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39
멸망의 예언자 (5)
재환의 말에 두 사냥꾼은 침묵했다. 위대한 피를 마신 두 사람의 태도가 정상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비정상인 사람이 위대한 피를 마시는 건지, 아니면 위대한 피를 마신 사람이 비정상이 되는 건지 알 수 없는 이상 두 사냥꾼이 경계하는 것은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렇게 회의실에는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고, 그 침묵을 깬 것은 강철우였다. 그는 시간이 아깝다는 듯한 태도로 회의실 내의 사람들에게 선언했다.
“더 볼일 없으면 난 간다. 저 대가리들은 다 괴물 머리니까, 그렇게 알고.”
몇몇 경찰이 그를 붙잡으려 했다. 그들의 눈에는 저것이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잠깐만요, 저게 어떻게 봐서 괴물…!”
“괴물이야, 괴물이라고, 씨발. 못 믿겠으면 저 새끼들한테도 저 이상한 거 먹어보라고 해. 그러면 누가 구라치는지 확실하게 알겠지.”
강철우는 그렇게 말한 뒤 투구를 뒤집어썼다. 더 이상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그렇게 강철우가 회의실을 떠나려 했을 때, 재환은 그의 어깨를 잡아 그를 멈춰 세웠다.
“방금 그거 공짜로 드린 거 아니에요. 다 같이 협조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드린 거지.”
“협조? 협조라…”
강철우는 자신의 어깨에 올려진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그 잘난 협조가 내 딸 죽인 놈들 찾는 것보다 중요한지 설명해봐. 설명 못 할 것 같으면 그냥 닥치고 있고.”
“중요하죠. 여기서 협조 안 하면 이제 며칠 안에 다 같이 죽거나 미쳐버릴 테니까. 당연히 당신도 포함해서.”
재환의 말이 끝나자 회의실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 잠깐의 정적 사이에 그는 강철우의 최후에 대해 떠올렸다.
지난 생에 이해리는 강철우가 전사했다고 말했고, 이는 그가 괴물과 싸우다 죽었거나 혹은 그 외의 위협과 싸우다 죽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렇기 때문에 재환은 망설임 없이 강철우를 불러세울 수 있었다. 이대로 가면 다 같이 공멸하는 미래에 더 가까워진다는 것은 분명했으니까.
“이디 한번 말해봐. 뭐 때문에 다 같이 뒤진다는 건지, 지껄여보라고.”
강철우의 말에 정적이 깨지자 재환은 곧바로 설명을 시작했다.
“며칠 안에 암브락사스라는 거대 괴수가 여기로 쳐들어올 거예요. 그 괴물이 쳐들어오기 전에 다 같이 죽이러 가야 하고요. 그러니까 협조 좀 해 주시죠. 나도 목숨 걸고 하는 일이니까요.”
하지만 들려오는 대답은 단호했다. 강철우는 칼 같은 태도로 그의 말을 거절했다.
“안 돼. 그러다 죽으면 개죽음이니까. 너도 가족이 있으면 알 거 아니야. 자기 가족이 개새끼들 때문에 죽었는데, 그냥 두고는 절대 못 죽지. 절대. 절대 못 죽지.”
가족을 들먹이는 말에 재환은 눈을 부릅떴다. 가슴 깊이 묻어뒀던 상처가 쑤시는 기분에 말투에 날이 서기 시작했다.
“누군 가족 안 죽어서 이 지랄하는 줄 압니까? 며칠만 좀 투자해 달라는데, 그게 그렇게 어려워요?”
그러자 강철우는 다시 투구를 벗었다. 그는 맨얼굴을 드러낸 채 자신의 복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감정을 쏟아냈다.
“그 개 같은 거 나눠준 게 그렇게 아까우면, 내 배를 가르고 꺼내 가던가. 쪼잔한 새끼야.”
강철우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재환은 주머니에 넣어뒀던 권총을 꺼내 천장에 발사했다. 권총의 총성이 회의실 내에 울려 퍼지자 강철우의 동공이 커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경고사격을 끝낸 재환은 곧바로 권총을 강철우의 머리를 향해 조준했다. 그는 자신을 말리기 위해 다가오는 경찰관의 손을 뿌리쳤고, 경찰들은 권총집에서 총을 뽑은 뒤 긴장된 표정으로 재환을 바라봤다.
재환은 자신에게 겨눠진 총을 무시한 채 강철우에게 말했다.
“내기 한 번 더 합시다. 내가 당신 쏠 수 있을지 없을지. 어디 한 번 걸어 봐요. 내가 안 쏠 것 같으면 그대로 나가 보시던가.”
강철우는 곧바로 대답하는 대신 재환의 얼굴을 노려봤다. 그리고 자신이 저 남자를 제압하는 것과 저 남자가 방아쇠를 당기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빠를지 계산한 다음 자존심을 굽혔다.
“…죽지 않을 법한 일로 맡겨 봐. 며칠 정도는 도와줄 테니까. 이 이상은 안 돼.”
대답이 들려오자 재환은 방아쇠를 당기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억눌렀다. 아직 판을 엎어버리기에는 너무 이른 시점이었다.
“대피 구역 안에 사람처럼 생긴 괴물이 있으면 체포해서 경찰서로 데려와요. 그 괴물들이 다른 사람을 괴물로 감염시키거든요.”
“데려온 다음엔 어떡할 건데?”
“검증을 끝내고, 다들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죽여야죠. 그대로 두면 전염병 퍼지는 것처럼 괴물병이 퍼질 테니까요.”
괴물병이 퍼진다는 말에 주변에 있던 경찰들이 웅성거렸다. 그렇지 않아도 어제 기이한 비명이 퍼지면서 사람이 괴물이 되는 현상이 대규모로 일어났던 차였기 때문에 괴물병이 퍼진다는 얘기는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문제였다.
재환이 말이 끝나자 강철우는 다시 투구를 착용했다.
“삼일. 삼일은 도와준다. 그다음은 알아서 해.”
“그 정도면 됩니다. 괴물 죽인답시고 멀쩡한 사람 죽이지만 마세요.”
“꼬우면 직접 확인하고 죽이던가.”
강철우는 그렇게 말한 뒤 회의실을 떠났고, 재환은 권총을 넣은 뒤 남은 두 사냥꾼에게 위대한 피를 권했다.
“자, 마실 거면 빨리 드세요. 아직도 미심쩍으면 관두시고요.”
재환의 말에 설지훈은 뒷걸음질 쳤지만 한사랑은 무언가를 결심한 듯한 표정으로 앞으로 나섰다.
강철우가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은 덕분이었다.
그녀는 마치 신탁을 내려받으려는 무녀라도 되는 것처럼 결연한 표정으로 위대한 피를 받아들였다.
“…혹시 제가 이거 먹고 잘못되면, 저 대신 우리 교회 분들 보살펴 줄 수 있을까요? 다 어르신이거나 어린 애들이거든요.”
그 말에 재환은 망설였다. 괴물을 사냥하기에도 바쁜 와중에 노약자를 돌보는 것까지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거짓말을 하면 그만인 일이었지만, 목숨을 건 사람을 상대로 거짓말을 하기에는 한 줌의 양심이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재환이 모습을 보던 한사랑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녀는 이런 세상에 남을 돕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란 걸 모를 정도로 순진한 사람은 아니었다.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그냥 해 본 말이니까요. 내 목숨인데, 내가 책임져야죠. 괜히 부담 줘서 미안해요.”
그녀는 그렇게 말한 뒤 위대한 피가 담긴 병의 뚜껑을 열었다. 수은 빛깔의 액체가 담긴 병을 입에 댄 그녀는 긴장된 표정으로 위대한 피를 목으로 넘겼다.
이 수은 빛깔의 액체가 미지의 물질인 만큼, 이 피를 먼저 마셨던 두 사람이 무사했다고 해서 그녀 역시 무사하리라는 보증은 없었기 때문이다.
병 속에 담겨있던 위대한 피를 전부 비워낸 한사랑은 멍한 눈동자로 허공을 바라봤다. 그녀가 아무런 반응 없이 멍하니 서 있자 주변에서 걱정이 담긴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저분 괜찮으신 거야?”
“병원 데려가야 할 것 같은데…”
결국 경찰 중 한 명이 한사랑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가까이 갔을 때, 한사랑은 손을 들어 올려 다가오려는 경찰을 제지했다.
“괜찮아요. 잠깐… 잠깐 현기증 같은 게 나서 그랬어요. 이제 괜찮아요… 이제야… 이제야 모든 게 선명하게 보이거든요.”
영문을 알 수 없는 소리에 주변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재환은 그녀의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탁자 위에 놓인 권속의 머리통을 가리키며 말했다.
“솔직하게 말해주세요. 이게 뭘로 보여요?”
그녀는 나른한 시선으로 머리통을 바라봤다. 그리고 다른 머리통 하나를 들어 올린 뒤 느긋한 손길로 쓰다듬었다.
“새싹이네요. 뇌를 닮긴 했어도. 새싹이네요. 파릇파릇한 새싹.”
그 부드러운 목소리에 재환은 불길함을 느꼈다. 하지만 속삭임이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고, 괴물의 흔적 역시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섣불리 행동할 수는 없었다.
한사랑은 머리통을 다시 탁자 위에 올려놨다.
“죄송하지만, 도와드리는 건 못 할 것 같아요. 더 중요한 사명이 들렸거든요. 이제야, 이제야 모든 게 선명하게 보여요. 꿈에서… 긴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요.”
“꿈이라고요?”
“네. 우린 꿈을 꾸고 있었던 거예요. 우리 모두… 꿈을 꾸고 있던 거죠.”
아련한 표정으로 기이한 말을 내뱉은 그녀의 모습에 회의실에 있던 사람들은 숨을 죽였다. 그리고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을 때, 그녀는 품에 숨겨뒀던 권총을 꺼내 자신의 머리에 겨눴다.
그 모습이 마치 자신의 배역에 몰입한 배우처럼 자연스러워 보였던 나머지, 그 누구도 그녀를 미처 말리지 못했다.
그녀는 마치 여행이라도 떠나는 사람처럼 가벼운 손길로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쳤다.
“먼저 가 있을게요. 나중에 만나요.”
내세를 기약하는 그녀의 말에 재환은 황당해 했다. 위대한 피에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각오했지만, 이 정도로 정신 나간 상황을 마주하게 되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한사랑의 표정을 살핀 재환은 그녀를 말리는 것을 포기했다. 말려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재환은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그녀의 행선지를 물었다.
“어디로 가려는 건데요. 천국?”
“용산으로, 용산구로 가야 돼요. 용산구 밑바닥에서, 사냥꾼들이 기다리고 있거든요. 오래된 사냥꾼들이… 우릴 기다리고 있어요.”
그녀는 방아쇠에 천천히 방아쇠를 당기며 말했다.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부드러운 움직임이었다.
“혼자 고생시켜서 미안해요. 잘 지내요.”
방아쇠가 당겨지는 것과 함께 한사랑의 머리에 구멍이 뚫렸다.
회의실에 모인 사람들은 맥없이 쓰러진 한사랑의 모습을 보면서 아연해 했다. 그녀의 죽음이 지나치게 부조리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노약자를 돌보려던 사람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초연했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재환은 멍한 표정으로 한사랑을 내려다봤다.
`효과가… 효과가 너무 과하기라도 했던 건가? 그게 아니면 대체…`
멍하니 있던 것은 그 혼자만이 아니었다. 모든 사람이 총에 맞은 것처럼, 멍하니 한사랑의 시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정적을 뚫고 설지훈이 외쳤다.
“씨발…! 안 마셔. 난 안 마신다고! 씨발! 다 좆까라 그래! 씨발… 씨발, 개 미친 새끼들…!”
설지훈은 거의 울먹이다시피 욕설을 쏟아내며 회의실을 빠져나왔다. 말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들 이 회의실에 있다가는 미쳐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윤재환님.”
나이 든 경찰이 재환을 불렀다. 그는 재환의 손목에 수갑을 채우며 말했다.
“잠깐 수사에 협조해 주시죠. 설명이 필요합니다. 여기는 경찰서고, 우리는 경찰이니까요.”
재환은 수갑이 채워지는 것을 멍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철컥거리는 수갑 소리마저 현실과 동떨어진 것처럼 멀게 느껴졌다.
‘자살할까.’
경찰을 뿌리치는 것이라면 지금이라도 할 수 있었다. 아무리 수갑을 찼다곤 해도, 그의 운동 능력은 괴물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민첩도 충분히 높여뒀으니, 경찰이 차고 있는 권총을 뺏어서 자살하는 것쯤은 순식간에 해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뇌 속에서 요동치는 자살 충동을 간신히 억눌렀다. 죽을 땐 죽더라도 암브락사스를 상대하거나 샬롬에 가서 죽어야 한다는 사명감이 그의 정신을 일깨운 것이다.
‘한사랑은 자살했고, 설지훈은 도망쳤지. 강철우는 전사할 테고.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나까지 자살하란 법은 없잖아. 그런 법은 없는 거야.’
아무리 다시 시작할 수 있어도 목숨은 여전히 귀중한 자원이었다. 잠깐 알고 지냈던 여자 한 명이 죽었다는 이유로 낭비하기에는 더더욱 그랬다.
그렇게라도 생각해야 그는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래. 아직 시간은 있잖아. 천천히 생각하자. 다시 시작하는 건 나중에 해도 안 늦으니까.’
아직 시간이 남아있다는 생각에 그의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사냥꾼과 협력한다는 계획이 파탄 났어도, 아직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남아있었다.
그 사실이 기쁘게 느껴지자 그는 헛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시간이 남아있다는 것은 언제나 좋은 일이었다. 아직 기회가 있다는 사실이 그에게는 구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