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4
퍼스트 블러드 (3)
알람 설정을 끝낸 재환은 또다시 소방도끼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부엌에서 식칼을 세 자루를 꺼내 바닥에 내려놓았다. 혹시라도 도끼를 회수하지 못했을 경우를 대비한 예비용품이었다.
‘무기는 많을수록 좋으니까.’
준비를 끝낸 재환은 거실에 있는 시계를 보며 숫자를 세었다. 슬슬 알람이 울릴 시간이었다.
‘59…58…57…56···.’
재환은 속으로 시간을 세며 안방 문의 측면에 등을 기댔다. 폭발적인 속도로 도약할 수 있는 이 괴물은 방향전환에는 별 소질이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소리에 정신이 팔려있을 때 옆에서 기습하는 것은 눈치채지 못할 게 분명했다.
‘12…11…10…9…8…!’
속으로 시간을 세고 있을 무렵, 현관의 알람이 울렸다. 예상했던 것보다 조금 빠르게 울리긴 했지만, 재환은 당황하지 않았다. 어차피 속으로 세는 시간에는 오차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쾅!
방문이 부서지는 것과 함께 허그베어가 재환의 시야에 들어왔다. 괴물은 핸드폰의 알람에 시선이 쏠렸고, 재환은 그런 허그베어의 뒷목에 도끼를 내리쳤다.
콰직!
시뻘건 피가 튀기며 허그베어의 가죽이 갈라졌다. 섬뜩한 소리였지만 망설일 틈은 없었다. 재환은 녀석이 사람이 아니라 괴물이란 것을 다시 떠올리며 도끼를 뽑았다.
콰직!
휘청거리는 허그베어의 뒷목에 또다시 도끼가 내리 찍혔다.
“꾸어어…”
허그베어가 비틀거리며 뒷걸음질 치자 재환은 도끼를 뒤로 젖힌 뒤 괴물의 목을 향해 도끼를 후려쳤다.
콰직!
피가 쏟아지는 것과 동시에 바닥이 피로 흥건해진다. 심장은 두근거렸고, 온몸의 피는 화끈거렸다. 아드레날린에 온몸이 터져버릴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재환은 도끼질을 반복했다.
“꾸으어…”
허그베어는 자신의 목이 덜렁거리는 와중에도 포옹을 하려 했다. 재환은 만에 하나라도 녀석에게 붙잡히면 끝장이라고 생각하며 도끼를 손에서 놓은 뒤 물러섰다. 그리고 바닥에 내려놨던 식칼을 양손에 쥔 뒤 괴물에게 달려들었다.
“꾸으으어!”
곰이 흐느끼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재환은 녀석의 상처에 식칼을 꽂아넣었다. 이미 수차례 치명타를 입은 괴물은 별다른 저항을 하지 못했다. 그저 흐느적거리는 몸으로 포옹을 시도했을 뿐이었다. 재환은 괴물이 고통을 느끼는 틈을 타 도끼를 되찾았다.
‘아빠.’
그는 도끼로 괴물의 목을 후려쳤다. 그러자 괴물의 목이 끊어지면서 그 거구가 바닥에 쓰러졌다.
‘아버지.’
괴물은 목을 잃었어도 여전히 버둥거리고 있었다. 재환은 쓰러진 괴물의 사지를 향해 도끼를 휘둘렀다. 괴물의 사지는 쉽게 끊어지지 않았다. 내구력이 좋다는 ‘속삭임’의 정보는 사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괴물의 사지를 절단하기 위해 수차례 도끼질을 해야만 했다.
‘우리 아빠.’
허그베어의 양팔을 절단하고, 두 다리마저 모두 토막 낸 재환은 숨을 헐떡거리며 괴물을 내려다봤다. 괴물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완전히 죽은 것이다.
바닥은 피와 살점으로 지저분해졌고, 재환 역시 괴물의 피를 뒤집어쓴 탓에 온몸이 피로 흥건했다.
재환은 토막 난 사체를 멍하니 내려다봤다. 사람이 아니라 괴물이다. 그를 수차례 죽였던 괴물이었다. 이 사실을 일깨우려는 것처럼 또다시 속삭임이 들려왔다. 속삭임은 이미 말했던 내용을 다시 강조했다.
[괴물의 피를 마셔 힘을 취하라]속삭임 덕분에 멍하니 있던 재환은 다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이 ‘속삭임’은 괴물을 사냥하고, 괴물의 피를 마시라고 강요하고 있었다.
그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불쾌한 감정이 드러났다. 이 피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는 이상, 속삭임의 의도가 괘씸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는 괴물의 사체 앞에 무릎 꿇었다. 피를 마시기 위해서 아니었다. 아무리 괴물이 되었어도 이 괴물은 그의 아버지였다. 아무리 상황이 최악이어도 괴물의 피를, 그것도 아버지였던 존재의 피를 마실 생각이 쉽게 들지는 않았다.
“아빠…”
그는 차마 입에 담지 못했던 말을 내뱉었다. 그러자 한참 동안 참아왔던 눈물이 흘러나왔다.
“아빠…”
남자는 울어선 안 된다. 낡아빠진 생각이었지만, 그는 아버지에게 그렇게 배웠다. 하지만 25살 청년이 된 그는 서럽게 울부짖었다.
그렇게 한참을 울던 그는 어느 정도 진정이 된 다음에야 눈물을 닦으며 일어섰다. 계속 울고 있어 봐야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스물다섯이면 울고불고 떼를 써봐야 소용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을 나이였다.
‘내가 아니면… 누가 하겠어···.’
그는 지친 몸을 일으켰다. 이 집안에 남겨진 유일하게 남은 가족으로서,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있었다.
부서진 문을 열어 안방을 향해 걸어갔다. 그곳에는 허그베어와 비슷한 꼴이 된 어머니의 시신이 보였다.
허리가 동강 나고, 그다음에는 목이 동강 나고, 그다음에는 가슴과 다리가 동강 난 시신.
괴물의 포옹이란 그런 것이었고, 그는 이 광경을 본 적이 있기 때문에 안방의 문을 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안방에서 이불을 꺼내 어머니의 시신에 덮었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가족인 그가 아니면 이 시신을 챙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미안해요 엄마…”
그는 이불이 덮인 시신 앞에 무릎을 꿇었다. 괴물병은 서울 전역에 퍼진 재앙이었고, 아무리 대비를 했더라도 그의 어머니를 구할 방법은 없었다.
하지만 자책감과 죄의식은 이성과 논리를 넘어 그의 가슴에 파고들었다. 이렇게 슬플 줄 알았더라면, 차라리 자기가 먼저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는 또다시 눈물이 날 뻔한 것을 간신히 참아낸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에게는 아직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남아있었다. 재환은 이불을 하나 더 꺼내 안방을 떠났다. 그리고 이불을 허그베어의 사체에 덮었다. 비록 괴물이 되었다곤 해도, 가족으로서의 도의는 다하고 싶었다. 아직 괴물이 되지 않은 사람이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잠시 허그베어를 덮은 이불을 내려다보던 재환은 핸드폰을 주운 뒤 소파에 앉았다. 혈전을 끝낸 그의 몸과 마음은 거의 탈진하기 직전이었다.
‘일단 경찰이라도 불러보자.’
온 도시가 공황 상태였지만, 치안 시스템은 아직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괴물병 때문에 사람들이 외출을 자제하는 덕분이었다.
‘연결이 안 되면, 직접 경찰서라도 찾아가야 하는 건가?’
재환은 전화 연결이 쉽사리 되지 않자 걱정이 들었다.
‘설마 경찰서도 이 꼴인 건가?’
상황이 심상치 않다 보니 걱정이 들 수밖에 없었다. 괴물병은 순식간에 사람을 괴물로 만들고, 경찰 역시 사람인 이상 괴물이 되지 말란 법은 없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현실적인 고민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시신 수습, 집 청소, 장례식…’
다른 사람들 도움 없이 이 많은 일들을 혼자서 처리해야 한다니.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결국 신호음이 끊기면서 경찰을 부르는 것을 포기하려던 그때, 재환은 갑작스럽게 온몸에 소름이 돋아나는 것을 느꼈다.
‘뭐야. 이건 또 뭐지?’
기분 나쁜 감각. 마치 사자나 호랑이가 내뱉은 초저주파에 몸이 얼어붙은 초식동물이 된 기분이었다. 그는 혹시 집에 다른 괴물이 있는 건지 살펴보기 위해 주변을 둘러봤다. 하지만 집 안에는 그를 제외하면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신호음이 끊긴 핸드폰을 손에 쥔 채 주변을 살펴보던 순간, 창밖에서 귀를 찢어버릴 정도의 괴성이 온 도시를 휘감았다.
“—————–!!”
그는 고막이 찢어질 것만 같은 고통을 느끼며 주저앉았다. 귀를 막아도 울음소리는 고막을 넘어 뇌를 뒤흔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울음소리는 그쳤지만, 그 후유증 때문에 시야가 흐릿해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주저앉아있을 수만은 없다는 생각에 재환은 베란다로 나가 소리가 들려왔던 쪽을 바라봤다.
“젠장…”
창밖의 안개 속에는 거대한 ‘무언가’가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재환은 저 ‘무언가’의 정체가 무엇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의 뇌는 아직 빌딩보다 거대하고, 연체동물처럼 흐느적거리며, 무수히 많은 촉수로 빌딩의 창문 사이사이를 헤집는 ‘생명체’를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의 상식이 순간적으로 이해하길 거부한 것이다.
“저건 또 뭐야…”
안개 때문에 제대로 된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저 거대 생명체가 괴물이란 것쯤은 누가 봐도 뻔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착각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재환의 귓가에 속삭임이 들려왔다.
[사냥 대상: 불가해(不可解)] [분류: 추종자]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해서도 안 되는 괴물 중 하나.] [사냥하기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하다.]그는 이 ‘불가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 괴물의 이름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었고, 괴물의 종류를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었으며, 그것도 아니라면 ‘이해할 수 없음’을 나타내는 말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모든 게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한 가지 사실만은 확실했다.
저 괴물이 그의 아파트 단지를 향해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저 거대 괴수가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아파트 따위는 모래성처럼 부서질 거란 사실이었다. 재환은 이 집에 있다간 저 괴물에 의해 생매장당할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재앙은 사람들의 집마저 빼앗고 있었다. 이 사실을 직시하자 그는 증오를 느꼈다.
“꺄아아아악!!!”
괴물의 울부짖음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아파트 단지의 주민들이 괴물의 모습을 확인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파트 단지는 주민들의 비명으로 가득 찼다.
“저게 뭐야! 저게 뭐냐고!”
“엄마! 엄마! 엄마아아!”
모두가 겁에 질린, 대규모 공황 상태.
말 그대로 아비규환의 지옥 속에서 재환은 결정을 내렸다. 이런 상황일수록 냉정해야 했다.
‘도망치자.’
저편에서 ‘불가해’라고 불린 거대 괴수가 다가오는 것을 노려본 뒤, 재환은 피 묻은 옷을 갈아입었다. 그는 가방에 식수와 통조림을 챙겨 배낭에 넣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서울 전역이 재난 상황이었던 만큼 피난 준비는 신속했다.
‘지금 당장 저걸 죽일 방법은 없으니까.’
‘속삭임’은 지혜가 있으면 사냥할 수 있다는 듯이 말했지만, 상식적으로는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상대는 한눈에 봐도 웬만한 마천루보다 몇 배는 더 커 보이는 괴물이다.
폭격기를 부르고, 박격포를 발사하고, 미사일을 날려도 시원찮을 판에, 고작 도끼 한 자루 든 민간인이 뭘 할 수 있을까. 저 정도 크기의 거대 괴수를 잡으려면 군대라도 와야 할 것처럼 보였다.
‘아니, 군대가 와도 못 잡겠지.’
인터넷이 끊긴 이후, 서울 전역의 정보 전달 수단은 라디오가 주류를 차지했다. 그리고 라디오가 전달한 소식에 따르면, 수도방위 사령부를 비롯한 서울의 군대는 괴물과의 전투에서 연패를 거듭하는 중이었다.
‘도망치자. 일단 여기서 나가고 생각해야지.’
도망쳐야 했다. 괴물에 대한 증오와는 별개로, 일개 민간인 혼자서 거대 괴수를 홀로 상대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었다. 죽는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재환은 문을 연 뒤 밖으로 나갔다.
‘도망쳐야지… 그런데…’
그렇게 계단을 따라 내려가며 현관에 도착한 재환은 자동문 앞에서 멈춰 섰다. 센서가 그를 감지하면서 문이 열렸지만, 재환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서울 안에서 도망치는 건 의미가 없겠지.’
그는 자신의 옆을 지나 밖으로 나가려던 사람들을 바라봤다. 사람들은 바깥에 넘쳐나는 괴물을 보며 경악했다. 무작정 앞으로 달려가는 사람도 있었고, 주저앉은 사람도 있었으며, 실성한 사람도 있었다.
그는 사람들에게서 시선을 거둔 뒤 안개 너머에서 다가오는 거대 괴수를 바라봤다.
‘어차피 어디로 도망쳐도, 서울 밖으론 못 나갈 테니까.’
서울의 바깥에 있는 ‘안개의 장벽’ 속에서는 모든 것이 무용지물이었다. 기계는 고장 나고, 사람은 백치가 된다. 수많은 학자가 머리를 싸매고 연구 중이라는 소식은 들었지만, 아직 뾰족한 수는 나오지 않았다.
재환은 이를 꽉 깨문 뒤 결정을 내렸다.
‘그래도 확인은 해야지.’
그는 심호흡을 한 뒤 발걸음을 옮겼다. ‘속삭임’의 뜻대로 행동하는 것은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 상황을 끝낼 방법이 사냥뿐이라면, 그는 기꺼이 받아들일 생각이 있었다. 그 역시 이 악몽을 일으킨 원흉을 죽여 버리고 싶기는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그는 마지막으로 한 가지 사실을 확인하고자 했다.
‘서울 바깥으로 나가려고 한 사람들은 다 미쳐서 돌아왔다고 했지?’
소방도끼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러면 미치는 한이 있어도, 일단은 서울 밖으로 나갈 수 있는지 확인하자.’
이곳은 동대문구. 서울의 외곽에 해당하는 지역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걸어서 2시간 안에 서울 바깥으로 나갈 수 있었다.
‘나가면 지원을 부를 수 있고, 못 나가면 미련이 없어지니까.’
평소였다면 꿈도 꾸지 못할 배짱이었다. 하지만 그는 죽어도 되살아난다. 그것도 기억을 모두 보전한 채로. 덕분에 그는 목숨을 건 도박을 기꺼이 할 수 있었다. 배수진이 되거나, 활로가 되는 도박이었다.