을 피했고, 그들을 스쳐 지나가 경찰서를 빠져나왔다. 그는 유령이라도 본 것 같은 감각을 진정시키기 위해 숨을 내쉬었다.
‘정신 차리자. 멘탈 잡아야지. 이런 거에 하나하나 흔들리면 오래 못 버틸 거야.’
심호흡을 하던 그는 생각을 가다듬기 위해 미리 세워뒀던 계획을 점검했다. 그는 오늘 중으로 능력치 분배를 끝내고, 지하철에 방문해 손등에 새겨진 문장에 대해 알아볼 예정이었다.
‘그래도 저번보다는 나아. 이번에는 군대가 적극적으로 지원해주고 있으니까. 경찰한테 간접적으로 받는 것보단 훨씬 낫지.’
그는 지하철로 걸어가며 상태창을 떠올렸다.
[현재 레벨: 91] [강화 가능 능력치(+23)] [근력: 20] [민첩: 10] [체력: 10] [내구: 10] [재생: 10] [지혜: 67] [현재 지력: 3]대피구역으로 오는 길에 수십 마리의 괴물을 사냥하고, 대피구역에 도착한 뒤에는 군부대에게 150마리 분량의 괴물 피를 제공받은 덕분에 그의 레벨은 현저하게 높아져 있었다. 하루 만에 괴물의 피를 150마리 분량이나 제공받은 것은 2000여 명의 사람을 구조한 것이 크게 작용한 덕분이었다.
‘근력이랑 지혜는 확보했으니, 남은 능력치를 어디에 먼저 투자할지가 문제인데…’
제한된 시간 안에 올릴 수 있는 레벨이 한정되어있는 만큼, 능력치를 효율적으로 분배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었다. 특히 레벨이 100을 넘어가는 시점부터는 레벨 업 효율이 급감하는 만큼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능력치를 분배할지는 신중히 결정해야 할 일이었다.
‘재생이랑 체력은 일단 미뤄두자. 지금 당장은 효율이 안 좋으니까.’
이전 생에 모든 능력치를 골고루 올려둔 것이 판단을 내리는 것에 도움이 되었다.
이를테면 올려뒀던 민첩이 사라지자 반사신경과 반응속도가 둔해진 것이 느껴졌고, 체력이 사라지자 지구력이 떨어진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일단은 민첩에 전부 투자하자. 민첩이 낮으면 그 많은 덩굴에 대응 자체를 할 수가 없으니까.’
고민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현시점에서 능력치를 최적으로 분배하기에는 경험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능력치를 어떤 식으로 분배하는 게 최선인지는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만 알 수 있는 정보였다.
그는 그렇게 남은 능력치를 전부 민첩에 투자한 뒤 신내역을 향해 걸어갔다. 손등의 문장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여긴 여전히 음침하네.
계단을 따라 신내역 역사로 들어선 그는 주변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는 기척을 느낀 뒤 랜턴을 비췄다. 그리고 거적때기를 입은 채 뼈만 남아 움직이는 인간형 괴물이 흐느적거리며 다가오는 모습을 확인한 뒤 소방도끼를 들어 올렸다.
‘그래. 이 친구들도 여전하구만.’
민첩을 올려둔 덕분에 괴물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하자 가뜩이나 느렸던 움직임이 슬로우 모션처럼 느리게 보였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는 괴물을 향해 망설임 없이 달려들 수 있었고, 총알 하나 쓰지 않고 괴물을 제압하는 것에 성공했다.
괴물을 제압한 그는 움직임을 멈춘 괴물의 뼈를 발로 밟아 으스러뜨리며 주변을 살폈다. 주변에 여전히 기척이 남아있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는 물러서는 대신 한 손에는 도끼, 다른 손에는 랜턴을 쥔 채 역사를 활보했다. 그러자 어둠 속에서 수차례 랜턴의 불빛이 흔들리는 것과 함께 뼈만 남은 괴물들이 모조리 부서졌다.
주변에 있던 괴물을 모조리 제압한 그는 이전에 탈바꿈이 있던 캐비넷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캐비넷을 향해 가까이 갈수록 손등의 문장이 빛을 발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캐비넷을 찾아낸 그는 손등의 문장을 캐비넷 위의 문장과 겹쳐놨다. 그러자 철컥거리는 소리와 함께 캐비넷의 잠금장치가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재환은 캐비넷 안쪽에서 모습을 드러낸 탈바꿈을 집어 든 뒤 생각에 잠겼다.
‘차라리 바로 샬롬에 갈까?’
위험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정보를 종합하면 샬롬에서 죽을 경우 몸을 빼앗기게 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몸을 다른 사람에게 빼앗긴다는 사실 자체에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꼈다. 만약 몸을 빼앗기는 것이 영구적이라면 그는 영영 몸을 잃게 되는 셈이었고, 이는 지금까지의 고생이 모두 헛수고가 된다는 말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샬롬이 미지로 가득 찬 이계인 이상, 함부로 목숨을 거는 것은 위험한 도박이었다.
그러나 탈바꿈을 손에 쥐게 된 순간, 그는 이 위험한 도박에 몸을 맡기고 싶은 충동을 강렬하게 느꼈다. 샬롬에서 얻은 것이 다음 생에도 계승된다는 점도 욕심이 나는 부분이었고, 이대로 자신의 목숨을 남에게 맡기고 쉬는 것도 나쁘지 않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수백 마리가 넘는 괴물을 죽이고, 괴물이 된 아버지를 몇 번이고 죽이면서 그의 정신은 점점 마모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탈바꿈을 쓰다듬던 재환은 얼마 지나지 않아 고개를 저었다. 지그문트가 어떤 심정으로 목을 내어줬는지 떠올리자 자살할 마음이 사그라든 것이다.
‘잊으라고 했지. 그러는 게 더 속 편할 거라고.’
그는 숙연한 마음으로 탈바꿈을 챙겨서 바깥으로 나갔다. 설령 샬롬에 다시 방문하는 일이 있더라도 자살할 생각으로 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미 죽은 사냥꾼에게 자신의 목숨을 떠넘긴다는 것은, 맨정신으로 행하기에는 부끄러운 행동이었다.
그리고 나약한 생각을 잊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탈바꿈을 되찾은 재환은 대피구역 바깥으로 나가 괴물을 사냥했다. 되찾은 무기를 시험하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곳곳에 숨어있을 암브락사스의 권속을 찾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그의 예상이 맞다면, 암브락사스의 권속은 사랑을 퍼트리기 위해 도시 바깥에서 둥지를 틀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리고 수 시간에 걸쳐서 동대문구와 중랑구를 구석구석을 수색한 끝에 그는 꽃가루가 묻은 점액질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는 암브락사스의 권속이 흘리고 다니는 흔적이었다.
재환은 흔적이 이어진 상가 건물을 올려다봤다. 그리고 창문 너머에 사람 형상의 괴물이 있는 것을 확인한 뒤 수류탄을 던졌다.
도시를 망친 주범 중 하나인 권속을 몰살시킬 시간이 되자 황홀할 지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